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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86224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579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8/09/18 17:03:28
    http://todayhumor.com/?lovestory_86224 모바일
    [BGM]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1.jpg

    정끝별크나큰 잠

     

     

     

    한 자리 본 것처럼

    깜빡 한 여기를 놓으며

    신호등 앞에 선 목이 꽃대궁처럼 꺾일 때

    사르르 눈꺼풀이 읽던 행간을 다시 읽을 때

    봄을 놓고 가을을 놓고 저녁마저 놓은 채

    갓 구운 빵의 벼랑으로 뛰어들곤 해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사과 냄새 따스한

    소파의 속살 혹은 호밀빵의 향기

    출구처럼 다른 계절과 다른 바람과 노래

    매일 아침 길에서 길을 들어설 때

    매일 저녁 사랑에서 사랑을 떠나보낼 때

    하품도 없이 썰물 지듯

    깜빡깜빡 빠져나가는 늘 오늘

    깜빡 한 소식처럼

    한 지금을 깜빡 놓을 때마다

    한입씩 베어먹는 저 큰 잠을 향해

    얼마나 자주 둥근 입술을 벌리고만 싶은가

    벼락치듯 덮치는 잠이 삶을 살게 하나니

    부드러워라 두 입술이 불고 있는 아침의 기적

    영혼의 발끝까지 들어올리는 달콤한 숨결

    내겐 늘 한밤이 있으니

    한밤에는 저리 푹신한 늘 오늘이 있으니







    2.jpg

    정호승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3.jpg

    곽재구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숨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4.jpg

    권혁웅파문

     

     

     

    오래 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느 집 좁은 처마 아래서 비를 그어 보라파문

    부재와 부재 사이에서 당신 발목 아래 피어나는

    작은 동그라미를 바라보라

    당신이 걸어온 동그란 행복 안에서

    당신은 늘 오른쪽 아니면 왼쪽이 젖었을 것인데

    그 사람은 당신과 늘 반대편 세상이 젖었을 것인데

    이제 빗살이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어떤 간격을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다면

    어느 집 처마 아래 서 보라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사이에 촘촘히 꽂히는

    저 부재에 주파수를 맞춰 보라

    그러면 당신은 오래된 라디오처럼 잡음이 많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파문







    5.jpg

    나희덕뿌리에게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나의 사랑을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나를 뚫고 오르렴

    눈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가려무나

     

    척추를 휘어 접고 더 넓게 뻗으면

    그때마다 나는 착한 그릇이 되어 너를 감싸고

    불꽃 같은 바람이 가슴을 두드려 세워도

    네 뻗어가는 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어리석고도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

     

    네가 타고 내려올수록

    단단해지는 나의 살을 보아라

    이제 거무스레 늙었으니

    슬픔만 한 두릅 꿰어 있는 껍데기의

    마지막 잔을 마셔다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내 가슴에 끓어오르던 벌레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빈 그릇

    너의 푸른 줄기 솟아 햇살에 반짝이면

    나는 어느 산비탈 연한 흙으로 일구어지고 있을 테니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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