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class="바탕글">휘파람</div> <div class="바탕글"></div> <div class="바탕글">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외딴길에도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나무의 잎사귀들이 떨어질 때 까지 고집스럽게 흔들어 대고는 낙엽들을 길에 팽개쳐 버렸다. 나무들은 서러운 소리를 내가며 바람을 맞았다. 바람의 수심이 너무 깊은 듯 달빛은 바람에 조각조각 흩어져 버렸다. 한 남자가 길 끝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어깨는 계속 들썩거렸다. 이따금씩 흐느끼다 ‘어디에 있니’ 라고 물음을 던졌지만 바람은 답해주긴 도리어 그의 질문을 뒤로 날려 버렸다. 나무들이 우우 거리며 그와 함께 울어 주었다. 그 소리는 마치 유령이 연주하는 나팔처럼 기괴했다. 남자는 길바닥의 낙엽들처럼 주저앉았다. 낙엽들이 휘날리며 남자를 감싸고는 스쳐지나갔다. 날려간 남자의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뒤에서 녹슨 체인 소리가 들려왔다. 죽기직전의 사람이 내는 숨소리처럼 체인 소리는 끊어질듯 말듯 하며 남자와 가까워 졌다. 남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좁은 길에는 흩날리는 낙엽을 제외 하고는 어떤 것도 없었다. 그 때 흩날리는 낙엽사이로 자전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남자는 낙엽사이에서 자전거가 아니라 메두사라도 본 것 마냥 굳어 버렸다. 세찬바람이 자전거를 향해 부는 데도 불구하고 자전거는 꾸준히 길가의 낙엽을 천천히 바스라 트리며 남자에게 다가왔다. 정신병자의 웃음소리가 자전거의 녹슨 체인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자전거는 서서히 비틀거리며 남자의 바로 옆에 쓰러졌다. 남자가 부른 건 자전거가 아니다. 곧이어 하나의 비명이 길을 가로지었다. 남자는 낙엽위에 비명을 흘려대며 정신없이 달렸다. 나무들이 남자에게 소근 대었다. 나무는 남자에 죽으라고 했다. 반대편 길 끝의 집에 다다라 남자는 무릎에 손을 올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남자가 파란대문을 열자 대문은 자전거처럼 녹슨 소리를 내며 맞이 해주었다. 바람은 점점 거세졌다. 그리고 점점 커졌다. 길을 가득 메우는 걸로는 부족한지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창문이 덜컹거렸다. 남자는 티브이의 볼륨을 최대로 해놓고는 쥐새끼가 구멍에 숨듯 이불에 파고들었다. 창문이 깨지며 유리가루가 이불위로 쏟아져 내렸다. 바람이 집안을 휘저었다. 볼 수는 없지만 남자는 알 수 있었다. 들어온 것은 바람 뿐 만이 아니었다. 무언가 절뚝이며 들어왔다. </div> <div class="바탕글"></div> <div class="바탕글">열쇠가 걸리는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아선은 문을 열자마자 몸이 굳어 버렸다. 방의 가운데에는 그림이 하나 있었다. 방의 공기도 그림도 무겁게만 느껴졌고 게다가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아선은 천천히 그 그림에 다가갔다. 자전거를 타고 후드를 쓴 어떤 것이 그림 속에 있었다. 어떤 것 이라고 한 이유는 그것은 얼굴은 새카맣게 칠해서 보이지 않을 뿐 더러 마치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마치 태어나는 것 자체가 금지된 불길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선의 뒤 따라온 여자에게 재차 확인을 하였다. </div> <div class="바탕글">“이게 민우가 저에게 남긴 그림이라고요?”</div> <div class="바탕글">민우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우는 아선의 남자친구였다. 미술학원 강사였던 그는 항상 알록달록 하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을 그리던 사람 이었다. 아선은 어째서 민우가 이런 걸 그렸는지 왜 이 그림을 자신에게 남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후드를 쓴 어떤 것에 대한 그림도 여러 가지 색이 들어가 있었다. 빨강 노랑 주황 파랑 그리고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다채로운 색들이 석여 있었다. 하지만 자전거와 후드를 뒤집어 쓴 사람은 오로지 볼펜으로 스케치만 되어 있었고 얼굴도 볼펜으로 마구 그어져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탄 무언가가 볼펜으로 뒤죽박죽이 된 가면너머로 아선을 쳐다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배경은 여러 가지 색깔들이 아무렇게나 매스꺼울 정도로 어지럽게 섞여 있었다. 색들의 불협화음 속에 박힌 자전거를 타고 후드를 쓴 검은 무언가를 본 날 아선은 일하다가 빵을 태운다던지 여러 가지 실수를 하다가 결국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게다가 머리까지 지끈 거렸다. 약국에 들러 두통약을 사오고 집에 들어온 아선을 웅이가 반겨 주었다. </div> <div class="바탕글">“그만 해 웅이야.”</div> <div class="바탕글">아선은 아선에게 안겨 그녀의 얼굴이 녹아 없어질 기세로 열렬하게 애정표현을 하는 웅이를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한숨을 쉬는 아선의 눈이 향한 것은 거실 구석의 액자였다. 액자는 벽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액자에 그려진 무언가는 계속 아선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선은 두통약을 물과 함께 삼키고 웅이를 대리고 집밖 마당으로 나왔다. 아선을 담배를 태우며 가만히 웅이를 쓰다듬었다. 그림 때문에 집안으로 들어가기 싫었다. 그림에게 집밖으로 쫓겨난 기분 이었다. 아선은 가만히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연기는 아선의 시야에서 맴돌다가 흩어졌다. 흩어져 가는 연기 속에서 민우가 보이는 것 같았다. 민우는 집안의 옷장 속에서 발견 되었다. 죽은지 이틀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패하지 조차 않았다. 아선이 걱정되어 민우의 집에 찾아 갔을 때 옷장 속에서 마치 민우가 남긴 그림이 있는 것처럼 옷장 속 에서는 새파란 소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선은 다시 담배를 들이마셨다. 담배막대가 타들어가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선은 담배를 비벼 끄고 마지못해 집에 들어갔다. 저녁이 되었을 때 아선의 남동생인 선중이 들어왔다. 그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들어 누워 버렸다. 웅이가 선중에게 달려들어 온몸을 햝아 대었다. 선중은 웅이를 앉은 채로 한숨을 쉬었다. 동시에 아선도 한숨을 쉬었다. </div> <div class="바탕글">“못 찾았니.”</div> <div class="바탕글">선중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중은 물끄러미 품안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는 웅이를 바라보았다. 웅이는 품을 빠져나와 다시 얼굴을 햝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안 좋은 일만 생기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는데도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뺨에 흐르던 눈물은 얼어붙어 따끔 거릴 것이다. 벌써 삼일이 지났다. 찾을 가능성은 이미 없어 보였다. 선중은 자기가 부르는 이름이 의미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이름을 불렀다. ‘송이야’ 송이는 선중의 여자 친구가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었다.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나서 선중과 그의 여자 친구는 모든 시간을 그녀의 강아지를 찾는 데에 시간을 쏟았다. 이틀 전과 어제에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찾을 거라면 진작에 찾았을 것이다. 그녀가 훌쩍이며 선중에게 다가왔다. ‘저기 중앙 공원에 가보자’ 중앙공원만 열 번은 간 것 같았다. 여자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강아지는 이미 먼 곳 까지 가서 길을 잃었거나 아니면 차에 치였거나 누군가 에게 잡혀 갔거나 그녀가 송이를 찾을 가능성은 없었다. 중앙공원에 가던 동네 어디를 가든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얼어붙은 눈물이 덕지덕지 붙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 차마 포기하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둘은 공원을 향해 걸었다. 아직 저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추워서인지 공원에 나와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는 노숙자마저도 볼 수가 없었다. 빠지는 털 때문에 털을 빡빡민 송이가 이렇게 추운 야외에 있을 리가 없다. 선중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div> <div class="바탕글">“강아지 찾다가 너 잡겠다. 너 지금 불덩이야.”</div> <div class="바탕글">선중은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추운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이마는 뜨거웠다. 평소라면 그녀는 자신의 손을 선중의 손에 포개며 얼굴을 붉혔겠지만 그녀는 말 그대로 얼어붙은 얼굴로 선중의 손을 뿌리쳤다. 그녀는 선중을 무시하고 송이의 이름을 부르며 공원을 해매었다. 공원은 가운데호수가 있고 그 둘레에 길과 나무가 있는 단순한 모양 이었다. 선중은 아무 말 없이 송이야 라고 끊임없이 외쳐대는 여자 옆을 걸었다. 개는커녕 개털하나 없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계속 공원을 빙빙 도는 사람이 있긴 했다. 선중은 계속해서 공원을 도는 자신들이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결국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선중은 옆에 쪼그려 앉아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div> <div class="바탕글">“이제 들어가자.”</div> <div class="바탕글">선중이 그녀를 일으켜주는 찰나 자전거가 지나갔다. 선중은 그녀를 끌어당겼다. 하마터면 그녀를 밖을 뻔 했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사과도 없이 둘을 지나쳤다. 선중은 ‘개새끼가’ 라면서 욕을 하려 했지만 그녀가 말렸다. ‘집에 가자’ 둘은 공원을 아무 말도 없이 걸었다. 호수 저편에서 자전거를 타는 남자를 보자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분명이 공원에 올 때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 샌가 저렇게 원래 있던 것처럼 자전거를 타고 있다. 선중은 들썩이는 그녀의 어깨를 좀 더 세게 감싸 앉았다. ‘빨리 들어가자’ 이상한 느낌이다. 공원에서 자전거를 탄 남자가 계속 생각이 났다.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남자는 마치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때어다가 떨어트려 놓은 듯 뭔가 어색했다. 조악하게 합성된 사진처럼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남자가 아직도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방구석에 있던 액자가 선중의 눈에 들어왔다. ‘못 보던 건데’ 그 때 핸드폰이 울렸다. 여자 친구 에게 온 전화였다. 액자를 확인 하려던 선중은 이상하게 전화가 온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액자 뒤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될 핑계거리가 생겼다. 전화를 받았지만 아무소리도 나지 않았다. </div> <div class="바탕글">“무슨 일이야.”</div> <div class="바탕글">“쉿!”</div> <div class="바탕글">그녀는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div> <div class="바탕글">“자전거 타는 사람이 나 미행한 것 같아. 계속 휘파람 불어. 계속 들려”</div> <div class="바탕글">그리고 그녀가 뭐라고 속삭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여자 친구의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듣기가 싫었다. 마지 시체가 속삭이는 것처럼 전화기에서는 차갑고 조용한 목소리로 비명이 귓구멍 속에 파고들어 은밀한 비수처럼 고막을 찢는 것만 같았다. ......제발 와줘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걱정인지 안도의 한숨일지 모르는 한숨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왜 그래? 아선이 선중에게 걱정스럽게 물어보았다. 선중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따라 나온 누나가 고마울 뿐 이었다. 망막에서 자꾸만 자전거를 쓴 누군가가 뱅글 거렸다. 저녁에 비가 온다고 예상했던 일기예보는 틀렸다. 하늘에서 비대신 구름이 쏟아져 안개가 가득했다. 골목의 벽마다 잃어버린 개들에 관한 전단지가 가득 했다. 아선은 문득 발을 멈추고 벽에 붙은 전단지를 때었다. 전단지에는 강아지의 사진과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민우의 전화번호다. 어쩌면 천국에 민우를 반겨줄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 정말 뭐를 그토록 숨기고 싶은 건지 안개는 점점 더 진해져만 같다. 누군가가 벽에 전단지를 붙이고 있었다. 그 사람은 선중과 아선을 보더니 전단지를 한 장 쥐어주고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다시 벽에 전단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 때 느닷없이 선중이 골목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진 전단지를 아선이 주우려는 찰나 그 사람이 다시 줍고는 아선을 째려봤다. 아선도 선중의 여자 친구 집을 알고 있었다. 아선이 그녀의 집에 도착 했을 때 머리카락하나하나 아니 세포하나하나 그녀의 몸 단 한 부분조차 그녀에게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들어가고 있었다. 덩그러니 문이 열린 채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집은 더 이상 사람이 사는 곳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밖에 깔린 보다 더 지독한 어둠이 문 너머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집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발에 소름이 돋았다. 망할 동생만 얼른 데리고 오면 된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뇌까리며 거실로 들어갔다. 그 순간 그녀는 소름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동생은 멍하니 탁자 밑에 웅크리고 있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있을 뿐이지만 그 눈 마주침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눈 마주침 모를 수 없었다. 선중은 더 이상 여자 친구가 아닌 여자가 아닌 사람이 아닌 파란얼굴에 달린 눈을 보면서 입을 제외한 모든 부분으로 비명을 지르는 중이었다. 집밖어딘가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 왔다. 몇 일이 지났다. 그녀는 장례식에 다녀온 직후 이런 그림을 보여 주는게 옳은 일일까 망설였지만 보여 주기로 했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버거운 그림 이었다. 그림인지도 의심스러웠다. 아선의 선중의 앞에서 액자를 뒤집었다. 벽만 보고 있던 자전거를 탄 그것이 드디어 그들을 쳐다 보기 시작했다. 새하얗게 질려있던 선중은 방금 전 까지 언제 얼굴이 질렸나는 듯 더욱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선중은 자전거를 탄 남자가 왜 아직까지 곁을 맴도는 것 같은지 알 수 있었다. 이 그림 때문에 여자 친구가 죽은 것이다. 민우라는 누나의 남자친구는 악마가 분명했다. 아니면 적어도 미친 사람 일 것이다. 이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이거 태워 버려야 되 선중은 중얼거리며 아선의 손에서 그림을 낚아챘다. 뭐하는 짓이야 아선이 그를 밀치자 선중은 그림과 함께 넘어져 버렸다. 그것의 얼굴이 선중에게 닿았다. 그 끔찍한 그림이 선중에게 닿았다. 그때 액자 속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림과 액자사이에 일기장이 있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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