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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츠키 "왜 여기 꼬마가 있는 거야?"
나오코 "이카리 소장의 아드님입니다."
"이카리, 여기는 탁아소가 아니야. 오늘은 중요한 날이잖아."
유이 "죄송해요, 후유츠키 선생님. 제가 데리고 왔어요."
"유이, 오늘은 자네 실험이잖나?"
"그 때문입니다. 이 아이에게 밝은 미래를 보이고 싶어요."
신지가 3살 때였다. 엄마인 이카리 유이는 인류의 밝은 미래를 아들에게 보이고 싶다며 그를 코어 실험 현장으로 데리고 왔다. 그 날, 유이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죽었다. 슬퍼할 사이도 없이, 신지는 아버지 겐도우에게 버림을 받았다. 겐도우의 부탁으로 선생님 집에서 자라며, 신지는 11년이라는 시간을 가족 없이 보냈다. 딱 한 번, 11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 무덤에서 겐도우와 만난 적이 있지만, 복잡한 심경 탓일까, 이번에는 신지 쪽에서 겐도우를 피했던 모양이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단지 싫었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사람 자체가 무서웠던 것일 테다. 신지는 언제나 그랬다. 가장 가까운 부모가 자신을 버렸기 때문에, 세상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아스카와 꼭 닮았다.) 어설프게 마음을 줬다가는, 이내 그 마음이 고스란히 상처로 돌아올 거야, 그게 바로 신지가 세상에 대해 배운 전부였다.
신지 "……."
미사토 "아 맞다, 아버지한테 ID 카드 받지 않았니?"
"아, 네!"
"여기…."
"고마워."
상태가 영 좋지 않다.
그랬던 신지가 14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초호기 파일럿이 필요하니까. 편지가 말하는 바도 명료했다. 쓰여 있는 글자는 하나, ‘오너라.’ 동봉한 ID 카드와 함께 종이에 가득한 검은 매직 칠은 보안을 위해 네르프 쪽에서 한 것 같은데, 유심히 보면 종이가 꽤 찢겨 있다. 굳이 겐도우가 찢어 보낼 이유도 없고 종이 배달이 어려운 것도 아니니, 우리는 여기서 신지가 편지를 찢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참 오래 기다린 아버지의 편지인데, 쓰인 말이라곤 안부 한 마디 없는 명령에 가까운 지시, 당연한 반응이겠다. 붉은 펜으로 글자를 마구 칠한 것을 봐도 신지의 심리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저렇게 아버지를 증오하고 있어도, 미사토와 만날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결국 신지의 마음 깊은 곳에선 아직 아버지를 원하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나를 버린 아버지가 너무 싫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이 받고 싶다는 어린 아들의 마음. 다 떠나서, 한껏 찢었다 어설프게 테이프로 붙여 놓은 이 편지가, 내가 보기엔 아버지에 대한 신지의 마음 그 자체다.
겐도우 "탈 거면 빨리 타라! 안 탈 거라면 나가라!"
어차피 신지는 서드 칠드런으로 내정이 된 상태였고, 사도 내습 시기 또한 명확했기 때문에, 겐도우가 굳이 그리 촉박한 타이밍에 신지를 불렀단 것은, 유이가 신지를 도울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는 소리이다. 과연 아들과 재회한 어머니는 아무 조건 없이 에바를 움직여 신지를 지켰다. 신지가 초호기에 타서 무슨 짓을 해도, 결국 이길 것임을 겐도우는 진작 알았겠다. 하지만 신지 입장에선 그렇지 않았다. 3년 만에 본 아들에게 무정한 톤으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아버지를 보고 신지는 절망했다. 아버지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겐도우는 그저 ‘타든가, 말든가’ 선택하란다. 당연히 신지는 거절했다. 저런 아버지를 따르고 싶을 리가 있겠는가. 주위 사람들은 다시 곁을 떠나고, 너무나 익숙하게도 신지는 필요 없는 인간이 되었다.
에바에 타지 않는 파일럿은 필요 없다?
이미지가 꽤 다른 기획 단계의 신지, 남자다?!
현실은 나디아
신지는 내성적이다. 가만히 보면 도저히 외향적인 아이로는 자랄 수 없는 성장 환경이었다. 부모도 없이 낯선 어른과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마음 편히 사랑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의지할 상대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이 아무리 친절하게 그를 대했다 해도 가족이 아닌 만큼 신지의 마음은 편할 수가 없다. 별 수 없이 주위 어른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을 것이고, 다만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 말 잘 듣는 아이가 되어야 했다. 1화에서 초호기 탑승을 거부했던 신지가 결국 에반게리온에 타게 된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들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으니까. 최소한 그렇게 하면 나를 필요로 하니까. 오히려 신지가 에바 탑승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은 작품 초반이었고, 그 땐 토우지 동생의 부상 등 자신의 일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겐도우의 칭찬을 받은 이후로는 그 자체가 에바에 타는 이유가 되었다.
'도망치면 안 돼…!'
카지 "괴로운 게 싫니? 좋아하는 건 찾았고?"
신지 "……."
"뭐, 괜찮아. 많은 고통을 겪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상냥할 수 있는 거야."
"그건 나약한 게 아냐."
그러나 신지가 초호기에 타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레이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손에 묻은 피, 그리고 나 자신에게서도망치면 안 된다는 것. 신지는 자신이 옳다 생각한 일엔 제법 강단이 있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 소심하고 눈치도 많이 보지만, 그 말은 곧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섬세하게 신경을 쓴다는 말이며 실제로 큰 장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주위 사람의 성격과 환경 탓에 이 유형의 성격이 부정적으로만 비치는 점은 크게 아쉽다. 신지는 최소한 스스로의 잘못을 알고 반성할 줄 아는 소년이다. 자신이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아픔에도 공감할 줄 안다. 게다가 신지는 사도를 무찌르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작품 속 유일한 인물이었다. 자신의 상처에 민감한 대신 남의 상처에도 함께 민감한 타입. ‘고통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상냥할 수 있어. 그건 나약함과는 다른 거야.’17화에서 카지가 말했던 신지의 장점이다. 정답이다.
신지 "목표를 센터에 넣고 스위치."
리츠코 "사람이 시키는 일엔 조용히 따른다, 그게 저 아이의 처세술 아냐?"
미사토 "증말, 자꾸 네, 네 짜증이 나네. 남자면 좀 더 시원하게 굴어, 응?!"
신지, 정말 고생이 많다.
3화에서는 신지가 처음으로 미사토의 명령을 어긴다. 토우지와 켄스케를 함께 태운 채 철수하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 ‘도망치면 안 된다’는, 자신이 만든 주박에 얽매인 행동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2화에서 미사토나 리츠코가 지적한 신지의 단점에 대한 나름의 피드백이기도 했다. 단순히 센터에 넣고 스위치를 누르는 게 아니라, 또 어른이 시키는 대로 묵묵히 따르는 편리한 ‘처세술’이 아니라, ‘진짜 신지’를 보이고 싶다는 용기에 더 가깝다. 다행히 결과도 좋아 사도를 무찔렀는데, 미사토의 반응은 영 이상했다. 어제는 너무 소극적이라고 핀잔을 줬던 사람이, 오늘은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며 화를 낸다. 아직 신지는 어리고, 그래서 미사토의 반응에 혼란을 느꼈을 법 하다. 게다가 같은 반의 토우지도 동생을 다치게 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때렸다. 에바를 타도, 내려도 욕을 먹는다. 그래서 신지는 결국 집을 나갔다.
자살 명소 오와쿠다니
4화에서는 신지의 가출 경로를 그리고 있다. 많은 장소가 있지만 안개가 낀 거대한 산을 따로 주목하자. 실제 장소로, 하코네의 오와쿠다니 분화구이다. 그런데 여기, 사실 ‘자살 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따라서 신지가 오와쿠다니에 올라 주변을 보고 있는 장면은 무심히 볼 게 아니라, 신지의 ‘첫 번째’ 자살 시도로 볼 수 있는 부분인 셈이다. 다만 안노 히데아키가 직접 밝힌 대로, 신지는 ‘죽고 싶으나 죽을 용기가 없는 소년’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단 다시 살기(정확히는 ‘죽지 않기’)로 한다. 그의 마음을 정말로 돌린 것은 바로 반 친구들이었다. 켄스케 역시 어머니 없이 자랐는데, 신지와는 달리 오히려 에바 파일럿을 동경하고 있었다. 토우지는 어떤가. 동생 때문에 처음에는 신지를 원망했어도, 결국 신지의 처지를 알고는 진정으로 그를 감싼다.자신이 괴롭게 여기는 현실을 오히려 갈망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그리고 내 고통에 공감하고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다는 걸 배운 신지는 다시 한 번 에바에 타기로 한다. 초호기에 타도 괜찮다는, 바꿔 말하면 이 세상에 있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은 셈이니까.
신지는 듣기 위해 이어폰을 끼는 게 아니다.
듣지 않기 위해, 끼는 것이다.
신지 얘기를 하면 뺄 수 없는 게 바로 SDAT, 그가 자주 듣는 카세트 플레이어이다. 수퍼 디지털 오디오 테이프의 약자. 신지가 듣는 트랙이 거의 25번 아니면 26번이기 때문에, TV판 25, 26화의 내용과 연계하여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지의 닫힌 마음을 묘사하는 25화와 신지의 성장을 조명한 26화 사이에서 맴도는 심리 상태를 상징한다는 것. 4화에서 잠깐 미사토의 말을 어기고 진짜 자신을 찾으려 했던 신지는 결국 트랙을 리버스 하여 트랙 25로 돌린다. 원래의 자신이 되겠다는 것이다. 물론 굳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모습은 대개 세상과의 단절을 상징한다. 엔드 오브 에바에서는 배터리가 다 되었음에도 상관하지 않고 이어폰을 끼고 있는데, 그 정도로 신지의 스트레스가 높은 상태임을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음악을 듣는 걸까? 트랙 25는 ‘You Are The Only One’, 트랙 26은 ‘푸른 전설(팔콤의 유명 액션 RPG 이스 시리즈의 캐릭터 송, 보컬은 미츠이시 코토노.)’이라는 곡이다. 다만 23화에선 트랙 25가 다른 곡으로 나와 곡 자체에 특별히 담긴 의미는 없는 모양.
아스카 "꽤 좋은데! 그런 것도 할 줄 알았어?"
신지 "특별히 재능이 있는 건 아냐."
15화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신지는 5살 때 첼로를 시작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시켰을 테다. 첼로를 계속하는 이유 또한 ‘아무도 멈추라고 한 적이 없어서’란다. 하지만 아예 흥미가 없는 건 아닌 모양이고, 아스카 또한 한 번 듣고 칭찬을 했으니 신지가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표현한 건 겸손한 반응이겠다. 사실 신지가 연주한 바흐의 프렐류드는, 첼로를 연습한 사람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결코 쉬운 곡이 아니다. 첼로 고수가 켜기에도 현 옮김이 빠르고 복잡한 편이라 15화에 나온 신지의 연주 실력 정도면 엄청난 수준이다. 데스 앤 리버스에 나온 평행 우주(라고 일단 표현하겠다.)의 신지는 훨씬 더 유려한 연주를 하고 있어, 신지가 혹 에바 없는 세상에서 보통 소년으로 자랐다면 아주 훌륭한 첼리스트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말이 나온 김에 데스 앤 리버스의 현악 4중주 캐논 연습 장면을 보고 가자. 사실 이 장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에반게리온의 전체 스토리가 신지의 꿈 얘기라 주장하기도 한다. 스토리 궤도에서 있을 수 없는 네 사람의 만남과, 제2도쿄의 다른 학교 강당이라는 장소 설정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당연히, 신지의 여정과 주변 캐릭터와의 관계에 대한 상징(어쩌면 인류 보완 과정 그 자체)으로 해석하는 게 맞겠다. 신지가 첼로를 들고 강당에 왔을 때 텔롭이 말하는 ‘18개월 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 제시가 그 증거가 된다. 에반게리온 TV 방영 시점을 기준으로 18개월 후에 데스 앤 리버스를 개봉했기 때문이다. 신지는 익숙한 바흐 프렐류드와 함께 혼자 조율을 하고, 두 번째로 아스카가 강당에 왔다. 첼로와는 옥타브가 아예 다른 바이올린. 조율 후에는 신지와 같이 바흐의 곡으로 연습을 한다. 다음으로 레이. 첼로와 바이올린 사이의 음색을 내는 비올라로 조율은 하되 연습을 따로 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신지와 비슷한 곡을 골라 함께 연습을 했던 아스카와 의미 있는 대비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카오루는 메인이 되는 제1바이올린을 들고 조율도 없이 시간에 맞춰 바로 연주를 시작한다. 이어 흐르는, 네 사람의 완벽한 하모니.
연습을 마치고 나가는 신지
캐논(Canon)은 기준, 규칙 등을 의미하며, 하나의 선율 안에서 모방과 변용을 거듭하여 하나의 완벽한 음악을 추구하는 곡이다. 하나의 틀과 미묘한 응용이라, 과연 에반게리온 아닌가 싶다. 영화의 데스 파트가 끝이 난 후, 강당에 혼자 남은 신지는 첼로를 들고 밖으로 간다. 연주는 훌륭했으나 연습일 뿐이었다. 이제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 변주를 시작한다.
아스카 "좋은 아침, 이카리!"
신지 "어, 좋은 아침!"
"오늘 뭐 한다고 했지?"
"파헬벨의 캐논."
바이올린 담당, 아스카는 신지에게 어떤 사람인가? 명백히 끌리긴 하나, 그 기분이 정확하게 뭔지 신지 본인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굳이 표현하자면 남성의 여성에 대한 욕정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진심을 표현할 용기가 없던 신지는, 아스카가 잠에 빠졌을 때 몰래 키스 시도를 하는 정도(더 나가면 물론, 엔드 오브 에바에서의 자위도 포함할 수 있겠다.)로만 마음을 드러낼 뿐이었다. 사실 보완 직전 그가 아스카에게 밝힌 진짜 마음은 ‘너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고 언제나 너와 함께 있고 싶다’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분명한 사랑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에반게리온에서 보는 신지의 행동은 결국, 환경이 왜곡한 사람의 진심이다.
신지 "좋은 아침!"
레이 "……."
응답하지 않는 레이. 이 부분을 자세히 보면 아스카가 키득, 웃는다.
계속 웃는 아스카. 레이를 보며 의아하게 여기는 신지. 세 사람의 미묘한 관계에 대한 상징이다.
신지, 아스카와 달리 조율만 하는 레이
아스카 "…거짓말."
신지 "……?"
"너, 누구라도 괜찮은 거지? 미사토도 퍼스트도 무서우니까, 아빠도 엄마도 무서우니까!"
"살려 줘, 아스카."
"그냥 나한테 도망치고 있는 거잖아!"
"도와 줘, 아스카!"
"정말로 남을 좋아한 적이 없는 거잖아!"
레이와 미사토 두 사람 다 신지가 굉장히 아끼던 사람이긴 해도, 아스카와는 그 의미가 좀 달랐다. 특히 두 여성은 신지와는근본적으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미사토의 경우 자꾸만 부담이 되는 사랑을 줬고, 레이의 경우 어머니와의 연계를 알게 된 후 미묘한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신지에게 진짜 사랑의 상대는 아스카 하나였다. 비올라를 담당한 레이가 중간에 서서 자신의 역할을 전하려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허나 레이가 보완에 앞서 부른 아스카는, 신지가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다른 사람이 무서워 ‘차선으로 자신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랑이 아니었다.
아스카 "늦었잖아!"
카오루 "미안, 미안!"
단체 조율, 혹은, 인류의 보완?
카오루 "시작한다?"
신지 "응."
신지가 사랑한 사람이 또 하나 있다. 역시 아스카와 함께 바이올린을 담당한, 카오루다. 여기서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물론 플라토닉에 가깝다-만 원하는 대로 생각하자. 어떻든 신지는 카오루라는 ‘타인’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꺼내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 사실 카오루는, 신지의 인생에 걸쳐, 처음으로 분명히 ‘너를 좋아해’라고 말한 사람이었다. 미사토와 같이 무서운 사랑도, 레이와 같이 미묘한 사랑도, 아스카와 같이 애매한 사랑도 아니었다. 신지는 상처가 무서워 다른 사람에게 한 적이 없는 말이었다. 감동한 신지는 마음을 놓고 카오루에게 진심으로 웃어 보일 수 있었다.
신지 "호의…?"
카오루 "너를 좋아한다는 말이야."
신지 "배신했겠다…내 마음을 배신했겠다…!"
초호기의 가슴을 찌르는 2호기
그런데 카오루가 사실은 적, 사도였다는 걸 알게 된 신지는 그가 내 마음을 배신했다며 화를 냈다. 카오루가 조종하는 2호기는 초호기의 가슴을 찍는데, 나는 이 장면이 신지의 마음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신지는 카오루가 자기 가슴에 비수를 찔렀다고 느꼈을 테니까. 결국 이 사건으로 신지는 에바 탑승을 거부한다. 에바에 타라고 해서 무리인 걸 알면서도 파일럿이 되었다. 그런데 토우지의 동생은 물론 토우지도, 거기다 카오루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들을 자신의 손으로 다치거나 죽게 만들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신지는 생각했다. 그래서 엔드 오브 에바에서, 그는 초호기에 타지 않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아스카가 양산기에 의해 처참히 죽임을 당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두려움에 묶인 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는 것이, 더 큰 비극을 부르는 것이다.
신지 "카오루가 훨씬 더 좋은 애였어요. 카오루가 살았어야 해."
죽을 사람은 나야.
그런데 죽은 사람은 카오루….
카오루의 죽음으로 절망한 신지는 또 한 번 죽음을 결심한다. 엔드 오브 에바의 첫 장면은 카오루를 만난 호수 근처에 서 있는 신지의 모습이다.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넘기는 부분인데, 신지의 얼굴이 이상하지 않은가? 서 있는 위치도 애매하다. 날씨가 덥고, 따라서 땀을 엄청 많이 흘렸다는 설명으로 끝을 낼 수도 있지만, 나는 조금 더 위험한 쪽으로 생각했다. 여기서 신지는, 자살을 하려다가 실패한 것 같다. 다시 한 번 안노와 사다모토가 말한 신지의 ‘죽고 싶어도 죽는 게 무서운 아이’라는 설정을 적용해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도와 줘, 아스카…."
결국 다른 사람도, 죽는 것도 무서워 더는 피할 공간이 없게 된 신지는 아스카를 찾아 간다. 언급한 대로, 사실 아스카 역시자살 실패로 거기 누워 있었다. 그 와중에, 아스카를 보면서 신지는 자위를 했다. 이 장면은 리뷰 20편에서 설명한 대로 신지의 리비도 수치, 즉 삶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태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역으로 신지가 자살에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또 진짜 타인은 바로 옆에 있는데, 끝내 자기 안에서만 타인을 찾아 헤매다 위안하고 또 절망하는 신지에 대한 짧고 강렬한 묘사였다. 어차피 살 이유를 잃은 신지에게 윤리 의식이 작용이나 했을까, 난 정말 더러운 놈이라며 자책하는 목소리도 공허하다.
"그 손은, 뭘 위해 있는 거야?"
신지는 긴장을 하거나 중요한 결단을 내릴 때 손을 꽉 쥐었다 펴는 버릇이 있다. 손은 신지의 성장을 담고 있는 중요한 상징이 된다. 1화에서 레이의 피가 묻었던 손. 5화에서 레이 가슴을 통해 처음으로 여성을 느꼈던 손. 24화에서 카오루의 목을 따 죽였던 손. 아스카 앞에서 자위하고 정액이 잔뜩 묻었던 손. 보완에 앞서 아스카의 목을 졸랐던 손. 보완 중에, 모두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신지에게 레이가 물었다. ‘그렇다면 그 손은 무엇을 위해 있는 거야?’ 손은 사람의 마음과 같다. 그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상처를 줬기 때문에 신지는 손, 그러니까 그 마음도 포기하려 했다. 그러나 손은 그저 혼자 쥐고 펴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느끼기 위해 있는 것이다. LCL의 경계 없이 모두가 하나가 된 바다에서, 신지는 결국 레이와 몸을 다시 나누어 악수를 청했다. 과연, 사람은 손으로 목을 졸라 남을 죽일 수도 있으나, 아스카가 신지에게 보인 것과 같이, 따뜻한 온기로 사람을 구할 수도 있다.
너와 나를 죽인 손, 너와 나를 구한 손
그 사이가 바로, 고슴도치의 딜레마
4화의 제목인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쇼펜하우어가 쓴 우화에 나오는 말이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 몸을 기대어 온기를 나누려 하는 두 마리 고슴도치가, 너무 가까우면 서로의 침에 찔려 아프고 그렇다고 너무 떨어져 있으면 추위에 떨어야 한다는 딜레마 말이다. 사람이 사춘기를 거쳐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곧 서로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리츠코는 말했다. AT 필드로 나와 너를 분리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숙명이다. 에반게리온의 인류 보완 계획은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고슴도치의 가시 부러뜨리기’와도 같았다. 하지만 아프지 않기 위해 본래의 모습을 버리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고슴도치는 고슴도치만의 사는 방식이 있고 사랑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말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 그리고
'나'라고 하는 존재의-
실존
16화의 제목 ‘죽음에 이르는 병’은 키에르케고르의 저서 제목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정신의 죽음, 곧 절망을 의미한다. 16화에서 신지는 절망에 대해 얘기한다. 언제나 싫은 것에서 도망을 쳤고,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 에바에 매달려 사는 지금.진짜 신지는 어디에도 살고 있지 않았다. 에바 파일럿이 아닌 자신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사실 키에르케고르의 주요 메시지는, 사람은 실존하기 위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다만 시대 사상에 따라, 그 형태는 신앙에 귀의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에반게리온은 신지가 결국 초호기와 작별을 선언, 신의 위치에 선 본인의 의지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는 이야기를 담은 만큼, 키에르케고르 사상의 오마주로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겠다.
사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마음 안에는 크든 작든 고뇌하는 햄릿, 이카리 신지가 살고 있다. 신지라는 캐릭터는 안노가 본인의 성격을 대입한 캐릭터이기도 한데, 실제 신지의 유명 대사 ‘도망치면 안 돼.’는 안노가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하나의 다짐으로 삼았던 말이며, 엔드 오브 에바의 마지막, 신지가 아스카 위에서 오열하는 장면은 특별히 연기 지도를 위해 ‘거기서 울고 있는 사람은 신지가 아니라 나야.’라는 말도 했다. 매사에 자신이 없고, 의지도 부족하며, 그저 남이 시키는 대로, 눈치만 잔뜩 보며 세상을 사는 사람. 신지는 어쩌면 모두의 숨은 이야기라 해도 좋을 것이다. 더 중요하게는, 에반게리온은 그런 아이가 결국 다른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고, 아픔을 두렵게 여기지 않고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신지는 굳이 따로 설명할 이유도 없다. 그냥 보고, 있는 그대로 느끼면 좋겠다. 편한 죽음 대신 아파도 사는 것을 택하고, 회귀가 아니라 독립을 택하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헤헷."
depth&searchValue=%EC%97%84%EB%94%94%EC%A0%80%ED%8A%B8&platformId=&pageIndex=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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