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현수는 옆에 서 있는 여자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div> <div><br></div> <div>검고 긴 생머리에 약간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div> <div><br></div> <div>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div> <div><br></div> <div>"저.흐..흠"</div> <div><br></div> <div>현수는 말을 하려다 말고 헛기침을 했다. </div> <div><br></div> <div>처음 보는 사람한테 "얼마 후에 당신은 죽을거에요. 몸 조심 하세요."</div> <div><br></div> <div>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이 맴돌자.. </div> <div><br></div> <div>목소리가 목구멍 바로 밑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내려가 버렸다. </div> <div><br></div> <div>차마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div> <div><br></div> <div>'죄송해요.'</div> <div><br></div> <div>여자는 현수의 경고를 듣지 못한채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div> <div><br></div> <div>- - -</div> <div><br></div> <div><br></div> <div>현수는 어릴때부터 무엇인가를 볼 수 있었는데, 그 덕분에 사람이 언제 죽는지</div> <div><br></div> <div>알 수 있었다. 처음 죽음의 그림자를 목격했을때는 8살 무렵 이었다.</div> <div><br></div> <div>어느날 그림자가 엄마를 따라 거실로 성큼성큼 들어왔다.</div> <div><br></div> <div>현수는 놀라서 비명을 질렀지만, 엄마는 왜 그러냐며 다그칠뿐 현수가 본것을</div> <div><br></div> <div>엄마는 보지 못했다.</div> <div><br></div> <div><br></div> <div>결국 그림자와는 이주동안 기묘한 동거를 했는데,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것 마냥 </div> <div><br></div> <div>현관 앞에 주로 앉아 있었다. </div> <div><br></div> <div><br></div> <div>그것이 눈에 거슬렸지만, 딱히 위험해 보이지 않는것 같아 보여서 언젠가 부터</div> <div><br></div> <div>그림자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div> <div><br></div> <div>그런데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는데 그림자가 현수를 보면서 </div> <div><br></div> <div>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div> <div><br></div> <div>그날은 할머니가 오는날이었다. </div> <div><br></div> <div>하나뿐인 손주를 보기 위해 설레임을 가득안고 4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div> <div><br></div> <div>현수의 마음이 불안하게 요동쳤다. 왜 하필 오늘 그림자는 춤을 추는것일까? </div> <div><br></div> <div>의문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혹시 할머니가 오는 것을 알고 있는걸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div> <div><br></div> <div>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그리고 의문들이 채가시기도 전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div> <div><br></div> <div>"현수야.. 오늘 엄마랑 아빠가 조금 늦을거 같으니까..오늘만 알아서 저녁 챙겨 먹어 알았지?"</div> <div><br></div> <div>엄마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div> <div><br></div> <div>어렸지만 무슨일이 생겼다는걸 알 수 있었다. </div> <div><br></div> <div>나중에 알았지만 그 날 할머니는 병원에서 사경을 해매고 있었다.</div> <div><br></div> <div>큰 사고 였다. 대형버스끼리 추돌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만 </div> <div><br></div> <div>할머니가 타고 있던 버스가 절벽 아래로 추락해버렸다.</div> <div><br></div> <div>결국 할머니는 현수의 얼굴을 보지 못한채 돌아가셨다.</div> <div><br></div> <div>할머니가 의사에게 사망선고를 받은 시각 그림자는 현수에게 손을 흔들며 사라져 버렸다.</div> <div><br></div> <div>마치 또 보자는듯이...</div> <div><br></div> <div>- - -</div> <div><br></div> <div>현수는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div> <div><br></div> <div>죽기에는 너무 젊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만 본능적으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div> <div><br></div> <div>'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div> <div><br></div> <div>현수가 시도를 하지 않았던건 아니다. 여러번 죽음의 그림자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을</div> <div><br></div> <div>구하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div> <div><br></div> <div>그때마다 그림자는 현수에게 손을 흔들었다. </div> <div><br></div> <div>그 손짓을 볼때마다 패배감에 젖어 아무것도 할 수 자신이 미워졌다.</div> <div><br></div> <div>그 덕분에 여러 무술을 배우며 그 패배감을 씻어내려 했다.</div> <div><br></div> <div>현수 그만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앞에 섰다. </div> <div><br></div> <div>"마지막으로... 해보자..."</div> <div><br></div> <div>굳은 결의로 붉게 타오르는 두 눈이 현수를 노려보고 있다.</div> <div><br></div> <div>현수는 자신의 두뺨을 힘껏 때렸다.</div> <div><br></div> <div><br></div> <div>- - - </div> <div><br></div> <div>다음날 현수는 검은색 모자를 푹눌러쓰고 아파트의 정문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div> <div><br></div> <div>아침 일찍 부터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현수의 시선을 빠르게 지나쳐갔다.</div> <div><br></div> <div>몇분이나 지났을까? 검은색 짧은 치마와 흰색블라우스를 입은 여자가 현수의 눈에 들어왔다.</div> <div><br></div> <div>어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여자였다.</div> <div><br></div> <div>현수는 여자를 놓칠세라 황급하게 뒤를 밟기 시작했다. 이런식으로 누군가를 미행하는건 죄책감이</div> <div><br></div> <div>들었지만,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앞뒤 가릴것이 없었다.</div> <div><br></div> <div>여자는 XX번 버스를 타고나서 열 두 정거장이 지난후에 내렸다. </div> <div><br></div> <div>그리고 곧 번화가로 향하더니 화장품가게에 들어섰다.</div> <div><br></div> <div>현수는 화장품가게의 위치를 확인하고나서 맞은편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div> <div><br></div> <div>오늘은 이곳에 앉아 하루종일 여자를 지켜볼 예정이었다.</div> <div><br></div> <div>여자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진열대를 정리하고, 가끔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div> <div><br></div> <div>고객을 상대하느라 여자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div> <div><br></div> <div>'저렇게 열심히 사는데.....'</div> <div><br></div> <div>현수는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여자의 하루를 두눈에 한 순간도 빠지지 않고 담으려 애썼다.</div> <div><br></div> <div>오후 1시가 넘어서자 대부분의 고객이 빠져나가 여자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div> <div><br></div> <div>그때 누군가가 화장품 가게를 서성거리는게 눈에 들어왔다.</div> <div><br></div> <div>현수처럼 모자를 푹눌러쓰고,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만약 그곳에 앉아 여자를 </div> <div><br></div> <div>지켜보지 않았더라면 현수는 수상한 느낌을 받지 못했을것이다. 남자는 정확히 30분 간격으로</div> <div><br></div> <div>화장품가게 주위를 서성이다가 돌아갔다. </div> <div><br></div> <div>오후 5시 다시 가게는 바쁘게 돌아갔다. 여자는 주위를 신경쓰지 못하고 </div> <div><br></div> <div>고객을 상대하느라 분주했다. 수상한 남자는 얼마간 보이지 않다가 해가 넘어갈때쯤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div> <div><br></div> <div>그녀는 곧 아침처럼 똑같은 복장을 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div> <div><br></div> <div>남자는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현수는 황급히 카페를 빠져나와 남자를 미행했다.</div> <div><br></div> <div>이상한 모습이 연출됐다. 남자가 여자를 미행하고 현수는 남자를 미행했다. </div> <div><br></div> <div>마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습 같았다. 여자가 아파트에 다다르자 남자는 정문에 우두커니 서서</div> <div><br></div> <div>그녀가 들어가는것을 지켜보았다. </div> <div><br></div> <div>그리고 곧 고개를 위로 치켜들더니 층수를 헤아리는것 처럼 고개를 반복적으로 끄덕거렸다.</div> <div><br></div> <div>이내 여자가 사는곳으로 보이는 층에 불이 켜지자 남자는 만족한 표정을 짓더니 사라졌다.</div> <div><br></div> <div>- - -</div> <div><br></div> <div>현수는 아침해가 밝자마자 오늘도 아파트 정문에서 여자를 기다렸다. 곧 그녀가 나올시간이었지만</div> <div><br></div> <div>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1시간,2시간이 빠르게 흘렀지만 그녀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div> <div><br></div> <div>현수의 마음에 불안감이 싹트였다. 혹시 오늘이 쉬는날일까? 만약 아니라면.. </div> <div><br></div> <div>현수는 황급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녀가 사는 층의 버튼을 눌렀다.</div> <div><br></div> <div>오늘 따라 엘리베이터가 거북이 처럼 느릿느릿 하게 움직이는것 처럼 느껴졌다. </div> <div><br></div> <div>'띵'하고 도착음이 울리자 현수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와 그녀가 사는 곳으로 뛰어갔다.</div> <div><br></div> <div>'1010호.,..1011호...1012호..여긴가...'</div> <div><br></div> <div>현수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킨채 현관문 손잡이를 돌렸다. 원래대로라면 잠겨있어야할</div> <div><br></div> <div>현관문이 스르르 하고 열렸다. </div> <div><br></div> <div>집안은 어두웠다. 이내 비릿한 피냄새가 현수의 코를 찔렀다. 여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것이 </div> <div><br></div> <div>눈에 들어왔다. 현수는 황급히 핸드폰을 들고 119버튼을 눌렀다. </div> <div><br></div> <div>그때 누군가 현수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려쳤다. 현수는 강한 통증 느꼈지만 다행히 정신을 잃지 않았다.</div> <div><br></div> <div>뒤를 돌아보니 여자를 미행하던 남자가 분노어린시선으로 팔뚝만한 각목을 들고 현수를 노려보고 있다.</div> <div><br></div> <div>"퉷... 망할... ..사내새끼가 있었군"</div> <div><br></div> <div> 그때 남자의 뒤에서 그림자가 춤을 추는것이 보였다.</div> <div><br></div> <div>'늦은건가...'</div> <div><br></div> <div>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남자는 현수를 향해 각목을 휘둘렀다. </div> <div><br></div> <div>"이새끼 너도 죽어!"</div> <div><br></div> <div>남자가 현수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현수는 가뿐히 몸을 피했다. 그러자 남자는 이내 각목을 한쪽으로 </div> <div><br></div> <div>내던지더니 품속에 날이 예리해보이는 칼을 꺼내들었다.</div> <div><br></div> <div>"역시 이게 제일 좋아.."</div> <div><br></div> <div>칼은 이미 누군가를 찌른듯 피가 묻어 있었다. </div> <div><br></div> <div>이내 격한 고통이 밀려왔다.</div> <div><br></div> <div>피할겨를도 없이 남자는 현수의 허리춤에 칼을 꽂아 넣었다.</div> <div><br></div> <div>현수의 정신이 아득해 지려고 할 때 경찰 두명과 구급대원이 현관문에 서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div> <div><br></div> <div>"꼬..꼼짝마.. 두 사람다 가민있어.."</div> <div><br></div> <div>현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한쪽무릎을 꿇었지만, 남자는 아랑곳 않고 경찰을 향해 달려들었다.</div> <div><br></div> <div>그때 타타타탁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쓰러져가는것을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현수는 정신을 잃었다.</div> <div><br></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에필로그 </div> <div><br></div> <div>현수가 정신을 차린건 사건이 일어나고 3일후 였다. </div> <div><br></div> <div>남자는 테이저건을 맞고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원래 부터 심장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div> <div><br></div> <div>나른한 햇살을 만끽하고 있을때 누군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다.</div> <div><br></div> <div>"안녕하세요.. 몸은 괜찮으세요? 하루 빨리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div> <div><br></div> <div>현수는 해맑게 웃었다.</div> <div><br></div> <div>"다행이에요.. 이번엔 구할 수 있어서.."</div> <div><br></div> <div>"네? 그게 무슨뜻..인지.."</div> <div><br></div> <div>"아.. 헛소리니까... 신경쓰지마세요."</div> <div><br></div> <div>여자는 살짝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말을 이어나갔다.</div> <div><br></div> <div>"그때 구급대원님이 말씀하셨어요. 현수씨께서.. 119에 전화를 걸었는데.. 대화 상태가 심상치 않아서.. 경찰과 함께 출동했다고..</div> <div><br></div> <div>그리고 좀만 늦었다면.. 제 목숨이 위험할뻔했다는것도.."</div> <div><br></div> <div>"그래도 지금은 살아계시잖아요. 다행아닌가요?"</div> <div><br></div> <div>"정말요.."</div> <div><br></div> <div>여자와 현수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웃었다. </div> <div><br></div> <div><br></div> <div>[끝]</div> <div><br></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