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 면이라는 걸 만드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
먼저 곡물을 수확하여 잘 빻은 뒤, 물을 적당히 넣어 만든 반죽을 길고 가느다랗게 가공한다.
만일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곡물을 수확하고 익혀내기만 하면 그만이다.
먹기 쉽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빻는 것으로도 족하다.
조리의 용이성을 위해서라면 곡물가루에 물을 넣거나 반죽을 하는 것으로 끝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순간, 면은 주식의 필요조건을 넘어선 무언가를 채워주게 된다.
식감, 입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씹히고 삼키는 그 과정.
인류가 가장 먼저 시도하였을 음식의 쾌락, 면.
그렇기에 나는 면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하다.
허나 사랑한다고 하기엔 내 자신이 부족하기에 차마 말할 수가 없다.
내게 있어서 면이라는 건 특별한 음식이다.
특정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무언가가 아니다.
그저 날 기쁘게 만들어주는 음식. 단순한 곡물의 가닥에 불과한 이 음식은 나를 기쁘게 한다.
그것이 인스턴트건 정성스레 만들어진 것이건 상관 없다.
나에게 있어 면은 굉장한 의미를 가지진 않으나, 그 자체로도 특별한 음식이다.
이정도로 표현한다면 면에 대해 굉장히 까탈스러워하는 사람 정도로 여기겠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면은 면이기에 만족한다. 그게 전부다.
조금 불어도 괜찮고 쫄깃한 식감이 없어도 괘념치 않으며 국물이 좀 맛대가리가 없더라도 관계없다.
면이 면으로 존재하는데 그것이면 충분하지, 그것 말고 무엇을 더 바라는가?
허나 그렇게 면이면 족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아주 특별한 무언가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부경식당, 집 근처의 시장통 인근에 위치한 허름해 보이는 가게.
실제로도 낡았었고, 내부에 들어서면 어지간히 깔끔부리는 이들은 기겁하고 나갈 정도의 실내.
허나 그 곳에서 만들어낸 막국수는 그런 건 신경 쓸 가치조차 없다는 외침을 내지른다.
막국수가 뭔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알 게 뭐냐.
어차피 곡물이고 반죽이며 국수가락이 되는 것인데 차이점이 무엇이고 특징이 뭐가 필요하며 어딘가의 전통이 무슨 소용이냐.
맛만 있으면 장땡이지.
그 식당의 막국수는 내게 그 간단하면서도 참으로 다가서기 힘든 진리를 위장에 후려갈겼다.
의식적인 행사인지 습관인지 절차인지는 모르지만, 항상 면이 담긴 그릇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먼저 사발을 들어 국물부터 한 모금 들이킨다.
거창한 의미는 없다. 맛 따윌 품평하는 재주는 내게 없고 음식의 좋고 나쁨을 가릴 생각은 없다.
다만 그게 습관이고, 젓가락을 들기 전에 내 마음을 간단하게 흔드는 과정일 뿐이다.
그 가게의 국물 맛이 어땠냐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내가 이 그릇에 담긴 국물을 다 들이킬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위장인게 항상 아쉽다'고.
국물은 그렇다치고 면가닥 자체는 어떠하냐면, 뭐 설명해서 무엇하랴.
주문하는 그 순간 내 근처에 훤히 드러나 보이는 위치에서 반죽을 시작하는 주인장의 손길을 볼 수 있는데.
반죽이 들어가고 꾹 눌러주는 기계의 밑바닥으로 솔솔솔 나오는 면가닥이 눈에 들어오는데.
눈앞에서 익은 면발이 찬물에 헹궈지는 것을 훤히 드러다 볼 수 있는데.
그렇게 나온 면발이 이빨을 잘근거리며 잘라댈 만큼 강렬한데.
그 가게 가서 주문하고 심심하진 않았다. 언제나 주문을 하면 포대에서 곡물가루를 퍼다 반죽을 시작하는 게 쏠쏠한 구경거리였으니까.
이쯤 되면 누구던지 이런 생각 정돈 해 볼 것이다. 그 국물에 들어간 게 조미료고 면에 들어간 게 뭔가 수상쩍은 가루임이 틀림 없다고.
뭐, 그럴수도 있을 거다. 아버지 종친회 지인이 속일 생각이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알음알음으로 아는 조미료국물 국수라면 나도 아버지도 그렇게 드나들 생각이 들었을까?
세상 천지에 면 파는 집은 많고 솜씨 좋은 집이 한둘이 아닌 세상인데.
여름만 되면 떠오르는 집이고, 연례행사처럼 찾아가는 집이다.
겨울도, 가을도, 봄도 찾아갈 수 있지만 나는 그러진 않았다.
그 정도 음식이라면 특별할 가치가 있다. 면을 넘어선 가치를 부여해주고 싶다.
그렇기에 끝장나게 더운 어느 날, 정말 속이 탁 풀리면서 내 혓바닥에 미각을 되돌려주고 싶을 때.
그때를 위해 숨겨두는 비장의 무기 정도의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날이 돌아왔다. 당연히 찾아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청천벽력같은 소식만이 날 기다리고 있다. 그 집은 문을 닫았다.
주인장의 건강의 문제도 있고, 나날이 솟구치는 주변 월세값 이야기도 오가고, 뭐 거기에 낡고 더러운 느낌의 내부라는 요인도 있고,
이런저런 이야기와 추측이 가족 간의 대화에서 오가지만, 결론은 딱 하나다.
이제 그 막국수는 두 번 다시 먹을 수가 없다는 것.
아예 대놓고 상호명을 적어둔 것도 그 때문이다. 알면 뭐하나, 그 가게는 간판 내린지 한참 되었는데.
여름이 다가올 때, 정말 내가 뭔가 특별한 것을 먹고플 때를 위해 아껴두었던 그 음식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허탈한 마음에 비슷한 무언가를 찾아 밀면을 택하고, 어느 이름난 집이었던 곳을 찾아간다.
면으로서 만족해야 하는 그런 집이고, 가게를 나오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주인이 바뀌고 맛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 뭐 나는 맛이 그렇게 좋고 나쁘기보단 면을 원했다. 그걸로 됐다.
하지만 그 가게의 국물을 처음 입에 대고 뗀 순간, 혓바닥에 남는 불쾌할 정도의 단맛이 내 짜증을 불러온다.
내가 기다렸던 여름철의 그 국물은 이렇게 끔찍한 단맛이 없었다.
혀가 닿을 때만 느껴지는 그 맛,
위장을 얼려버릴 것 같은 시원함 속에 강렬하게 느껴지다가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떠나가버리는 맛.
소년과 소녀가 머뭇거리다 손길이 닿았을 때 느껴지는, 이내 떨어지면 흩어지고 마는 순간적인 짜릿함.
혀가 기억하는 게 아니라 머리가 기억하는 메아리치는 맛.
식사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뒤끝 쩔어주게 남아있는 단맛이라는 이름의 불쾌감 속에서,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만날 도리가 없는 그 막국수 한 그릇이 절절하게 아쉽다.
정말, 리얼리, 댓츠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