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대충 써놓고 나중에 더 채워넣으려 합니다.
V에 해당하는 것을 모아보면 (한국어로는 맨 끝자리)
좋다/싫다(or훌륭하다/나쁘다) (or좋다/좋지않다)
보았다. 들었다. 맡았다. 맛봤다. 느꼈다.
이다/아니다
되다/되지않다.
맞다/맞지않다.
같다/같지않다.
하다/하지않다.
그리고 이 V 앞에 있는 것들 (한국어로 보면)을 보면
~~~때문에
~~~를 보니
~~~해서
이 ~~~에 해당하는 것들은 지각에 해당하는 것들.
압축되어있다 하더라도 그 압축이 가능하려면 우선 지각한 다음에 라벨을 붙여야 가능하니,
여기에는 결굮 끝까지 다 풀면 지각으로 가능한 부분.
그러니 실제로 사전을 봐도. 풀이에 해당하는 '언어'들. 풀이어들.
이 부분이 결국 인간의 인지어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결국 그 풀이어를 봐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 위치에 놓이는 단어가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을?'에 해당하는 게 있으니
이 부분을 채우면, 당연히 대상에 해당하는 부분이 된다.
근데 이 대상도 결국엔 지각된 것을 바탕으로, 이것을 '대상'이라는 식으로 이해하고 분류하고 옮기기로 한 것이니
이것도 결국 지각에 인접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볼 때, 이 '무엇을?'(대상)에 해당하는 부분은 몸을 기준으로 보면 외부에 있는 것이니
별도의 취급을 하기로 한다.
그러면
이제 이것을 '색수상행식'이라는 걸로 보게 되면
이게 하나의 대상과 주관의 만남이자 접촉이고 지각이고 판단의 경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지금 나는 이를 기호로 선형화하여 표현하고 있으나
이것은 3차원이다. 회화나 영화를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그 카메라나 화가가 있는 곳은 3차원의 영역이지만, 극장에 들어와서 보는 건 2차원이고 스크린이다.
그러니까 지금 2차원의 것을 보고 있다고 해서, 내가 지금 기호로 인해서 끌려가는 그 지시대상과 지시대상이 있는 곳은 2차원이 아니란 얘기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으로 자각이 안되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어떤 조건을 먼저 생각하는 게 효과적이다.)
달리 말하면
이 기호로 표현되는 것들은, 선형으로 2차원의 종이 앞에 쓰여지고 있기 때문에, 3차원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2차원에 놓인 기호들은 3차원의 영역으로서 풀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색수상행식의 진짜 실제 해독은 3차원으로 해독되어야 한다. 즉 이 기호를 읽는 순간 당신은 세계와 주관이 만나는 모습을 떠올려야 하며,
눈 앞에 세계가 있고, 눈 뒤에도 세계가 있고, 주관은 그 사이에 겹쳐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세계에 겹쳐있는 주관이다.)
그리고 이 설정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색수상행식의 경로를 따라간다.
그리고 이것들이 언어에 순서로 반영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나는 무엇을, 보았고, 그에 의해서 뭔가를 떠올렸고, 그 다음에 내 판단을 내렸다.
색 수 상행 식
그러나 이것은 마음의 작용이기 때문에 나중에 색과 비쳐봐서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이 프로세스를 잡고. 나머지 모든 다른 것들은 여기안에 끌어들여서 가족유사망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인간의 뇌가 이렇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낯익은 기호를 보면서 생소함을 느끼게 되면서, 멍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차피 인간 신체 토대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이상으로 벗어날 수가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몸이라는 한계 내에서다. 인간은 이 한계에서 해방되고 싶어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심리패턴으로 정리가 된다.
생각해봐도 그렇다. 얼굴 팔 다리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다. 게다가 보편정서라 해서 잘 드러나는 게 6~10개라고 하는데,
그 이상부터는 세분화시키는 것 밖에 안되므로 6~10개 안에 넣을 수 있고, 더 거칠게 좁혀버리면 좋고/싫음으로 쭐여버릴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어떤 세부적인 면이 반영되지 않으므로, 그것은 별도로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자의식≒나르시즘≒에고' 이런 것들도 별도로 고려해두면 되겠다.
이 글의 잠정결론은 단순하다.
사태에 신체가 들어가서 섞인다. 근데 이 때 메스질하는 일이 발생한다.
사태를 신체가 지각하면서 판단내린다. 그래서 항상 문장에는 색수상행식이라는 것이 반영이 된다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판단을 내렸는가.] 이것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절이 아니라 관계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모든 글의 양은 관계의 의식의 정도에 비례한다.
달리 말하면 인간의 머리속은 분절되어있지 않다. 글이 분절되서 쓰인다고 머리속이 분절되어있다고 여기는 건 착각이다.
당신이 경험담을 언급할 때 그 모든 것들은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이 어떤 특정한 행동을 말하고 있으며 곁가지는 자연스럽게 제거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시학이 '대상특징'으로 쓴 글이긴 하지만, 이를 자아의 위치에서 다시 보게 되면 (마치 인지심리학이나 명상가처럼) 이것은 실제로 인간이 이야기를 구성할 때 어떤 심리상태를 보이는지를 기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부분이 17장에 쓰여있는 것이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데 제일 적게 기술되어있다. 그런 점에서 시학은 창작의 기술을 다룬 책은 아니다. 체크리스트에 대해서 다룬 책일 뿐)
근데 여기서 알아야 할 건
인간의 머리속은 '공간/관계'적으로 구성되어있고,
이 관계쌍들을 계속 염두에 두면서 치고박고 하면서 출력하면
자연스럽게 거기에는 양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시간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까 실제 물리적인 시간을 생각해보면 맞지 않지만, 머리속에서는 의식적으로 생각할 경우 시간을 탐지하는 기제가 없지 않나 싶다.
이 얘기는 나만 한 게 아니라, 레이코프도 비슷한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시간이 의식되는 것은 사건에서 의식되는 것이고, 참여자들이 관계를 맺으면서 액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지, 그 자체로 지각이 안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글의 양을 증폭시키려면 색수상행식을 하면서, 계속 세계와 자아간의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머리속에서 여기로 갔다가 저기로 갔다가
계속 힘을 줬다가 뻈다가, 요구를 했다가 요구를 받았다가 하는 식으로 계속 핑퐁하듯이 주고받고 주고받고 하다보면
바로 그 경로 또는 흔적이 양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지금 전화가 안되는 여자친구 때문에 속이 상한다.
근데 이 때 실제로 지각되는 건, 나와 여자친구 라는 물체다
그러니 이 두 물체를 계속 염두에 두면서 오고가게 되면, 그리고 오고갈 때 요구사항을 내 쪽에서 내뱉다가 여자친구 쪽에서 내뱉다가 하는 식으로
계속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으면 (이게 곧 대화이기도 하고 격투이기도 하다, 밀당일 수도 있고)
그 주거니 받거니의 결과이자 흔적은 양으로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출력할 수 있다.
나 : 자기야 왜 전화가 안되?
여자친구 : 묵묵부답
나 : 전화 좀 받으라고, 너 왜 그러니?
여자친구 : 묵묵부답
나 : 나 이러다 정말 기절할 것 같아. 사람이 왜 그래?
여자친구 : 묵묵부답
이런 식으로 계속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여자친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관계를 의식한 정도에 따라서 양이 나오는 것이고
* 그리고 관계를 의식하면서도 그 판단을 내리는 순간이 분절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그러니까 판단은 메스질에 해당한다. 탁 끊어버리는 것이다. 지금 내가 '묵묵부답'이후로 끊어버린 것을 생각해보라.
출력물로 보면 그 '묵묵부답'이후로 끊겨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저 이상까지는 의식하지 않았다.
헌데 이건 기계적이다. 내가 다시 그 관계를 또 의식하고 요구사항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양이 늘어나게 되고
다시 내가 거기서 딱 끊어버리면 거기서 끊겨버린다. 그리고 그게 출력물로 나타나게 되면 분량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전까지 했던 것들을 살피면서, 쭉 이어서 보게 되면, 그 분량을 쫓아가면서 시간이 의식되게 된다.
이것은 만화와도 비슷하다. 만화의 칸 구성이나, 그 안에 담기는 장면들이나, 사실 이걸 볼 때에는 시간이란 게 2개로 나눠서 의식이 된다
현재 내가 보고 있는 와중의 물리적 시간과, 만화속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물리적인 시간 바탕 위에서 나는 만화를 지각하게 되고 (실제로는 책덩이)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보면서, 그 안에 묘사된 모습들을 쫓아가면서, 그러면서 그 묘사된 것들에서 추론되는 시간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것의 핵심은 단순하다. 머리속에서 구성할 때는, '시간'이랄 게 따로 지각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구성을 하면서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양을 뽑아내고 난 다음에, 그 출력물을 읽게 되면, 그 때서부터 장면에 묘사되는 그 운동에서 의식되는 시간이 있다. 그 때 시간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니 머리속에서 시간을 뭐 할려고 생각해선 안된다. 어차피 안된다.
다만 공간/관계적으로 뭐가 주거니 받거니 일어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그리고 딱 끊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에 각각 몇 분 몇 초가 소요되는지, 이후에 점검해봐야 한다.
그러니 공간/관계를 구성할 때, 물체를 가지고 하는 부분은 (색)에 해당하고
이것들을 몸으로 지각하는 건 (수상행) = 언어로 표현될 때에는 ~~해서, ~~때문에 ~~으로 ~~이 있어서, 등으로 표현되는 부분이고 (이 표현에 나머지가 가족유사적으로 포섭된다. 이 때 가족유사는 형태보다는 DNA에 가깝다고 보면 되겠다. 즉 언어는 기호형태가 아무리 달라도 그 안에 기의라는 것이 지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지각에서 파생된 것으로 봐야한다. 즉 어떤 가장 코어가 되는 게 있고 나머지는 품사가 바뀌듯이 미세하게 성형이 일어난다고 보면 된다. 이런것들은 일일이 체크하기 어려우니, 어차피 모로가도 지각에서는 벗어날 수 없으므로, 저 안에 포함된다고 여기고 다 끌어버려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분류는 폭력적이긴 하지만, 이 경우에는 이 폭력성이 크게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폭력이 위험한 건 실세계에서의 문제다. 이 경우는 양심에 맡긴다.) - 그리고 나머지는 딱 끊어주는 부분이다. '이다/아니다' '맞다/아니다' '하다/하지않다' 이렇게 딱 끊어준다.
그래서 여기서 3단계를 구분해보자.
하나가 색에 대한 것들이고 (무엇을~) - 이 부분은 존재에 대한 느낌을 강하게 인식해주면 된다. 그 다음에 넘어가라.
그 다음이 수상행에 대한 것들이고 (~해서, ~가 있어서, ~를 가지고서) 이 부분은 지각을 강하게 해주면 된다. 느낌을 못 가지면 아웃이다. 가지면 넘어가라. 그 다음이 '식'에 대한 부분인데, 이 부분은 (~이다/아니다, ~하다/아니다, ~맞다/아니다, ~느끼다/느끼지 못하다) 이런 부분으로
마무리를 팍 지어주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일종의 현상적 분석이 필요할 것 같다. 이 부분에서 인간이 어떻게 팍 지르는지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에도, 바로 저 팍 찌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