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항상 취사병이 부족했던 우리 부대에선 일손이 부족할 때면 소대마다 한명씩 돌아가며 취사지원을 나가곤 했다. </p><p>남들 다 자는 시간에 일어나서 나가야하고 남들 쉬는 저녁시간에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일이라 다들 기피하는 </p><p>일이었고 자연스레 일이등병 위주로 차출이 되었다. 나 또한 울며겨자먹기로 취사지원을 나가곤 했다. </p><p><br></p><p>그러던 중 새로운 소대장이 왜 일이등병만 취사지원을 나가는지 의문을 제기했고 앞으로는 계급 상관없이 </p><p>제비뽑기로 정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이 쓸데없는 민주화의 바람의 첫 희생자로 당첨되었다. </p><p>다들 잠든 시간에 취사장 바닥에 앉아 양파를 까고 있자니 매운 양파탓인지 자꾸만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p><p>하지만 이제 겨우 일주일 중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당황스러운 건 취사병들 또한 마찬가지 였을것이다. </p><p>항상 일이등병만 오다가 갑자기 상병이 오니 마구잡이로 부려먹기도 애매한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내가 </p><p>주로 맡아서 하는 일은 배식이었다. 우리 부대는 기본적으로 자유배식이었지만 인기있는 메뉴가 나올때면 </p><p>따로 배식하는 사람을 두고 반찬을 나눠주곤 했다. 취사병들과 잡다한 일은 빼주는 대신 배식을 맡아서 </p><p>하기로 합의를 보고 그때부터 나는 배식담당이 되었다. </p><p><br></p><p>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아무래도 다른 소대원들 보다는 우리 소대원들을 더 챙겨주게 되고 항상 우리 소대원들에게는</p><p>이인분 같은 일인분을 퍼주다 보니 몇일이 지나자 조금씩 배식에 대한 불만이 들려오는 듯 했다. 하지만 대놓고 </p><p>따지는 사람이 없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p><p><br></p><p>그날 아침 메뉴는 짱박힌 말년병장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곰탕이었다. 부대에서 가장 인기있는 메뉴였기에 취사장은</p><p>사람들로 가득했고 평소엔 아침을 잘 먹지않는 고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간의 소문때문인지 나를 유심히 </p><p>살펴보는 듯 했지만 나는 너무도 대담하게 행동하고 말았다. 다른 소대원들에겐 윗 부분의 국물 위주로 국을 떠주고</p><p>우리 소대원들에겐 고기가 깔린 아랫부분을 떠주고 만것이다. </p><p><br></p><p>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옆소대 후임에겐 위에서 한국자</p><p>우리소대 후임에겐 밑에서 한국자, 옆소대 선임에겐 위에서 한국자, 우리소대 선임에겐 밑에서.. </p><p><br></p><p>그때 날 제지한건 당직근무를 마치고 아침을 먹으러 온 옆소대 선임이었다. 아침잠까지 포기하며 밥을 먹으러 온 선임의 </p><p>눈은 잠을 못자서인지 아니면 식판마다 느껴지는 건더기의 빈부격차에 대한 분노때문인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너는</p><p>아침부터 장난질이나며 날 추궁하기 시작한 고참에게 증거있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이미 귀신의 형상이 되어버린 고참의</p><p>모습을 보고 나는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섣불리 국자에 손이라도 댔다간 손모가지가 날아갈 것 같았다. </p><p><br></p><p>결국 우리소대 고참들이 와서 한참을 말리고 식판에 고기를 산처럼 쌓아주고 나서야 그 고참의 분노는 사그라 들었고 </p><p>나는 한참 동안이나 다른소대 고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