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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레이에게서 결여된 부분에 대해 살펴봤으니, 이제부터는 레이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에 대해 조명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다. 레이가 가진 특별한 능력이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도처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1화에서 미사토를 기다리는 신지 앞에 나타난 것을 시작으로, 엔드 오브 에바에서 보완을 위해 미사토나 리츠코를 주시하고 있는 등 다양한 경로로 등장한 의문의 레이 말이다. 또 하나는 신지의 내면 영상에서 보이는, 기차 안의 레이이다. 실제로 신지에게 말을 걸고 소통을 했기 때문에 단순히 시각적인 환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이렇게 레이가 보통의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가진 이유는 그녀가 릴리스의 영혼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아담의 영혼을 가진 카오루 또한 자유롭게 AT 필드를 방사하는 등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스카 "너도 이번엔 함께 가."
레이 "난 안 가."
"…고기, 싫은 걸."
레이와 릴리스의 관계에 대해 함께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 재밌는 사실을 짚고 가겠다. 우선, 레이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앞서 그녀가 음식이 아닌 정신 에너지를 통해 육체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고, 그 이유로 소화 능력이 부실하기 때문이란 설명이 더 옳겠지만, 그걸 떠나서 그녀는 지구 유기체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으니 동물의 몸을 먹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지니고 있을 법도 하다.
또 비슷하게 연결할 수 있는 것으로, 레이는 책을 아주 좋아한다. 선호하는 장르는 알 수 없지만, 사회 환경에 관심이 없는 그녀가 세상 이야기를 담은 책을 즐겨 읽는다는 설정은 얼핏 이상하게 들린다. 이것은 마음의 공백이 심한 그녀가, 책 속의 가상 세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감정과 꿈을 느끼려는 보상 심리의 발현이 아닐까 한다. 그게 아니어도, 단순히 책을 지혜의 상징으로 보아, 그녀가 본래 지혜의 열매를 지닌 릴리스의 후신이라는 암시로도 생각할 수 있다.
너무 유심히 볼 필요 없다.
9화에서 레이가 보고 있던 책을 살짝 보고 가자. 우선 흥미로운 부분은 아스카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쓰인 책이란 점이다. 책의 내용은 그림으로 파악하건대 RNA, 코돈, 플라스미드 등에 대한 내용이다. 글은 잘린 부분도 많고 일부 해석해 봐도 구성 자체가 산만하기 때문에 넘긴다. 아무튼 중학교 2학년이 읽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내용이다! 게다가 2대 레이의 나이는 불과5살. 겐도우가 가정 교육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몰라도, 이 설정은 레이가 보통 소녀가 아님을 증명하는 부분이 된다. 레이가 책을 이해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레이는 두뇌가 굉장히 비상한 것 같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아스카는 레이를 ‘우등생’이라 부르는데, 레이는 수업 태도가 좋은 것도 아닌데다 학력으로 따지면 이미 대학을 졸업한 아스카가 월등한 수준이므로, 아마 그 말은 레이가 의외로 매우 박식하고 명석하다는 뜻일 테다. 결국 이것은 그녀의 정체가 극도의 지혜를 지닌 릴리스라는 사실을 둘러 암시한 것일 수도 있다는 소리.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책 주제가 단백질 합성 및 유전에 대한 내용이란 건데, 어쩌면 이 역시 레이가 지닌 인공 육체에 대한 하나의 암시일 수 있겠다.
왼팔 복원 사례 1
왼팔 복원 사례 2
왼팔 복원 사례 3
레이는 릴리스의 영혼을 담은 그릇이지만, 사실 육체적인 특성 또한 릴리스와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리뷰 10편에서 언급한 대로 그녀의 머리 색깔은 초호기와 같은 하늘색이며, 이를 통해 그녀의 육체엔 유이의 것은 물론 릴리스의 DNA 정보 또한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덤으로 그녀의 몸은 사도, 에반게리온과 같이 파동-입자 물질로 이뤄져 있음을 꾸준히 설명했다. 4화에는 리츠코가 그녀의 몸을 스캔하여 관찰하는 장면이 있는데, 모니터에서 사도의 육체 분석 화면과 유사한 패턴의 에너지를 볼 수 있어, 그녀의 몸에 대한 중대한 힌트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또 초호기는 2화와 19화에서 팔을 잃은 후 스스로 복구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는데, 이후 엔드 오브 에바에서 AT 필드 부실로 팔을 잃은 레이에게도 같은 연출을 사용하여 둘 사이의 연계를 암시하고 있다.
이렇게 레이의 몸에 릴리스의 특징이 잔존하고 있는 이유는, 당시 샐비지 기술이 불완전했던 탓일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네르프가 이미 더미와 리비도 제어 시스템 등을 체계적으로 갖추고 있는 걸 봐선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겠다. 사실 과정의 문제를 떠나 레이의 몸이 파동-입자 물질이어야 하는 이유는, 그녀가 후에 겐도우의 몸과 결합하게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AT 필드를 상실하면 육체를 잃고 LCL 상태로 환원되는 인간과 달리, 레이의 몸은 다만 그 경계를 잃고 타인과 결합 가능한 상태가 된다는 식이다.
물론, 레이는 기본적으로 유이의 복제 인간이 맞고, 따라서 인간과의 육체적 접점 또한 상당히 많이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게 바로 레이의 ‘중간계적 특성’의 하나가 된다. 그런데 잠깐, 왜 하필 유이의 복제여야 했을까? 그 해답은 명확하게 제시할 수 없지만, 아마 겐도우에게 있어 자신이 마음을 열 수 있는 존재는 유이 한 사람이기 때문에, 후에 그와 결합하게 될 릴리스의 그릇도 최대한 그녀와 닮은 존재이길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런 이유가 아니어도 레이의 탄생 배경에는 유이의 샐비지 실패가 있고, 시기적으로 릴리스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 필요할 때 경우 좋게 그녀의 육체를 사용했다고 보는 편이 무난하다.
"……!"
아무튼 레이가 유이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신지 또한, 어릴 때 기억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그녀 안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신지가 유이를 기억하게 만든 건 레이의 유이를 닮은 외모 때문은 아니었다. 신지의 상기 과정이 레이와 유이 사이의 외적 유사성에만 기인한 것이었다면 오히려 훨씬 더 일찍 알았을 것이다. 그가 어머니를 생각하게 만든 건 레이의 얼굴이 아니라 걸레를 짜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즉, 레이는 단순히 유이와 얼굴만 닮은 것이 아니라,성격 또는 행동의 유사성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레이가 유이의 영혼을 가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DNA라는 개념은, 육체적 정보로만 한정할 수 없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DNA는 실제로 사람의 성격과 사고 패턴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레이라는 개체는 어떻게 보면 이카리 유이의 딸이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성격 부분에서도 공유하는 특성이 많았지 싶다.
에바의 시작과 끝
어쨌든 결과적으로 신지가 그 날 레이에게서 본 것은 어머니 유이이기도 하되 어머니 일반, 즉 모성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렇게 놓고 보면 레이란, 신지에게 있어 ‘두 명의 어머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 안에는 유이도, 인류의 어머니 릴리스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레이는 육체적으론 어머니가 될 수 없는 존재였지만, 근본적으론 인류에 대한 모성애를 대표하며 모두를 이끄는 역할을 맡게 된다. 1화에서 신지를 보고 있던 의문의 레이는 신지를 마중하기 위해, 엔드 오브 에바의 마지막에선 배웅하기 위해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던 것 같다. 두 레이를 같은 존재(구체적으로는 3대 레이)라고 주장했던 가장 큰 이유이다.
레이가 사는 곳. 3호 분실과 402호.
그에 대한 남은 얘기는 밑에서 다시 잇기로 하고, 이제 23화로 간다. E-계획이 발동한 센트럴 도그마의 깊은 구역, 인공 진화 연구소의 3호 분실, 레이가 처음 태어나고 자랐던 곳. 신지는 리츠코가 소개하는 그 방을 보면서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5화에서, 리츠코의 부탁으로 레이의 집에 가게 됐던 때. 레이가 살던 그곳은 제3도쿄의 외곽 지역, 버려진 아파트 단지의 가운데에 있었다. 그 많은 건물 중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레이가 사는 402호 한 곳 뿐. 거대 도시 변두리에 이웃 하나 없이 혼자 사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현대인의 삭막한 관계에 대한 극단적인 비유라는 생각도 들었다. 3호 분실은 어둑하고 지저분한 것이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이 아닌 것 같았지만, 그녀가 살던 402호도 꼭 같았다. 레이는 집에서 사는 게 아니라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이었다. 참고로 402호에서, 4와 2는 일본어로 읽으면 ‘죽음으로’라는 뜻이 되며, 중간의 0은 레이와 같은 발음으로 읽을 수 있어서, 이 호수가 무(無)에 대한 욕구를 내재한 레이의 성격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있다.
레이라는 이름은 숫자 0과 같은 발음이기도 하지만 다르게는 령, 즉 영혼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두 단어 모두 레이의 중요한 속성인 만큼 일부러 중의적 효과를 노린 것 같다. 참고로 레이의 성 ‘아야나미’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비단 물결’로, 카오루의 성인 나기사(물결이 닿는 곳)와 연계하여 의미를 찾을 수도 있고, 구판 한정으론 단순히 구축함의 이름을 땄을 뿐이라 생각해도 좋다. 에반게리온의 많은 캐릭터가 군함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주요 여성 캐릭터들이 항공 모(母)함의 이름을 가진 것과 다르게, 유독 레이만 구축함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데 대해선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다. 설명한 대로 레이는 인간의 ‘어머니’가 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레이의 아파트에서 남겨 둔 하나의 상징, 무지개에 대해 짚고 가자. 사도와 관련하여 무지개 상징을 대폭 추가한 신극장판과는 달리, 구판의 무지개는 특별히 신화적인 의미를 띠는 것 같지 않지만, 레이의 특징과 연계하여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23화에서 리츠코가 밝힌 바와 같이, 그녀의 심층 의식을 이루고 있다는 ‘물과 빛’이 무지개에 담겼다는 점이다. 3호 분실과 꼭 같은 구조의 아파트 방에서 무지개가 뜬 것은 레이가 지닌 이미지의 핵심을 돌려 표현한 묘사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에바에 탄다는 것은 곧 태초로의 회귀라 할 수 있다.
보다 중요한 얘기는, 어째서 ‘물과 빛’이냐는 것이다. 레이의 심층 의식을 이루는 근간이 왜 하필 물과 빛일까? 우선 추측해 보건대, 물과 빛은, 엄마 뱃속의 태아가 느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두 감각이다. 물은 태아를 보호하는 양수로, 빛은 태아가 자랄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극으로 말이다. 이미 설명한 대로 에반게리온과 그 파일럿은, 흔히 산모와 태아 사이의 관계로 자주 비유된다. 탯줄을 의미하는 엄빌리컬 케이블, 파일럿을 담은 생명의 씨앗인 엔트리 플러그. 그리고 양수를 대신하는 LCL등, 에바와 어머니 사이의 연관 관계는 에반게리온의 중요한 테마이기도 하다. 아무튼 더미 시스템의 핵심이 되는 레이이기에, 불필요한 자극을 막고, 싱크로 향상을 위해 ‘순수한 두 가지 자극’만을 레이에게 주입한 것일 수 있다.
레이와 비커 이미지
그렇다면 이제 둘 중 ‘물의 이미지’만 놓고 생각해 본다. 물이라 함은, 인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자,지구의 생명체가 살기 위한 근본이 된다. 세계의 많은 신화와 전설, 문학과 예술에서 물은 생명의 상징 그 자체이다. 물은 또한 언제나 흐르고 있으며, 때문에 영혼과 역사의 흐름이라는 은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레이의 물은 조금 다른 구석이 있다. 오프닝에서 짧게 묘사한 레이는 옆에 조그만 비커를 세워 두었다. 같은 비커가 그녀가 살던 아파트 방에도, 23화의 3호 분실에도 놓여 있어 레이의 숨은 상징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비커에 담긴 물은, 흐르지 않는다. 그 안에 담겨 가만히 고여 있다. 즉, 레이라는 비커에 담긴 릴리스의 영혼은 흐를 수 없다. 그저 타의에 의해 묶여 있을 뿐이다.
레이의 육체 스캔 이미지
다음으로 ‘빛의 이미지’는 또 어떤가. 빛이라는 것도 지구의 생명체가 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빛의 자극 없이 뱃속의 태아는 눈을 뜰 수 없다. 그러니 빛은 지구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레이의 육체를 이루고 있는 파동-입자 물질에 대한 암시로도 생각할 수 있는데, 현실에 존재하는 유사 물질이 바로 ‘빛’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파동도, 완전한 입자도 아닌 어떤 것. 그것은 레이의 육체인 동시에 또한 그녀가 지닌 ‘중간계의 특성’ 중 하나가 된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3호 분실의 ‘물과 빛’의 이미지는 레이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 맞다.
그 외에도, 레이를 표현할 때엔 대개 물과 빛의 심상을 한 데 엮어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10화에서 수영하는 그녀의 모습 역시 물 위에 비치는 빛을 활용, 유사 메타포를 제시하고 있으며, 당장 엔딩 영상을 봐도 레이, 물결, 달빛 이 세 가지 이미지가 전부이다. 레이와 달 사이의 관계에 대해선 여태 여러 측면에서 살폈지만 말이 또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언급하고 가겠다.바로 오프닝 영상에 등장하는 ‘세피로트의 나무’이다.
유대 신비 주의의 핵심!
DVD 영상 해설에 따르면 이 나무는 ‘인간이 도달 가능한 최고 정신까지의 길’을 나타내고 있단다. 제레가 의식을 시작할 때 이 나무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에반게리온을 카발라 주의로 해석하는 근거가 되는 부분이나, 몰라도 크게 상관이 없는 터라 본 리뷰에서는 이 정도 수준으로만 언급하고 마는 점 양해를 구한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세피로트의 나무 표식인데, 여기서 현실계와 환상계의 접점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로 ‘영혼’이다. 거기다 영혼에 상응하는 점성술 기호는‘달 모양’이라 한다. 리뷰 26편에서 레이를 더러 두 세계의 소통을 돕는 ‘무당’이라 표현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끝으로, 이제 다시, 의문의 레이 형상에 대해 설명하겠다. 도로 중앙에 가만히 서 있는 레이의 모습. 신지는 그 당시 실제로 레이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단순 환각이 아니며, 2화에서 레이를 봤을 때 그 형상을 정확히 상기한 걸로 봐선, 명백한 현실의 일부이다. 이 ‘레이 환상’에 대해, 단순히 복선을 위한, 혹은 엔드 오브 에바의 마지막 연출과 함께 완결 구성을 위한 ‘만화적 허용’이라 생각하면 그만이겠지만, 어차피 본 리뷰의 목적이 그런 게 아니므로 하던 대로 상세한 분석을 해 보자. 앞서 이 레이 환상을 릴리스의 특이 능력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1화의 레이 또한 엔드 오브 에바에 나온 레이와 의상을 비롯하여 같은 이미지를 지닌 동시에, 그 시각 2대 레이는 큰 부상을 입은 데다 신지라는 소년을 몰랐기 때문에 그녀를 2대 레이라 생각하는 건 억측이다. 게다가 3대 레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게 확실하므로 필자는 의심할 것 없이 1화의 레이 또한 ‘시간을 거슬러 온 3대 레이’라 주장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거다. 물론 3대 레이는 릴리스의 영혼을 온전히 담고 있고, 따라서 비범한 능력을 가진 게 당연할 수 있으나, 좀 더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싶다.
저 글자는 누가, 왜 적은 걸까?
리뷰 20편에서 이미 그 해답을 제시한 바 있다. 레이의 육체는 파동-입자 물질이며, 따라서 그녀는 물리적 법칙을 무시할 수 있다. 굳이 ‘물리 법칙’을 강조하는 이유는, 관련 단서가 작품 안에 나오기 때문이다. 다시 23화의 3호 분실로 간다. 레이의 방을 자세히 보면, 벽에 특이한 글씨가 적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단어들은 ‘양자 역학’에서 자주 쓰이는 주요 개념이다. 양자 역학이란 소위 말하는 ‘가능성의 물리학’으로, 미시 세계의 입자가 시간, 공간 등 기존 물리 법칙을 무시하며 운동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다양한 이론을 제시하는데, 그 덕에 과학과 철학의 틀을 깼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이란, 에반게리온 설정의 핵심이기도 한 인지론을 칭하는 것으로, 간단히 말하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AT 필드를 통해 세상을 구성한다는 개념 말이다. 물론 양자 역학과 인지론을 동일한 선에 놓고 이해하는 것은 학문적인 시선에선 옳지 않으나, 에반게리온이 굳이 해당 개념을 작품에 빌려 쓴 이유는 (학문적인 의미와 별개로)'존재의 가능성 자체'를 말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우리 마음이 세상을 구축한다는 것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이후 세계에 대한 예측의 기준이 되기도 하여 다음에 또 언급할 것이다. 결국 레이의 방에 적힌 양자 역학의 개념은, 특히 레이의 몸이 가상의 파동-입자 물질이라는 점에서, 그녀가 전통적인 물리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설정 허용의 근거(처음에 언급한 기차 안의 레이 또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선행할 얘기가 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다음으로 미룬다.)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에 대한 중대한 힌트가 된다.
BGM Soul's Refrain (Aqua Groove Mix) (Ayanami)
길고 험한 여정을 마치고 인류 보완을 하루 앞둔 날. 레이는 조용히 눈을 떴다. 둥근 달도 환하게 뜬 어두운 밤. 레이는 언제나 무(無)를 동경했고, 그토록 바라던 대로 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이 날 텐데, 이제는 두렵다고 한다. 지금의 레이는 겐도우에 대한 증오도, 신지에 대한 사랑도 온전히 담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 밤, 혹시 레이는 처음으로 꿈을 꾼 게 아닐까. 조용히 문을 나서는 레이. 바닥엔 부서진 안경. 거짓 사랑에 끝을 고하는 레이.
靑い影につつまれた素肌が 푸른 그림자에 감싸인 살갗은
時のなかで 靜かにふるえてる 시간 속에 고요히 흔들리고 있어
命の行方を問いかけるように 생명의 행방을 묻는 것 같이
指先は私をもとめる 손끝은 나를 바라고 있어
타브리스 덕에 비로소 자신의 진짜 정체를 알 수 있었던 3대 레이는, 보완의 날, 겐도우보다 먼저 릴리스 앞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겐도우? 어차피 배신할 생각이었다. 이제 레이는 더는 그의 인형이 아니니까. 레이가 기다린 건 겐도우가 아니라, 다만 그 안의 아담이었던 것 같다. 더는 겐도우가 힘을 가질 수 없도록. 그리고 신지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도록.
그 사람이 넘긴 진심은, 아팠다.
抱きしめた運命のあなたは 부둥켜안은 운명의 그대는
季節にさく まるではかない花 철 따라 피는 덧없는 꽃과 같아
希望のにおいを胸に殘して 희망의 향기를 가슴에 남긴 채
散り急ぐ あざやかな姿で 허무히 지는 그 산뜻한 모습으로
私に還りなさい 나에게로 돌아와요
生まれる前に 태어나기 전에
あなたが過ごした大地へと 당신이 살던 대지로
この腕に還りなさい 이 팔에 다시 안겨요
めぐり逢うため 다시 만날 수 있도록
奇跡は起こるよ 何度でも 기적은 일어나요 몇 번이라도
"다녀 왔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보완이 시작된다.
[에반게리온] 29. 아스카 ① 적어도, 인간답게/에서 계속.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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