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때는 바야흐로 1997년 초.</p><p>강원도 동해안에 위치한 해군부대에서 일.</p><p>새벽 4시부터 아침 8시까지 현문당직이었음.</p><p>현문은 배에서 육상으로 통하는 다리가 놓여 있는 출입구.</p><p>나는 현문부직사관을 서면 당직병들은 두시간만 서게 하고 재움.</p><p><br></p><p>그날은 당직병이 입대한지 얼마 안된 이병이었음.</p><p>그날따라 이상하게 잠도 안 깨고 피곤했던 나는</p><p>당직병에게 현문을 맡겨 놓고 현문이 내려다보이는 30mm 똥포 사수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음.</p><p>잠깐 졸았나 봄.</p><p>화들짝 놀라서 깨어 보니 사수석 앞창이 하얀거임.</p><p>"ㅆㅂ 날이 샜구나. ㅈ됐다"를 외치며 뚜껑을 여는데 뭐가 후두둑 떨어짐.</p><p>30분도 안 되는 사이에 함박눈이 펑펑 내려서 쌓여 있었던 거임.</p><p><br></p><p>사수석에서 나와서 보니까 우리 당직병이랑 옆배 당직병이 눈싸움을 하며 놀고 있음.(둘이 동기)</p><p>그쪽 배 부직사관은 그런 당직병들을 아빠미소로 쳐다보고 있음.</p><p>빗자루를 가져다가 후갑판을 싹싹 쓸고 육상까지 나가서 폭풍 빗자루질을 했음.</p><p>그리고 사관실에 전화를 했음.</p><p>당직사관, 자다가 전화 받음.</p><p>참고로 당시 당직사관은 사관학교 졸업하고 뭔 교육을 길게 받고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신임소위였음.</p><p><br></p><p>나 : 현문부직사관입니다.</p><p>당직사관 : 어. 이 새벽에 왠일?</p><p>나 : 지금 눈이 옵니다.</p><p>당직사관 : 어 그래?</p><p>나 : 많이 옵니다.</p><p>당직사관 : 어 그래? 그럼 당직병이랑 눈사람이나 좀 만들어 놔.</p><p>나 : (이 인간이 미쳤나?) 눈 치워야 됩니다.</p><p>당직사관 : 어 그래? 그럼 좀 치워.</p><p>나 : 이걸 저랑 당직병이 어떻게 다 치웁니까?</p><p><br></p><p>우리 배는 길이만 100m 짜리임.</p><p><br></p><p>당직사관 : 둘이서 살살 치워봐.</p><p>나 : (대략 어이없음) 장난하지 마시구요. 애들 깨워야 합니다.</p><p>당직사관 : 애들 지금 한창 자고 있을텐데 어떻게 깨우냐? 아침에 치우면 안될까?</p><p>나 : 아침에도 치워야 하지만, 지금 한창 쌓이고 있을 때 좀 치워놔야 합니다.</p><p>당직사관 : 아침에 한꺼번에 치우면 되잖아.</p><p>나 : 그럼 더 힘들어집니다. 일단 지금 좀 치워놓고 아침에 마저 치우는게 훨씬 낫습니다. 애들 고생도 덜하구요.</p><p>당직사관 : 왠만하면 아침에 하지?</p><p>나 :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안됩니다.</p><p>당직사관 : 그렇게 많이 와?</p><p>나 : 네</p><p>당직사관 : 알았어. 좀만 기다려봐. 내가 나가서 볼게.</p><p><br></p><p>잠시후 당직사관이 주섬주섬 챙겨입으면서 나옴.</p><p>눈 내리는 걸 보더니 깜짝 놀람.</p><p><br></p><p>당직사관 : 눈이 언제부터 내린거야?</p><p>나 : 한시간도 안됐습니다.</p><p>당직사관 : 그런데 이렇게 많이 쌓인거야?</p><p>나 : 네</p><p><br></p><p>그리고 지금 빨리 애들 깨워서 눈을 치워야 한다는 나와</p><p>애들이 자고 있으니 조금 더 있다가 차라리 평소보다 일찍 깨워서 치우자는 당직사관 실랑이 함.</p><p>결국 지금 애들 깨워서 치우고 대신 아침에 조금 더 재우고</p><p>함장님 출근하시면 보고 드려서 오전일과를 건너 뛰는 걸로 합의를 봄.</p><p><br></p><p>방송으로 애들 깨웠음.</p><p>그제서야 군항내에 있던 다른 배들도 부랴부랴 방송하고 난리 남.</p><p>잠시후 잠이 덜 깬 애들이 눈을 비비며 나오는데 정말 많이 미안했음.</p><p><br></p><p>해군에서는 눈 치울 때 빗자루로 쓸지 않음.</p><p>육상부대야 빗자루질을 하겠지만 함정에서는 구조물 때문에 빗자루로 쓸어내기 힘듬.</p><p>소화호스 가져다가 물로 눈을 밀어냈음.</p><p>우리의 신임소위 깜짝 놀람.</p><p><br></p><p>일 잘하는 갑판선임수병한테 소화호스 사수 맡겨놓으니</p><p>완전 빠르고 깔끔하게 잘 밀어냄.</p><p>그리고 얼기 전에 따신물 뿌리고 걸레로 물기 밀어냄.</p><p>불과 30분도 안 걸렸음.</p><p><br></p><p>아침이 됐음.</p><p>다행히 눈이 그쳤음.</p><p>조별과업 없이 애들 더 재우려고 했는데,</p><p>갑판선임수병놈이 지가 먼저 애들 선동해서 눈 치우러 나옴.</p><p>기특한 색히. ^------^</p><p>육상까지 아주 말끔하게 다 치웠음.</p><p><br></p><p>갑판장과 갑판선임하사가 이 눈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음.</p><p>완전 깨끗하게 다 치워져 있는 거 보고 놀람.</p><p><br></p><p>갑판장 : 눈 누가 다 치웠냐?</p><p>나 : 애들이 치웠습니다.</p><p>갑판장 : 언제?</p><p>나 : 새벽에 한창 많이 내릴 때 한 번 치우고 아까 아침에 또 치웠습니다.</p><p>갑판장 : 니가 애들 깨웠냐?</p><p>나 : 네. 당직사관한테 보고하고 깨웠습니다. 아침엔 지들이 자진해서 일찍 일어나던데요.</p><p>갑판장 : 당직 잘 서네 ^______^</p><p>나 : 애들이 고생했죠. 특히 갑판선임수병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고생했습니다.</p><p><br></p><p>갑판장 입 찢어짐.</p><p>그리고 함장님께 보고하고 말 것도 없이 함장님께서 먼저 오전일과 휴무 지시 내림.</p><p>그날 애들 완전 푹 잤음.</p><p>덕분에 나도 좀 잤음.^^</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