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함대에서 전남함이란 이름의 FF(호위함)을 타던 1995년.</p><p>오랜 항해를 마치고 인천으로 귀항하던 날.</p><p>우리는 이미 정박해 있는 서울함의 우현에 좌현을 계류하게 되었다.</p><p><br></p><p>해군에서는 서로 다른 급의 함정끼리 계류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p><p>이런 경우 일이 좀 까다롭다.</p><p>우선 배 길이가 다르다보니 후갑판의 위치도 다르고</p><p>당연히 포의 위치나 각종 구조물의 위치가 다르다.</p><p>따라서 상대 함정에 방해되지 않게 현문을 설치하거나</p><p>육전(육상전원) 케이블 등 각종 구조물을 설치하려면 <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위치를 잘 맞춰야 한다.</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하지만 서울함은 다행히 우리와 같은 FF이기 때문에</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대충 현문 설치할 위치만 맞추면 된다.</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br></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위치가 맞지 않았다.</span></p><p>각각 함수와 함미쪽에 위치한 YTL(예인선)이 밀고 당기기를 여러번...</p><p>좀처럼 위치가 맞지 않았다.</p><p>도선사와 함장, 그리고 갑판장도 나름대로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겠지만</p><p>배가 이리저리 끌려 다닐 때마다 다른 배와의 직접 충돌을 막기 위해</p><p>휀다를 들고 뛰어 다녀야 하는 사람들도 머리가 아프기는 매 한가지였다.</p><p>- 해군에서 사용하는 휀다는 크게 고정식과 이동식 두가지가 있다.</p><p>고정식은 아예 정박 전부터 한곳에 고정해서 설치하는 것이고</p><p>이동식은 출입항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세밀한 곳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p><p>사람이 들고 다니며 대 주는 것이다.</p><p><br></p><p>한참을 씨름하던 배가 드디어 위치가 맞기 시작했다.</p><p>나는 충돌에 대비해 이동식 휀다를 들고</p><p>충돌이 예상되는 지점에서 미리 대기를 하고 있었다.</p><p>그런데...</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함수와 함미쪽 YTL이 서로 싸인이 맞지 않았던 건지</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아니면 도선사가 지시를 잘못 내린 건지</span></p><p>서울함과 우리 배의 함미가 불과 1m도 남지 않은 순간</p><p>갑자기 배 위치가 틀어져버린 것이다.</p><p>우리 배는 함미 모서리 부분으로 정확하게 서울함 함미를 가격했다.</p><p>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p><p>마침 그 위치에 이동식 휀다를 대고 있던 내가 다급하게 소리쳤지만</p><p>쇠가 쇠를 갈아내는 육중한 소음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p><p>전남함과 서울함은 함미 부포 갯수와 장비의 차이로 무게 차이가 있다.</p><p>우리 배보다 가벼웠던 서울함이 약 20cm 높았던 탓에</p><p>우리 배 모서리가 서울함 함미 훌넘버 있는 부분에 내 머리만한 구멍을 내고 말았다.</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처음부터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서울함 함장이 노발대발 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span></p><p><br></p><p>\"얌마!!! 휀다를 똑바로 대야 할 거 아냐!!!\"</p><p>\"죄송합니다\"</p><p>\"죄송하다면 다야? 너 이거 어떻게 책임 질거야?\"</p><p>\"....<span style=\"font-size: 8pt;\"> <span style=\"font-size: 9pt;\">죄송합니다</span></span>\"</p><p>\"이 새끼가... 남의 배에다 빵꾸를 내 놓고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어?!!!\"</p><p>\"... <span style=\"font-size: 8pt;\">죄</span><span style=\"font-size: 8pt;\">송합</span><span style=\"font-size: 8pt;\">니다</span>\"</p><p>\"이름이 글로야? 너 직별이 뭐야? 기수는?\"</p><p><br></p><p>어찌할 도리가 없었다.</p><p>이렇게 내 군생활이 끝나는구나 싶었다.</p><p>그 순간...</p><p>O-1 데크(중갑판)로부터 한줄기 서광이 비추는 듯 하더니</p><p>천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p><p><br></p><p>\"어이 서울함장. 거 왜 애를 갖고 그러나?\"</p><p>\"아 선배님. 아 글쎄 이 녀석이 휀다를 똑바로 안 대서...\"</p><p>\"내가 다 봤어. 우리애 잘못이 아니잖아. YTL이 잘못 밀어서 그런 건데\"</p><p>\"그래도 선배님...\"</p><p>\"내가 때워 줄까?\"</p><p>\"그건 아니구요\"</p><p>\"말 해. 내가 때워 줄게\"</p><p>\"아니 뭐... 괜찮습니다\"</p><p>\"퇴근하는 길이지? 오랜만인데 술이나 한잔 하러 가자\"</p><p><br></p><p>그랬다.</p><p>우리 함장이 서울함장보다 사관학교 선배였던 것이다.</p><p>분명 서울함장은 피해자임이 분명했지만</p><p>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끗발로 밀어붙이는 우리 함장에게 질 수밖에 없었다.</p><p>그렇게 나는 지옥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고</p><p>그 뒤로 절대로 이동식 휀다를 잡지 않았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