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해군은 함정생활을 하다보니 타군에 비해 독특한 관습과 제도들이 많습니다.</p><p>몇가지 간단하게 설명을 드릴게요.^^</p><p><br></p><p>1. 15분 전과 5분 전</p><p>해군! 하면 떠 오르는 대표적인 제도입니다.</p><p>무엇을 하든지 30분 전부터 예비구령이 나오기 시작합니다.</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출항 30분 전"이면 30분 후부터 출항준비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span></p><p>'30분 후에는 우리 배가 이미 출항을 해 있어야 하니 지금부터 준비해'라는 뜻입니다.</p><p>그리고 15분 전부터는 본구령입니다.</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출항 15분 전이면 15분 후에 출항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15분 후에는 우리 배가 해상에서 자력 항해를 시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따라서 육상으로 연결된 현문사다리를 철거하고</span></p><p>홋줄(육상에 연결된 밧줄)을 풀어 버린 후 YTL(예인선)이 예인을 시작합니다.</p><p>실질적인 항해 상태가 되는 것이죠.</p><p>출항 5분 전이면 예인을 마치고 자력 항해로 부두를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p><p>이걸 기상시간에 적용을 하면...</p><p>총기상 30분 전이면 30분 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p><p>그 즉시 기상을 해서 이불을 개고 조별과업(아침 운동)을 준비합니다.</p><p>그리고 총기상 15분 전에는 이미 육상에 집합을 완료한 상태가 됩니다.</p><p>이 구령들은 해군의 모든 생활에 적용됩니다.</p><p>그럼 취침시간은 어떨까요?</p><p>순검(점호) 15분 전이 나오면 이미 순검을 돌고 있습니다.</p><p>"산천초목이 벌벌 떠는 해군(또는 해병) 순검"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p><p>해군과 해병대의 순검은 까다롭기가 말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p><p>함정 내에 있는 수많은 케이블, 파이프 위까지 샅샅이 훑어서 청소상태를 점검합니다.</p><p>이렇다보니 좀 까다로운 당직사관과 위병오장을 만나면</p><p>순검을 받다가 취침시간인 10시를 훌쩍 넘겨버리기도 합니다.</p><p><br></p><p>전역 후에 해군 전우회 모임에 갔더니</p><p>15분 전에 웬만한 선배들은 다 모여 있더군요^^</p><p>어찌보면 참 좋은 습관이고 어찌 보면 참 답답할 노릇입니다^^</p><p><br></p><p>2. Side</p><p>함정내에는 수많은 케이블과 파이프들이 천장이나 격벽(벽)으로 지나갑니다.</p><p>이렇게 잘 보이지 않는 곳이나 구석진 곳을 Side라고 합니다.</p><p>청소시간에는 이 Side 청소를 특히 신경 써야 합니다.</p><p>여기에 먼지가 쌓이면 승조원들의 건강을 해치게 되니까</p><p>그걸 방지하기 위해 순검 시간에 특히 중점적으로 확인하는 곳입니다.</p><p>Side에는 또 다른 파생의미가 있습니다.</p><p>구석진 곳을 의미하는 Side가 구석진 곳에 짱박혀서 농땡이 피우는 사람의 뜻도 포함하게 된 것입니다.</p><p>제가 그동안 쓴 글들을 읽어보신 분들은 제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는지 짐작하실 겁니다.</p><p>하지만 제 별명은 King Side, Side King, King of the Side 뭐 이런 것들이었습니다.^^</p><p>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고 하죠?</p><p>솔직히 저는 머리가 좋습니다.</p><p>그래서 똑같은 일을 해도 남보다 빨리 끝났습니다.</p><p>같은 양의 일을 하면서 남들은 뺑이 까고 있을 때 <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저는 일찍 끝내고 쉬는 거죠.</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덕분에 늘 싸이드를 깐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했습니다.</span></p><p>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일이 끝나면 그냥 짱박히는 겁니다.</p><p>제가 한 번 짱박히면 웬만해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p><p>심지어는 눈앞에 두고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위장이나 은폐, 엄폐를 하기도 했죠^^</p><p>지난 글에서 함장님 이.취임식날 저를 찾다 못 찾아서 방송까지 했던 거 기억하시나요?</p><p>그정도로 저는 잘 숨었습니다^^</p><p><br></p><p>3. 길차렷</p><p>함정은 상당히 제한된 공간입니다.</p><p>대부분의 공간은 장비에게 다 내어주고 사람은 아주 좁디좁은 곳에서 생활합니다.</p><p>그러다보니 경례 방법도 독특합니다.</p><p>아니, 독특하다기보다 전군 공통의 경례 방식 중 타군에선 쓸 기회가 없는 것들을 해군에선 일상적으로 씁니다.</p><p>그중 하나가 길차렷입니다.</p><p>통로나 격실(사람이나 장비가 있는 공간)에서 상관을 만났을 때</p><p>한쪽벽으로 붙어 서서 차렷 자세를 취하는 겁니다.</p><p>좁은 통로에서 상관이 불편을 느끼지 않고 편히 지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최고의 예우로서 경례의 일종입니다.</p><p>굳이 경례를 하고 싶다면 90도 경례가 아닌 45도 또는 15도 경례를 합니다.</p><p>또 항해중인 함정에서는 차렷을 할 때 다리를 모아 서는 경우가 드뭅니다.</p><p>음... 쉬어 자세를 연상하시면 이해하기 좋겠네요^^</p><p>그 상태에서 경례를 해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으며 <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오히려 당연한 관습입니다.</span></p><p>파도가 많은 날이나 고속항해 중엔 다리를 벌리고 서서 라이프라인을 잡고 경례를 하기도 합니다.</p><p><br></p><p>경례 구호는 그때그때 다릅니다.</p><p>언뜻 이해가 안 가시죠?^^</p><p>해군의 경례 구호는 "필승"이지만 경례할 때 이 구호를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p><p>아침에 출근하다 만나면 경례를 하면서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해도 됩니다^^</p><p>밥 먹으러 가다 만나면 "식사하십시오"., "식사하셨습니까?"</p><p>퇴근하다 만나면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해도 무방합니다.</p><p>다른 함정이나 부서에 방문했을 때도 거수 경례를 하면서 "수고하십니다" 이렇게 하기도 합니다.</p><p>병원에 있을 때 이것 때문에 육군 하사와 중사들이 시비를 많이 걸더군요.</p><p>니넨 그게 경례 구호냐면서...</p><p>근데 오히려 육군 CPO(원.상사)들은 친밀감이 느껴진다며 정말 좋아하더군요.^^</p><p><br></p><p>4. 다나까</p><p>해군은 다나까에 목숨 걸지 않습니다.</p><p>정확히 말하면 "말입니다"를 웬만해서 쓰지 않게 합니다.</p><p>"제가 말입니다 지난번에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말입니다 여자친구가 저한테 시계를 선물로 줬지 말입니다"</p><p>이렇게 말하면 혼날 확률이 아주아주 높습니다.</p><p>"제가 지난번에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여자친구가 저한테 시계를 선물로 줬습니다"라고 하면 될 걸</p><p>쓸데없이 말입니다를 붙여서 말 복잡하게 만든다고 혼납니다.</p><p>육군 출신들 얘기 들어보니까 "식사하십시요"에 요가 들어간다고 "식사하시지 말입니다"라고 한다던데</p><p>정확한 말은 "식사하십시오"일 뿐만 아니라 이 말도 극존칭이므로 해군에서는 당연하게 씁니다.</p><p>함정은 각종 소음으로 상당히 시끄럽기 때문에</p><p>가능하면 큰 목소리로 간단명료하게 의미를 전달해야 합니다.</p><p>그게 일상생활에도 적용되다 보니 굳이 다나까에 목숨을 걸지 않는 겁니다.</p><p>간단명료... 이게 해군 언어생활의 핵심입니다.</p><p>예를 들어 함장님이랑 대화할 때...</p><p><br></p><p>"야. 글로. 밥 먹었냐?</p><p>"아니오"</p><p>"이시간까지 밥도 안 먹고 뭐했나?"</p><p>"그러게요^^"</p><p>"얼른 가서 밥 먹어라"</p><p>"네"</p><p><br></p><p>물론 이정도로 기합 빠진 대화는 저처럼 군생활을 좀 길게 한 사람들이나 가능합니다.</p><p>하지만 영내하사들이나 수병들의 언어습관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p><p><br></p><p>5. 관등성명</p><p>해군에서는 일상생활에서 관등성명을 대지 않습니다.</p><p><br></p><p>"야. 글로"</p><p>"네"</p><p><br></p><p>이게 답니다.</p><p>관등성명을 대야 할 때가 있긴 있습니다.</p><p>T.I라고 전비태세 점검인가 그거 할 때 딱 한번 관등성명을 댑니다.</p><p>해군이 관등성명을 대지 않는 것은</p><p>정말 눈 깜짝할 새에 눈 앞에서 동료가 바다로 빠져버릴 수도 있고 다리가 잘릴 수도 있는</p><p>급박한 상황에서 관등성명을 대느라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p><p>또는 처음 우리 해군을 훈련시킨 사람들이 미해군이다 보니 그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p><p>이유야 어찌됐건 해군은 관등성명을 대지 않아도 돼서 참 편하긴 합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