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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istory_16965
    작성자 : 애비28호
    추천 : 11
    조회수 : 604
    IP : 125.185.***.30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4/07/08 22:47:00
    http://todayhumor.com/?history_16965 모바일
    "세월호, 관할 떠넘기다 ‘골든타임’ 21분 날렸다"의 기사를 보고
    감사원은 이날 오전(7월 8일) ‘세월호 침몰사고 대응실태’ 감사 중간결과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고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배가 뒤집히는 순간 21분이라는 시간을 먼저 도착해서 구조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시대, 세종 대마왕 시절에도 관료들에게 관할 구역이라는게 있었습니다.
    다만 세종 대마왕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백성들의 삶에는 관할 구역 따위는 개나 줘버려였지요.
     
     
    세종 대마왕 즉위 후 부터 쭈욱 이어져 오던 7년간의 기근. 그중에서 세종 4, 5년 때가 가장 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중 세종 4년(1422년) 윤12월의 어느날, 
    평안, 함길, 강원, 황해 등 서북(西北) 각도에 굶주림이 심하여 백성들이 제대로 살 수 없었으나 전라도경상도에 풍년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늙은이와 어린애를 이끌고 식량을 구하러 가는 사람이 길에 줄을 이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북(西北) 지방의 백성들이 거의 모두 남방으로 옮기어 가게 되어 거주 이전의 통제가 있던 당시 감사(監司)수령(守令)이 그들의 옮겨가는 것을 금지하기를 요청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종 대마왕이 이 요청을 듣지 아니하고 여러 도(道)로 하여금 모두 진제소(賑濟所)를 설치하여 그들을 진휼(賑恤)하며, 그들이 가는 대로 말리지 말게 하고 관할 구역 따위는 쿨 하게 무시하라고 하여, 이로 말미암아 고향을 떠나서 떠도는 백성이 비록 많았으나, 굶주려 죽은 사람은 적었다고 전합니다.
    ​※ 진제소(賑濟所), 진제장. 쌀죽이나 미역쌀죽 등을 끓여 굶주리는 백성들을 위해 나눠주던 임시 구호소.
     
     
    세종 5년(1423년) 7월. 관할 구역 따지다가 곤장 처맞다.
    평안도 상원(祥原)에 거주하는 나이 12세 된 사내아이가 홀딱 굶주린 채로 걸음도 겨우 걸어 평안도 강동(江東)의 진제장(賑濟場)에 찾아 들어 왔습니다. 너무 굶주려 진제장 앞에서 폭삭 쓰러질 지경이었는데 당시 진제장 관리 담당자가,
    "넌 어디서 온 아이냐?" 하고 묻자 아이가 상원군에서 왔다고 대답 하였나 봅니다.
    평양을 기준으로 상원군은 평양 바로 우측에 위치하고 강동은 그곳보다 더 우측에 위치한 지역이라 아마도 이 아이가 살던 상원군은 평양쪽의 진제장 관할이었나 봅니다.
    강동 진제장의 관리 입장에서는 관할 구역내의 굶주린 백성들을 거두기도 빠듯한데 다른 지역 주민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강동 진제장의 담당 관리가 걷지 못하는 아이의 상태를 감안해서 소에 태워 아이의 관할 진제장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형조 쪽을 통해서 임금의 귀에 들어갔나 봅니다.
    세종 대마왕께서 "야이 쉥키야, 그러다가 골든타임 놓치면 니가 대신 디질랜드?. 지금 시국이 어느 시국인데 관할 구역 따지냐?.
    너 한테는 다른 지역 백성이겠지만 내게는 모두가 내 백성이다. 저자를 매우 쳐라~~~!!!"
    노발대발한 세종 대마왕의 명령으로 강동 진제장의 담당 관리였던 고귀승(高貴承)이란 자는 곤장 1백 대를 처맞고 다시 강동 진제장으로 보내져서 열심히 죽을 끓여야 했답니다.
     
    국가 공무원이 위급시에 세세한 메뉴얼이 없고 법적 근거도 없는 행동을 해야 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느게 맞을까요?
    세종 6년(1424년) 6월의 기사를 한번 보겠습니다.
    당시 봄철 보릿고개 때 각 지방 관청에서 백성들에게 환상곡을 빌려 주었다가 가을 추수 후에 빌린 곡식을 갚는 것은 잘 아시시라.
    ​그런데 당시 몇 몇 관리들이 환상곡 출납 장부를 거짓으로 꾸며 보고한 자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세종 대마왕께서 의정부와 육조에 이르기를,
    “환상곡(還上穀)을 수입 지출할 때에, 제 마음대로 나누어 준 수령(守令)과 미수(未收)했다는 환상곡을 이미 거둔 수령에 대하여 논죄하는 율을 의논하여 아뢰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아니 그렇게 백성들을 위해 마구마구 구휼을 하시던 분이 고을 수령들이 제 마음대로 곡식을 나눠준 것으로 죄를 물으라 하시다니...
    여기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습니다.
    세종 대마왕의 육성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내가 수령을 죄주려는 것은, 백성이 굶주려서 창고를 풀었다는 것도 아니고, 다 수납(收納)하지 못하였다는 것도 아니다. 비록 〈창고를〉 바로 풀었다손 치더라도 뒤따라 곧 전달(轉達, 보고)하고, 또 다 수납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사실대로 전계(轉啓)하였다면 무슨 죄줄 것이 있겠느냐. 창고를 풀고도 국가에 보고(報告)하지 아니하고, 미수한 것을 망령되게 이미 거두었다 하여 국가를 속였다...<후략>
     
    또한 대마왕께서 더욱 짜증이 나신 것은 이 죄를 논해야 할 사헌부에서 오히려 죄를 조금 낮춰주는게 좋지 않겠냐고 요청을 한 것 때문입니다.
    지방 고을 수령들은 백성들의 구휼을 목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 때의 원칙은 "무조건 살려 내라"입니다.
    굶주린 백성들을 살려내는 방법은 어떤 방법도 좋으며 또 상부의 허락도 필요 없이 선조치, 후보고였습니다.
    지금처럼 경직된 조직이 아니라 고을 수령들의 자위권을 상당히 배려 했었답니다.
    또한 흉년이 심한 고을에는 환상곡을 빌려줬다가 못받더라도 빵구난 것 채우려고 억지로 빌려준 것 받을려다 오히려 백성들이 더 못살겠다고 도망 ​갈수도 있으니 대출금 회수를 금지하기도 여러차례였습니다.
     
     
    세종 17년(1435년) 세종 대마왕의 등잔 밑이 어둡다.
    지방에는 여러차례 흉년으로 백성들의 구휼 시스템이 좀 정비가 되었는듯 한데,​
    가만보니 임금이 살고 있던 한양에는 그런게 활인소라고 동네 보건소 비슷한 곳 밖에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세종 대마왕이 한성부(漢城府)에 명령을 하시기를
    "가만 보니까 강원도 산골에서 굶은 백성들 신경 쓰다 보니 한양에서 굶는 사람들은 내가 소홀 했네. 나의 실수^^"
    앞으로 좀 잘 챙겨 보라고 명령을 내리셨는데,
    요즘이나 그때나 공무원들은 어떤식으로든 정확한 지침이 없으면 움직기가 어렵고 또한 상과 벌이 명확하지 않으면 하는 척만 하는 경우가 많겠지요.
    ​며칠뒤 세종 대마왕께서 한성부(漢城府)에 다시 전지하기를,
    “한양 안과 한양 도성밖 10리까지는 한성부에서 관할 하니까 관할 안에서 백성이 굶는 경우 한성부 직원들을 지방 수령의 관례로 처벌 할꺼야!!!. 명령이 떨어지자 겨우겨우 꾸역꾸역 움직이기 시작하는 공무원들...
    세종 19년(1437 년). 한양에서도 어느정도 구휼시스템이 잘 작동 하나 싶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공무원들 기강이 풀렸나 봅니다.
    세종 대마왕께서 지금까지 한양의 구휼시스템의 문제점 등을 확인하고 좀 더 법률적으로 보강하여 다시 한양의 공무원들에게 압박을 가합니다.
    "두고보자. 생퀴들... 걸리면 가만 안둔다!"
    며칠뒤 세종 대마왕은 은근슬쩍 한양의 관리들의 실태를 점검해 보고는 판한성부사 이숙묘(李叔畝)·부윤(府尹) 김익생(金益生)·최사의(崔士儀)·겸참군(兼參軍) 조원복(趙元福)·참군 윤휘(尹暉)·심치(沈寘) 등을 의금부에 가두어 버립니다.
    한양의 진제장에서 백성 하나가 굶어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백성 한 명 굶어 죽었다고 요즘 서울시장급인 판한성부사와 그 밑의 최고위 벼슬아치들이 하루아침에 감옥에 구속되어 들어가다니...
    그런데 이런(백성들 굶어 죽게 버려둔) 사건에서 죄에 대한 형벌이 곤장을 직접 맞아야 하는데 그냥 곤장 대신 그에 상응하는 재산을 매값으로 대신하게 하는 은혜를 베풉니다.
    원래 당시 법규에 보면 게을러서 백성을 굶길 경우 곤장 대신 매값을 내는게 금지 되어 있고 공신이거나 공신의 자손이거나 관계 없이 직접 곤장을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매값으로 곤장을 대신하게 해준걸까요?​
    사실 진제장에서 굶어 죽었다던 백성은 배가 고파 진제장을 찾아 오다가 진제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근처 길 옆에서 쓰러저 죽어 버렸다는군요. 진제장 안에서 열심히 죽을 끓이고 배식을 하던 관리들은 진제장 밖에서 들어오지도 않고 죽은 백성 하나 때문에 무슨 꼴인지... 
     
    세종 19년에도 기근이 좀 심했나 봅니다. 그해 1월 의정부에서 임금에게 요청 하기를,
    진제장에 찾아 오는 백성들에게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몇 명이나 왔는지, 그런거 물어보고 접수증 끊고 전산입력하고 하다보니 겁이 난 백성들이 진제장에 잘 오지 않고 산 속으로 도망 갑디다... 하고 보고를 함.
    "야 그럼 접수는 나중에 하고 일단 눈인사 한 번 하고 나서 밥 부터 멕여, 밥 멕이고 나서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아지면 그때 살살 물어 보고 그러면 되잖야? 그리고 배고플때 마다 밥 계속 먹여주다가 봄 되서 보리 익으면 그때 양식 좀 싸주고 돌려 보내줘라."​
     
     
    세종 19년 세종대마왕이 가장 기분이 좋았을 것 같은때의 한장면.
    "​진제장(賑濟場)을 설치하고 사방에서 유이(流移,유랑)하여 오는 기민(飢民)들을 진제하니, 이를 받아 먹는 자가 각각 천여 인이나 되었다.
    매일 관가에서 한 사람마다 쌀 한 되 5홉을 주고 아울러 소금과 간장을 주니, 사방에서 부황이 나서 죽게 된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아났다.
    주리던 백성들이 하는 일 없이 배불리 먹으매, 날이 오랠수록 기운이 씩씩하여 거의 거민(居民, 그 땅의 원래 토박이. 여기서는 배가 고파
    떠도는 사람이 아닌 자기 집이 있는, 좀 사는 사람들)들보다 낫었는데..."
    ...<중략>...
    “각관이 진제상을 길가에 설치하였으나, 수령이 친히 감독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록 이름은 진제한다고 하나 실상은 진제의 효과가 없다.
    근자에 충청도 진휼사 안순(安純)이 전날 함길도 감사로 있을 때에 진제하여 효과를 본 법을 써서, 그 도의 계수관(界首官) 및 각 고을의
    읍내나 혹은 수령의 청사 앞에나, 혹은 원(院)·관(觀)에 땅의 형편에 따라 적당하게 움집과 가가(假家)를 짓고, 수령이 항상 친히 감독하여
    밥이나 죽을 적당하게 먹이니, 경내(境內)의 굶주린 백성들이 소문을 듣고 많이 모여 들었다. 본도들이 경계가 충청도에 연접하였으니,
    그 진제의 법을 본받아 기민락취(飢民樂聚, 굶주린 백성으로 하여금 즐겁게) 진제장에 모이게 하라.”
    (오호, 이거 난 짬밥이 입에 짝짝 맞아? 뭐 이런 내용인가....^^)​
     
     
    요즘 500년 전 조선시대 보다 못한 나라 꼬라지 보고 있자니 참 답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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