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녀 3남의 둘째아들, 네째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상당히 능동적이었어.
학창시절에도 암탉한마리를 구해 계란을 팔아 육성회비와 용돈을 해결하고
공부도 썩 잘하여 그 지방의 내노라하는 고등학교와 그 당시 가기 힘들었던 대학교를 나와
은행에 취업까지 했어.
그러다가 매형이 사업을 시작하자 그의 형이랑 함께 안산까지 와서 매형을 도와주며 영업전선에 뛰어들게 됬지
회사생활은 무척 재밌었지 친형이랑 같이 일한다는 든든함과 마음 잘맞는 직장동료들, 그리고 나날이 좋아지는 영업실력과 실적으로 자신감까지 얻어가며 재미있게 일했지.
그러다 어여뿐 간호사를 만나서 사랑을 시작하고 얼마 안되어 결혼까지 약속했지.
청혼한지 일주일만에 그녀가 입덧을 했다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었지.
그렇게 사랑하는 그녀와 결혼을 하고 6달만에 자신과 그녀를 닮은 사내아이를 낳아준 그녀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지
그 후 30개월만에 딸까지 낳아서 행복하게 살았어.
여행을 좋아해서 와이프와 자식들을 데리고 동해바다 서해바다 이곳저곳 산들을 오르며 여행하기도 하고
매일 이쁜마누라가 해주는 아침밥을 먹고, 귀여운 자식들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하고,
퇴근하면 아빠왔다고 뛰어오는 새끼들을 맞으며 외식을 하기도 하고 정말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
IMF의 여파는 그도 피해가지 않았던거지.
믿었던 매형의 몰락과 누나와의 오해, 갈등으로 의절 직전까지 가고 직장을 잃었고
자식들마져도 하필 이때 사춘기가 왔는지 속을 엄청 썩이는거야.
항상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는 정말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어. 근데 힘들어할시간이 어디있을까.
자기만 바라보고 사는 마누라와 새끼들이 있는데 도저히 힘들서 할 틈이 없는거야.
그는 바로 집을 줄이고 1톤 트럭을 사서 개인용달을 시작했어.
다행히 영업하던시절 만들어둔 인맥덕분에 입에 풀칠을 하긴 했지.
다시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유통상가에 방 한개를 얻어 소형도루방을 몇대 사고 사업을 시작했어.
그리고 직접 영업을 뛰어가며 일거리를 만들어가고 조금씩 규모를 늘려갔어.
밀링을 사기 시작하고, CNC선반까지 들여오게 됬지. 하지만 왕년에 영업만 하던사람이 그 어려운 기계조작 기술을 익히기엔 너무 어려웠지.
수개월동안 그 기계들과 씨름 하면서 결국엔 기술이 생기더라...
그래도 힘든건 하루아침에 풀리지 않았어.
기껏 키워온 사업장에 큰 불이 난거야.
그는 다리힘이 그대로 풀려버리면서 주저 앉아버렸지.
1톤트럭 하나로 시작해서 새벽에 마누라가 졸린눈으로 정성껏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키운 사업장인데,
여기저기 발품팔아가고 기어가며 꾸역꾸역키워온 사업장이 한순간 화마에 잡아먹혔는데
도저히 다시 일어날 힘이 없었지. 진짜 절망적이었어.
근데 그때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들놈이 뛰어오는거 보니까 다시 일어설수밖에 없었어.
평소에 그렇게 담배 끊으라고 생떼를 쓰던놈이 내 담배에 불까지 붙여주는데... 그때 눈물 나오는걸 억지로 참았어.
한번 더 일어서보자고 생각한 그는 자기를 믿어주는 거래처에 거액을 이자없이 지원받고 다시 시작했어.
다행이 큰사고 없이 현재까지 잘 운용하고 있지.
중간에 사고로 손가락 하나 잃은것 빼곤...
그래도 개의치 않았지. 어느새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자신앞에 큰절을 올리는 아들과
어느새 대학 새내기가 되어 자기엄마 닮아 어여뿐 숙녀가 된 딸내미가 껴주는 팔장, 그리고 영원한 동반자인 그녀의 응원을 받는 그에겐
손가락 하나 없어진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젊을때처럼 승승장구하는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그리고 그의 사업을 이어받겠다고 옆에서 배우며 일해주는 아들을 보니 든든하기 그지 없었지.
어느날 그는 참 새삼스러웠어
어느새 자신의 젊은 시절이 보이도록 커진 아들이 자기 잔에 소주를 채워주고 있는거야.
이정도면 남자, 아버지로서 꾀 괸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항상 그가 영원한 슈퍼맨이 되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무릎을 주물르고 있지.
우리네 아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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