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밑으로 가면 요점이 있습니다. 급하시면 그것만 읽으시는 게 좋습니다.)</P> <P> </P> <P> </P> <P> </P> <P>아마 밑에 있는 제 글을 읽으셨다면, 이것을 하나의 위상 맞추기로 느끼실지 모르겠습니다.</P> <P>헌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봅니다.</P> <P>'위상'을 고려할 줄 아는 최고의 고수들은 대개 아부/아첨을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P> <P>왜냐? 그들은 상대가 뭐에 우쭐할지 아는 사람들이니까요. 그 말은 상대의 관점을 볼 줄 안다는 말이겠죠.</P> <P>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거부해야될 사람인가?' (ㅎㅎ) 우리는 평소에 아부/아첨 떠는 사람에 대해 아주 안좋게 쓴 책들을 많이 알고 있죠.</P> <P> </P> <P>하지만 그럼에도, 아부와 아첨은 여전히 매력적인 꿀처럼 들릴 것입니다.</P> <P>왜냐하면 그것이 코기토의 위상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P> <P> </P> <P> </P> <P>아마 제가 지금 쓸 글을, 앞전에 썼던 분이, 이 글을 본다면,</P> <P>흥미를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P> <P>왜냐하면 지금 그 분과 제 위상이 비슷한 지점에 있을 것이니까요.</P> <P> </P> <P> </P> <P> </P> <P>어쨌건 써보겠습니다.</P> <P>전 이 글을 보면서, 딱 제시된 만큼의 대상이냐 능력이냐? 라는 분류로 보지 않으려 했고, </P> <P>좀 더 제가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을 첨가하여,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어떻게 '사랑'을 보는 게 좋을까?를 고민했습니다.</P> <P>왜냐하면 원글은 딱 언급하려는 만큼만 개념이 잡혀있었기 때문에, 제가 접근하기에는 제약이 많았기 때문입니다.</P> <P> </P> <P>그래서 원글을 쓰신 분이 보신다면, 아마 논의가 상당히 많이 뒤죽박죽 되어있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P> <P>그것은 언급된 설명을 넘어서는 개념들이 개입되었기 때문입니다.</P> <P>즉, 언급된 것만을 품고 가면 논의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에, 제가 문제삼는 부분을 좀 첨가해보았습니다.</P> <P> </P> <P>하지만 결국엔 신기하게도 능력과 대상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P> <P>어쩌면, 가장 소급하면 그렇게 '대상과 능력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P> <P> </P> <P> </P> <P> </P> <P>원글을 쓰신 분은 '대상과 능력'의 문제에서 제시한 범위에서 본인의 견해를 제시하셨습니다. </P> <P>나는 대상의 문제에서 상대를 고려하지만, 상대방은 나를 능력의 문제에서 봐줬으면 좋겠다, - 고하는 게 문제라고 봤고,</P> <P>'하다'라는 특성에서 접근하여, 입장을 취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능력의 문제로 가게 된 것이죠</P> <P>그러니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뭔 소용인가?' 라는 입장을 취하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P> <P> </P> <P> </P> <P>헌데 이게 참 애매한 것 같습니다.</P> <P>왜냐하면 대상과 능력은 구분되는 게 아니라, '역전'되는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루빈의 컵)</P> <P>즉 '대상'으로서 사랑할 사람을 찾고 난 다음 '능력'으로서 '하다'의 상태가 되버리면 그건 '대상일까요 능력일까요'</P> <P>시작은 대상이었지만 결국엔 능력의 문제로 가게된 것 아닐까요.</P> <P> </P> <P>예를 들면 나는 금융권에 일하는 남자를 원하는데, 그런 남자를 사귀고 나서, 아주 꿋꿋하게 '대상의 입장'만 취하게 될까요?</P> <P> 어쩌면 사랑하다보니까, 입장이 바뀌고 '능력'으로 가게 되는 경우는 없을까요? 우리 현실을 생각해봐야 합니다.</P> <P> 어떤 경우에는 계산주의적으로 접근을 했지만, 어느 순간은 아예 계산 자체를 잃어버리고 손해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P> <P> 물론, 원글에서는 딱 구분 해서 보고 싶어한다는 의지가 느껴지긴 했으나, 저는 그런 접근을 거부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딱 부러지게 구별되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게 제 견해에 해당되기 때문일 겁니다.</P> <P> </P> <P>어쨌건 이렇게 따진다면, 이는 '대상이냐 능력이냐'라는 문제로 보기보다는,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고 있는가?라는 문제로 가게 됩니다.</P> <P>즉, 두 개의 것을 품은 상태에서, 그 다음에 논의를 이어가는것입니다. </P> <P>그리고 여기에는, 좀 더 다른 암묵적의 가정상 문제도 있을 뿐더러, 좀 삐걱거리는 부분이 있습니다.</P> <P> </P> <P>아마 프롬의 파악화 자체가, 딱 프롬이 취급하려는 정도까지만 파악되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해봅니다.</P> <P>저는 좀 더 제 위주로 직관적이면서제 주변의 가능한 항목을 열어두면서 검토하고 싶기 때문에</P> <P>아예 '사랑'과 관련된 더 다른 경우의 상황을 추가시키면서, 이 논의를 끌어나가려고 합니다.</P> <P> </P> <P>그래서 일일이 문제 삼으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벌써 길어졌지만)</P> <P>제가 어디가 문제라고 생각되었는지 지시해보면서, </P> <P>좀 더 직관적인 차원에서 다시 파악해보겠습니다.</P> <P> </P> <P> </P> <P>1. 대상과 능력의 역전관계</P> <P>2. 타자의 의사 여부 불투명</P> <P>3. 마주침의 가능성 (능력-능력 or 대상-대상 or 능력-대상 or 대상-능력), 다시 말해서 그 원문은 같은 유형끼리 만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습니다.</P> <P>4. '사랑이 무엇인지 볼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보는지'로 볼 것인가 (사랑을 정의하는 문제인가? 아니면 한 개인의 간주로 보는가)</P> <P>다시 말해,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고려하는 것인가, </P> <P>아니면 '개개인'이 서로 <각자 간주하는 사랑이 무엇인가>로 볼 것인가? (그래서 서로가 충돌되는 것으로 볼 것인가?) </P> <P> </P> <P>이 4번은 좀 중요합니다.</P> <P>자칫하면, 마치 개개인이 모두 사랑을 그렇게 생각해야한다는 것처럼 몰아갈 수 있으나,</P> <P>실제로 우리는 다 제각기 '관점'을 갖고 삽니다. </P> <P> </P> <P>그래서 <너는 사랑을 어떻게 보느냐?>라고 묻는다면 마치 어떤 입장을 택해야할 것 같지만,</P> <P>실제로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입장을 취하지만, 다른 사람은 다르게 취할 수 있죠.</P> <P>바로 그래서 다른 유형과의 충돌 가능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게 3번입니다.</P> <P>그리고 제 입장은 '개개인의 태도'만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갑니다.</P> <P> </P> <P>위의 1,2,3,4번 문제점 지적을 보셨으면 알겠지만,</P> <P>그래서 저는 위에 제시된 '대상이냐 능력이냐'라는 입장에서, 너는 어떤 견해냐? 라는 식으로 접근하진 않겠습니다.</P> <P>왜냐하면 좀 더 다른 개념과 설명들이 개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첨가된 설명을 바탕으로 제 견해를 제시해보았습니다.</P> <P> </P> <P>순서는 1,2,3,4번으로 썼지만, 2번부터 얘기해보겠습니다.</P> <P>저는 좀 이상한 걸 느꼈습니다.</P> <P>능력의 문제를 언급할 때 특히 그랬습니다.</P> <P> </P> <P>자 생각해봅시다.</P> <P>제가 저의 가족이 다쳐서 병원에 실려가는 것을 보고, 무조건적으로 간호하고, 생명 그 자체를 사랑하여 지켜봐준다고 해봅시다.</P> <P>그런데 제 가족이 제 간호를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요?</P> <P>왜 가끔 그런 경우 있지 않습니까? 제가 주려고 하는데도 상대방이 거부하는 경우가 있죠.</P> <P>가령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얘.... 니 인생을 살아.. 내 걱정하면 안되... 차라리 나를 위해 니 인생을 더 살아줘."</P> <P> </P> <P>그러면 어떻게 해야될까요?</P> <P>즉, 타자의 의사가 개입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되는지, 그에 대한 세부 언급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P> <P>이는 마치 '타자도 내가 줄려고 하는 것을, 그대로 받을 거라고'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찝찝하죠.</P> <P> </P> <P> </P> <P>이는 '능력의 문제'로 보는 사람과 '대상의 문제'로 보는 사람이 충돌할 때 더더욱 그렇습니다.</P> <P>저는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다면 주고 싶어합니다. (아무 조건업이)</P> <P>하지만,</P> <P>대상의 문제로 보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P> <P>"나는 ~~를 해주는 사람이어야,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해"</P> <P> </P> <P>이 경우, </P> <P>둘의 충돌은 어떻게 될까요?</P> <P> </P> <P>이는 역전관계가 됩니다. (루빈의 컵처럼)</P> <P>즉, 대상의 문제에 서있는 사람은 그것을 '사랑'으로 여길 것입니다.</P> <P>그래서 상대는 계속 조건을 제시하고,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사랑을 느낍니다.</P> <P> </P> <P>하지만,</P> <P>능력의 문제에 서있는 사람은 '그 자체'를 사랑으로 여기기 때문에, '하다'의 문제로 가게 됩니다.</P> <P>그러니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저 사람이 요구하는 것'을 준다, 는 식으로 가게 됩니다.</P> <P> </P> <P> </P> <P>이 때 원문에선 이게 언급되지 않았습니다.</P> <P>즉 내가 능력의 문제에 섰을 때, 나는 '도대체 뭘 주는가?'의 문제죠.</P> <P>그것은 내가 주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상대가 요구하는 것인지? 이것이 언급되어있지 않습니다.</P> <P>그래서 좀 애매합니다. 도대체 뭘 줘야 나는 능력의 문제에서 보는 것인가?</P> <P> </P> <P>원글에선 '자본주의적 교환가치'를 중점으로 내세웠습니다.</P> <P>그러면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뭔가를 주고 싶은 사람이, '자본주의적 교환가치'를 요구한다면 어떨까요? </P> <P> </P> <P> </P> <P>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해봅니다.</P> <P>"~~~를 하니까, 우리는 사랑한다고 생각해."</P> <P>"우리가 사랑하니까, ~~~를 한다고 생각해."</P> <P> </P> <P>문장의 앞 뒤만 달라졌을 뿐입니다. 하지만 뉘앙스가 달라지게 됩니다.</P> <P>제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대상인가? 능력인가? </P> <P> </P> <P>이는 사실 둘 다입니다.</P> <P>한쪽은 대상으로 접근하지만, 한쪽은 능력으로 접근하는 것이고,</P> <P>두 접근이 공존하는 것입니다.</P> <P>(특이하지만 이런 경우가 있죠. 조건만남이 그렇고, 첩살이도 그렇죠. </P> <P>물론 조건만남은 대상의 경우가 강하다 해도 외로운 누군가가 시작한 조건만남은 속내가 다를 수 있습니다.)</P> <P> </P> <P> </P> <P> </P> <P>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겨납니다.</P> <P>가령,</P> <P>엄마가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서, '너가 피망을 먹으면 엄마가 놀아줄게'라고 할 때,</P> <P>이 경우는 대상일까요 능력일까요</P> <P> </P> <P>이것도 애매한 문제입니다.</P> <P>이 경우 형식은 대상입니다. "~~를 하니까, 너를 사랑할거야"라는 경우로 확장되기도 합니다.</P> <P>하지만, 그 형식이 더 심층의 위치에서는 '능력'의 경우라면 어떨까요? </P> <P>엄마로서, 아이가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그런 것을 '주고'싶고, 그렇게 '해야하기 때문에', 위의 형식을 내세웠다면?</P> <P> </P> <P>이 경우 '능력의 문제'에 대상의 형식이 낑기게 됩니다.</P> <P>더 정확히 말하면, 사실상 '능력'의 문제가 되는 것이죠.</P> <P>(그런데 또 딱부러지게 능력의 문제로만 봐야할까요? 어쩌면 자칫하다 대상의 문제로 빠져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습관이 되는 것처럼요.)</P> <P> </P> <P>또는 대상의 문제는 '과학화'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측정하기위한 것이죠.</P> <P>물론 그것이 교환의 문제로 봐야할지, 측정의 문제로 봐야할지 또 곤란해지기도 하겠죠. </P> <P>"날 진짜 사랑하면 이것을 해봐", 같은, </P> <P>이런식의 발언은 교환으로도 볼 수도 있고, '확인'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P> <P>주어진 원글에서는 '교환'으로만 보는 측면이 강하지만, 저는 무엇이 교환되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입니다. 과연 자본주의적 가치가 교환되는 것인가?</P> <P>아니면 신뢰가 상징화된 형태로 교환되는 것 아닌가?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여러모로 더 논의를 끌기 보단, 지금 요점을 잡고 끝맺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P> <P> </P> <P>저는 원글에서 다음을 추가시켰습니다.</P> <P>1. 역전관계</P> <P>2. 타자의 의사</P> <P>3. 마주침의 가능성</P> <P>4. 개개인의 입장 문제</P> <P>(즉, 위는 내가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P> <P>개개인이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로 바꿨습니다. </P> <P>제가 마치, 모두의 위에 서서, 모두가 그렇게 보고 있다고 가정하는 게 아니라,</P> <P>저마다 저마다의 '입장'을 취해서 본다는 식으로 취급했습니다. </P> <P>그래서 저는 능력으로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대상으로 보고, 그래서 둘은 만나는 경우도 있음을 가정해보았습니다.</P> <P>이 때에 원글분이 언급하신 문제였던 '나는 대상으로 보지만, 상대는 능력으로 봐주길 요구하는'것은 아주 역전의 문제로 보았습니다.</P> <P>이 문제의 본질이 '역전'과 관련있다는 (그래서 구분하는것으로 가기 힘든) 것으로 취급했습니다. 차라리 이중성으로 보여도, 그게 그만큼 현실적이란 얘기겠죠.)</P> <P> </P> <P>제 입장은 '능력'의 입장에 서되, '대상'을 끼고 간다는 것입니다. </P> <P>두 입장이 낑겨있다는 게 핵심이며, 그 중에서도 저는 '능력'을 더 '비중있게' (즉 게슈탈트 용어로는 전경으로) 취급한다는 것입니다.</P> <P>또한, 저는 '개개인'이 각자 '다른 비중'을 취급하며 제 앞에 '나타난다'고 가정하며, 그렇게 됨으로써 서로 마주친다는 걸 가정합니다.</P> <P> </P> <P>이 때</P> <P>저는 2가지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P> <P>첫째로 서로가 서로 '능력'의 입장에 서있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좀 편하겠죠.</P> <P>둘째로 서로가 다른 입장으로 마주친 경우 입니다. 즉 저는 '능력'에 섰지만, 상대방은 '대상'에 더 가까운 경우입니다.</P> <P>그런데 이 때는 이질적이게 보여도, 교류가 가능합니다.</P> <P>즉, 제 입장에서는 '능력'으로서 '타자의 의사'를 충족해주는 (주는 것)으로 사랑을 실현하되</P> <P>상대방의 입장에선 '조건 제시'가 '충족되는 것을 확인함'으로서 사랑을 '체감'하는 것입니다.</P> <P> </P> <P>근데 애매한 문제는 '능력'에 선 사람도, '대상을 낑군 상태로 있으므로,</P> <P>자신이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측정'을 제기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게 소위 간보기죠)</P> <P> </P> <P> </P> <P> </P> <P>헌데 이 경우 복잡해집니다.</P> <P>왜냐하면 역전 현상이란 게, 관점이 옮겨질때마다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P> <P> </P> <P>그래서 저는 '능력의 문제'를 못박아두되, 저 나름의 '환원주의적' 접근을 취합니다.</P> <P>다음과 같습니다.</P> <P> </P> <P>저는 무조건 '능력의 문제'에서만 사랑을 대합니다.</P> <P>즉 제가 '사랑해야~ 제가 ~~를 합니다.' 저는 상대방이 뭐라고 생각하든, 어떤 타입이든 고려하지 않습니다.</P> <P>이 문제는 '저만의 문제'입니다. (즉 타자의 개입과 무관한 나의 스타일)</P> <P> </P> <P>사실 그래서 이 관점은 어찌보면 인류애 아니면 짝사랑에 더 적합할 것 같은데,</P> <P>이런 관점도 교류는 가능하므로 (사실상 교류는 이런 자세와는 무관하게 이뤄지기도 하므로) 넘어갑니다.</P> <P> </P> <P>1. 저는 상대방을 제가 좋아해야만 사랑을 느낍니다, </P> <P>문제는 그게 대상으로 시작된건지 능력으로 시작된건지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P> <P>대개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순간'에는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순간입니다. </P> <P>솔직히 그것은 대상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어떤 가치가 있어 좋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P> <P>하지만 이는 곧 능력의 문제로 변하기도 하기 때문에 둘중 어디냐를 논하긴 좀 그렇고, 이는 논외로 '끌림'의 문제로 바꾸도록 하겠습니다.</P> <P>그냥 쉽게 생각하면 대상과 능력의 입장이 공존하는 공간이라고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P> <P> </P> <P>2. 저는 언제나 '주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 타자의 의사를 포함시킵니다.</P> <P>근데 이 때의 '주는 것'이란, 아주 추상적인 태도입니다. '제가 일방적으로 주는 것'도 포함하되, '상대방이 요구하는 것'을 주는 것 까지 포함합니다.</P> <P>따라서 특이한 일이 벌어집니다.</P> <P>만일 상대방이 저한테 "너무 부담스러, 그만해"라고 하면, 그것이 상대가 요구하는 것입니다.</P> <P>그래서 저는 "그만해"가 의미하는 것을 주게 됩니다. 즉, 안주게 되는 것이죠.</P> <P>그런 식입니다.</P> <P> </P> <P>또한 이런 경우도 생각해보세요.</P> <P>상대가 "나도 너를 좋아하고 주잖아. 그러니까 내것도 받아줘"라고 했을 때, 그것이 상대가 요구하는 것입니다.</P> <P>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 '요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주는 것으로서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기도 합니다'</P> <P>(이게 실제로 형태로는 '제가 받아주는 것'이겠죠. 하지만 억지로라도 역전으로서 간주해본다면, 저는 상대방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입니다)</P> <P> </P> <P>3. 역전관계를 열어둡니다. + 개개인의 입장이 있음을 인정합니다.</P> <P>상대방은 저한테 '조건'을 충족시켜줘야만 사랑한다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P> <P>하지만 저는 그것과 무관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P> <P>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입장대로 상대를 좋아할 뿐입니다. 상대는 상대 입장대로 저를 좋아하겠죠.</P> <P>그래서 저의 입장에선 '제가 줄 수 있는 것'은 다 주는 것입니다. (ㅎㅎ 이는 뭔가 머슴을 연상시키겠지만, 꼭 그렇진 않습니다. 다음을 보시죠)</P> <P> </P> <P>4. 사랑을 끊거나 잇는 것은 제 의사에 달렸습니다.</P> <P>다시 말해 '주는 것'의 입장에 서있기 때문에, 계속 줄 것인가, 아닌가,를 제가 결정하게 됩니다.</P> <P>그래서 어쩌면 정말로 '능력의 문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제가 더이상 주지 못하면, 저는 사랑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할지도 모릅니다.</P> <P>또한 '내가 주고 있는데도' 뭔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도 사랑을 그만 해야된다는 신호가 될지 모릅니다.</P> <P> </P> <P> </P> <P> </P> <P>제가 이 글을 쓸 때에, 뭔가 생각한 게 있었는데,</P> <P>그게 제대로 표현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뭔지는 지금 잘 기억이 안나는데 (ㅎㅎ 당황)</P> <P> </P> <P>제 논의는 상당히 '혼잡'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P> <P>어쩌면, '니가 나고 내가 너다'같은 뉘앙스이기 때문입니다.</P> <P>그것은 역전 관계 때문입니다. </P> <P> </P> <P>또한 살면서 느끼는 이상한 것은, 리프레임 입니다.</P> <P>즉 자기 입장에 맞게 해석해버리는 특이한 현상입니다.</P> <P> </P> <P>저는 대상과 능력 사이에도 그것이 있다고 봤고 반영했습니다.</P> <P>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유리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반영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P> <P> </P> <P> </P> <P>이것도 산만해졌습니다.</P> <P>하지만 이 문제가 흥미로웠고, 좀 더 제 입장에서 검토해보고 싶어서, 제 의견을 써보았습니다. </P> <P>원글을 쓰신분이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발전될 부분도 있으니 이 논의가 더 발전되는것도 생각해봅니다.</P> <P> </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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