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리츠코 "아야나미 레이의 갱신 카드."
"전해 주는 걸 깜박했어.
유대의 전설에 따르면 최초의 인간 여성 릴리스는, 이브와는 달리 주장과 소신이 아주 뚜렷한 여자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남편인 아담의 말을 거역하기 일쑤였고, 그런 그녀를 미워하게 된 아담은 릴리스가 말썽을 피우면 신에게 고자질을 했단다.화가 난 신은 릴리스에게 벌을 내렸고, 그녀는 출산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 남은 평생 하루에 수십 명의 아기를 고통 속에 낳아야 하고, 그렇게 낳은 아기는 금방 죽고 마는 그런 저주였다. 그렇게 끔찍한 고문을 받던 릴리스를 구원한 것은 악마 루시퍼였다. 루시퍼는 릴리스를 거두어 아내로 삼고, 신의 저주를 봉인하여 그녀를 악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에반게리온의 팬이라면 이 전설이 말하는 ‘릴리스의 저주’가 낳은 아기들이 바로, 불완전한 군체로 진화한, 그리고 유한한 생명을 가진 ‘리린’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허나 여기서 갑자기 또 전설 얘기를 꺼낸 이유는 따로 있다. 일단 에반게리온에서 악마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네르프’라는 걸 염두에 두고, 시작해 보자.
레이 "…비켜 줄래?"
먼저 살필 장면은 5화에 나온다. 아주 유명한 장면인데, 신지가 레이 위로 엎어져서 그녀의 가슴을 만지게 된 상황이다. 놀란 신지는 어수룩하게 변명하지만 막상 레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 다만 그녀가 화를 냈던 것은, 아끼던 겐도우의 안경을 신지가 멋대로 쓰고 있던 것 때문이었다. 손에 남은 가슴의 감촉에 어쩔 줄 모르며 당황하는 신지와,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비켜 달라 말하며 방을 나서는 레이. 우습게도 이게 두 사람이 처음으로 나눈 대화였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자세히 살필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무지개 상징, 또 하나는 레이의 건조한 반응이다.
갑자기 웬 무지개?!
우선 두 사람이 바닥에 엎어졌을 때, 배경에 은은히 비치고 있는 무지개를 보자. 이것은 순수한 소년 소녀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장식적 연출로 보는 것이 무난한데, 하필 ‘무지개’는 이후 신극장판 포스터에서 안노가 직접 선택한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의도적인 상징일 가능성도 크다. 다만 그렇다면 이 무지개는 신극장판과 공유하는 설정이 될 수 있기에 앞으로 더욱 주목할 부분이 된다. 또 무지개는 실제로 성경에서 상당히 중요한 상징물인데, 그 내용은 신극장판의 이해에 더 도움이 되는 부분이니 일단은 보류한다. 다만 구판 한정으로 이 무지개 상징에 대해 추측할 수 있는 범위가 있어, 다음 편에서 따로 언급하기로 한다.
신지 "아, 아니, 난…그, 뭐였…더라…."
그냥 나가는 레이
여기서 본격적으로 다룰 부분은 바로 레이의 반응이다. 레이의 신체 나이 14세. 한창 자라는 소년 소녀임을 고려하면 적절한 반응은 당연히 신지 쪽이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몸의 반응에 대해 둔감한 레이. 이 상황을 표면적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레이라는 소녀는 그간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러니 자신의 몸이 또래 소년에게 미치는 영향도 이해할 리 없고, 따라서 이 상황은 결국, 레이의 폐쇄적인 사회 환경에 대한 단적인 묘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레이는 책도 많이 읽는 편이고, 중학교도 벌써 2년 째 다니고 있다. 말도 없고 친구도 한 명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녀가 자신의 나체에 대한 아무런 관념이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어쨌든 육체적으로 레이는 사춘기가 맞고, 최소한 본능적 반응이라는 게 있을 터. 거기다 그녀의 사회성 결여를 표현하기 위해, 굳이 신지가 그녀의 가슴을 만지는 장면을 삽입한 연출 의도 역시 쉽게 넘길 수 없는 부분이다. 나는 이것이, ‘레이는 성욕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레이도 물론 신지를 좋아하게 되지만, 육체적인 사랑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또 이것은, 특히 나중에 아스카가 신지에게 육체적인 섹스어필을 하는 장면들과 자연스럽게 대비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여, 나는 레이가 ‘생식 능력이 없는 여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레이 "신지의 향기가 나…."
리뷰 26편에서, 제작진이 레이 안에 넣은 주요 모티브 중 하나가 ‘늑대 인간’이었다고 밝혔다. 그 말은 레이의 몸이, 달이 상징하는 이미지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거나, 혹은 그녀의 육체가 달과 실질적인 연계를 맺고 있다는 소리이다. 물론 릴리스가검은 달에서 왔고, 우리가 하늘에서 보는 달도 검은 달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것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겠지만, ‘달’에서꺼낼 수 있는 상징이 하나가 더 있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벌써 알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보다 직접적인 힌트가 담긴 장면으로 간다. 14화 기체 교환 실험 부분이다. 레이가 초호기에 탔을 때, 그녀는 마치 꿈을 꾸는 느낌으로 여러 이미지를 마주하게 된다.
"산, 거대한 산, 오랜 시간 변하여 온 것."
"하늘, 푸른 하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태양, 유일한 것."
"물, 기분 좋은 것, 이카리 사령관님."
"꽃, 같은 것들로 가득해. 필요 없는 것들도 가득해."
"하늘, 붉은 하늘, 붉은 색, 붉은 색은 싫어."
"흐르는 물, 피, 피 냄새. 피를 흘리지 않는 여자."
"붉은 흙으로 만든 인간. 남자와 여자로 만든 인간."
이 ‘레이의 독백’ 장면은, 쉽게 넘길 수도 있지만 제법 많은 의미와 수수께끼를 담고 있다. 다만 여기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바로 ‘피를 흘리지 않는 여자’라는 대목이다. 이에 앞서 그녀는 ‘물은 기분 좋은 것. 붉은 색은 싫어.’라고 했는데, 그녀가 담고 있는 물의 이미지는 또 따로 얘기할 부분이니 넘기는 걸로 하되, 그녀가 붉은 색을 싫어한다는 것은 조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워낙에 선호 대상이 분명하지 않은 소녀라, 이렇게 무언가를 지칭하며 ‘싫다’고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붉은 색을 싫어하는 걸까? 이 질문의 해답이 바로 ‘피를 흘리지 않는 여자’에 있다. 레이는 어떤 뜻에서 이런 말을 했을까? 우선 확실히 해 둘 것은, 레이도 피를 흘린다. 당장 1화에서, 그녀의 몸에 피가 났던 장면만 생각해도 알 것이다.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피는 다치면 흐르는 그 혈액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진짜 육체인, 릴리스가 피 대신 LCL을 흘린다는 사실을 암시한 부분으로도 볼 수 있지만, 2대 레이는 릴리스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피를 말하는 걸까?
아마 그것은, 여자가 흘리는 피, 즉 월경을 지칭하는 것일 테다. 레이는 어떤 이유에서 월경을 하지 않으며, 따라서 스스로를‘피를 흘리지 않는 여자’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바로 뒤의 독백에서 남자와 여자의 생식 과정으로 심상을 연결하는 걸 봐도 알 수 있으며, 그녀가 붉은 색을 싫다고 표현하는 것도, 생식 능력이 없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 기제로 보인다. 물론 ‘빨강이 싫다’는 건 좀 더 넓은 의미, 예컨대 아스카가 선호하는 색깔이 빨강임을 연계하여 그녀와의 대비를 강조하는 부분으로도 볼 수 있지만, 지금은 레이 자체를 조명하는 단계인 만큼 ‘피를 흘리지 않는 여자’라는 말이 담고 있는 월경 메타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겠다.
월경은 이름 그대로 달과 큰 연관을 맺고 있다. 월경은 달의 주기에 가깝기 때문에, 사람의 탄생이나 죽음과 함께 달의 영향을 받는 인간 현상으로 많은 문화권에서 신비화되곤 한다. 레이의 주요 이미지인 달과 직결되는 소재인 만큼 에반게리온 또한미약하지만 분명하게, 은유적인 선 안에서 다양한 월경 메타포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레이는, 월경을 하지 않으며, 신지가 자신의 가슴을 만졌을 때 감정 변동을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도, 생식 능력이 없는 그녀의 육체가 성에 대한 관념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째서?
뭐 하는 걸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더미 탱크 장면을 관찰해 보자. 사실 레이는 학교에 있는 시간과 파일럿 활동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LCL 용액이 가득 담긴 더미 탱크 속에서 지내고 있다. 2대 레이는 더미가 아니라 육체 안에 영혼을 담고 있는 어엿한 인간인데, 왜 계속 탱크 안에 잠겨야 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레이가 더미 시스템의 정보를 항상 최신으로 유지하기 위해,그녀의 기억 내지 사고 패턴을 주기적으로 전송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가설이지만, 나는 여기서 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주장을 꺼내려 한다. 저 더미 탱크가 바로, 레이에게서 생식 능력을 앗아간 주범이라는 것이다.
데스트루도 방사!
리뷰 20편에서도 설명했고, 또 다음 편에서도 다시 언급하겠지만, 레이의 몸은 보통 인간의 육체와는 다르다. 모든 리린은, AT 필드를 이용, 자아가 구상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LCL을 형상화하여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레이의 몸은 사도나 에반게리온과 같이 파동-입자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레이는 육체 안에 영혼을 담고 있어도 자신의 육체를 구성하는 메커니즘 자체가 인간과는 다르다. 23화에서, 리츠코가 레이 더미를 파괴하기 위해 더미 탱크 속에 데스트루도 에너지를 방사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데스트루도, 즉 안티 AT 필드 에너지를 일반 사람들에게 방출한다면, 그들의 LCL은 육체를 유지하는 힘을 잃고 엔드 오브 에바에서 묘사한 대로 액체 상태가 된다. 그러나 레이의 몸은 LCL 베이스가 아니기 때문에, 데스트루도 에너지를 받으면 육체가 환원되는 게 아니라, 23화의 레이 더미가 그랬던 것과 같이, 말 그대로 몸이 ‘부서지게’ 된다. 즉, 레이는 인공 리비도 및 데스트루도를 이용해 정신 에너지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지 않으면 그 육체를 유지할 수가 없다. 레이에게 있어 리비도 에너지란 자신의 몸이 분리되지 않도록 돕는 접착제와도 같은 셈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더미 탱크이며, 그 에너지의 조절을 리츠코 박사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코믹스에서는, 리츠코가 레이에게 ‘네가 몸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내 덕분이야.’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이 맞다. 결과적으로 레이의 육체를 유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리츠코의 일이니까. 레이는 식사를 거의 하지 않고, 항상 따로 챙겨 먹는 약이 있다.그 약의 확실한 용도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것이, 더미 탱크 밖에서도 레이가 오랜 시간 육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리비도 에너지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는 약물 요법이 아닐까 싶다. 그녀가 밥을 거의 먹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소화하여 그 에너지로 몸을 유지하지만, 레이의 육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다만 그 형체를 보존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AT 필드이다. 지금은 리츠코의 약물 요법으로 더미 탱크에 그렇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지만,초대 레이가 있던 당시엔 상황이 좀 달랐을 것이다. 그 땐 나오코의 도움도 없이, 아마 겐도우 스스로의 기술만으로 레이를‘보존’했을 것이며, 초대 레이가 탄생한 이후 오랜 시간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을 테다. 여기서 덤으로,앞서 나오코가 초대 레이를 교살하는 장면에서, 릴리스의 영혼을 온전히 가진 그녀가 어째서 AT 필드로 자신의 몸을 지키지 않았나, 하는 질문이 나왔는데, 지금이라면 답할 수 있겠다. 초대 레이는 인간에 의해 AT 필드의 발현 능력이 제어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엔드 오브 에바에선 레이가 겐도우 앞에 섰을 때, 그녀의 팔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연출이 있다.겐도우는 그런 레이를 보며 ‘시간이 없다. AT 필드가 더는 너의 육체를 유지할 수 없게 한다.’라고 말했다. 이제 이 장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리츠코는 더미 시스템을 파괴했고, 따로 제작한 약물도 바닥이 났다. 그리고 레이는 자력으로 AT 필드를 적정 수준으로 제어할 수 없는 상태였다. 특히나, 3대 레이는 자신의 육체에 대해 미약한 관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자신의 영혼이 기다리는 진짜 육체는 따로 있으니까.) 상황이 더욱 나빴을 것이다.
레이가 먹는 약
앞서 리츠코 박사가 더미 시스템을 파괴한 후 겐도우를 만나서, ‘내가 파괴한 건 더미가 아니라 레이예요.’라 말했는데, 그러고 보면 정말 맞는 말이다. 더미 탱크와 그녀의 도움 없이는 이제 아야나미 레이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레이는 겐도우 타입 보완 계획의 핵심이고, 결과적으로 겐도우는 서둘러 자신의 의식을 치르지 않으면 곤란하게 되었다. 리츠코의 배신을 제레의 작전이라고 설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겐도우는 롱기누스의 창을 달로 던져 제레의 작전을 망치려고 했지만, 반대로 제레는 또 리츠코를 통해 겐도우의 작전을 망치려고 했던 셈이다.
23화를 아우르는 세 개의 겁탈 이미지
또 제레의 리츠코 심문 과정에서, 그녀가 레이 대신 그 자리에 섰다면, 그리고 만약 제레가 그녀에게 행한 일이 본래 레이가 겪을(혹 어쩌면, 자주 겪고 있던) 일이었다면, 그것은 분명 성(性)적인 행위를 수반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것이‘레이’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할 것이며, 심하게는 그 특성을 ‘이용’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물론 그 상황을 굳이 강간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갈 이유는 없지만, 실제로 23화는 미사토와 신지, 사도와 레이(곧 언급할 부분이다.), 그리고 제레와 리츠코 사이의 ‘세 가지 겁탈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현실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작품 후반인 만큼,제레가 무슨 짓을 해도 결코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신지 "아, 오늘 청소할 때 걸레 짜고 있었지? 그 때, 뭐랄까 꼭 엄마 같은 느낌이었어."
레이 "엄마…?"
다시 원래 의제로 돌아가서 정리를 좀 하자. 레이에게 생식 능력이 없다는 것, 즉 그녀가 월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레이의리비도 및 데스트루도 에너지가 타의에 의해 제어되고 있는 탓으로 보인다. 실제로 여성의 월경은 리비도 에너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캐나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리비도는 월경 주기와 큰 연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리비도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고 일정 수준으로 그것을 제어하게 되면, 인간은 생식 능력 자체를 잃을 수 있다.
"응, 뭔가…엄마가 빨래하는 그런 느낌이었어."
"언젠가 레이는 좋은 주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15화의 이 엘리베이터 장면에서, 신지는 레이에게 너는 좋은 주부가 될 수 있을 거야, 하고 말했다. 여기서 신지가 레이에게서 어머니 유이를 느낀 근거에 대해선 다음 편에서 얘기하는 걸로 하고, 우선 레이의 여성성 결여를 중심으로 이 장면을 다시 보자. 아마 이 때의 레이는, 자신이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레이가 신지의 말(특히 ‘엄마’)에얼굴을 붉히며 당황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생식 능력이 없는 것이 그녀 스스로에게 하나의 콤플렉스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14화에서 ‘피를 흘리지 않는 레이’는 붉은 색이 싫다고 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신지의 말은 그녀의 아픈 구석을 건드린 셈이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하는 그녀의 반응은 따라서 ‘여러 의미로’ 부끄러움을 표현한 부분이겠다.
릴리스, 그리고 악마
아까 전설 얘기를 꺼냈던 이유, 이제 다들 알 수 있을 것이다. 에반게리온에서 흔히 악마로 비유되는 것은 바로 네르프이다.겐도우에 의해 레이가 생식 능력을 잃은 이 상황은, 전설 속에서 신에 의해 출산의 고통을 겪던 릴리스를 루시퍼가 ‘구원’했다는 이야기와 꼭 상통한다. 이렇게 전설을 설정으로 활용한 방법이 굉장히 재밌지 않은가!
아스카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거 아냐?"
레이 "…꿈?" "그래. 너…꿈 꾼 적 없어?"
"……."
마치기 전에 하나 더. 혹시 레이는 꿈을 꾸지 않는 게 아닐까? 19화의 아스카와 레이 사이의 꿈에 대한 대화를 듣고 있자면,레이는 어쩐지 꿈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눈치다. 사실 꿈이라는 건, 프로이트의 말에 따르면, 리비도의 주요 발현 경로이기도 하다. 즉, 리비도의 작용 과정이 정상적이지 않은 레이는, 아예 꿈을 꾸지 않거나, 꾸더라도 ‘평범한 범주 속엔 없는 경험’을 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그녀는 겐도우에 의해 생식 능력도, 꿈을 꿀 능력도 잃게 된 것이다.
의도적인 겁탈 이미지 연출
굳이 꿈 얘기를 하지 않아도, 인간 심리의 본연을 이루는 리비도와 데스트루도를 제어한다는 것은, 사람의 성격과 마음을 억지로 구기고 찢고 조종한다는 뜻이다. 정상적인 감정 표현을 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거다. 초대 레이의 일부가 영호기에 유폐된 탓에 2대 레이의 감정 표현이 어색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걸 떠나, 애초에 레이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느낄 능력 자체가 부여된 적이 없다. 꿈을 꾸지 않는 여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여자, 그리고 피를 흘리지 않는 여자, 그게 바로 아야나미 레이였다.
자세히 보면 양이 늘고 있다.
그런 레이에게 그녀의 ‘진심’을 가르친 것은 다름 아닌 사도였다. 자궁의 천사, 알미사엘 말이다. 알미사엘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킨 레이의 상기된 얼굴과, 사도를 코어에 담는 영호기의 모습은 23화가 담고 있는 세 가지 겁탈 이미지의 한 부분으로 자주 해석된다. 그런데 알미사엘이 레이의 마음에 침투했을 때, 사도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특정 부위에서 다량의 피를 흘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얼핏 그림자로 여기고 넘기기 쉬운 장면인데, 팔 부분의 그림자와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색깔을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그 양도 조금씩 늘고 있다. 이것은 알미사엘을 통해 안노가 상징적인 수준에서 월경 메타포를 연출한 장면으로 볼 수 있다.
레이 "이게…내 마음…?! 신지와 하나가 되고 싶은 거야?!"
알미사엘은 자신의 마음을 레이에게 건네는 동시에 레이의 마음을 받아 반대로 다시 그녀에게 ‘진짜 마음’을 가르쳐 줬다. 거대한 레이의 형상이 된 알미사엘은 신지가 탄 초호기로 향했고, 신지에 대한 사도의 행위는 2대 레이가 생각도 하지 않았던,성(性)적인 ‘애무’였다. 알미사엘의 힘을 빌려, 레이는 눈물을, 그리고 피를 흘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죽기 전에,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에반게리온] 28. 레이 ③ Soul's Refrain/에서 계속.
복제인간찡...ㅠㅠ |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