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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story_415561
    작성자 : 리리로로
    추천 : 18
    조회수 : 1441
    IP : 182.218.***.174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4/04/14 17:59:35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15561 모바일
    연애시대 1
    지금까지 적지 않은 연애를 해오면서 느꼈던 것은
    내 기억에 좋은 추억으로 남은 사람은 내게 매 순간마다 첫사랑이었다.

    벚꽃이 흐드러지면
    그때 설렘을 주던 봄첫사랑이 떠오르고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를때면
    한여름 뜨거웠던 여름첫사랑이 생각난다
    티비에서 단풍으로 물든 지방 언저리의 산기슭이 나올때면
    싸하게 스쳐지나간 가을첫사랑을 기억해내고
    첫눈이라는 단어가 휴대폰 문자메세지를 거쳐갈때면
    가슴시리게 아련했던 겨울첫사랑이 한동안 머릿속을 왔다갔다한다

    내 기억속 좋은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오늘 문득 창밖으로 벚꽃나무가 몇장남지 않은 꽃잎을 털어내는 것을 바라보다
    풋풋한 청춘의 절정을 달리던 이십대 중반
    내 삶으로 뛰어든 그 청년이 생각났다

    삼년의 긴 휴학끝에 복학한 학교
    같은 수업을 듣던 복학생 남자아이
    나이도 이름도 얼굴도 제대로 모른채
    수업시간 출석을 부를때면
    그 아이의 '네'소리에 가슴이 뛰었다

    '네'
    그 한마디를 듣기위해 혹시나 수업에 늦을까
    택시를 타고 달려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말할기회는 없었고
    늘 학교를 혼자다니던 내게 아군이 되어줄 친구도 없었다


    그렇게 한달이 흘렀다
    교정에는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나는 여전히 그 아이의 뒷자리에 앉아 
    '네'라는 한마디를 들으며 쿵쿵거리는 절벽가슴을 부여잡고 잠못들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공산주의가 왜 망했는지 알려주겠다며 교수님께서 조별과제를 발표하셨다
    참 그양반..타이밍 기가맥히게 내 마음을 잘 읽어주었다

    하지만 금세 큰 문제로 다가온 것은 조를 어떻게 나누느냐였는데
    전공수업임에도 타학과 학생도 근근히 있던터였고
    학번도 뒤죽박죽 섞여있어 조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교수님의 한마디
    '지금부터 조를 나누어주마'

    그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내 작은 가슴을 오함마로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김김김, 이이이, 박박박, 정정정, 최최최가 일조
    아아아, 어어어, 이이이, 네네네, 한송이가 이조


    이럴수가.
    그랬다
    그 아이와 같은 조가 된 것이다.

    순간 내가 바라본 교수님의 얼굴에는 검은 안대가 살포시 드리워졌고
    교수님 뒤로 빛나는 후광은 '궁예'라는 글자를 새겼다.
    어찌됐건 그 후로 난 그 교수님을 진정 존경하게 됐고
    졸업후에도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렇게 조가 편성됐고 조별로 둘러앉아 조별 안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라고 외치던 그 아이의 목젖에서 다른 말들이 술술 새어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쾌변 직전의 응가처럼 농익었고 묵직했다
    두근대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어 듣는둥 마는둥 수업을 마쳤다
    조원끼리 교환한 이메일을 적은 종이 한장이 혹시나 날아갈까 
    품안에 꼭 품고 집에가는 버스에 올랐다



    무어라고 말을 전할까
    적당한 핑계도 얘깃거리도 떠오르지 않았다
    귓가를 파고든 그 아이의 목소리는 어느새 
    전두엽을 파고들었고 나는 더이상 어떤 사고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봄날이 시작됐다


    출처 - www.liliro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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