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오늘 혼자보고 집에와서 블로그에 써본겁니다. 첨써보는거라 이상할수도 있지만 한번 읽어주세요~ 블로그에 쓴 글을 그대로 퍼와서 반말입니다ㅜ
영화에서 각각 존과 프랭크가 나타내는 것이 있다. 프랭크가 솔직함, 인디, 언더그라운드 마이너 등을 상징한다면, 존은 평범함, 메이져, 대중, 메이져 기획사 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이외에도 클라라는 인디 혹은 언더그라운드의 매니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존은 열정은 있지만 재능은 없는 음악가이자 회사원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로 이름조차 기괴한 프랭크의 밴드 소론프로프브스(SORONPRFBS)에 합류하게(알게) 된다. 존은 프랭크의 밴드를 따라 아일랜드로 가 앨범작업을 하게 된다. 평소에도 핸드폰으로 트위터질(허세질)을 하던 존은 프랭크와 소론프로프브스가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일일이 트위팅하고 몰래 영상을 찍어 유투브에 올린다. 마침내 앨범이 완성되고 유투브에서 소론프로프브스의 영상을 본 SXSW페스티벌(South X South West Festival)에 참가하게 된다. 여기서 클라라와 존의 갈등이 심화되고 결국 클라라와 다른 밴드의 멤버들은 떠나고 존과 프랭크만 무대를 서지만 밴드가 없어지고 존이 손을 댄 음악은 프랭크가 추구하는 음악이 아니라 대중들(존)이 원하는 음악일 뿐이다. 사고로 프랭크의 가면이 부셔지고, 프랭크는 잠적한다. 존은 프랭크를 찾아 클라라와 나머지 밴드멤버들이 공연하는 곳으로 데려간다. 거기서 밴드와 다시 조우한 프랭크는 다시 본연의 음악성을 되찾는다. 먼저 존을 대중이라고 놓고 줄거리를 보자. 존(대중)은 프랭크라는 개성 강하지만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취향에 맞는 가수(혹은 밴드나 랩퍼)를 찾는다. 처음에 그는 클라라처럼 프랭크를 추앙하는 매니아이다. 자신이 하는 음악과는 다른 성향이지만 그의 음악을 존중하고, 열광한고, 동화된다.(이는 처음 아일랜드에 갔을때는 담배도 피지않고, 야외에서 거품목욕도 하지않고, 면도도 말끔하게 하는 존이 프랭크와 함께 음악을 하며 담배도 피고, 거품목욕도 하고, 수염도 덥수룩 하게 기르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하지만 SXSW에 출연하게 되는 순간부터(혹은 존이 유투브에 동영상을 올리고 조회수가 높아져 가는 시점부터) 프랭크의 음악을 존(대중)의 기호의 맞추려 한다. 이는 SXSW에서의 공연 직전 클라라와 존의 갈등에서 잘 들어난다. 대중이 원하는 음악과 매니아가 원하는 음악사이에서 갈등이 클라라가 존은 찌르게 되는 것으로 표현된다. 결국 다른 소론프로프브스의 멤버도 떠나가고 프랭크는 존과 무대에 서지만 존이 손을 댄 음악은 더 이상 프랭크의 것이 아니다. 더 이상 프랭크만의 색깔이 없어진 음악은 단지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다.(중식당에서 존이 다른 손님에게 조롱당하는 장면. 여기서의 존은 프랭크의 대변자라는 느낌이다.) 그들은 이들의 개성이 단지 뜨기위한 수단이고, 마케팅일 뿐이라 생각하며, 한순간의 유행이라 여기며 웃어넘긴다. 이렇게 대중은 개성있는 가수, 밴드, 랩퍼들은 데려와 자신들의 틀에 맞춰 이해하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부분만 받아들이며, 더 이상의 유희를 얻을 수 없을 때 단물빠진 껌처럼 뱉어버린다. 프랭크는 존이 빠진 밴드의 멤버들과 조우했을때(다시 인디, 언드그라운드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색깔을 되찾는다. 대중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보단 자신의 뜻대로 음악을 하는 것이 본연의 것이고, 개성이고, 음악성임을 보여준다. 존은 메이져 기획사라고 생각해 본다면 약간 다르게 볼 수 있다. 메이져 기획사들은 개성있고, 재능있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인디씬의 가수, 밴드, 랩퍼를 찾아 나선다. 그러한 재능을 가진 팀(프랭크)을 만나면 대중들에게 이들을 알리기 위한 마케팅(존의 트위팅, 유트브에 영상 게시 등)을 진행한다. 그러면서 점점 팀 본연의 색보단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음악을 요구함과 동시에, 매니아들의 욕구도 충족을 시켜준다.(존과 클라라의 정사장면). 인지도를 얻고 나름의 성공도 거둔 밴드지만, 대중의 입맛에 맞춘 음악을 하면서 팀 본연의 색깔을 잊어버린 팀은 결국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잊혀지고, 해체된다. 결국 기획사(존)의 손을 떠나서야 팀의 개성을 되찾게 된다. 우리는 이미 한국에서 프랭크와 같은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수많은 가수들이 대중성을 명목으로 자신들의 개성을 희생하고, 거세당했다. 그리고 대다수가 단물만 빠진채 버려졌다. 감독이 이런 것에 프랭크와 존을 비유하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영화를 보는 내내 위와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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