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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86553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530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8/11/23 12:06:22
    http://todayhumor.com/?lovestory_86553 모바일
    [BGM] 이제는 다 놓아줄 것도 같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1.jpg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이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2.jpg

    김규동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

     

     

     

    꿈에 네가 왔더라

    스물세 살 때 훌쩍 떠난 네가

    마흔일곱 살 나그네 되어

    네가 왔더라

    살아생전에 만나라도 보았으면

    허구한 날 근심만 하던 네가 왔더라

    너는 울기만 하더라

    내 무릎에 머리를 묻고

    한마디 말도 없이

    어린애처럼 그저 울기만 하더라

    목놓아 울기만 하더라

    네가 어쩌면 그처럼 여위었느냐

    멀고먼 날들을 죽지 않고 살아서

    네가 날 찾아 정말 왔더라

    너는 내게 말하더라

    다신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눈물어린 두 눈이

    그렇게 말하더라 말하더라







    3.jpg

    김사인지상의 방 한 칸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 뿐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

    달아오른 불덩어리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 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 본다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4.jpg

    김윤현노루귀

     

     

     

    너를 오래 보고 있으면

    숨소리는 작은 꽃잎이 될 듯도 싶다

    너를 오래 오래 보고 있으면

    귀는 열려 계곡 너머 돌돌 흐르는 물소리

    다 들을 수 있을 듯도 싶다

    가지고 싶었던 것 다 가진 듯

    내 마음 속에 등불 하나 환히 피어나

    밤길을 걸을 듯도 하다

    마음으로 잡고 싶었던 것들

    이제는 다 놓아줄 것도 같다

    너를 보고 있으면







    5.jpg

    이영옥마늘 한 접

     

     

     

    베란다에 걸어 둔 마늘을 내렸다

    이건 마늘 한 접의 무게가 아니다

    육 쪽의 거푸집만 남아 버석인다

    손만 닿아도 허물어지는 몸

    이렇게 모든 것을 비워내기까지

    마늘의 마음은 어땠을까

    햇볕이 닿는 쪽으로

    쭈볏쭈볏 길을 냈을 텐데

    제 구실하지 못할 싹을 키우느라

    갈급증과 싸우던 흔적이 노랗다

    썩은 충치처럼 달그락거리던 마늘은

    입관을 마치고 조용히 누워있다

    저울위에 올려도 한 줌 먼지처럼

    눈금 한 칸을 밀어내지 못한다

    이건 시끄러운 삶이 모두 빠져 나가고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고요 한 접의 무게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18/11/23 18:31:09  59.2.***.51  사과나무길  563040
    [2] 2018/11/27 01:46:30  119.195.***.54  야옹어흥어멈  17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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