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얘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월남전에 대해서 간략히 정리하겠습니다.</p><p><br></p><p>베트남 파병은 1961년에 박정희가 케네디에게 먼저 제안을 했다가 까입니다.</p><p>이후 1964년에 존슨 대통령의 요청으로 의료부대 140명이 파병되고</p><p>통킹만 사건 이후 후방지원부대 파병 요청에 따라 1965년에 비둘기부대가 파병됩니다.</p><p>그리고 비둘기부대가 파병된 바로 다음날 주미 한국대사가 미국무부 차관을 만나</p><p>추가파병할 의사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여기서 몇가지 협상을 합니다.</p><p></p><ol><li>파병 상한선은 5만명이내 </li><li>한국군의 현대화 지원 </li><li>북한의 침공시 미국이 즉각 출병하도록 한미방위조약을 개정한다. </li><li>남베트남에서 사용할 군수품 공급 등 한국의 남베트남 시장진출을 보장한다. </li></ol><p></p><p>이 협상 결과에 따라 한국은 주월한국군사령부를 창설하고</p><p>1965년 청룡부대를 시작으로 누계 병력 32만명을 파병하게 됩니다.</p><p>파병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8년 당시에 베트남에 주둔하고 있던 한국군 수가 5만명에 달했다고 합니다.</p><p><br></p><p>미국은 파병의 댓가로 한국군에게 2억 3천 6백만 달러를 지급했습니다.</p><p>덕분에 한국은 파병 전보다 GNP가 5배 가량 성장할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뤘습니다.</p><p><br></p><p>자... 이제 각설하고...</p><p>당시 우리 해군은 LST(상륙함)을 이용해 파병 병력을 베트남까지 수송하고</p><p>파병 임기 1년을 채운 병력들을 다시 한국으로 태워 오는 임무를 맡았습니다.</p><p>당연히 한국군의 현대화를 위해 미국이 지원해줬던 각종 무기들도 같이 싣고 왔죠.</p><p><br></p><p>베트남에서 출발한 LST가 진해항에 도착할 때가 되면</p><p>미군측에서 감시관 비슷한 사람이 나왔다고 합니다.</p><p>부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짐들을 일일이 검사해서</p><p>미국이 지급한 무기들을 모조리 반납 받는 일을 했던 사람인데...</p><p>해군에서는 이 사람을 피하기 위해 진해항 입구에 투묘를 해놓고 버텼다고 합니다.</p><p><br></p><p>그런데... 서슬 퍼렇게 부두에서 지키고 서서 입항하라고 종용하던 감시관은</p><p>퇴근 시간이 되면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면 퇴근을 해 버렸답니다.</p><p>그러면 얼른 입항을 해서 미국이 지급해 준 무기들을</p><p>몽땅 내려서 빼돌려 놓고는 다시 아까 그 자리로 돌아가는 거죠.</p><p>그리고 아침이 되어 감시관이 출근을 하면 못 이기는 척 입항을 하고 검사를 받죠</p><p><br></p><p>베트남전 초기에는 미국인들이 부대로 찾아와서 검사를 할까봐</p><p>귀국 후 휴가 나가는 군인들에게 M-16을 한자루씩 들려서 보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p><p>저희 아버지도 베트남에 두 번 갔다 오셨는데</p><p>거기서 받은 월급을 외가에서 몽땅 다 썼다는 사실을 알고 격분해서</p><p>외갓집 지붕에다 M-16을 난사하셨다고 하더군요.</p><p>동네 어르신들은 다 아는 유명한 얘기입니다.</p><p><br></p><p>어쨌거나 누계 인원이 35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이었으니</p><p>거기서 빼돌린 무기도 어마어마 할 겁니다.</p><p>그리고 그 때 그 일 때문인지</p><p>우리배에서 보관하고 있던 M-16 중에는 미국제도 꽤 있었습니다.</p><p>(해군은 개인화기가 없으며 전투상황 발생 시 소병기 사수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지급할 총기들을 병기고에 따로 보관합니다)</p><p><br></p><p>따라서 박정희가 외국의 군수업자로부터 받은 뇌물을 돌려주며</p><p>그 돈 만큼 M-16을 보내 달라고 했고, 덕분에 한국군이 현대화가 됐다는 일화는 구라 중에서도 상구라임을 밝힙니다.</p><p><br></p><p>이상 1990년대에 군생활 한 사람이</p><p>1960~70년대부터 근무하신 선배들로부터 들은 썰이었습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