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4. </div> <div><br></div> <div> 철컥, 끼이이익</div> <div><br></div> <div> 늦은 점심만 먹고 돌아올 요량이었는데 생각과 달리 너무 늦게 들어왔다.</div> <div><br></div> <div> 저녁부터 시작해 다음 날 해가 뜰때까지 마시는 대학의 술자리가 일찍 파했다손 치더라도 술자리란 대게 밤 늦게 일어나는 사태니까.</div> <div><br></div> <div> 신발장에 있는 검은 에나멜 단화에 의아해하며 들어가보니 아이가 코트를 입은채로 새근새근 잠들어있다. 고양이 또한 아이 속에 웅크리고 자고있다.</div> <div><br></div> <div> 고양이란 따뜻한 곳을 찾아들어가는 법이다.</div> <div><br></div> <div> 아이가 깨지않게 살금살금 들어가보니 집 안에 요리의 흔적이 없었다. 그러고보니 우리집 냉장고에는 요리 재료들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div> <div><br></div> <div>"라면이라도 먹을것이지..."</div> <div><br></div> <div>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5살 아이가 라면을 끓일 줄 알겠는가. 내 불찰이다. 당장에 뭐라도 내놓을 심산으로 냉장고를 열지만 아이가 곤히 잠들어있다.</div> <div><br></div> <div>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모습에 나는 살며시 집을 벗어나와 집 근처의 죽집으로 향한다.</div> <div><br></div> <div>5.</div> <div><br></div> <div> 아삭아삭</div> <div><br></div> <div> 집 안에 퍼지는 낯선 인기척에 눈을 번쩍 뜬다.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피니 창백한 냉장고 빛 아래 아이가 아삭아삭 오이를 씹고있다.</div> <div><br></div> <div> 신선실, 아이의 손이 닿는 칸이었다.</div> <div><br></div> <div> 툭, 그런 내 모습을 본 아이가 먹던 오이를 툭 떨어뜨린다. 아무래도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있는 내가 무서운 모양이다.</div> <div><br></div> <div> 아직까지 집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낯설다.</div> <div><br></div> <div> 얼른 가상의 가면을 뒤집어 쓰고 조심스레 다가가니 아이의 얼굴이 울상이다. 나 때문인가 싶어 아이를 달래려 가볍게 안아 등을 토닥여주니 알싸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슬쩍 냉장고를 보니 둥그런 양파 한쪽에 잇자국이 나있다. 신선실에 오이와 같이있던 양파를 한 입 베어물곤 깜짝 놀랐던 모양이다.</div> <div><br></div> <div> "미안해, 지금 바로 밥 차려줄게."</div> <div><br></div> <div> 배가 고프면 나를 깨울 법도 한데... 그런 생각을하며 싱크대 물로 한차례 아이의 얼굴을 씻겨준 뒤 냉장고에 넣어뒀던 죽을 꺼내 전자렌지에 넣어 데운다.</div> <div><br></div> <div> 사실대로 말하자면 당췌 뭘 먹여야 될지 모르겠다. 내가 저 나이 때 무얼 먹었었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div> <div><br></div> <div> 사람의 아이란 너무나 연약해 자칫 잘못했다간 금세 무너지고 마는 연두부 같다.</div> <div><br></div> <div> 식탁을 꺼내고 뜨겁게 데운 야채죽을 그릇에 담아낸다. 그 난리에 고양이가 냐옹하고 울고는 저만치 달아난다.</div> <div><br></div> <div> 술기운, 잠기운에 취해 있는 와중에도 용케 데이지 않고 일련의 작업을 끝마쳤다. TV도 없는 원룸 한가운데 놓인 식탁에 수저를 놓자 아이가 득달같이 달려든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앗으니 당연하다.</div> <div><br></div> <div> "조심해! 뜨거우니까."</div> <div><br></div> <div> 아이가 서투르게 수저를 쥐고 죽을 크게 한술 떠 입으로 가져가자 깜짝 놀라 소리친다. 후후 부는 시늉을하니 아이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잠시 기다렸다 한입 가득 죽을 밀어넣는다.</div> <div><br></div> <div> 그러나 주린배는 빨리 먹을 것을 넣으라 아우성을 치는지 수저를 드는 속도는 점점 빨라져 이내 앗 뜨거!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가 입에 든 죽을 손에 뱉어낸다.</div> <div> </div> <div> 식은죽을 내놓을걸, 하고 휴지를 찾는데 어느새 아이는 손에 있던 죽을 다시 삼킨지 오래다. 그러고보니 이상하게 서툰 숟가락질임에도 식탁에 떨어진 죽은 하나도 없다.</div> <div><br></div> <div>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주 오랜 기억이 불쑥하고 고개를 내민다. 비가 내린 창가처럼 막연한 색채만 간직했던 그것은 조심스레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더니 어느새 깔끔한 경계를 가진 현실로 돌아와 나를 덮친다.</div> <div><br></div> <div>6.</div> <div><br></div> <div> "뭔가가 생기면 이 일을 그만둬야 할때다."</div> <div><br></div> <div> 나의 스승이자 선배가 한 말이다. (그때 당시엔) 놀랍게도 전업 살인 청부 업자였던 그는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던 나를 이 길로 인도해준 분이었다. 그는, 아니 선배는 내가 지금까지 이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정도로 실용적인 점들만 쏙쏙들이 알려줬었다.</div> <div><br></div> <div> "뭔가가 뭔데요?"</div> <div><br></div> <div> "몰라? 모르니까 '무언가' 지."</div> <div><br></div> <div> '영업'을 하기 좋다며 언제나 비즈니스 슈트를 입고다니던 그는 일에 관련된 것이 아니면 이상하리만치 어리숙했는데 그때의 나에겐 선배의 그런 점이 무척이나 신비하게 느껴졌었다.</div> <div><br></div> <div> 지금 되짚어보자면 그런 점이 그를 집어삼켰다. 아마 이 때문에 나는 완벽을 추구하는지도 모르겠다.</div> <div><br></div> <div> 이때의 나는 다들 똑같은 것을 입고 똑같이 행동하는 작은 사회속에 살며 특이함에 목말라있었는데, 그에게 배운 어중간한 지식을 기반으로 누군가를 찌르지 못해 안달이 난 멍청이었었다.</div> <div><br></div> <div>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듯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었고, 그가 하는 충고따윈 전혀 듣지 않고 어엿한 어른이 되고 싶어 발악하는 아이였다.</div> <div><br></div> <div> 하지만 선배는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내게 가르쳐주면서도 정작 내가 이 길에 뛰어드는것은 싫어하는 눈치였고, 그 때문에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음에도 반년이라는 시간은 마술사의 소매자락으로 들어간 동전처럼 휙하고 사라져버렸다.</div> <div><br></div> <div> "선배! 나 이제 할수있다니까?"</div> <div><br></div> <div> "나원참, 그렇게 부르지 말래도."</div> <div><br></div> <div> 능력있는 세일즈맨처럼 보이는 중년과 그를 졸졸 쫒아다니며 선배라 부르는 학생.</div> <div><br></div> <div> 부자(父子)관계는 아닌, 삼촌과 조카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는 주변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쳐다볼 정도였지만 두사람 다 별 게의치 않았다. 누차 말하지만 그는 일 외에는 어리숙했다.</div> <div><br></div> <div> "벌써 200일이나 지났어, 용돈도 다 떨어졌구. 이제 시작하자, 응? 선배가 말했잖아. 긴밀한 유착관계. 팀플레이가 중요하다고."</div> <div><br></div> <div> 내가 그의 팔을 잡고 징징거리자 그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한다. 평범한 회사원처럼 보이는 그의 팔은 벽돌이라도 되는 듯 딱딱했다.</div> <div><br></div> <div> "하아...... 그래."</div> <div><br></div> <div> 생각만해도 골이 지끈거리는지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던 그는 내 성화에 못이겨 고개를 끄덕였고. 이에 나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길거리에서 방방 뛰었다.</div> <div><br></div> <div> "진짜? 진짜지? 앗싸!"</div> <div><br></div> <div> "오늘 새벽 2시야. 잊지마. 새벽 2시. 네가 오던 안오던 나는 출발할거야."</div> <div><br></div> <div> "오케이, 알았어."</div> <div><br></div> <div> "옷은, 알고있지? 그럼 이만 가봐."</div> <div><br></div> <div> 그는 끈덕지게 달라붙는 내가 귀찮은지 저리 떨어지라 손을 휘휘 내저었고, 둘만의 은어를 알아들은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 나만의 '옷'을 준비했다.</div> <div><br></div> <div> 처음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마냥 흥분된 마음으로 준비를 시작한 나는 '옷'. 즉, 내 흉기를 준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div> <div><br></div> <div> 어디서나 볼수있는, 그러나 급소를 찔리면 한번에 절명하고 말 송곳을 깨끗히 닦은 나는 내 분신과도 같은 송곳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장갑으로 꼭 쥐었다. 잠까지 설치며 약속시간까지 기다린 나는 긴장과 기쁨으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집을 나섰다.</div> <div><br></div> <div> "어?"</div> <div><br></div> <div> 누가 볼새라 검정 긴팔에 검정 청바지를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나는 그가 가르쳐 준 방법으로 인적이 드문, CCTV조차 없는 길을 통해 뺑뺑 돌아 약속시간에 딱 맞게 도착했지만, 내 모든 기대가 무색하게도 이미 모든 것은 끝난 참이었다.</div> <div><br></div> <div> 내 인기척을 느낀 선배는 나를 보며 이제야 왔냐라는 표정을 하며 다가와, 충격적인 광경에 꽁꽁 굳어버린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폐에 칼을 찔려 자기 피에 익사하고있는 타겟을 가리키며 말이다. </div> <div><br></div> <div> "잘 봐, 네 미래야."</div> <div><br></div> <div> 선배가 말하기로 타겟은 청부업을 청산하고 새 인생을 살기위해 퇴직금 명목으로 의뢰자를 협박해 돈을 갈취해 이 나라를 뜨려던, 직업상 동료였다.</div> <div><br></div> <div> 그것이 내 첫죽음이었다. 타겟은 피웅덩이속에서 뻐끔뻐끔 입을 열며 헤엄치고있었고 내 손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송곳 하나가 쥐여져 있었다. 그 날 이후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던 멋 모르는 아이는 죽었다.</div> <div><br></div> <div> 나비는 한 번의 날개짓을 위해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모든 감각을 닫는다. 새들은 한번의 울부짖음을 위해 자기 터를 부순다.</div> <div><br></div> <div>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세상이 강요한 알을 깨고 나오는 방법은 너무나도 쉬워 그저 한번의 손짓으로 쉽사리 깰 수 있었다.</div> <div><br></div> <div> 껍질을 깨고나온 그곳의 광경은 전과는 놀랍도록 달라보였다.</div> <div><br></div> <div>7.</div> <div><br></div> <div> 그 후 선배는 왠 교통사고라며 뺑소니로 죽어버렸고 그가 내게 항상 숨겼던, 그러나 훤히 보이던 비밀장소에서 나는 5억가량의 돈다발을 볼 수 있었다.</div> <div><br></div> <div> 5만원권이 나온 이래로 왠지 모르게 돈의 가치는 하락한 것 같았고, 집 한채도 못살 그 돈은 그리 많지도 않아 보였다.</div> <div><br></div> <div> 그 돈을 들고 나는 그의 아지트를 빠져나왔다.</div> <div><br></div> <div> 철저히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그곳은 그 주인이 사라지자 놀랍도록 황량했다.</div> <div><br></div> <div> 어렴풋이 떠오르는 내 기억속에서의 어수룩하기 그지없던 내 스승은 돈관리에도 어수룩한 사람이었고. 버는 족족 도박이나 여자를 사는, 그런 사람이었다.</div> <div><br></div> <div> [신뢰 관계란 없다.] </div> <div><br></div> <div> 두번째 철칙이다.</div> <div><br></div> <div> 누구나 죽기전엔 입을 나불대는 편이며, 그게 생판 남이라면 한편의 서사시를 써줄 정도로 친절할 것이니까.</div> <div><br></div> <div> 사실 브로커나 정보상이야 솔직히 있어주면 고맙다. 목숨까지 내던지기 일수인 대학입시를 비롯한 이세상 모든 일에서 정보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는 것이니까.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속언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div> <div><br></div> <div> 예전, 그러니까 내가 아직 이 일에 익숙해지지 않았을 때 만난 한 친절한 의뢰자의 경우, 고마워서 정말로 눈물이 다 날 정도였으니까. (어찌나 죽이고 싶어했던지 왜 자신이 실행하지 않은 것인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타겟의 동선 파악에 집 구조도, 인간관계와 스케줄표까지 줄줄 끊어줬었다.)</div> <div><br></div> <div> 하지만 도무지 사람이란 믿을 수가 없다.</div> <div><br></div> <div> 선배는 선배가 말한 '긴밀한 유착관계'에 놓인 정보상이 내뱉은 한마디 말로 부질없이 사그라들었다.</div> <div><br></div> <div> 그 후로 나는 그 누구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편이다. 변조라던지 위조라던지. 다행히도 내 손재주는 좋은 편이었고 연기도 깨나 쓸만했다.</div> <div><br></div> <div> "잘먹었습니다."</div> <div><br></div> <div>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회색빛 일색이었던 선배의 아지트에서 시퍼런 형광등이 빛나는 자취방으로 돌아온다.</div> <div><br></div> <div>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가 의자위에 올라타 설거지를 하고있다.</div> <div><br></div> <div> "내가 할게."</div> <div><br></div> <div> 아이에게서 조심스레 그릇을 앗아들자 아이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현실감을 잊게하는 파란 눈동자가 인상적이다.</div>
아이고 왜 이렇게 어색할까요
분명 퇴고할때까지만 해도 괜찮아 보였는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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