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font size="2">군대에서 보급품의 질은 짬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작게는 수통부터 시작해 탄띠며 군장 침낭까지 A급으로 도배를 하지 않으면 </font></div> <div><font size="2">안된다는 강박관념이라도 있는건지 A급 보금품에 목숨을 거는 고참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좋은게 좋은거라고 같은 물건이라면 </font></div> <div><font size="2">새거나 질좋은걸 가지고 싶은게 사람 심리라지만 1년에 한두번 쓸까말까한 반합이나 야삽조차 A급이 아니면 몸서리 치는 고참들이 </font></div> <div><font size="2">있었다. 공작새가 날개를 펼쳐 자신을 과시하듯 자기의 A급 보급품들을 펼쳐놓고 뿌듯해 하고 있는 고참들의 모습을 볼때면 저렇게 <br />까지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은근히 고참들끼리의 신경전의 대상이 되는것도 바로 보급품이었다. 덕분에 죽어나는건 </font></div> <div><font size="2">후임들이었다. 혹시라도 다른소대 고참이 새 보급품을 받거나 신상을 가지고 있는걸 보게되면 어김없이 우리에게 압박이 들어오곤 했다. </font></div> <div><font size="2">옆소대 누구는 보니까 야삽이 막 접히고 그러더라... 내껀 나문데.. 부러트리면 접히겠지? 이러면 우리는 보급계로 달려가 신형야삽을 </font></div> <div><font size="2">달라고 애원해야 했고 야 몇소대 누구는 매트리스가 쿠션이 아주 그냥 과학이더라.. 괜찮아 난 그냥 맨바닥에서 자지 뭐. 디스크나 </font></div> <div><font size="2">오고 말겠지.. 이러면 내 매트리스에서 쿠션을 빼서라도 채워놔야 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당연히 상태가 나쁜 보급품들은 후임들의 차지였다. 해안에 들어갈때면 방한용 보급품이 나왔는데 처음 자대배치를 받고 지급받은 </font></div> <div><font size="2">방한용품은 거의 유물 급이었다. 참전용사의 원혼이 서려있을것 같은 스키파카는 아무리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자크는 </font></div> <div><font size="2">잠기지 않았고 딸려있는 방한두건은 이미 탈모가 진행중인지 털이 3분의 1도 붙어있지 않았다. 지금껏 몇명이나 입은건지 가늠조차 </font></div> <div><font size="2">되지않는 방한복 바지와 바지 깔깔이는 이미 무릎이 다 헤져있었고 방한화 역시 굽이 다 닳아 없어진지 오래였다. 그렇게 풀셋을 </font></div> <div><font size="2">입은 나의 모습은 과거에서 시간여행을 온 6.25 참전용사 처럼 보였고 근무를 나가기 전 거울을 볼때마다 왠지 애록고지를 사수해야만</font></div> <div><font size="2">할것같은 기분이 들게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시간이 지나고 나도 어느덧 고참이 되었지만 나는 보급품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았다. 바꾸는것도 귀찮은데다 A급 보급품을 쓴다고</font></div> <div><font size="2">군생활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기에 그냥 주면 주는대로 받아 쓸 뿐이었다. 제대를 몇달 앞두고 마지막 해안투입을 했을때였다. </font></div> <div><font size="2">다들 내무실 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방한용품을 받아가라는 방송이 들려왔다. 따로 소대별로 나누어 주는게 아니라 창고에 </font></div> <div><font size="2">쌓여있는 보급품을 분대 인원수에 맞게 들고와야 했다. 좋은거 찾는다고 쌓여있는거 뒤지지 말고 그냥 대충 쓸만한걸로 가져오라고 </font></div> <div><font size="2">말하고 막내를 보냈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한참이 지나도 후임은 오지 않았고 다른 후임을 보내려는 차에 낑낑대며 들어오는 후임을 </font></div> <div><font size="2">발견했다. 왜이렇게 늦었냐고 묻자 그 후임이 하는 말은 좋은걸로 찾아온다고 늦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했던 말은 이등병의 자체 필터링에</font></div> <div><font size="2">걸러져 쓸만한걸 가져오지 않으면 뒤진다. 라는 말로 전달되었고 그 후임은 충실히 명령을 수행한 것이었다. 보급품에 보청기가 없다는</font></div> <div><font size="2">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정말 열심히 뒤졌는지 그 후임이 가져온 보급품은 A급도 아닌 초A급이었다. 때깔이 남다른 신형 스키파카를 비롯해 모든 물품이 거의</font></div> <div><font size="2">새것이나 다름없었다. 압권은 침낭이었다. 쿠션이 빵빵하다 터져나갈것 같았고 심지어는 관물대 밑으로 잘 들어가지도 않았다. </font></div> <div><font size="2">이왕 이렇게 된거 남은 군생활을 따숩게 보내다 전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 놓인 보급품들을 보며 어쩌면 먼저간 고참들의 </font></div> <div><font size="2">기분이 이런것이 었구나 하고 어느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정리가 끝나고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font></div> <div><font size="2">보급병 후임을 모습을 발견했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후임의 모습에 무슨일인지 물었더니 중대장님 드릴 보급품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font></div> <div><font size="2">이미 주기까지 다 해놨는데 아까 정신없는 사이에 없어졌다며 패닉에 빠진 후임의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뭐가 </font></div> <div><font size="2">없어졌는지 물어보니 스키파카부터 침낭까지 전부 다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넌 이제 X됐구나.. 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갑자기 오한이 </font></div> <div><font size="2">들었다. 내무실로 올라가 후임을 찾아 아까 그 보급품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물었다. 뿌듯해 하며 한쪽 구석에 누가 쌓아논걸 가져왔다는 </font></div> <div><font size="2">후임의 </font><font size="2">말에 침낭을 꺼내 펼쳐보았다. 침낭 끄트머리엔 선명하게 3co장 이라고 적혀 있었다. </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미리 알아챘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그대로 입고 나가기라도 했다면 남은 군생활을 따뜻하게 보내겠다는 나의 희망이 사망이 될뻔한 아찔한</font></div> <div><font size="2">순간이었다. 허겁지겁 보급품들을 챙겨서 보급병 후임에게 전해주고 다시 보급품을 받아왔다. 전의 그 유물이었다. </font></div> <div><font size="2">후임들이 자기것과 바꿔준다고 했지만 어차피 몇달 남지 않은 군생활이고 괜히 뺏는 기분이 들어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font></div> <div><font size="2">그렇게 나는 남은 군생활을 6.25 코스프레와 함께 보내야 했다.</font></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font> </div> <div><font size="2"></font>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