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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istory_9908
    작성자 : SowHat
    추천 : 12
    조회수 : 975
    IP : 121.149.***.18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3/06/07 15:19:42
    http://todayhumor.com/?history_9908 모바일
    [bgm] 김시민과 진주성 전투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re88v



    고전이다보니,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군의 입장에서 나름 세밀하게 서술한 내용이기때문에, 혹시 관심있으신 분들에게 유익한 글이 되길 바랍니다.




    선무2등공신이자 충무공, 김시민 목사의 전쟁 이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전투에 관해서 언급된 최초의 기록 입니다.


    선조 34권, 26년(1593 계사 / 명 만력(萬曆) 21년) 1월 22일(정축) 3번째기사 中



    중위장 목사 김시민은 본래 군사와 백성들에게 인심을 얻었으므로 성을 수호하고 적을 물리친 것이 모두 그의 공로입니다. 곤양 군수 이광악은 고을의 날랜 군사 수백 명을 거느리고 김시민과 함께 군주의 성을 지켰는데, 8일에 김시민이 ‘아마도 성을 온전하게 하기는 어려울 듯하니 몰래 수문을 열어서 노약자를 내보내야겠다.’고 하자, 이광악이 ‘이와 같이 하면 군사들의 마음이 크게 변하여 성을 수호할 수 없다.’고 하면서 큰소리로 말렸으며, 김시민이 탄환에 맞은 뒤에는 혼자 한 모퉁이를 담당하여 왜적을 쏘아 죽이고 마침내 적을 물리쳐 성을 온전하게 하였습니다. 판관 성수경은 적이 성에 오를 도구를 많이 준비하여 처음부터 동문을 오로지 공격하였지만, 밤낮 5일 동안 굳게 지키면서 용맹을 떨치며 혈전하여 무수히 적을 살해하여 마침내 적을 물리치고 성을 완전하게 하였습니다. 수성 대장 최덕량은 적이 불의에 옛 북문에 충돌하니, 군사들이 도망하여 흩어지매 적이 개미처럼 달라붙어서 성에 기어올라 성의 함락이 순간에 달려 있었는데, 최덕량이 이눌 등과 함께 도망하는 군졸 몇 사람을 베어 죽이자, 군사들이 그제야 다시 모여 죽기를 각오하고 용맹을 떨치며 힘껏 싸워 마침내 한 성을 온전하게 하였습니다. 영장 이눌의 공은 최덕량과 다름이 없습니다. 율포 권관 이찬종은, 적이 본 고을을 포위하려 할 때 사람들이 모두 ‘성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죽는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전 우후 이협은 성문에 이르렀다가 도망하였지만, 그는 혼자 성으로 들어가 협력하여 남문을 지켰으니, 난리에 임하여 명령을 받든 것이 매우 가상하며, 거기에다 재주와 국량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 위급할 때 쓸만합니다.”






    조선 후기 진주성도








    1. 진주목사로 부임하기 전


    김시민은 진주성 소속 판관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상도 감찰사 김수의 퇴각명령에 따라 산으로 피신했고, 초유사 김성일의 권유로 공석이 된 진주 목사를 대신해서 진주성을 맡게 됩니다.

    전열을 재정비한 뒤 부대를 이끌고 나가 거창에서 김면과 함께 왜군을 격파했으며, 연이어 진주 방면으로 왜군이 진격해오자 곽재우의 의병 및 조선군대와 함께 사천, 고성, 진해를 역으로 탈환했습니다.

    이 공으로 김시민은 진주 목사로 공식 부임 합니다.






    2. 조선측 입장에서 기록한 김시민과 진주성 전투(본문에서 '목사'는 김시민을 지칭합니다.)




    김해(金海)에 머물러 있던 적 3만여 명이 한꺼번에 진격하였는데, 9월 24일에는 세 부대로 나뉘어 노현(露峴)에 있던 군대를 습격하고, 27일에는 또 창원부(昌原府)를 침범하였습니다. 병사(兵使)가 두 번이나 패하여 전후로 죽은 자가 무려 1400여 명이나 되었으므로, 군사들은 기운을 잃었으며, 사민(士民)들은 무너져 흩어졌습니다. 적의 무리는 이긴 기세를 타서 그 세력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았습니다. 이달 2일에는 함안(咸安)을 함락하였고, 5일에는 선봉에 선 왜적의 기병 1000여 명이 곧장 진주 동쪽의 마현(馬峴) 북쪽 봉우리에 이르러, 형세를 살펴보았더니, 말이 마구 내달리고 칼날이 번쩍거렸습니다.


    목사(牧使)는 성중(城中)에 명령을 내려 적을 보아도 못 본 체하게 하고 탄알 한 개나 화살 한 대라도 함부로 허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단지 성 안의 기병 500여 명으로 하여금 적이 보이는 곳에서 힘차게 돌진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성 안의 잘 바라보이는 곳에 용을 그린 큰 깃발을 세우고, 휘장과 장막을 많이 쳐 놓았으며, 성 안에 있는 노약자들과 여자들에게 모두 남자의 옷을 입게 하여 군사의 위용을 웅장하게 하였습니다.
    이날 신시(申時)에 적의 무리가 왔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이에 목사가 곧 날쌔고 건장한 사람을 뽑아서 산 위에 올라가 바라보게 하니, 적의 무리 수만 명이 진주에서 동쪽으로 10리 떨어져 있는 임연대(臨淵臺) 근처에서 결진(結陣)하고 있었습니다.


    6일 이른 아침에 적이 대탄(大灘)으로부터 일제히 말을 타고 마구 내달려왔습니다. 긴 자루가 달린 둥글고 금빛 나는 부채를 휘두르는 자도 있었고, 흰 바탕에 누런 무늬의 금부채를 등에 짊어진 자도 있었는데, 여러 가지 채색으로 그림을 그려 넣어서 바람결에 펄럭거릴 때마다 광채가 번쩍번쩍하였습니다. 닭의 깃으로 갓을 만들어 쓴 자도 있었고,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탈을 쓴 자도 있었으며, 뿔이 달린 금빛 탈을 쓴 자도 있었습니다. 각각 잡색 깃발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긴 것도 있고 넓은 것도 있어 그 수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푸른 일산을 받든 자도 있었고 붉은 일산을 가진 자도 있었습니다. 흰 칼날이 햇빛에 번쩍거려 살기가 하늘에 닿았으며, 기괴한 형상은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세 부대로 나뉘어서 산을 뒤덮어 내려왔는데, 한 부대는 동문 밖 순천당(順天堂) 위에 결진(結陣)하여 성을 내려다보고, 또 한 부대는 개경원(開慶院)으로부터 똑바로 동문 밖을 지나 봉명루(鳳鳴樓) 앞에 줄지어 섰고, 또 한 부대는 향교(鄕校) 뒷산으로부터 똑바로 순천당이 있는 산을 넘어서 봉명루에 있는 왜적과 더불어 진을 합쳤습니다. 그 밖에 각 봉우리에 둘러 서 있는 왜적은 벌이 진을 치듯, 개미가 모여 있는 듯하였습니다. 왜적의 장수 여섯 명은 모두 검은 천의 옷을 입고 쌍견마(雙牽馬)를 탔으며, 그들을 따라다니는 종왜(從倭)들이 왜장의 앞에 서 있었고 걸어서 따라가는 여인도 또한 그 수가 아주 많았습니다.


    순천당에 진 치고 있는 왜적은 총수(銃手)가 1000여 명이나 되었으며, 성 안을 향하여 일제히 총을 쏘았는데, 우레가 울리고 우박이 날리는 듯하였습니다. 3만 명이 넘는 왜적이 일시에 크게 부르짖어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성 안에서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아 고요하기가 사람이 없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왜적들의 기세가 약해지기를 기다려서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면서 포를 쏘았습니다. 얼마 있다가 왜적의 무리가 흩어져 마을로 들어가서는 문짝이나 혹은 관(棺) 판자도 가져오고, 혹은 누(樓)에 깐 마루 판자도 가지고 와서 성 밖 100보 되는 곳에 벌여 세워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판자 안에 숨어 엎드려서 쉬지 않고 철환을 쏘아 댔습니다.


    남은 왜적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가서는 서쪽에 있는 민가는 다 불태우고, 동쪽에 있는 초가는 뜯어 내고, 혹 촌가에 있는 죽물(竹物)을 찍어오기도 하였습니다. 혹 짚이나 풀을 실어다가 지은 막사가 잇달아 6, 7리나 이어졌는데, 모두 푸른 포장을 쳤습니다. 장수 왜적은 향교로 들어간 자도 있었고 마을 큰 집에 머무르는 자도 있었습니다. 이날 짐을 실은 소와 말이 오시부터 어두울 때까지 동쪽으로부터 끊이지 않고 잇달아 들어왔습니다.


    초경(初更)에 적이 한 군데에서 뿔피리를 불자 곳곳에서 서로 호응하면서, 여러 왜적이 크게 함성을 지르다가 한 식경이 지난 후에야 그쳤으며, 철환을 쏘는 소리도 밤새도록 끊이지 않았습니다. 막사를 지은 곳에서는 곳곳마다 밤새도록 불을 피웠습니다.
    이날 밤에곽재우(郭再祐)가 심대승(沈大升) 등을 보내어 군사 200여 명을 거느리고 향교 뒷산에 올라가 뿔피리를 불고 횃불을 들게 했는데, 성 안에 있는 사람들도 또한 뿔피리를 불면서 서로 호응하였으므로, 왜적의 무리가 크게 놀라 소요를 일으키면서 불을 들고 산으로 올라가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하였습니다.


    7일에는 왜적의 무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철환을 그치지 않고 쏘아 댔으며, 또 긴 화살을 성 안에다 어지러이 쏘아 댔습니다. 그리고 사방으로 왜적들이 흩어져 나가 재물을 불태우고 도둑질하여 수십 리 안에 있는 민가가 모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원근에 있는 공사(公私)의 긴 대나무를 모두 찍어와서 묶기도 하고 엮기도 하였으며, 솔가지도 많이 가져다가 진 앞에 높이 쌓아 놓았고, 큰 나무를 베어서 끊임없이 실어왔는데, 어디에 쓰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는 군사의 마음을 진정하는 데 힘써서 밤에는 악공(樂工)에게 문루(門樓) 위에서 피리를 불게 하여 한가함을 보였습니다. 왜적들 속에 아이들이 매우 많아서 혹 시골말을 쓰기도 하고, 혹은 서울말을 쓰기도 하였는데, 매일 성 밖에서 크게 소리치면서 떠들어 대기를, “서울이 이미 함락되었고 팔도가 다 무너졌으니, 새장 같은 진주성을 너희들이 어찌 지키겠는가. 일찌감치 나와서 항복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오늘 밤에 개산부(介山父)가 오면 너희 장수 세 사람의 머리가 깃대 위에 매달릴 것이다.” 하였습니다.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분노를 참지 못하여 소리를 질러 꾸짖으려 하였는데, 목사가 그들과 더불어 말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습니다.


    그날 밤 달이 진 뒤에 적이몰래 대나무로 엮은 발을 동쪽 성 밖에 세웠는데, 가로가 수백 보에 달했습니다. 대나무로 엮은 발 안쪽에다가 판자를 세우고는 빈 가마니에다가 흙을 담은 것을 그 안에다가 여러 층으로 겹쳐 쌓아 언덕처럼 만들었는데, 성벽과 평평하게 쌓아서 포를 쏘고 화살을 피하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대나무 발이 가로막고 있는 탓에 우리측 군사들이 처음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아침이 되어서 보니 이미 토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8일에는 왜적이 대나무 사다리를 많이 만들었는데 무려 수천 개나 되었습니다. 또 넓은 사다리를 만든 다음 그 사이를 대나무로 매우 조밀하게 엮었는데, 너비는 한 칸이나 되었습니다. 그 위에다가 멍석을 덮어 비늘처럼 잇달아 배치하여 여러 군사들이 곧장 올라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또 3층으로 된 산대(山臺)를 만들어 빙빙 돌리면서 성을 압박할 계획을 하였습니다. 이에 목사가 현자총통(玄字銃筒)을 쏘게 하여 세 번을 명중시키자, 산대를 만들던 왜적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물러갔습니다.


    목사는 왜적들이 솔가지를 많이 쌓아 놓은 것은 성을 넘어오기 위해서이고, 앞에다가 대로 엮은 발을 막아 놓은 것은 성에 가까이 다가오려는 것이라고 헤아리고는, 화구(火具)를 미리 준비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생나무라서 축축하여 태우기가 어려울 것을 염려하여 종이로 화약을 싸서 섶을 묶은 속에다 넣어 이를 성 밖으로 집어던져 솔가지와 대나무를 불태우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 위에는 진천뢰(震天雷)와 질려포(蒺藜砲) 및 큰 바윗돌을 많이 모아 두어서 성에 다가오는 적을 치려고 하였습니다. 또 자루가 긴 도끼와 낫 등으로 빙빙 도는 산대를 부수기로 하였으며, 성가퀴 안에는 가마솥을 많이 걸어 놓고 물을 끓여 끓는 물을 적에게 퍼부을 수 있도록 대비하였습니다.
    낮에는 성가퀴 안에 군사를 엎드려 있게 하여 서서 보지 못하게 하고, 짚으로 인형을 많이 만들되, 활을 잔뜩 잡아당기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성가퀴 위에 출몰하게 하였습니다. 군인들을 엄하게 경계하여 헛되이 화살을 쏘지 못하게 하였으며, 쉴새없이 돌만 던져 적으로 하여금 감히 성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날 밤에 왜적은 대로 엮은 발을 설치하여 점점 성에 가까이 다가왔으며, 흙을 쌓은 것도 점점 높아졌으며, 두 곳에 있는 산대는 4층으로 얽어맸는데 전면에는 판자를 매달아 화살과 돌을 막으면서 철환을 쏘는 곳으로 삼았습니다.


    밤 2경에 고성(固城)의 임시 현령 조응도(趙凝道)가 본주의 복병장(伏兵將) 정유경(鄭惟敬) 등과 더불어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와서는 각각 십자(十字) 횃불을 들고 남강(南江) 밖 진현(晉峴) 위에 늘어서서 뿔피리를 불자, 성 안에 있던 사람들이 구원병이 온 것을 바라보고는 즉시 큰 종을 울리고 뿔피리를 불어 호응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왜적의 무리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떠들어 대면서 곧 막사를 불태우고 복병을 나누어 보내어 강변을 막아 구원병이 오는 길을 끊었습니다.


    9일 첫새벽에 왜적 2000여 명이 단성(丹城) 길로 향해 가면서 사방으로 흩어져서 분탕질을 하였으며, 한 부대는 단계현(丹溪縣)으로 향하여 가다가 합천(陜川)의 임시 장수인 김준민(金俊民)에게 쫓기게 되었으며, 한 부대는 단성 읍내를 분탕질하다가 역시 김준민에게 쫓기게 되었으며, 한 부대는 살천창(薩川倉) 길로 향하다가 정기룡(鄭起龍), 조경형(曺慶亨) 등에게 쫓기게 되어 날이 저물어 진 친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머물러 있는 왜적들은 포를 쏘고 화살을 쏘고 하여, 종일토록 끊임없이 쏘아 댔으며, 흙을 져 나르는 역사를 전보다 더욱 급하게 하였습니다. 왜적들이 산대에 올라가 철환을 무수히 쏘자, 성 안에서는 현자전(玄字箭)을 쏘아 세 번이나 대로 엮은 발을 뚫고 나가 또 목판을 뚫었으며, 화살 한 대는 적의 가슴을 관통하여 즉사시켰습니다. 그랬더니 그 뒤로는 왜적들이 감히 산대에 오르지 못하였습니다.


    미시(未時)에 복병장 정유경이 군사 300여 명을 거느리고 진현으로부터 사천(沙遷)에 이르러 진을 치고 군위(軍威)를 뽐냈으며, 또 용사 20여 명을 뽑아서 남강 밖에서 분탕질하는 왜적과 대나무 찍는 왜적을 쳐죽였습니다. 그러자 진에 머물러 있던 왜적 200여 명이 강을 건너 쫓아왔으므로, 정유경이 물러났습니다. 이날 어두울 때 왜적들이 횃불을 들고 오가면서 서로 약속을 하는 듯한 모양을 하였습니다. 그때 어떤 아이 하나가 달려와 신북문(新北門) 앞에 이르렀는데, 바로 본주에서 잡혀 갔던 자였습니다. 끌어다가 적정(敵情)을 물어보니, 답하기를, “내일 첫새벽에 온 힘을 다하여 성을 치려고 합니다.” 하였습니다.




    19세기 중엽 진주성(해자와 더불어 내성과 외성을 갖춘 규모가 큰 성이었습니다. 지금은 내성만 존재하지요.)




    10일 4경 초에 왜적들이 각 막사에 불을 밝히고 짐을 싣고 나가서 거짓으로 퇴각하는 체하여우리 군사를 안심시키고는 불을 끄고 몰래 돌아왔습니다. 4경 중에 두 부대로 나뉘어서 1만여 명은 동문의 새 성[新城] 안으로 들이닥쳤는데, 각각 긴 사다리를 가졌고, 혹은 방패를 짊어진 자도 있었으며, 향교의 제기(祭器)를 뒤집어 쓴 자도 있었으며, 멍석을 오려서 머리를 싸맨 자도 있었으며, 짚이나 풀을 엮어 모자를 만들어 써서 화살과 돌을 피하려는 자도 있었습니다. 탈을 쓴 인형을 3층으로 만들어서 차례차례로 사다리를 타고 올려 우리 군사를 속인 다음에 왜적들이 성을 타고 올라왔으며, 말을 탄 왜병 1000여 명이 뒤를 따라 돌진하였는데, 탄환이 비 오듯이 퍼붓고 함성이 우레와 같았습니다. 장수 왜적은 말을 달려 횡행하면서 칼을 휘둘러 독전하였습니다.


    목사는 동문 북쪽에 대(臺)를 사이에 두고 있고, 판관은 동문 옹성(瓮城)에 있으면서 사사(射士)를 거느리고 죽기를 각오하고 힘껏 싸웠는데, 진천뢰나 질려포를 터뜨리기도 하고, 큰 돌멩이를 던지기도 하고, 불에 달군 쇠붙이를 던지기도 하고, 짚에 불을 붙여 던지기도 하고, 끓는 물을 퍼붓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왜적들은 마름쇠를 밟기도 하고, 활이나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머리를 데고 이마를 그을린 자가 셀 수 없었으며, 또 진천뢰에 맞아 넘어져 죽은 시체가 수도 없이 쌓였습니다.


    성 동쪽에서 싸움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또다시 한 부대의 1만여 명의 군사가 어둠을 타고 몰래 와서 갑자기 옛 북문 밖으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들은 긴 사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방패도 짊어지고 있어서, 형세가 장차 성 위로 올라올 듯하였습니다. 이에 성가퀴를 지키던 자들이 모두 놀라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전 만호(萬戶) 최덕량(崔德良)과 목사의 군관인 이눌(李訥), 윤사복(尹思復)이 죽기를 무릅쓰고 항전하였으므로, 도망갔던 군사가 다시 모여 적에 항거하기를 동문에서와 같이 하였습니다. 늙고 약한 남녀들도 모두 돌을 굴리고 불을 던져, 성 안에는 기와나 돌, 지붕의 이엉이 거의 다 없어졌습니다.


    한참 지나 동녘이 훤히 틀 무렵에야 적의 세력이 조금 뜸하였는데, 목사는 이마에 철환을 맞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곤양 군수(昆陽郡守) 이광악(李光岳)이 대신 북쪽으로 대를 사이에 두고 지켰는데, 사사(射士)를 거느리고 용감히 힘써 싸워 쌍견마(雙牽馬)를 탄 왜장을 쏴 죽였습니다.


    4경부터 접전하여 진시(辰時)와 사시(巳時)쯤에 적이 비로소 퇴각하였습니다. 두 곳의 싸움에서 죽은 왜적이 몇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는데, 왜적의 무리들을 곧바로 끌고 가서 여염집을 태우는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 던졌습니다. 왜적의 머리를 벤 수는 겨우 30여 급뿐이나, 적이 물러간 후에여염집에서 뼈를 태운 것이 곳곳에 쌓여 있었습니다. 왜장의 시체는 왜적들이 농(籠)에다가 넣어서 떠메고 갔으며, 잡아갔던 사람들과 소, 말 등은 모두 버려둔 채 낭패하여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철환에 맞았고, 장수와 군사들은 힘이 다하였으며, 또 뒤를 이어서 구원해 주는 군사가 없었으므로, 추격하여 다 쳐죽이지 못하였으니, 몹시 통분스럽습니다.






    목사는 변란이 일어난 뒤로 국사에 온 마음을 다하여 염초(焰硝) 150근을 미리 구워서 만들었으며, 대충 왜국의 제도를 모방하여 총통(銃筒) 170여 자루도 주조하였으며, 별도로 재간이 있는 경내의 사람들을 뽑아서 항상 총쏘기를 연습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싸움에 임하여서는 화약 쓰기를 물 쓰듯이 하면서 섶이나 짚에 싸서 성 밖에 던지기까지 하였으며, 잇달아 철환을 터뜨려 대적을 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개 온 나라가 무너진 나머지 한 사람도 성을 지킬 계책을 세우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만은 홀로 외로운 성을 능히 굳게 지키면서 바깥 원조도 받지 않고 큰 적을 물리쳤습니다. 그리하여 한 도를 온전하게 보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호남으로 가는 길을 막아 적으로 하여금 내지로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으니, 목사의 공이 이에 더욱 크다 하겠습니다.

     






    설명:

    현자총통(玄字銃筒) :임진왜란 때 쓰던 작은 대포의 한 가지로, 차대전(次大箭)이란 화살 끝에 화약 주머니를 매달아서 쏘는 것이다.


    진천뢰(震天雷) : 선조(宣祖) 때 이장손(李長孫)이 발명한 폭탄으로, 화약, 철편(鐵片), 뇌관을 속에 넣고 겉을 쇠로 박처럼 둥글게 싸서 대완구(大腕口)로 쏘아 목적지에 투하하는 것이다.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라고도 한다.


    질려포(蒺藜砲) : 탄환에 마름쇠를 넣어서 쏘는 화포로, 고려 말기에 최무선(崔茂宣)이 처음으로 만들었다.


    옹성(瓮城) : 원문에는 옹성(擁城)으로 되어 있는데, 두주(頭註)에, “옹성(擁城)은 아마도 옹성(瓮城)일 듯하다.” 하였다. 번역은 두주에 의거하였다. 옹성은 큰 성문 밖에 있는 작은 성으로, 성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항아리 형태로 쌓은 성이다. 진주성은 옛 북문과 새 북문 및 남문이 옹성으로 되어 있다.
     


    출처: 학봉집3권. 진주성(晉州城)을 지켜 승첩(勝捷)한 것을 치계(馳啓)하는 서장.

     











    임진년 난리에는 우리나라에 단지 3대첩(三大捷)이 있었으니 진주를 지킨 것, 노량(露梁)의 싸움 이순신, 행주(幸州)의 승전이 그것이다. 갑오년 강화 때 왜적이 말하기를, “진주의 싸움에서 그들의 장관(將官) 죽은 자가 3백 명이며 군사 죽은 자가 3만 명이니, 반드시 그 보복을 한 뒤에야 강화를 논의할 수 있다.” 하였다. 이 말이 공갈에서 나온 것이라 반드시 모두 그렇다 할 수는 없으나 어찌 근거 없는 말이겠는가. 《부계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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