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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art_4207
    작성자 : 리리로로
    추천 : 23
    조회수 : 2254
    IP : 182.218.***.205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2/07/21 18:10:42
    http://todayhumor.com/?art_4207 모바일
    [단편] 신발없는 나라

    신발 없는 나라

     

    그 날의 꿈을 꾼다. 아무도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심상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한번 흘끗 보더니 곧 발을 살폈다. 내가 신발을 신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자 모두 고개를 획 돌려 하던 일에 다시 열중했다. 나는 바닷물에 젖은 옷자락을 쥐어짜며 그곳에 발을 내딛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촉이었다. 얼핏 보면 황토빛 물이라고 착각될 정도로 입자가 매우 미세한 모래였다. 한걸음씩 뗄 때마다 물위를 걷는 듯 발바닥이 출렁였다.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제 나도 행복해 질 수 있겠지.

     

    어릴 적 나는 신발을 신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다. 놀이터에 놀러나갈 때나 잠깐 슈퍼 심부름을 갈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유치원에 갈 때도 신발을 신지 않겠다고 떼쓰기도 했다. 그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달라지지 않았으며, 결국 이런 나의 버릇을 고칠 극단의 조치로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엄마는 반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합동 연극을 했다.

     

    “선영아. 신발을 신지 않으면 바닥에 있는 병균이 발톱사이로 들어가서 발이 썩게 돼. 그럼 어쩔 수 없이 병균이 더 퍼지기 전에 두 발목을 잘라야 해.”

    “너 신발 안 신고 오면 우리는 너랑 안놀 꺼야.”

     

    나는 그 후부터 꼬박꼬박 신발을 신는 착한 아이가 됐다. 놀이터에 놀러나갈 때도 슈퍼 심부름을 갈 때는 물론, 학교에 갈 때도 신발을 꼭 챙겨 신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착한 아이가 된 탓에 집에 와서도 신발을 벗지 않게 됐다. 거실에서 TV를 볼 때나 부엌에서 밥을 먹을 때, 침대에서 잠을 잘 때도 절대 신발을 벗지 않았다. 엄마와 선생님은 이번엔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는 거라며 가르쳐주셨지만, 더 이상 신발은 벗을 수 없는 것이라고 인식해버린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중ㆍ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간간히 발이 커져 신발을 바꿔 신을 때만 빼고는 여전히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신발을 벗지 않았다. 처음엔 나의 이런 점을 모르던 친구들은 나에게 살갑게 대했지만, 수련회를 한번 다녀오고 나면 내 주위에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다 내내 외톨이였던 내게 대학교에 입학해서 한명의 친구가 생겼다. 이런 나의 특이함을 동경하고, 나의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좋아한다는 진우였다. 그때부터 나는 신발을 벗지 않고도 남들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

     

    15년 동안 내방은 줄곧 흙투성이였지만, 엄마도 더 이상 정신과에 데려가기 보다는 내 방에 비닐 한 장을 더 깔아주셨다. 이렇게 모든 것은 순조롭게 변했고 신발을 벗지 않는 다는 것 빼고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매년 여름은 정말 곤욕스러웠다. 더운 여름 신발 안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 차, 이러다 금세라도 배고픈 짐승의 먹이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의 구수한 냄새가 났다. 다시 그런 여름이 찾아왔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좋아한다던 진우도 결국, 샌들도 신고 예쁜 색색 깔의 구두를 매일 바꿔 신는 어떤 여자와 팔짱을 끼고 홀연히 내 곁을 떠났다. 이틀에 한번씩 바뀌던 내방 바닥 비닐도 이젠 한달에 한번 겨우 바뀌었다. 나의 삶은 다시 비정상적으로 흘러갔다.

     

    나는 슬펐다. 신발을 벗으면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신발을 벗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있는 모든 상황이 썩어버릴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살아야 하는데. 살아있기에는 슬프고 무서웠다. 그래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외로움과 두려움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죽음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사이트를 검색했다. 하지만 아무리 검색을 해도 ‘생명은 소중합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자살예방센터, 상담센터등의 사이트들만 나타날 뿐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생명이 소중하다고? 웃기고 있네. 나는 화가 나서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두서없이 키보드에 아무렇게나 두드렸다. 그때 페이지가 새롭게 바뀌더니 어느 사이트에 접속이 됐다. 성인사이트나, 그냥 광고 사이트겠지. 대수롭지 않게 창을 끄려는데, 한 문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신발이 없는 나라]

    분명 그곳에는 신발이 없는 나라라고 적혀있었다. 사진도, 살펴볼 수 있는 메뉴도 아무것도 없고 다만 게시 글이 하나 적혀있었다.

     

     

    이곳은 신발이 없는 나라입니다. 이곳은 걱정이 없는 나라입니다. 누구나 환영합니다. 신발이 없는 나라에 오는 여객선은 매달 셋째 주 일요일 오후 10시에 운항됩니다. 인천여객터미널 제2국제여객터미널에 있는 하얀 배를 타세요. 감사합니다. -신발이 없는 나라-

    *주의 사항 : 절대 신발을 신고오지 말 것. 가져오지도 말 것.

     

    정말일까?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그런 나의 의심이 기분 나쁘기라도 한 듯 쾌쾌한 발 냄새가 더욱 심하게 올라왔다. 운동화를 내려다봤다.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만에 새로 바꿔 신은 까만 운동화다. 발을 꿈틀거려봤다. 더 심하게 냄새가 올라왔다. 움직일 때마다 운동화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내 발은 구정물이 낀 것은 둘째 치고, 검은 물집들이 곪아 터져 흡사 곰팡이 비슷한 모양으로 굳은 딱지 투성이였다. 그것은 그동안 곪아터진 삶의 흔적이기도 했다. 눈물이 났다. 신발을 벗고 싶었다. 신발을 벗을 수만 있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해질 수 있을까. 나는 떠나야 했다. 그리고 셋째 주 일요일까지는 삼일만 기다리면 됐다.

     

    밤 9시 인천여객터미널은 생각보다 붐볐다. 일본에서 막 도착한 단체 관광객들은 지나가면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몰래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제 나도 평범해 질 수 있다. 하얀 배만 찾으면 된다. 하지만 정박된 모든 배는 하얀색이었다. 배마다 기웃거리며 돌아다녀봐도 도대체 뭘 타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 장난으로 만들어 놓은 사이트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계바늘은 어느새 10시에 가까워졌다. 포기해야하나. 한숨을 크게 뱉었다. 이제는 숨에서도 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내 인생은 이런 냄새가 나는 걸까.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이봐요.”

    “네?”

    “신발이 없는 나라에 가쇼?”

     

    그 말에 그의 얼굴보다 발에 먼저 눈이 갔다. 맨발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얼굴을 봤다. 머리를 짧게 자른 마흔 정도 돼 보이는 남자였다.

     

    “아, 네.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긴. 맨발이니까 알았지. 어서 타쇼. 출발시간 다 됐수다.”

     

    남자의 성의 없는 말투와 험상궂은 인상에 망설여졌다. 남자는 앞서 걷던 걸음을 멈추고 힐끗 뒤돌아보더니 소리쳤다.

     

    “안갈 거요? 그 발로 다시 돌아가는 것보다 같이 가는 게 좋을 거요.”

    남자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발을 떼며 남자를 따라갔다. 차갑고 딱딱한 아스팔트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졌다. 작은 유리파편이 발바닥을 찔렀다. 아팠지만 나는 계속 남자를 따라 걸었다. 남자는 하얀 배에 올라탔고, 나도 따라서 올라타자 곧 배가 출발했다. 배 안에는 뒷모습만 보이는 선장 말고는 나와 남자뿐이었다. 남자는 따라오라는 손시늉을 하고 작은 여객실로 나를 안내했다.

     

    “여기서 한숨자고 일어나면 도착해 있을 거요.”

     

    남자는 짧게 한마디 던지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그리고 밖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열쇠 돌리는 소리에 놀라 뭐라 말하려고 하자 남자가 문밖에서 다시 말을 이었다.

     

    “괜한 걱정 말고 잠이나 자쇼.”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말하기를 포기하고 간이침대에 걸터앉았다. 두 평 남짓 되는 매우 비좁은 공간이었다. 사방이 막혀 바깥을 내다볼 수도 없었다. 탁자 위에는 약간의 먹을거리가 있었고, 그 아래는 요강이 놓여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행동에 옮길 겨를도 없이 이번에는 바깥에서 불까지 끈 모양이었다. 주위가 금세 암흑으로 변했다.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침대에 누웠다. 두 시간 전 방에 벗어두고 온 까만 운동화가 생각났다. 머릿속도 까맣게 변했다. 눈이 감겼다.

     

    활짝 열린 여객실 문으로 빛이 들어왔다. 남자는 벽 안쪽을 막대기 같은 것으로 쿵쿵 두드리며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쳤다. 얼마나 잔 것일까. 부스스 일어나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일곱시다. 아침일까. 저녁일까.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매만지고 탁자위에 있는 빵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여객실 밖으로 나왔다. 바로 30m 앞에 보이는 섬에는 ‘신발 없는 나라’라고 써진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었다. 이곳이 그곳인가. 어리둥절해있는 나를 누군가 잡아 올렸다. 남자였다. 남자는 나를 번쩍 들어 그대로 바다에 던졌다.

     

    “다 왔수다. 허우적 대지 말고 걸어가쇼.”

     

    남자는 바다에 빠져 버둥거리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뒤따라 펄쩍하고 뛰어내려 유유히 섬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제야 나는 발을 곧게 뻗어보았다. 바닷물은 무릎까지 닿았다. 나는 머쓱해져 남자를 따라 섬으로 걸음을 옮겼다. 섬 바로 입구에 있는 ‘아침을 든든하게’라는 토스트 리어카 팻말 때문에 아침이란 것을 알았다. 양복을 입고 어디론가 바삐 가는 넥타이 부대도 보였다. 가방을 메고 뛰어가는 꼬마들도 보였다. 그 중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과 목발을 짚은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살던 곳과 다를 것은 없었다. 모두 맨발이라는 것과 바닥이 아스팔트 대신 모래라는 것 빼고는.

     

    사람들은 홀딱 젖은 몰골로 주춤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기는 했지만, 맨발인 것을 확인하고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발바닥에 휘감기는 모래가 이끄는 대로 발을 옮겼다. 골목골목을 헤매다 오밀조밀 밀집된 상점가에 들어서게 됐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모든 가게 문은 닫혀있었다. 진정상회, 미래슈퍼, 영진전파사, 낙원 방앗간. 간판을 하나하나 읽어봤다. 신발가게만 없다뿐이지 그냥 서울의 어느 동네에 와있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내려 발밑의 모래를 보고서야 이곳이 섬이라는 곳을 실감했다. 그제야 언제까지 이렇게 헤맬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하든 해야 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멀리서 어떤 사람이 가까워져 오는 것이 보였다. 여자였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여자에게 가까이 걸어가서 말을 걸었다.

     

    “저 죄송한데요. 여기가 어딘가요?”

     

    여자는 나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보더니,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맨발인 것을 보고 안심하는 듯 했다. 그리고 내 발을 유심히 살피더니, 뭔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말을 건넸다.

     

    “오늘 도착하셨죠?”

    “아, 네. 그걸 어떻게......”

    “발에 상처가 많아서요. 신발 때문에 생긴 물집 흉터들 아니에요?”

     

    나는 내 발을 내려다봤다. 아직 아물지 않은 물집과 흉터들로 엉망이었다. 내 발을 이렇게 자세히 본 것은 처음이다. 그 동안 보고 싶지 않아서 한 번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는 발이다. 그리고 나는 시선을 옮겨 여자의 발도 쳐다봤다. 곳곳에 희미한 흉터가 있기는 하지만 작고 예쁜 발이었다.

     

    “갈 곳이 없는 거죠?”

    “네? 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요. 어떻게 해야 할지.”

    “꼭 9년 전 제 모습 같네요. 일단 우리 집으로 갈래요?”

     

    여자는 대답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못이기는 척 여자를 따라 걸었다. 여자는 집까지 도착하는데 15분 남짓한 시간에 이것저것 말이 많았다. 붙임성이 남다른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의 나이는 32살이다. 나보다 한참이나 많다. 여자는 9년 전까지만 해도 나처럼 서울에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9년 전 자신의 아빠와 이곳에 오게 됐다고 한다.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는 차차 말해주겠다고 했다.

     

    여자는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집을 나서 출근을 했다. 옆방에는 아빠가 자고 있으니 나도 한숨자고 일어나서 아빠랑 같이 밥도 먹고 얘기하고 있으면 퇴근해서 금방 온다고 했다. 나는 노곤해진 몸을 침대에 눕히고 눈을 감았다. 다시 모든게 까맣게 변했다. 까만 운동화를 신었던 것이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긴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부엌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여자 방에 있는 전자시계에는 ‘7:31’라는 숫자가 떠있었다. 아침일까. 저녁일까. 커튼을 젖혀 창밖을 내다봤다. 한켠에 정박되어 있는 하얀배가 보였다. ‘신발 없는 나라’현수막은 바닷바람에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간간이 보이기는 했지만 ‘아침을 든든하게’ 토스트 리어카는 없었다. 저녁인 모양이다. 얼른 이불을 제치고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여자의 아빠로 보이는 머리 희끗한 아저씨의 뒷모습이 보였다. 의자에 앉아계시는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의자가 아니고 휠체어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아저씨에게는 무릎 밑으로 다리가 없었다.

     

    “저...안녕하세요.”

     

    아저씨는 하던 것을 멈추고 손으로 바퀴를 틀어 나를 바라봤다. 이미 여자에게 얘기를 들었는지 반가운 기색으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일어났군. 어서 앉게. 그렇지 않아도 깨워서 저녁 같이 하려고 했는데.”

     

    차가운 인상과는 다르게 온화한 말씨였다. 여자도 곧 화장실에서 나왔다. 식탁에는 생선구이와 몇 개의 나물, 김치와 세 그릇의 밥이 놓여 있었다.

     

    “자, 많이 먹어요. 올 때 배에서도 잘 못 먹었을 텐데. 아빠 먼저 어서 드세요.”

    “그래.”

     

    아저씨가 수저를 들어 노릇한 생선의 배를 가르고 살을 발라 입으로 가져가는 것을 보자 여자는 내게 눈짓을 하고 밥을 한 숟갈 떠먹었다. 여자의 말처럼 배에서도 잘 못 먹은데다가 그 전부터 잘 먹지 못한 탓에 그 모습을 보자 침이 꼴깍 넘어갔다. 허겁지겁 입안으로 음식을 쓸어넣었다. 뱃속에 차곡차곡 쌀 포대가 쌓이는 기분이었다. 배가 점점 불러오자 그제야 나를 바라보는 두 시선을 느꼈다. 아저씨와 여자는 나와의 대화를 원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아저씨는 그 바람을 내가 알아차린 것을 알아차렸는지 내가 마지막 한 숟갈을 목구멍으로 채 넘기기도 전에 말을 걸었다.

     

    “여기는 어떻게 왔나?”

    여자도 거들었다.

    “누구에게 얘기 듣고 온건가요? 혼자 온거예요?”

     

    나는 입안에 뭉쳐있는 쌀알들을 재빠르게 어금니로 분해하는 동시에 물을 쏟아 넣고 한 번에 삼켰다. 그리고 쌀알들이 명치를 지나갈 때 쯤 질문에 성실히 대답할 수 있었다.

     

    “네, 인터넷에서 보고. 혼자 왔어요.”

     

    쌀알들이 막 위장에 다다랐을 때 다시 질문이 던져졌다.

     

    “인터넷은 어떻게 알았나?”

    “어쩌다 보니까 사이트가 열려졌어요.”

     

    나의 대답에 아저씨와 여자는 짧게 서로 얼굴을 바라보더니 다시 나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외로우세요?”

     

    여자의 알 수 없는 질문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여자는 내 대답을 잠시 기다려주더니 끝내 내가 말이 없자 다시 말을 이어갔다.

     

    “검색어에 영어자판으로 변환하고 ‘외롭다’를 치면 이 곳 사이트에 접속하게 되는데. 그렇게 들어 온 거 아닌가요? 아, 뭐 대부분은 입소문이나 누군가의 소개로 많이 오거든요. 그래서 궁금해서요.”

     

    그 말에 지난 나흘전의 일을 떠올려봤다. 자살 사이트를 찾으려고 이것저것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지쳐 자판을 아무렇게나 두드렸었는데. 그래. 그때 나는 외로웠었다. 아니. 나는 늘 외로웠다. 나는 대답했다.

     

    “네. 외로웠어요. 그런데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어디에요?”

     

    갑자기 아저씨가 웃기 시작했다. 여자도 따라 웃었다. 나는 또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처럼 멀뚱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딘지도 모르고 온건가? 도착해서야 그걸 묻다니. 정말 궁금하긴 한건가?”

     

    계속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아저씨를 대신해 여자가 먼저 차근차근 이곳에 대해 말해줬다. 이곳은 원래부터 있던 곳은 아니라고 한다.

     

    10년 전 여자의 아빠는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그 후 사람들의 시선과 현실적 차별 때문에 힘들어했고, 그런 아빠를 보고만 있기 힘들어진 여자는 아빠와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는 섬들을 다니며 여행하던 중 우연히 이 섬을 발견하게 됐다. 그때 당시 이 섬에는 여자의 아빠와 같은 처지로 세상에 냉대 받던 발이 없는 장애인들과 그의 가족들 몇몇만이 살고 있었다. 아빠는 자신이 평범해지는 이 섬에서 신발을 신지 않아도 눈치 보지 않는 삶을 살기를 원했다. 그렇게 자리를 잡아가며 입소문으로 사고나, 선천적 요인으로 다리가 없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점차 모이게 됐고, 이들은 상처를 입을만한 모든 것들에서 단절되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10년간 모인 사람들은 300여명이나 됐고, 그들만의 룰을 지켜가며 그들만의 나라를 만들게 된 것이다.

     

    여자와 아저씨의 합동 설명 한시간여동안 나는 대답이나 질문대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듣기만 했다. 궁금한 것이 있었지만 끼어들 틈이 없었다. 부녀는 오랜만의 새로운 인연에 들떠보였다.

     

    “궁금한 것은 없나?”

     

    아저씨는 쉴 새 없는 설명에 숨이 가빴는지 긴 숨을 몰아쉬며 그제야 내게 말할 기회를 줬다. 나는 아저씨의 호흡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기 전에 얼른 물었다.

     

    “그런데 저를 여기 데려온 그 남자는 누군가요? 배 안에 있던......”

    “아, 배씨 아저씨요?”

    “배씨 아저씨......?”

     

    아저씨가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동안 여자가 잽싸게 대답했다.

     

    “네. 사람들 데리러 매달 셋째 주 일요일에 인천에 나가는 아저씨요. 아빠랑은 이곳에 오기 훨씬 전부터 알던 사이에요. 아빠 소개로 오게 된 거죠.”

    “그 사람 참 불쌍한 사람이지.”

     

    아저씨의 호흡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여자는 싱크대로 가서 설거지를 했다. 아저씨는 할 말이 많아보였다.

     

    “배씨는 5년 전에 이곳에 왔어. 처음에 올 때는 마누라랑 인사차 잠깐 다녀가는 건 줄 알았어. 내게 각실한 마누라랑 같이 온다기에 난 말 그대로 안사람이 참 성실하고 바른 사람인가보다 했지. 근데 그 각실이 아니더라고. 다리 각에 잃을 실 일줄 알았나.”

     

    배씨의 아내는 두 다리가 없었다고 했다. 당뇨 때문에 절단한 것이라고 한다. 배씨는 절망에 빠진 아내를 위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가 적응을 잘 하지 못하자 다른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주고 싶은 생각에 사이트도 만들고, 배 운행을 하며 사람들을 데리러 가는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배씨의 아내도, 배씨도 이곳 생활에 적응해가고 다시 행복을 찾을때 쯤 배씨의 아내는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인해 운명을 달리했다고. 그 후로도 배씨는 이곳을 떠나지 않고 여전히 사람들을 데리러 가는 일을 한다고 했다. 나처럼 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씨는 영원히 이곳을 떠나지 않을까.

     

    ‘신발 없는 나라’에서의 하루하루는 평온하고 평온했다. 나의 하루 일과는 부녀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오전에는 배씨의 배 청소 돕기, 오후에는 다시 아저씨의 점심식사 준비, 낮잠, 저녁식사준비로 끝이 났다. 그 후의 시간은 몽땅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찰싹거리는 파도소리와 뽀득거리는 모래소리는 내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 3일간의 미칠 듯한 외로움도 씻어주었다. 그 3일간 나는 정말로 혼자였었다. 엄마는 내 방에 방향제 일곱 개를 사다놓다 못해 신발을 벗을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며 어디론가 나가버렸다. 진우는 끝내 나의 103통의 전화를 모두 부재중으로 응답했다.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을 선고받은 나는 마지막 세상과의 소통방법인 운동화를 벗어놓고 이곳으로 건너왔다. 흉측한 내 발을 감춰주는 유일한 보호막이라 생각했던 신발이, 이곳에 와보니 상처를 더 증식시키는 가장 위험한 도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슬프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매일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어깨까지 닿았던 머리카락이 이제는 거의 허리를 뒤덮었다. 추운 겨울에 어울리는 머리다. 오늘 밤은 다른 날보다 더 추웠다. 늘 창밖감상을 할 때마다 열어놓던 창문도 닫고 커튼도 쳤지만 파도치는 소리는 여전히 들려왔다. 그 소리에 마음을 맡기고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겨 얼굴을 파묻었다. 다리 사이로 발이 보였다. 오랜 시간에 거쳐 아문 상처의 흔적들이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겨우 보일만큼 자국만 희미하게 남은 것도 있었고, 상처에 상처가 덧대어져 거무스름하게 색이 변한 곳도 있었지만 예전처럼 곪아 터진 피투성이 딱지는 없었다. 파도치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다시 이 발로 모든 것을 느껴보고 싶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눈처럼 뽀드득 발에 휘감기는 모래가 기분 좋았다. 하지만 겨울바닷바람과 팥빙수 같은 모래를 맨발로 마주하려니 뼛속까지 아렸다. 다시 돌아서서 집으로 향하려는데 ‘처어어얼썩’하고 어마어마한 파도소리가 났다. 다시 발을 돌려 간간히 서있는 가로등에만 의존한 채 나는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유난히 크게 몰아치는 파도소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멀리서 불빛이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일까. 무엇인가가 이 섬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배였다. 하지만 오늘은 셋째 주 일요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하얀 배는 늘 있던 그 자리에 정박돼 있었다. 누굴까. 나는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파도가 몰아칠 때마다 바닷물이 내 머리 위를 뒤덮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저것의 정체를 봐야했다. 더 깊이 몸을 낮췄다. 옆으로 몸을 틀어 더 큰 바위로 자리를 옮기려는데 끼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아저씨는 한참 전부터 나와 있었는지 몸이 많이 젖어있었다. 나는 아저씨 옆으로 바짝 붙어 섬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불빛을 응시했다. 큰 파도가 몰아칠 때마다 불빛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빛을 내던 물체는 섬의 모래와 맞닿았다. 작은 배였다. 그리고 그 배에서 사내 대여섯 명이 어깨에 큰 짐을 하나씩 지고 내렸다.

     

    “여기 맞아? 별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그러니까 여기 사람들이 정신병자처럼 진짜 다 맨발로 다닌다 이겁니까?”

    “속고만 살았소. 여기 현수막 보슈. 신발 없는 나라라고 써있잖수.”

     

    내가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짜증스런 얼굴로 쳐다보던 아저씨는 한 사내의 익숙한 음성에 이성을 잃고 휠체어를 굴리기 시작했다. 바닷물에 젖은 모래가 휠체어 바퀴 사이사이로 끌려들어가서 휠체어는 아저씨의 팔에 선 핏대와는 다르게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때 사내들이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그 익숙한 음성은 배씨였다. 어둠속에서 배씨의 발 아래쪽이 반짝였다. 배씨의 발에는 광나는 검은 구두가 신겨져 있었다. 아저씨는 배씨의 신발을 내려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너 뭐하는거냐!”

     

    그 소리는 상상이상으로 굉장히 컸다. 사내들 무리 중 한명이 놀라 뒷걸음질을 치다가 넘어졌다. 그 바람에 사내가 들고 있던 짐 보따리가 우르르 쏟아졌다. 그것은 색색의 운동화며, 구두며 바로 신발이었다. 그리고 그 신발마다 두꺼운 돈 뭉치가 들어있었다. 아저씨는 그 신발을 보자 몸을 떨었다. 그 떨림은 한겨울 바닷바람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나도 신발을 보니 몸이 떨려왔다. 말할 수 없는 공포가 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배씨는 섬뜩하리만큼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저는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고, 그저 신발이나 몇 켤레 선물로 드리려고......”

     

    아저씨는 그 말에 더욱 화가 치민 듯 했다. 바닥에 떨어진 신발을 주워 던지려는지 팔을 쭉 뻗어 몸을 깊숙이 숙였다. 그러나 균형을 잘 못 잡는 탓에 아저씨의 몸은 모래 위로 고꾸라져 신발짝처럼 널브러졌다. 사내들은 그 틈을 타서 대충 신발을 쓸어 담고 불빛이 켜진 집들을 향해 걸어갔다. 배씨는 사내들이 집에 가까워질 때까지 아저씨를 일으켜 주지 않았다.

     

    “자네가 어떻게.”

     

    아저씨의 분노 섞인 말에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져있는 아저씨의 팔을 가지런히 모아 일으켜 세웠다. 모래사장에 짧은 다리를 죽 뻗고 앉은 아저씨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배씨는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런 아저씨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형님. 이곳 개발할까 생각중이요. 저 양반들 아주 돈 많은 사람들이라구. 내가 형님한테도 한 몫 떼어줄테니 우리 좋게 갑시다. 형님도 돈만 있어봐요. 다리 없다고 무시하겠수? 돈 없다고 무시하는거 아니요.”

     

    아저씨는 대꾸할 기운조차 없어보였다.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배씨는 배신감에 들썩거리는 아저씨의 어깨를 지긋이 누르며 말했다.

     

    “난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잖수. 마누라가 있나 자식이 있나. 그나마 있는건 이 두 다리인데, 언제까지 여기서 발 없는 병신 행세하며 살 순 없잖아요.”

     

    배씨는 아저씨 옆에 흩어져있는 신발짝 몇 개를 주워 아저씨 무릎위에 올려놓았다.

     

    “내 옛정을 생각해서 두둑히 드리는거요. 딴 사람들은 한 집에 한 켤레씩 밖에 안돼. 그럼 난 바빠서 이만 가겠수. 자 선영이 니도 한 켤레 가져라. 간다.”

     

    배씨는 선심 쓰듯 내게도 흰 운동화 한 켤레를 던져줬다. 그리고는 광나는 검은 구두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고 우리에게서 멀어져갔다. 아저씨는 아무 말이 없었다. 파도는 더욱 거세게 몰아쳐 아저씨의 뭉툭한 무릎을 적셨다. 나는 아저씨를 부축해 휠체어에 태웠다. 그리고 무릎위에 신발을 올려놓았다. 아저씨는 짧은 발을 버둥거리며 신발을 떨쳐냈다. 파도가 신발을 쓸어가고,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다. 매일 아침을 열던 ‘아침을 든든하게’ 토스트 리어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여자의 말로는 신발을 두 켤레나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저씨는 그날이후 말이 없었다. 이제는 매일매일 뭍으로 나가는 배가 운행됐다. 창밖으로 그 배에 사람을 한가득 싣고 떠나는 것을 보고도 아저씨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차려주는 밥상도 더 이상 받지 않았다. 여자는 내게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도 결국엔 모두 떠날 것이라며 배씨에게 몰래 건네받은 신발 한 켤레를 내게 내밀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모른 척 부엌으로 가서 밥을 했지만, 등 뒤에서 쏘아보는 아저씨의 시선에 늘 바닷가로 쫓겨나다시피 나와 방황해야만 했다. 아저씨는 더 이상 발 있는 사람을 믿지 않는 듯했다.

     

    점차 사람들은 줄어갔다. 동네 꼬마들은 없어진지 오래다. 꼬마가 있는 집에는 신발 한 짝씩을 더 줬기 때문일 것이다. 휠체어를 탄 사람 중에서는 심지어 의족을 끼고 신발을 신고 섬 밖으로 나간사람도 있었다. 이제는 초기에 모였던 몇몇의 휠체어 부대들만이 섬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가족들도 대부분 배씨의 알록달록한 신발 몇 켤레에 섬을 빠져 나간지 오래였다. 여자도 결국 배씨의 신발선물에 아저씨를 남겨두고 섬을 떠났다. 여자의 신발은 부츠였다고 했다.

     

     

     

     

    얼마 후, 배씨의 협박은 없어졌다. 개발이 무기한 연장됐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더 이상 우리에게 신발을 줄 필요가 없어진 사내들과 배씨는 마지막 흰 배마저 끌고 섬을 떠났다. 여자가 떠나던 날, 나도 떠날까 말까 잠깐 망설였지만 이미 배는 출발한 뒤였다.

     

    신발 없는 나라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항상 살기에 가득 찬 눈으로 쳐다봤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나도 배씨처럼, 떠난 가족처럼 신발을 신을 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도 종종 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바닷가에서 모래를 밟고 서 있는 자체만으로 나는 증오의 대상이 되는 듯했다. 오늘도 아저씨는 그 눈빛을 피해 바닷가에 나온 나를 따라나섰다. 차가운 바닷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저씨는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다그쳤다. 그 눈빛에 나는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순간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아저씨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그것은 발이 없어지면 되는 것이다. 그럼 아저씨의 냉대도, 나의 외로움도 없어질 것이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창고로 가서, 요전 날 여자가 떠났을 때, 아저씨가 휘두르다만 널브러져있는 도끼를 가지고나왔다. 여전히 나를 증오의 눈으로 노려보는 아저씨에게 가서 도끼를 획 내밀었다. 아저씨는 동그란 눈으로 아무 말 없이 도끼를 받아들었다. 나도 아무 말 없이 그 앞에 다리를 길게 펴고 앉았다. 발목을 앞으로 뻗어 발바닥과 모래바닥이 수평을 이루도록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아저씨를 쳐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그제야 내게 처음과 같은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짧게 목을 까딱이고는 도끼를 든 팔을 하늘높이 쳐들었다.

     

    서늘하게 번쩍이는 도끼날에, 아저씨의 등 뒤로 보이는 ‘신발 없는 나라’ 현수막의 ‘신’자가 가려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마음이 평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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