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드디어 계사년 새해가 밝았습니다.</p><p>설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p><p>올해는 절대 생길 리가 없는 우리 오유 회원들께도</p><p>뭐가 됐든 생기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 봅니다.</p><p>그래서 올해부터는 되도록 음슴체를 쓰지 않기로 했답니다^^</p><p>대신 이것도 일종의 수기니까 존댓말이 아닌 반말체로 쓰도록 하겠습니다^^</p><p><br></p><p>때는 1996년.</p><p>2함대 소속이었던 우리 배는 진해 5부두에서 정기수리를 하고 있었다.</p><p>직별과 부서의 서무사*였던 나는 수리 업무 외에도</p><p>우리 직별과 부서 전체의 행정 업무를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p><p><br></p><p>* 서무사 : 함내 전체 행정업무와는 별도로 각 직별이나 부서별로 필요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p><p><br></p><p>수리 기간 중엔 승조원의 1/3 정도가 휴가를 가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p><p>그 당시 나의 하루 일과를 정리해 보면...</p><p>우리 직별에서 사용하는 레이더를 비롯한 사격통제 장비는 함정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다</p><p>여러곳에서 동시에 수리가 진행되기 때문에 모든 곳을 쫓아다니며 수리 진행 상황을 점검한다.</p><p>어느 곳이 어떻게 고장이 났고, 어떻게 조치가 되었는지, 어떤 부품을 얼마나 사용했는지</p><p>일일이 점검하고 기록해야 하며, 그 수리를 누가 했는지도 기록해야 한다.</p><p>부서별로 할당된 구역을 정비하는 부서과업에도 참여해야 한다.</p><p>녹슨 곳의 페인트를 까 내는 '깡깡이' 작업부터 페인트칠까지...</p><p>그리고 부서 서무사까지 겸직하고 있었던 나는</p><p>게으르고 멍청한데다 교활하기까지 한 포술장 덕분에</p><p>우리 부서의 각 직별 서무사들이 보고하는 자료를 취합해 통합문서로 만들어 보고하는 일까지 맡아야 했다.</p><p>직별 서무사가 휴가라도 가게 되면 그 업무는 고스란히 내게로 넘어 오기도 했다</p><p>거기다 ATT - 모의 전술 및 전투 훈련 - 까지 받으러 다니다보니</p><p>때를 놓쳐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고 퇴근은 고사하고 하루 수면시간이 3~4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나날의 연속이었다.</p><p><br></p><p>그러던 내게도 드디어 휴가 차례가 돌아왔다.</p><p>그러나 교활한 포술장(소령)이 절대로 나를 그냥 보내줄 위인이 아니다.</p><p>산더미 같은 일을 던져주며 한마디를 하고 간다.</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20일까지 휴가인 내게) 22일까지만 하면 되니까 휴가 갔다 와서 천천히 해"</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이 말은 곧 </span><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네게 노트북이 있는 걸 알고 있으니 휴가 가서 딴짓 하지 말고 이 일을 끝내고 와'라는 압력이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하지만 당시 내 노트북은 보안 정신 투철한 기암(기밀.암호, 또는 통신기밀을 뜻하는 통기)장이 </span><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철저하게 고장을 내 놓은 상태였다.</span></p><p>기암장에 대한 썰은 다음에 풀기로 하자.</p><p><br></p><p>어찌됐든, 인터넷이란 것도 없고 PC방도 없고, 집집마다 PC가 있지도 않던 시절</p><p>포술장이 던져 준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휴가를 반납하고 일을 하는 방법 뿐이었다.</p><p>하지만 휴가를 반납하겠다는 내 말에 우리 사통장과 선임하사는 절대로 안 될 일이라며 펄펄 뛰었고</p><p>휴가 전날 퇴근 무렵 나는 어쩔 수 없이 휴가증을 받아 들고 배에서 쫓겨나야 했다.</p><p><br></p><p>하지만 내가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던가.</p><p>다음날 느지막이 남문 헌병에게 휴가증을 보여주고 부두로 들어갔고</p><p>복잡한 5부두 근처에서 서성이다 드디어 현문을 통과해 배로 잠입하는데 성공했다.</p><p>워낙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휴가를 가다보니</p><p>같은 부서 사람이 아니면 누가 휴가를 가는지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p><p>한 번 잠입에 성공한 나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몰래 출근해서 일을 했다.</p><p><br></p><p>하지만 좁디좁은 함정에서 연속으로 3일이나 숨어지내는 것은 불가능했다.</p><p>결국 3일 만에 우리 부서 병선(병기 선임하사)한테 걸리고 말았다.</p><p><br></p><p>"(태연하게) 안녕하십니까?"</p><p>"어 글로. 열심히 일하는구나"</p><p>"뭐 그렇죠^^"</p><p>"그래 열심히 해라"</p><p>"네. 수고하십시오"</p><p>"그래..................... 잠깐... 너 지금 여기 왜 있냐?"</p><p>"(최대한 자연스럽게) 일 하잖아요^^"</p><p>"그러니까 임마. 휴가 가 있어야 할 놈이 왜 여기서 일을 하고 있냐고!!!"</p><p>"아... 그게 그러니까..."</p><p>"야!!! 사선(사격통제 선임하사)!!!"</p><p>"선임하사님!!! 쉿!!!"</p><p>"뭐 이새꺄?!!!"</p><p><br></p><p>사건의 여파는 컸다.</p><p>자초지종을 들은 우리 사통장과 주임원사인 병기장이 포술장에게 가서 따졌지만</p><p>뻔뻔하기까지 한 포술장이 도리어 큰 소리를 치자</p><p>부장 - 지난 번 글에 등장하신 베네수엘라에 유학 갔다 오신 분 - 께까지 보고가 들어갔다.</p><p><br></p><p>결국 포술장은 부장에게 불려와 나와 우리 부서 직별장들이 보는 자리에서</p><p>지휘관으로서 부덕함을 호되게 질책 받았고 나는 그대로 배에서 쫓겨나야 했다.</p><p>그날부터 새로 계산한 휴가 기간이 기재된 휴가증을 들고...</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