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월 2일</P> <P>조용한 밤이다. 시계초침이 흔들리며 째각하는 소리조차 귀에거슬리는 그런 밤이다. </P> <P>33평의 집은 혼자살기에 너무 넓다. 방하나는 자는데 쓰고, 하나는 창고, 나머지 하나는 어둠이 머무른다. </P> <P>오늘은 시끄럽게 소리치던 만취한 아저씨도, 지하실에서 담배피며 떠들어대던 학생들도 오늘은 무슨일인지 </P> <P>그 모습을 감추었다. 떠들썩한게 싫지는 않지만, 가끔은 이런 고요함도 나쁘지 않다. </P> <P>술 한잔 걸치고 방에 누워 잠들엇다.</P> <P> </P> <P>2월 5일</P> <P>오랜만에 동네에 장이 들어섰다. 그래봐야 혼자먹게 되겠지만, 양손 무겁게 들고 들어온다. </P> <P>평상시에는 인스턴트식품이나 라면으로 해결하지만, 오늘은 양손을 걷고 요리를 한다. </P> <P>팬에 기름을 두르고 그 위로 스테이크고기를 올린다. 고기가 익혀질때쯤 다른쪽에서 야채를 볶는다. </P> <P>접시에 얹으니 제법 멋드러진 레스토랑 메인디쉬 느낌이다. 다하고 보니 소스가 없다. </P> <P>결국은 냉장고에서 인스턴트 데미그라스소스를 꺼낸다. </P> <P> </P> <P>2월 7일</P> <P>가요도 좋아하지만 클래식도 좋아한다. 반은 어거지로 장만한 골드문트. </P> <P>한참을 살피고는 하나를 집어든다. 그리고는 거실 쇼파에 반쯤 누워서 눈을 감는다. </P> <P>오늘의 선곡은 "도니체티 - 남몰래 흘리는 눈물"</P> <P> </P> <P>2월 8일</P> <P>오랜만에 손님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먼지가 머문 방바닥이며 책상 모서리 빈틈없이 청소하고 닦는다. </P> <P>아침일찍부터 시작한게 해가 중천을 지나서야 끝이났다. </P> <P>저녁시간때쯤 되서 손님이 왔다. 회사에서 경리직을 맡고있는 정대리다. </P> <P>간단히 한잔씩 하고나니 서로가 말이 많아진다. 속에 담긴 이야기들, 회사간부들에대한 불만에서부터 </P> <P>시시콜콜한 친구들의 자랑까지 중심없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러다가 말이 끊기자 시선이 교차한다. </P> <P>서로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지않아도 어색하지 않다. </P> <P>아프지만서도 행복한 밤이다. </P> <P> </P> <P>2월 11일</P> <P>들어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책상에 앉아서는 한시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P> <P>어느샌가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방안에도 연기가 자욱하다. 그럼에도 일어서지 않는다. </P> <P>중요한 발표가 얼마 남지 않았음에 그렇다. 수정하고 또 수정해도 맘에 들지 않는것이다. </P> <P>거울에 비친 얼굴에서 신경이 곤두서있음을 느낀다. 아마 오늘은 이대로 밤이 지나겠다. </P> <P> </P> <P>2월 13일 </P> <P>자기위해 누웟으나 잠을 청하지 못한다. 눈을 감고도 한참을 뒤척인다. </P> <P>결국은 일어나 거실로 나왓다. 창을 열고 담배를 입에 가져간다. </P> <P>내일 있을 pt가 걱정인가보다. 저래서야 레이저를 광고주 얼굴에다 쏠지도 모르겟다. </P> <P>그에게는 이번 발표가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P> <P>주방 찬장에서 수면제를 집어든다. </P> <P> </P> <P>2월 14일 </P> <P>잔에 고인 술이 맑다. 채우기가 무섭게 사라진다. 이미 눈이 풀리고 혼잣말을 지껄인다. </P> <P>광고주는 끝까지 다 듣지도 않은채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렷다. 그로써 세달을 공들인 프로젝트는 다 가지도 못한채 그 날개가 꺽였다. </P> <P> </P> <P>"괜찮아, 니 탓이 아니잖아"</P> <P> </P> <P>그이의 선배는 그리 말햇지만, 그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듯 하다. </P> <P>울다가, 웃다가 허공에 손을 휘젓기도 하고</P> <P> 그러다가 어느순간에 고개를 떨구고는 잠들어버린다. </P> <P>집까지 옮기는것이걱정이었지만, 선배가있어 다행이다. </P> <P> </P> <P>2월 20일 </P> <P>회사에도 나가지 않는다. 먹고 자고 누워서 티비시청 다시 자고 일어나서 먹고 자고, 반복이다. </P> <P>처음 몇일동안 시끄럽게 울어대던 핸드폰도 배터리가 다되엇는지 울리지 않는다. </P> <P>정신없을정도로 문짝을 두드리던 소리도 나지않는다.</P> <P>씻지않은 얼굴에는 수염이 들쑥날쑥하고 형광등에 비친 머리는 번들거린다. </P> <P>처음으로 그이의 회사에게 감사한다. 이렇게 계속 그이를 볼 수 있게 해줘서 </P> <P> </P> <P>2월 28일 </P> <P>벌써 3일째. 그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표정이 무척이나 편안하다. 사회생활이라는 짐이 그이에겐 너무 무거웟나보다. </P> <P>모든것을 털어버린 그이의 얼굴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나에게 아이는 없지만, 만약에 있다면 이런 얼굴일꺼라 생각한다. </P> <P>이제야 함께 있게 되었다. 더이상 카메라며 도청기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껏 사진도 찍을수 있다. </P> <P> 물론 서로 대화하거나 사랑을 나눌수는 없지만, 만약 그렇다 해도 그건 나에게 너무 과분하다. </P> <P>그 순간 기절하고 말테니. 지금이 좋다. 방안을 가득채운 방부제 냄새가 독하지만 그정도는 참을 수 있다. </P> <P>우리가 함께할 수 있다면.. 오늘은 2월의 마지막밤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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