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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리로로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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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oop_6660
    작성자 : 리리로로
    추천 : 17
    조회수 : 2453
    IP : 121.162.***.15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4/01/02 13:44:48
    http://todayhumor.com/?poop_6660 모바일
    [단편소설] 버럭
    변비에 걸리신 분들께 바치는 글.
     
     
    - 버럭 -
     
    분노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원래 나는 좀처럼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웬만한 일에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좋게 웃어넘기곤 했다. 주위 사람들도 그런 내게 부처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내 마음속에는 화가 차오르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 화가 빵 터져 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 빈자리를 찾아 스며드는 진흙더미처럼 내 화의 구멍에는 새로운 화가 계속 채워졌다. 아마도 그 날 부터였던 것 같다. 내 안에 화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
     
    오늘도 별 다를 것 없는 월요일 아침이다. 오전 일곱 시에 울리는 휴대폰 알람을 반쯤 감은 눈으로 확인하고는 그 다음 반복알람 시간까지 다시 눈을 감고 있기로 한다. 정확히 십분 후, 알람이 다시 울리고 이번에는 눈도 뜨지 않은 채 손을 더듬거려 손끝의 감각으로 휴대폰 알람을 중지 시킨다. 오 분 정도 미루적거리다 일어나야지 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가슴팍에 붙인 채로 엎드려 앉아 막간의 불편한 휴식을 취한다.
     
    이제 일어나야지 하고 고개를 들어 벽시계를 확인해보면 일곱 시 십삼 분. 집에서 여덟시에 출발해야하니, 씻는 시간 십분, 머리 말리는 시간 십분, 옷은 저녁에 골라놓았으니 옷 입는 시간 삼분, 마스카라와 립스틱은 지하철에서 해결해도 되니 화장하는 시간 오 분 가량, 마지막 전신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다듬고 휴대폰, 집 열쇠를 챙기는데 오 분. 총 삼십삼 분. 일곱 시 이십칠 분부터 준비를 하면 된다.
     
    그때까지 남은 시간 십사 분. 여유롭다. 나는 다시 일분여의 계산 끝에 십삼 분정도를 다시 누워있기로 한다. 다리를 다시 바닥에 쭉 뻗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눈을 감는다. , 그냥 지금 일어날까. 아니야, 오 분만 더 있어야지. 그렇게 한껏 여유를 부리다 다시 시계를 보니, 일곱 시 삼십육 분이었다.
     
    "이런 씨."
     
    다시 망설임 틈 없이 책상위에 놓인 어제 쓰던 수건을 걷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다. 일단 아침을 알리는 모닝소변을 보고, 소변 줄기가 끊기기 전에 손을 뻗어 칫솔에 치약을 짜 올린다. 여기까지가 흔한 내 일상이다. 그런데 순간, 밑에서 신호가 왔다. 치약처럼 자신을 짜 내보내달라는 무언의 압박. 시간이 없었지만, 나는 그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신호는 한 방의 신호였기에 나는 칫솔을 내동댕이치고 두 손을 아랫배에 가져다댄 채 힘을 줬다.
     
    "허업!"
     
    이상했다. 평소라면 단번에 방을 뺐을 그들이 나오지 않았다. 아까보다 더 세게 힘을 줬다.
     
    "!"
     
    그러나, 그들 대신 나온 것은 형체도 소리도 없는 따뜻한 냄새뿐이었다.
     
    피쉬쉬식-
     
    장 속에서의 아우성과는 다르게 그들은 좀처럼 나올 생각을 안했다. 이대로 다시 팬티를 올리기에는 심상치 않은 신호였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머리 말리는 것을 생략하더라도 대략 4분 정도 밖에는 여유가 없었다.
     
    "으으읍!"
     
    본능적으로 다시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었지만 상태는 그대로였다.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괄약근의 주름이 다 펴질 때까지 두 볼기짝을 변기 밖으로 잡아 당겼다. 호흡을 고르고 온 정신을 하체로 끌어내리며 다시 세게 호흡!
    했지만, 결과물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엉덩이를 감싸는 따뜻한 기체보다 더 뜨거운 한숨을 내쉬며 치약이 반쯤 떨어져나간 칫솔을 입에 물고 바지를 올렸다. 묵직한 월요일의 시작이었다.
     
    "소희씨 일찍 일찍들 다니자, 우리."
     
    민 대리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내 방광을 자극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작은 소셜커머스 업체다. 기껏해야 홍대나 강남역 주변의 맛 집 따위와 제휴를 맺어 광고하는 곳인데 일은 차고 넘친다. 오전 아홉시 출근, 오후 여섯시 퇴근이지만 명목상 정해진 것일 뿐, 이곳 직원들은 밤 아홉시, 열시가 넘어서도 좀처럼 퇴근을 하지 않는다. 인력에 비해 일이 많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능력부족인 것도 한 몫 한다.
     
    나는 다행히도 정규직도 계약직도 아닌 시급을 받고 잡일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이기에 눈치 보지 않고 칼퇴근을 한다. 시간이 넘어서도 근무를 한 적이 몇 번 있긴 하지만, 당연히 따라올 줄 알았던 시간외 근무수당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칼퇴근을 할 때면 모두 부러운 눈빛 반, 따가운 시선 반으로 한 겨울 판잣집 쪽방마냥 차가운 인사를 건네는데, 그런 것쯤은 이미 무시한지 오래다.
     
    "죄송합니다. 아침에 배탈이 나서."
     
    나는 영혼 없는 대답과 동시에 배꼽인사를 꾸벅하고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 전원버튼을 누르고 부팅이 되는 사이 휴대폰 시계를 들여다보니 아홉시 이분. 만일 지하철이 들어올 때 뛰어 들어가서 탔다면 월요일 아침부터 개 짖는 소리는 듣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누굴 탓할 수 있으랴. 시간 못 맞춰 꾸룩거린 내 장을 탓할 수밖에. 순간,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다시 뱃속에서는 십만 장병이 저마다 무기를 들고 내 배를 들쑤시기 시작했다.
     
    "오자마자 어디가? 할 일이 산더미인데?"
     
    서른일곱, 그 흔한 애인도 하나 없는 민 대리의 모든 관심을 독차지하는 나는, 혹시나 이 여자가 내 사생 팬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 같았다.
     
    ", 배가 아파서."
     
    민 대리는 내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물에 젖은 종이컵마냥 흐느적거리는 내 두 다리를 확인하고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컴퓨터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망할 년……. !"
     
    민 대리의 애칭을 부르며 사방이 하얗게 막힌 나의 유일한 희열의 공간에서 겨털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정도로 내내 힘을 주었지만, 결과는 아침과 다르지 않았다.
     
    큰 숨을 내쉬고 화면보호기가 켜진 컴퓨터 앞에 마주 앉았다. 마우스를 아무렇게나 흔들어대며 책상 앞에 놓인 주간 업무 계획서를 훑어본다. 회의 준비, 업체 전화, 공금 관리표 작성, 지난 주 서류 취합, 사무용품 구비 신청서 작성 및 구입 이런 것들이 나의 대략적인 일이다. 매주 별반 다르지 않다.
     
     매일 반복되는 일은 지루하지만,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지루함 따위와는 충분히 바꿀 가치가 있다. 시급제 얼마 안 되는 푼돈이지만 45만원의 월세와 20여만 원의 공과금을 내고 나더라도 무려 35만원이라는 돈이 남는다. 여기서 6만원여의 교통비를 제외하더라도 남은 29만원이면 남부럽지 않은 부유함을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여유로운가.
     
    회사에서의 오전은 매우 빠르게 지나간다. 눈치껏 인터넷 웹서핑을 하다가 휴대폰을 몇 번 들여다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점심메뉴를 정하는 것이 직장인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라는 말이 있지만, 나에게 선택권은 없으니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그 또한 마음에 든다.
     
    "오늘 과장은 점심 먹고 들어오신 다는데 짜장면이나 시켜먹는 거 어때요?"
     
    까랑까랑한 민 대리의 제안은 그 날 메뉴 통보와 다름없다. 물론 이것은 삼일에 한번정도 출근하는 사장님을 배제하고 그 밑으로 있는 민 대리보다 네 살이나 어린 오과장이 없을 때나 통하는 일이긴 하다. 나는 기계적으로 중국집 메뉴가 적힌 전단지를 챙겨 직원들 자리마다 한 박자씩 머물러 회사 직원들의 입 냄새를 받아 적었다.
     
    "여기 서인빌딩 3층인데요, 짜 둘, 짬 둘, 볶 하나요. 카드 계산할게요."
     
    이렇게 매우 능숙한 솜씨로 점심을 주문할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프로패셔널한 점심셔틀이 된 기분이랄까. 실제로 나는 면접 때 업무 중 가장 자신 있는 것을 말해보라는 과장의 말에 '점심 주문'이라고 대답했고, 어이없게도 그 때문에 합격했다. 그래서인지 이 분야에서 만큼은 회사사람들 모두가 날 인정하는 분위기다.
    허겁지겁 비워낸 납작한 접시에는 밥풀 몇 알만이 굴러다녔다. 숟가락으로 남은 몇 알까지 긁어먹으려다 일전에 민 대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소희씨. 없어 보인다. 내가 남긴 거 먹던가."
     
    차가운 도시여자처럼 먹다 남은 짬뽕 그릇을 휙 밀어주던 그녀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며 겨우 숟가락을 내려놨다.
     
    "이제 밥들 먹었으니, 일들 합시다. 나는 은행업무 좀 보고 올게요."
     
    밥들을 먹었으니, 일들을 하자는 민 대리의 말이 속사포 랩처럼 귀에 꽂혔다. 빈 그릇들을 정리해서 내놓고는 엉덩이가 다 헤진 의자를 당겨 앉았다. 늘 그렇듯이 포만감에 졸음이 쏟아졌다. 눈치껏 손은 키보드위에 올려놓고 고개는 까딱까딱 위험한 낮잠을 청하는 그 때, 내 배에 다시 따끔 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 또 시작인가. 신호가 왔을 때 빨리 가야한다. 이번이 벌 써 세 번째. 이 기회를 놓치면 오늘을 넘길 수도 있다. 이건 나의 27년간 축적된 직감이자 육감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을 향하려는데 배 언저리에 뾰족한 무엇이 눈에 들어왔다.
     
    "졸지들 말고 일들 해."
     
    민 대리였다. 어느새 은행 업무를 마치고 돌아왔는지 볼펜을 까딱거리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따끔한 그것은 그들의 신호가 아니라, 내 낮잠을 처단하려는 민 대리의 볼펜 공격이었던 것이다. 허탈했다. 멋쩍은 표정으로 자리에 풀썩 주저앉자마자 다시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런 씨. 해도 해도 너무하네란 생각으로 뒤를 돌아봤지만, 민 대리의 때리기 좋은 뒤통수만 보였다. 이번에는 진짜 그들의 신호였다. 반가움 반, 두려움 반으로 나는 후다닥 자리를 뛰쳐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퇴근 길 지하철은 그야말로 지옥철이다. 자신의 저녁메뉴를 알려주기라도 하듯 여기저기서 내뿜는 트림은 이제 고향의 내음처럼 느껴진다. 아침에는 분명 샤넬넘버 파이브를 뿌리고 왔을 법한 미니스커트 아가씨의 머리에서는 참이슬 넘버 투병의 냄새가 난다.
    퇴근 시간이 평소보다 한 시간 가량 늦은 것은 그들과 단판을 짓고 가겠다는 나의 굳은 결의 때문이었다. 하지만 괄약근의 얼얼함 말고는 별 소득 없이 회사를 나와야 했다. 아랫배의 불편한 기운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으며, 때문에 좀처럼 땀을 흘리지 않는 내 등 뒤의 땀도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여기서만 혼자 생활한지도 올해로 삼년. 이미 이 길에 익숙해졌으며, 그 간 자신의 제 3의 자아를 흔들며 돌아다니는 키 작은 중년의 아저씨를 본 것만 빼면 위험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식은땀은 그칠 줄 몰랐고, 내 발은 멈출 줄 몰랐다. 소장과 대장들의 현란한 탭댄스와 더불어 방광의 문 워크가 고스란히 뱃속의 가죽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만삭의 산모가 느끼는 아이의 발차기가 이런 느낌일까.
     
    집까지의 거리 앞으로 이백 미터 가량. 전성기 때 백 미터 달리기 기록이 25초이니, 전력질주를 한다 해도 뒷심이 빠지는 걸 고려할 때, 예상도착 시간 일분정도로 추정. 그러나 지금은 전력질주를 할 수 없는 몸 상태임을 감안하면 삼분이 될지, 오 분이 될지 불투명하다. 이 상태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은 앞으로의 쪽팔림을 무릅쓰고 이 자리에서 팬티를 내리거나, 엉덩이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걸어 들어가 삼일동안 없어지지 않을 냄새와의 사투를 벌이는 것뿐이다.
     
    나는 기도했다. 앞으로 닥칠 어떠한 시련도 웃으며 불평불만 없이 넘길 테니, 제발 이 고비를 넘기게 해달라고. 무사히 집안 화장실까지, 아니 그냥 집 안까지만 도착하게 해준다면 남은 인생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빌었다.
    그리고 순간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험악하고 잔인한 고문은 생리현상을 막는 것일 거라고. 흑인 인권운동가인 넬슨 만델라의 27년간의 감옥생활에서 만일 똥참기 고문이 있었다면 단언컨대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잡생각으로 아랫배에 집중된 신경을 분산시키려 노력했지만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왼다리의 무릎은 땅바닥을 격하게 찍었고, 오른발 뒤꿈치는 본능적으로 그들의 탈출구를 차단했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흘끗거리며 쳐다봤다.
    주차되어 있는 차 서너 대, 음식물 쓰레기통 한개, 헌옷 수거함, 전봇대, 어슬렁거리는 똥개 한 마리가 전부다. 차 뒤에 몸을 숨겨 볼 일을 보자니, 바로 아래 가로등과 CCTV가 있었고, 음식물 쓰레기통 뒤로 가자니, 쓰레기통으로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나 때문에 더러운 운명까지 안고가게 하고 싶진 않았다. 헌옷 수거함도 최적의 장소는 아니었다. 전봇대가 좋겠다고 생각한 찰나 지나가던 똥개가 다리 한 짝을 하늘로 뻗어 올리며 쫄쫄거리는 소변줄기로 자신의 구역임을 알린다. 그래. 내가 아무리 급해도 상도덕이 있지. 네 구역은 안 건들마.
     
    다시 호흡을 고르고 오른발 뒤꿈치를 천천히 떼 본다. 조금은 참을 만 한 것 같기는 염병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재빨리 구멍을 막고 헛웃음을 짓는데, 지금 있는 곳에서는 집보다 칠십 미터 정도 가까운 곳에 놀이터가 있음을 떠올렸다. 지금 내겐 한 발짝이 아쉬운 상황이다. 집과는 반대방향이지만, 열쇠로 구멍이 뻑뻑한 현관문을 여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집으로 가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나는 오직 살기 위해 잘 알지도 못하는 반야심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제아제 바라아제발제발 살려주셈'
     
    신은 있는 것인가. 뱃속의 그들이 공격의 간격을 늦추었다. 이때다. 나는 망설일 틈도 없이 놀이터 쪽으로 몸을 내던졌다. 달리는 사이 밑으로 흘러내릴 것 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여기서 멈추면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제발제발아제아제 마하반야바라밀다밀다!!"
     
    부처의 도움으로 나는 무사히 놀이터 화장실 변기에 안착할 수 있었다.
     
    "으어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괴성을 지르며 괄약근의 힘을 풀었다.
     
    - 푸허라라허라라푸시시식
     
    '뭐야.'
     
    겉을 맴돌던 잔여물들만이 변기 아래로 힘없이 떨어졌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어느 알코올중독자의 말처럼 한 방에 그들을 내몰 수 있다고 생각한 내 어리석음을 깊이 반성하며 나는 다시 무아지경의 상태로 돌입했다.
     
    그러기를 십여 분. 더 이상 내겐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항문이 얼얼했고, 그들의 탈출구 주변은 하도 잡아당기는 바람에 찢어질 듯 아렸다. 엉덩이 힘에 눌린 두 다리는 피가 통하지 않아 남의 살을 만지는 것처럼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두 손으로 한쪽 허벅지를 들어 올리자 싸하고 퍼지는 혈액의 흐름이 느껴졌다. 다시 반대쪽 다리를 들었다 올리자 순환이 멈춰 상반신 쪽에 몰려있던 피들이 우르르 밑으로 달음질쳤다. 지징거리는 두 다리를 조금씩 움직거리자 양 미간은 틀니 빠진 할미의 입처럼 쪼그라들었고, 저절로 위아래 어금니가 상견례를 했다. 오랜 사투 끝에 얻은 것은 기분 나쁜 발가락 끝의 톡톡거림뿐이었다.
     
    변기에서 일어나 빠져나간 그들을 바라보았다. 액체가 거의 들어있지 않은 스포이트를 억지로 푸식거린 듯 여기저기 흩뿌려진 잔여물이 전부였다.
    힘없는 손끝으로 레버를 아래로 누르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반쯤 꼬여 올라간 팬티 한쪽이 거슬렸지만 잡아 뺄 힘도 없었다. 허탈하게 화장실문을 열고나와 세면대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땀에 들러붙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처량해보였다. 대충 손을 씻고 나와 놀이터 구석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집에 갈 생각도 기운도 없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로 오기 삼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사람들에게 말해도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를법한 지방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시골에서 의무교육을 마치고, 그나마 시내에 있는 전문대를 졸업했지만, 사람도 얼마 없는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동창들 중에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와 서울에 있는 괜찮은 직장을 잡아서 잘 먹고 잘살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나도 무작정 부모님을 졸라 월세 방을 얻어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역시 생각만큼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턱하니 좋은 회사로 들어갈 낙하산을 안겨줄 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백은 커녕 내 나잇대 여자들이 들고 다니는 명품 백도 없었다. 처음 서울에 온 목표는 그저 그 곳을 탈출하는 것이었고, 서울에 얼마나 좋은 직장을 구하냐는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 생긴 두 번째 목표는 가끔 만나는 친구들의 손에 들린 명품 백을 사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했지만, 업종은 중요하지 않았다. 때문에 대학교 전공인 광고홍보학을 고려해 직장을 잡지 않아도 됐다. 무조건 돈을 많이 주는 곳을 찾다보니, 주로 밤에 하는 일을 하게 됐다. 밤일이라면 조금 어감이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내 몸을 재료삼아 하는 일은 아니었다. 호프집에서 서빙을 하거나, 비교적 시급이 센 PC방 야간 알바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밤낮없이 일했지만, 돈은 생각보다 쉽게 모이지 않았다. 몇 달에 걸쳐 겨우 이백만원이라는 돈을 만들었고, 원하던 명품 가방을 샀다. 오랜만에 다시 모인 친구들과의 자리에 그 가방을 들고 나갔지만, 친구들은 이번에는 각자 회사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복지가 어떻다는 둥, 사대보험이 어쩌구에, 연봉은 블라블라. 더군다나 친구들은 내 가방에 대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얼마냐고 물어볼 법도 한데,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친구들 옆을 슬쩍 보니 가방을 사려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봤던 내 것보다 백만 원쯤은 더 비싼 그 가방들을 모두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더군다나 지난번에 봤던 그 가방들이 아니었다. 목표를 가방으로 잡은 내가 한심했다.
     
    그리하여 세 번째 목표는 열 명에 세 명쯤은 부러워할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되었다. 그 부러움의 이유가 복지가 됐던, 연봉이 됐던, 사내의 멋진 사내가 됐던. 하지만 그 목표를 잡고 벌써 이 년째, 나는 이렇다 할 직장을 잡지 못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었지만, 만날 때마다 고등학교 때 추억을 안주삼아 얘기하는 것도 한때였다. 친구들은 오히려 그 시절을 자꾸만 회상하는 것이 불편한 눈치였다. 모두다 직장인이었기에 친구들은 직장얘기와 직장에서 연애한 얘기, 직장상사 얘기뿐이었다.
     
    어쩌다 화장품 얘기나 가방얘기를 하긴 했지만, 근근이 아르바이트로 먹고사는 나는 그런 대화에서 뒤쳐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만남 속에서도 내가 어깨 펴고 떵떵거리며 혼자 십분 넘게 떠들 수 있는 주제는 바로 '변비'였다. 모두 장시간 오래 앉아서 하는 사무직을 하다 보니 변비는 어느새 이웃보다 더 가까워져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변비라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줄 몰랐고, 겪어본 일이 없었다. 나는 번듯한 직장은 없지만, 튼튼한 직장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친구들 앞에서 당당히 똥 잘 싸는 법에 대해 말해줄 수 있었다. 사실, 똥을 잘 싸는 법이란 없었다. 나는 그냥 생활하던 대로 생활했고, 그 생활 속에 쾌변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뿐이니까. 하지만, 나는 조금 과장해서 물을 하루에 얼마를 마셔야하고, 잠은 얼마나 자야하며, 어떤 음식이 좋고, 심지어 화장실에서 부를 수 있는 똥 잘나오는 노래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꼬부랑~하는 노래 알지? 이거 부르면 꼬! 할 때 배가 자극돼서 그냥 술술 나와. 꼬부랑 고갯길을 슬라이딩 하듯이. 한번 해봐 들."
     
    이 노래는 변비 걸린 27살 아르바이트생이 월요일 내내 회사 화장실에서 망할 놈들을 쥐어짜며 부른 노래이기도 하다.
    그 후로 가끔씩 동창들에게서 전화가 올 때면 대단하다는 말을 듣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이라며 겸손한 어투로 얘기했지만 전화를 받고 있는 어깨는 으쓱했고, 표정은 거만했다. 이쯤 되면 변비퇴치사로 공식승인을 받아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나의 치료방법이 친구들에게 널리 퍼져 변비고민으로 날 찾는 친구들의 전화는 뜸해졌고, 모임에서도 변비에 관한 이야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때문에 나는 다시 의기소침해졌고, 며칠 전 모임에서는 커피숍 구석에 처박혀 몇 마디 입을 떼지도 않고 집에 돌아왔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앉아있으니 배의 알싸한 기운도 사라졌고, 밤이 깊었기에 놀이터 벤치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섰다. 그런데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아까 내 앞에서 당당히 영역표시를 하던 똥개였다.
    그 똥개는 어슬렁어슬렁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떠도는 하이에나처럼 놀이터 모래바닥에 코를 처박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집도 없이 길거리를 떠돌다, 흙먼지 섞인 음식 부스러기로 겨우 끼니를 때우는 꼴이라니.
     
    그 모습은 넓디넓은 서울하늘아래 내 집 한 칸 없이 홀로 나와 침대하나 책상하나 겨우 들어가는 월세 방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식비를 줄이려 아침은 거르고 회사에서 제공되는 식대로 점심시간에 꾸역꾸역 한 톨 남기지 않고 뱃속에 밀어 넣고는 저녁은 대충 편의점 삼각 김밥이나, 컵라면으로 삼년이란 시간을 보낸 내 꼬락서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주섬주섬 가방을 뒤져 언젠가 먹다 구겨 넣은 과자봉지를 꺼내 똥개에게로 다가갔다.
     
    "우쭈쭈. 이리와. 착하지?"
     
    착한 개는 아닌 것 같다. 게다가 목줄도 없는 걸 보아하니, 주인도 없는 듯 했다. 듬성듬성 털이 뭉친 똥개가 내 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다. 눈높이를 맞추려 쭈그려 앉아 몇 번이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애타게 불렀지만, 계속 코를 땅에 처박고 킁킁 거릴 뿐 내 쪽으로는 시선 한 번 옮기지 않았다.
    나는 쭈그려 앉은 상태로 힘겹게 발을 떼고 천천히 똥개에게로 다가갔다.
     
    "우쭈쭈"
     
    출처도 족보도 없는 우쭈쭈 소리를 주문처럼 외우며 드디어 똥개와 가까워졌다. 그런데 그때, 그 개는 나를 한번 흘끗 보더니 나처럼 쪼그려 자세로 엉덩이를 낮추며 뒷다리를 한껏 벌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
     
    나의 원망 섞인 외침에도 똥개는 끙끙거리며 배설물을 뽑아내는데 열중했다. 나는 왠지 모를 허탈함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똥개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똥개는 꽃게처럼 주춤주춤 옆걸음질을 치면서도 모랫바닥에 닿을 듯한 엉덩이는 끌어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 모양인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힘겨워 했다. 똥개의 엉덩이 끝에는 그들이 배꼼 고개를 내밀었지만, 좀처럼 몸통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마저 오늘의 내 모습과 닮아있었다.
     
    나는 양발을 끌어올려 엉덩이를 바닥에서 떼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어느 샌가 똥개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었다. 똥개는 불안한 듯 눈치를 보면서도 눈알이 튀어나올 듯 사력을 다했다. 그러기를 오 분여, 똥개의 눈알이 튀어나오기 직전 그들의 큰 몸통이 먼저 튀어나왔다. 똥개는 다시 달달 떨리는 다리를 끌고 옆 걸음질치며 마지막 힘을 줬다. 눈 깜짝할 새 그들은 모래바닥에 처참하게 널브러졌고, 똥개는 그들과 나를 한 번씩 번갈아 쳐다보더니 유유히 놀이터 밖으로 사라졌다.
     
    "개새끼……."
     
    나는 허탈함에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똥개만도 못한 년이 되는 순간이었다.
    흙먼지로 얼룩진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애꿎은 변기커버만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다가 변기를 잡고 울어버렸다. 한참을 울다 옷을 하나씩 벗어 화장실 문밖으로 내던졌다. 샤워기 온도를 맞춰 물을 틀고는 멍하니 거울을 들여다봤다.
    차가운 물방울이 내 몸 여기저기를 때린다. 순간 내 양팔에는 소름이 돋았다. 물줄기를 피하려 몸을 베베 꼬아 봐도 발바닥을 적시는 욕실바닥의 흥건한 물 때문에 추운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 허나 잠깐이었다. 샤워기의 물줄기는 곧 따듯하게 바뀌었고, 거울에는 어느새 김이 서렸다. 몸도 후끈 달아올랐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뚱이를 아침에 쓰다 던져놓은 덜 마른 수건으로 대충 닦고는 침대 위로 몸을 날렸다. 휴대폰 시계는 어느새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지금 잠을 청하면 잠드는 시간을 제외하고 12시부터 잠에 빠져들겠지. 아침에 일곱 시 삼십분에 일어나야 하니 일곱 시간 반 정도를 잘 수 있다. 잠을 일곱 시간 반을 자던 여섯 시간 반을 자던 내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음날이 화요일이라는 것을 곱씹으며 이불로 한숨을 덮었다.
     
     
    오늘도 별다를 것 없는 화요일 아침이다. 금요일이 되려면 삼일이나 남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뱃속의 묵직함 때문인지 몸은 쉬이 일으켜지지 않았지만, 늘 하던 대로 화장실에 들어가 모닝소변을 보며 치약을 짜고 머리를 감고 대충 책상위에 던져놓은 옷을 껴입고 출근을 했다.
     
    "소희씨. 일찍 좀 다니자. 우리."
     
    변함없는 민 대리의 잔뜩 날 선 인사에 나는 영혼 없는 배꼽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 전원버튼을 키며 시계를 들여다보니 여덟시 오십팔 분. 원래 출근시간보다는 이분이나 빨리 도착했지만, 민 대리의 아침인사는 변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민 대리의 인사가 지겨워져 도대체 어디까지 그런 인사를 할까하고 한 시간이나 일찍 출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민 대리는 은행 현금 인출기가 고장 나서 늦어진다며 삼십분 가량 늦게 출근을 했고, 나는 이곳에 들어온 지 6개월이 지났지만 민 대리의 색다른 인사를 들어본 적은 없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결국 모닝소변 말고는 볼일을 보지 못했지만, 그런대로 있을만했다. 불안한 기운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지만 일에 열중할 때는 그런 사실조차 잊을 만큼 자연스러운 상태였다.
     
    "오늘은 오랜만에 우리 건물 일층에 있는 대구탕집이나 갈까요? 나는 잠깐 은행 좀 들렀다 갈 테니 정리들 하고 십오 분 후에 봅시다, ."
     
    정리들 하고 봅시다 들이란 민 대리의 힙합 라임 같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프로패셔널한 점심셔틀인 나는 재빨리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기 3층인데요. 대구탕 다섯 개요. 십오 분 후에 내려갈게요."
     
    오늘도 어김없이 임무를 멋지게 성공한 나는 한껏 높아진 어깨를 다독이며 나가기 전까지 남은 일을 처리하려 다시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런데, 그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어스름한 새벽 땅바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아지랑이처럼 그들은 서서히 내 배를 향한 공격의 강도를 점점 높여갔다.
     
    ""
     
    망설일 틈 없이 나는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뛰었다.
    우리 회사 건물 3층에 있는 여자 화장실은 총 세 칸. 그 중 화장실 문을 기준으로 맨 끝 칸이 다른 칸보다 조금 더 넓고 구석져있기에 내가 자주 애용하는 칸이다. 어제는 갈 때마다 그 칸이 누군가에 의해 점령당해있었기에 여러 번에 걸친 응가아웃 프로젝트는 모두 실패로 끝났었다. 그곳을 응가의 안식처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나는 혹시나 오늘도 누군가 있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맨 끝 칸의 문은 내게 들어오란 듯이 활짝 열려있었다.
     
    "으어어"
     
    나는 또다시 정체불명의 추임새를 넣으며 변기를 엉덩이로 부술 기세로 자리에 안착했다.
    이번만큼은 성공해야 한다. 나는 초조해졌다. 안전한 장소에 왔기 때문인지 뱃속의 파동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돼…….'
     
    간절했다. 나는 두 손을 합장자세로 모으고 상체를 무릎에 닿을 듯 숙이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배에 압력을 가했다. 뱃가죽은 점점 등가죽을 향해 기어가고 있었고, 두 발은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좀비마냥 서서히 일어섰다.
     
    '조금만 더. 조금만…….'
     
    어제 오늘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히던 응가괴물들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쿵콰앙
     
    그런데 그때였다. 누군가 화장실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머리를 빠끔히 내밀던 그들이 누군가의 등장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오락실 입구에 있는 두더지기계라도 빙의된 듯 다시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씨.'
     
    누구인지 모를 누군가는 내가 있는 칸 앞에서 구둣발을 또각거리다가 이내 세 번째 칸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물 내리는 소리를 끝으로 화장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나갔나?'
     
    너무 고요한 적막에 누군가가 화장실문을 나섰다고 판단한 나는 다시 힘을 주려 배에 힘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곧이어 어디선가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
     
    목소리는 희미했지만 떨려왔고, ''란 소리는 정확히 귀에 박혔다.
    화장실 안에서 구슬프게 꼬꼬거리는 이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소리의 정체가 궁금해진 나는 괄약근을 힘껏 조이며 그 소리에 집중했다.
     
    "!부랑..꼬오! 부우랑"
     
    그 소리는 바로 내가 어제 하루 종일 회사 화장실에서 읊조리던 변비퇴치노래였다. 이 노래를 어떻게 알았을까. 내 방법이 돌고 돌아 내가 있는 곳까지 돌아온 건가. 옆 칸에 거의 귀를 붙이다시피하며 나는 더욱 집중했다.
    노랫소리는 점점 커졌고, 중간 중간 그 여자의 것으로 추측되는 휴대폰의 진동소리는 그 노래에 박자를 맞추는 일정한 간격으로 지징 거렸다. 여자의 구슬픈 꼬꼬소리는 계속됐지만, 변기 밑으로 몸을 던지는 그들의 퐁당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결과물은 없는 듯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옆 칸 여자는 버럭 하며 울분에 찬 목소리를 토해냈다.
     
    "씨발"
     
    그리고는 계속되는 진동소리에 목을 두어 번 큼큼 풀더니 이내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 지금 가. 아니, 은행 현금인출기가 고장이 나서 인출이 안 되네. 금방 갈게. 먼저 식사들 하고 있어들"
     
    식사들 하고 있어들 이란 힙합라임이 다시 내 귀에 와서 꽂혔다. 민 대리다. 나는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합장하던 손을 풀어 입을 틀어막았다.
    민 대리는 한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는 신경질적으로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더니 이내 신경질적으로 또각거리는 구두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제야 나는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떼며 침이 화장실문을 다 적시도록 푸학거렸다. 이렇게 웃어본 것이 얼마만이던가.
    잠깐의 쾌락을 맛본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첫날밤 옷고름 풀듯 조심스레 괄약근의 힘을 풀었다. 그리고 목젖을 떨며 꼬!라고 내뱉으려는 그 순간, 그들은 버럭 거리며 내 안을 빠져나갔다.
     
    -버럭! 푸드드득 푸득득 푸드드드드드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내 안을 빠져나오려 화려한 날갯짓을 했다. 내 안에 있던 화난 비둘기 떼들은 힘차게 낙하했고 곧이어 엉덩이 밑으로 퍼지는 따스한 온기는 내 온몸을 감쌌다.
    알 수 없는 승리감에 도취된 나의 입 꼬리는 점점 올라가 금방이라도 화살이 발사될 듯한 활시위처럼 변해갔다.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그들이 발산한 분노를 확인하며 조심스레 화장지를 둘둘 말아 뜯고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구석에 고여 있는 그들의 화를 천천히 닦아냈다.
    그리고 이내 지징거리는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액정에는 '은행냄새같은년'이라는 발신자 명이 표시됐다. 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 대리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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