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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86374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431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8/10/22 17:40:24
    http://todayhumor.com/?lovestory_86374 모바일
    [BGM]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UNB-j4Dx70Q






    1.jpg

    김화순화법

     

     

     

    빗방울이 차창에 점묘화를 그린다

    와이퍼가 곧바로 지워버려도

    잡초처럼 돋아나는 무정형의 이미지들

    빗방울은 끊임없이 붓질 한다

    저건 새로움을 목말라한 세잔느의 화법(畵法)

    그의 목구멍에 고여 썩던 화법(話法)이고

    갈증 삭히지 못한 빗방울의 화법(化法)이다

    빛을 수만 개로 쪼개어 본 인상파 화가처럼

    하늘 볼우물에 담긴 수억의 말 퍼내고 있는 거다

    흩어진 시간 수억 개 모아도

    제 몸 수없이 잘게 나누고 나누어도

    구름은 한 개의 그림 완성하지 못한다

    무너지고 흩어진 나를 뒤적이다

    내가 지워지는 오후

    부서지고 덧칠하며 차창 아래

    수북이 쌓이는 화법들

    제 자리 찾아 헤맨다







    2.jpg

    여태천마지막 목소리

     

     

     

    자주 해가 지는 시간이 찾아와서

    나는 무서웠다

    어디쯤에서 저 끝은 시작되었을까

    안녕 잘 지내니라는 말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는

    종이는 종이대로

    글씨는 글씨대로

    이미 어둠에 하나씩 발을 들여놓고서

    나는 자주 해가 지는 시간을 기다려

    저 어둠의 음질(音質)을 기억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야

    자주 해가 지는 시간이 와도

    그래 이제는 괜찮아라는 말을

    별 뜻 없이 쓸 수 있게 되고

    조금씩 밝아오는 쪽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때쯤에서야

    괜찮아 괜찮아

    사라지지 않고 반복되는 컴컴한 목소리들

    시간은 시간대로

    감정은 감정대로

    글씨는 글씨대로

    괜찮은 거다

    모두가 괜찮은 거다







    3.jpg

    조창환오래된 방석

     

     

     

    늙은 거지가 고개를 조금

    왼쪽으로 기울이고 천천히

    걷는다

     

    햇빛이 거지 부근에서 아지랑이처럼

    망설인다

     

    길이 굽은 곳에서 거지가

    쉴 때

    한 발짝 뒤쳐진 허공에 걸린

    그늘도

    왼편으로 기울어져 천천히

    녹는다

     

    골목이 늙은 거지의 굳은 일평생을 만나

    오래된 방석처럼 등을 내민다

     

    골목은 늙은 거지의 아내처럼

    운다골목은 늙은

    거지처럼

    늙었다

     

    늙은 거지는 골목을

    저승까지 데려갈 모양이다







    4.jpg

    박이화모란와인

     

     

     

    취해도 아름다운 건

    술이 아니라 꽃이다

    길고 우아한 꽃대에

    한 잔의 와인처럼 찰랑이는 모란

     

    아직 반이 채워졌다고 해야 하나

    이미 반이 비워졌다고 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이 잔에서 저 잔으로 붉은 나비의 입술 옮겨 간다

     

    목이 길어 슬픈 짐승처럼

    저 미끈한 녹각 위에 피보다 선명한 한 잔의 와인

    그 모란 한잔 쏟아진 자리에

    핏빛 흥건한 꽃잎 엎질러져 있다

    그렇게 피는 물보다 진하고

    그 피보다 진한 게 또 사랑이어서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

    취해서 아름다운 건 술이고

    취해도 아름다운 건 꽃이다

    바람 앞에

    잔과 잔이 부딪히며

    이윽고 봄날은 빈 술병처럼 깊어간다







    5.jpg

    여림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내리는 비는 점점 장대비로 변해가고 그 빗속을 뚫고 달리는

    버스 차창에 앉아 심란한 표정을 하고 있을 너를 떠올리면서

    조금씩 마음이 짓무르는 듯했다

    사람에게는

    때로 어떠한 말로도 위안이 되지 못하는 시간들이 있다

    넋을 두고 앉아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본다거나

    졸린 듯 눈을 감고 누웠어도 더욱 또렷해지는 의식의 어느 한 부분처럼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너를

    보내는 길목마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18/10/22 19:42:05  59.2.***.51  사과나무길  56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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