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995년 6월 6일</p><p>우리 배는 현충일을 맞아 함정 공개 행사를 치르고 오후 늦게 출항을 했다.</p><p>보름간의 경비 임무를 위한 정상적인 출항이었다.</p><p>당시 2함대는 넓은 경비구역에 비해 함정 숫자가 턱없이 모자란데다</p><p>자체 수리가 거의 불가능했기에 작은 고장에도 진해까지 내려가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p><p>그러다보니 말이 15일이지 교대할 배가 없어 그 기간을 넘기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었다.</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우리 배 역시 계획된 15일이 지났지만 교대해주기로 했던 배들이 줄줄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span></p><p>이미 40일이 넘게 항해를 하게 됐다.</p><p><br></p><p>날은 더운데 바닷물을 민물로 바꿔 주는 조수기 성능이 좋지 않아</p><p>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다보니 승조원들의 불쾌지수는 극에 달해 있었다.</p><p>그러던 어느날...</p><p>나의 주 근무 공간인 CIC(Combat Information Center. 전투정보 상황실) 옆에 있는</p><p>유도조정실에서 종이로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후배들을 보게 됐다.</p><p><br></p><p>"야. 니네 뭐 하냐?"</p><p>"배 만들고 있는데요"</p><p>"배? 그걸 만들어서 뭐 하게?"</p><p>"바다에 띄워야죠"</p><p>"왜?"</p><p>"그냥 심심해서요"</p><p>"그래? 그럼 이왕이면 마스트(돛대)도 세우고 제대로 만들어 봐"</p><p>"그게 낫겠죠?"</p><p>"그리고, 이왕이면 거기다 각자 소원도 하나씩 적어서 띄우자"</p><p>"오~~~ 굿 아이디어!!! 역시 글로 선배라니까"</p><p>"내가 쫌 해 새끼들아^^"</p><p><br></p><p>어설픈 종이배였던 우리들만의 배는 어느새 마스트도 세워지고</p><p>나무 막대와 스카치 테잎으로 급조한 용골도 생겨 제법 그럴듯한 모양이 되었다.</p><p>그리고 이제 소원을 적을 차례가 되었다.</p><p>서열순으로 하면 내가 제일 먼저 적어야 하지만</p><p>애초에 배를 만들어서 띄우자고 아이디어를 낸 사람들은 후배들이니</p><p>후배들에게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p><p>그렇게 한명 한명 소원을 적어 가고 있던 순간...</p><p>유도조정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난데 없이 함장님이 나타나셨다.</p><p>그리고 함장님은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띄우시곤 우리들을 하나하나 살피셨다.</p><p>우리들은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어린아이들처럼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p><p><br></p><p>"필승!!!"</p><p>"어 그래. 너는 사통이고... 너는 유도고... 야~~~ 근데 너 머리가 참~~~"</p><p><br></p><p>머리카락이 웬만한 사회인만큼 길었던 후배가 함장님께 딱 걸린 것이다.</p><p><br></p><p>"깎겠습니다!!!"</p><p>"아니야. 자신의 개성을 살리는 건 좋은 거야. 그냥 계속 길러"</p><p>"감사합니다!!!"</p><p>"어디 보자... 이건 뭐냐?"</p><p>"네!!! 저희가 만든 종이뱁니다!!!"</p><p>"종이배? 이걸 뭐 하게?"</p><p>"소원을 적어서 띄우려던 참입니다!!!"</p><p>"소원??? 그럼 나도 하나 적어도 되나?"</p><p>"네!!! 그렇게 하십시오!!!"</p><p>"이야~~~ 배 잘 만들었는데... 누가 만든거냐?"</p><p>"다 같이 만들었습니다!!!"</p><p>"그렇군. 어디 보자... 펜 좀 줘봐"</p><p><br></p><p>후배가 건넨 펜을 받아드신 함장님은 일필휘지로 소원을 적기 시작했다.</p><p><br></p><p>'빨리 교대하고 들어가게 해 주세요'</p><p><br></p><p>"풉"</p><p>"웃냐?"</p><p>"아닙니다. 흐흐흐흐"</p><p>"함장도 너희들하고 똑같아 이놈들아^^"</p><p>"네. ㅋㅋㅋㅋㅋㅋㅋ"</p><p>"야. 이거 이럴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적게 하자"</p><p>그렇게 해서 길이 약 1m에 폭 약 20cm 정도 되는 종이배에는</p><p>함 총원인 300여명의 소원이 빼곡하게 적혔다.</p><p>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진수식.</p><p>진수식은 해군 전통에 따라 치러졌다.</p><p>배를 잠깐 멈추고 단정을 내려 절차에 따라 종이배를 소중히 띄우고 명명식을 했다.</p><p>(그 배 이름을 뭐라고 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p><p>그리고 해류에 떠밀려 멀어지는 우리들의 소원이 적인 종이배를 향해 대함경례를 했다.</p><p><br></p><p>"삐~빅!!! 좌현 갑판상 대함 경례 준비. 총원~ 차렷!!!"</p><p>"삐익~~~~ 경례!!!"</p><p>"필!!!승!!!"</p><p><br></p><p style="text-align: left;"><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302/eb3567fdae4076f3d29812eb6498ae52.jpg" class="txc-image" style="clear:none;float:none;" /></p><p><br></p><p style="text-align: left;"><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302/1b803718b0acf9cf988fbd94e2f42a82.jpg" class="txc-image" style="clear:none;float:none;" /></p><p><br></p><p><br></p><p style="\"text-align:" left;\"=""><br></p><p><br></p><p style="\"text-align:" left;\"=""><br></p><p><br></p><p><br></p><p>그렇게 한여름의 이벤트는 끝이 났고</p><p>함장님의 소원대로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p><p>1박 2일 동안이긴 하지만 인천항에 입항할 수 있었다.</p><p><br></p><p>P.S : 사실은 경비 구역 비워 놓고 무단으로 입항하겠다는 함장님의 협박에 못 이긴 사령부에서</p><p>긴급 입항이란 명목으로 아주 잠깐 입항할 수 있게 허가해 줬다.</p><p>이튿날 출항한 우리 배는 다시 기나긴 항해 끝에 추석을 이틀 앞두고 입항할 수 있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