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8.</div> <div><br></div> <div> 거짓말같이 3일이 흘렀다.</div> <div><br></div> <div> 여전히 타겟은 난공불락이었고 오늘도 블로그에 위장용 음식 사진이나 올릴 판이었다. 부시럭대며 집 열쇠를 찾고 있자 덜컥하고 집문이 열린다.</div> <div><br></div> <div> 살인 청부 업자의 아지트가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 것인가 싶어 한소리 하려했지만 발치에서 눈을 똘망똘망 뜨고 있는 아이를 보자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다.</div> <div><br></div> <div> "그거, 아이가 보기엔 그다지 좋지않은 책인데."</div> <div><br></div> <div> 문을 열어주고선 다시 방으로 쫄쫄쫄 들어가는 아이의 손에 든 책을 보고 한소리했다. 명탐정 코난이라는 추리만화인데 목이 잘리거나 칼부림이 일어나는 등 아이가 읽기에는 잔혹한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추리 만화다. 아이에겐 그리 추천하고 싶진 않은 책이다. 우화나 동화. 뭐 사실 이쪽도 잔혹하긴 하다.</div> <div><br></div> <div> 아이 손에는 벌써 60권이 들려있다. 자세히 보니 그 뿐만이 아니다. 책장에 있던 책들이 곁에 한가득 쌓여있는 것이 아닌가?</div> <div><br></div> <div> 저 책들은 일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샀었던 책들인데, 트릭이니 살해동기니 각종 어려운 단어들에 극에 달한 사람들의 심리상태까지 묘사된 스릴러, 추리 소설들이다.</div> <div><br></div> <div> 아이가 소화하기엔 상당히 난도가 높은 책들이다. 몇몇 책들을 제외하면 나조차도 사놓고 관상용으로 내버려둘 정도였으니까 말이다.</div> <div><br></div> <div> 그래도 어느정도 도움은 됐다. 추리, 서스펜스, 스릴러 등 저마다 설정도 다르고 경찰들을 무슨 바보 천치로 그려놨지만 책이라는 창작 활동을 할때 어느정도의 사전조사는 했을 것이다. 어림잡아라도 최악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이런 데에는 나도 참 남을 잘도 믿는다.</div> <div><br></div> <div> 내 충고에도 아이는 철푸덕 누워 독서 삼매경이다. 그런데 어째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나보다도 빠르다? 만화책이라기보단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책을 술술 넘기는 아이를 보며 나는 한가지 고뇌에 빠진다.</div> <div><br></div> <div> 이제 어떻게 한담?</div> <div><br></div> <div> 3일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도 진전이 없는 다섯살배기 타겟처럼 이 출처불명의 아이에 대해서도 아무런 진전이 없다. 이름도, 나이도, 본적을 몰라도 이 기묘한 동거 (혹은 유괴)는 무탈히 유지되고 있었다.</div> <div><br></div> <div> 그러나 내 사업상 동료인 고양이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지 보석같은 눈을 빛내며 아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어떻게 방해를 해야할지 고뇌하고 있다.</div> <div><br></div> <div> '무슨 일이라도 있겠어?'</div> <div><br></div> <div> 그렇게 생각한 나는 부스럭거리며 쓰레기 봉투에 담아온 음식 재료들을 식탁에 내려놓는다. 그러자 아이가 어느새 식탁까지 쪼르르 달려와 식탁에 턱을 걸치고는 나를 쳐다본다.</div> <div><br></div> <div> 이틀전까지만 해도 무슨 마술 구경하듯이 눈을 휘둥그레 드며 쳐다보던 눈빛은 이제 무엇이 나올까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뀌어 한껏 부담을 준다.</div> <div><br></div> <div> 오늘도 TV에서 하는 요리 프로를 보고 장을 봐왔다. 말했다시피 난 손재주가 좋은 편이고 모든 것을 내 스스로 하는 편이다. 물론. 칼을 잘 다루기도 한다.</div> <div> </div> <div> 오늘의 메뉴는 만능 간장을 뿌린 일본식 돈까스 덮밥. 유명 요리연구가의 쉬운 조리법으로 인해 인터넷상이던 현실이던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메뉴다.</div> <div><br></div> <div> 장을 볼때 특이한 일이 있었는데, 감시카메라도 피할겸 유동인구가 많은 재래시장에 나가 장을 보고있자니 상점 주인들이 죄다 같은 말을 꺼내는게 아닌가?</div> <div><br></div> <div> "하하, 만능간장만드시려구요?"</div> <div><br></div> <div> 고기를 신선해 보이게 하기 위해 켠 홍등 아래 놓인 다진고기를 꺼내며 정육점 주인이 한 말이다.</div> <div><br></div> <div> 방송 전파를 탄 레시피대로 알맞은 그램수의 다진고기를 따로 포장까지 해두며 손님이 올 때마다 하나씩 꺼내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은가 보다. 새삼스럽지만 방송이라는 매체의 파급력을 몸소 체감했다.</div> <div><br></div> <div> 그도 그럴것이 수년간 여럿 실험적인 자취요리를 해왔다 자부하는 나조차도 요리방송을 접한지 이주새에 요리에 다시 흥미를 느낄 지경이었다. 매일매일 반찬 걱정하는 전업 주부들이야 오죽하랴.</div> <div><br></div> <div> 최근엔 그런 요리 방송에 심취해버려 매일같이 챙겨볼 뿐만 아니라 각 방송의 정수만을 빼다가 나만의 레시피까지 만들 지경이 되었다.</div> <div><br></div> <div> 급증한 의뢰로 금전적인 측면엔 아무런 부담이 없어 넉넉히 재료를 사두어 실패라도 하는 날이면 그냥 다른 요리를 만들어 버린다. 건강이라는 측면에서도 딱히 자연사라는 것을 하지못할 팔자인 것 같아 걱정이 없다.</div> <div><br></div> <div> 이러한 연유로 오늘도 내 손엔 달궈진 프라이팬이 들려져 있다. 다진고기 한컵, 진간장 두컵, 설탕 1/3컵, 여기에 일식 전문 셰프에 빙의해 가쓰오부시까지.</div> <div><br></div> <div> 뜨거운 열기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팔목이 저릿해지자 먹음직스런 돈까스 덮밥이 등장한다. 남아나는 돈을 쓰기 위한 그릇 수집 또한 내 또다른 취미라 정갈한 그릇에 담아 내고보니 그 외관이 여느 음식점 못지않다.</div> <div><br></div> <div> 따끈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흰 쌀밥에 그 위를 묵직하게 덮고 있는 돈까스, 그것들을 적시는 달짝지끈한 만능 간장. 완성된 돈까스 덮밥을 식탁에 놓자마자 달려드는 아이와 고양이를 제지한 나는 식전 기도를 하듯 음식에 카메라를 들이민다.</div> <div><br></div> <div> 지이이잉, 찰칵</div> <div><br></div> <div> 완성된 음식의 사진을 찍는다. 아무런 특수효과도 없이, 정확히 초점을 맞춰 전체가 보이도록, 그러나 한 톨 한 톨 윤기가 흐르는 밥알이 다 드러나도록 세세하게. 내가 일을 끝냈다는 증거로.</div> <div><br></div> <div> 경찰들이 싸늘히 죽은 사체를 찍듯 말이다. 아, 물론 실제로 그런 짓을 하진 않는다. 그건, 정말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니까.</div> <div><br></div> <div> 일련의 행위를 끝내고 수저를 들자 그제야 아이가 덮밥에 달려든다. 아 맞다하고 아이의 돈까스를 잘라주려하는데 숟가락이 나이프라도 되는지 잘도 베어먹는다.</div> <div><br></div> <div> 심야 식당의 손님처럼 온전히 음식에 집중을 하는 것을 보니 이제와 가위를 들기도 뭣해 그저 한숟갈 떠 입으로 가져간다.</div> <div><br></div> <div> '... 조금 단가?'</div> <div><br></div> <div> 뭐든지 과하면 안좋은법, 간을 볼땐 몰랐지만 안그래도 당도 짙은 레시피에 개인취향을 더해버리니 이런 사태가 났다. 한술 뜨고 곁눈질로 아이의 눈치를 보지만 아이는 앞니로 돈까스를 뜯는데 열중이다.</div> <div><br></div> <div> 다음부턴 먹기 편한 닭가슴살 덮밥으로 해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그릇을 비워나간다. 첫 맛은 달았지만 이내 간장의 향이 훅 치고 들어온다. 달짝지끈하니 그 맛이 일품이라 의외로 술술 넘어간다.</div> <div><br></div> <div> 그렇게 덮밥을 반쯤 비워냈을까. 덮밥을 먹던 아이가 불쑥 말을 건낸다.</div> <div><br></div> <div> "아저씨, 아저씬 코난에 나오는 범인이죠?"</div> <div><br></div> <div> 뜬금없는 말, 그만큼 폐부를 찌르는 말. 그러나 어쩐일에서인지 내 마음엔 아무런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다. 흔히들 표현하고들 하는 잔잔한 호수같이. 그 이유는 모르겠다. 확실히 해두자면 아이의 말은 아무도 믿지 않겠지라는 계산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div> <div><br></div> <div> 난생 처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던 비밀을 들켰지만 어찌된 일인지 평소와 별반 다를바 없다. 아니 힘겹게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더욱 편안하다.</div> <div><br></div> <div> "저기말야,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말하면 싫어하는 법이야."</div> <div><br></div> <div> 나조차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담담하게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한마디 충고를 했지만 아이는 게의치않고 말을 이어간다. 아니, 고개를 푹 숙이곤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먹인다.</div> <div><br></div> <div> "원장님을... 원장님을 죽여줘요."</div> <div><br></div> <div> "한명당 천만원, 예외는 없어."</div> <div><br></div> <div> 생애 첫 구두 의뢰인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예상치 못한 의뢰에 쌀쌀맞게 말이 나왔지만 내가 더 잘 알고있다. 한 번 들어버린 이상 할 수 밖에 없다고.</div> <div><br></div> <div> "유, 유진언니가 그랬어요. 밖에는, 밖에는 착한 사람들이 많다구요!"</div> <div><br></div> <div> 나는 아이의 의뢰보다도 이 대목에서 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동명이인을 칭하는 것이었다. 이 나라엔 유진이란 이름이 많지 않던가? 사실 그리 놀랄 것도 없는 것이 나 자신이 그 믿기지않는 청부업자이지 않는가.</div> <div><br></div> <div> "뭐, 나는 빈말으로라도 착하진 않지만... 들어나 보자."</div> <div><br></div> <div> 이후 아이가 내뱉은건 만능 간장이 배여든 밥풀과 울음, 그리고 콧물이 대다수였기에 정리를 해보자면 이렇다.</div> <div><br></div> <div> 이 나라의 교외지 어딘가엔 '믿음' 고아원이라는 곳이 있다. 이 고아원의 원장은 정재계의 유력 인사들과 긴밀한 유착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 유착관계란 예쁘장하고 아무 문제없는 고아들을 비서 혹은 시녀로 '입양'시키는 대신 수억원에 달하는 후원을 받는 것.</div> <div><br></div> <div> 기부도 하고 장난감도 오고. 좋은 일 하고 돈도 벌고.(이 과정에서 탈세에 돈세탁은 덤이다.) 뭐 그런 것이라는 얘기다.</div> <div><br></div> <div> 원장에게 '간택'받은 아이들은 보육원장이라는 여인네에게 특별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아이들은 '천사'라고 하여 예의범절은 물론 갖가지 교양과 여러 실무를 배우게 된다고 한다.</div> <div><br></div> <div> 이 천사들은 하늘에서 왔기에 이름이 없으며 누군가의 '수호천사'가 되어 땅에 내려앉아 이름을 받아야 된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흡사 분양받은 애완동물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 같지 않은가?!</div> <div><br></div> <div> 그리고 아이보다 먼저 이 땅에 내려앉은 천사인 유진에게 '천국'의 실태를 알게된 아이는 비상한 머리로 계획한 방법으로 탈출을 감행했고, 유진이라는 소녀의 희생으로 아이는 무사히 우리 집에 내려앉게 되었다. 라는 이야기다.</div> <div><br></div> <div> 도가니라던가. 영화에서도 등장한, 그런 것이다.</div> <div><br></div> <div> 이 나라에서 영화란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아직까지 알에 갇힌 사람들에게 추악한 현실을 깨우쳐 주기 위해 현실을 각색하여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다.</div> <div><br></div> <div> 이름이라던가 자세한 지명이라던가. 세세한 부분 빼고는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던 부분이다. 아니 다들 알고서도 애써 무시하는 것 뿐이다. 어른이 되고난 후 어른들이 주입한 세계가 차츰씩 벗겨지면 모두가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이니까.</div> <div><br></div> <div>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아이는 단지 탈출구가 필요했던것일까. 내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는 풀썩 쓰러져 새근새근 잠이 든다.</div> <div><br></div> <div> 그리고 그 곁에 고양이가 살금살금 다가가 아이의 얼굴을 핥는다. 늘 먹던 사료가 질렸기 때문이다.</div> <div><br></div> <div> 조심스럽게 식탁을 치우고 아이를 제대로 눕힌다. 설거지는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음식사진을 인터넷에 올린다. 하루 한 번. 일이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고 의뢰자에게 보내는 메세지이다.</div> <div><br></div> <div> [작성되었습니다.]</div> <div><br></div> <div> 만드는 과정 따위 없이, 아무런 설명조차 없이, 완성품만 떡 하니 존재하는 게시글이 게시되기가 무섭게 댓글 하나가 올라온다.</div> <div><br></div> <div> [메뉴 신청합니다.]</div> <div><br></div> <div> 의뢰 신청이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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