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진 - 문화부장관 내정자 유인촌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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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mmjtm/1636427 "대동아전… 위대한 것" 청마 친일산문 첫 발견 - 일제시대 만선일보에 기고문 실어
경남대 박태일 교수 당시 자료 공개
시인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 1908~1967)의 친일성이 강한 산문(散文·사진)이 발견돼 청마에 대한 친일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지 금까지 청마의 작품 가운데 시 '들녘', '전야', '북두성' 등에 대한 친일성 논란을 빚은 적이 있었지만 산문 형식의 친일 글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태일 경남대 국문과 교수는 "지난 1942년 2월 6일자 만선일보(滿鮮日報)에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제목으로 실린 청마의 글은 그의 친일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대표적인 글"이라며 당시 신문에 실린 글을 처음 공개했다.
박 교수가 찾아낸 청마의 친일 산문은 네 단락으로 이뤄진 짧은 글로 다음은 그 전문이다.
'오늘 대동아전(大東亞戰)의 의의와 제국(帝國)의 지위는 일즉 역사의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 비류(比類)없이 위대한 것일 겝니다. 이러한 의미로운 오늘 황국신민(皇國臣民)된 우리는 조고마한 개인적 생활의 불편가튼 것은 수(數)에 모들 수 업는 만큼 여간 커다란 보람이 안입니다. 시국(時局)에 편승하여서도 안 될 것이고 시대에 이탈하여서도 안 될 것이고 어데까지던지 진실한 인간생활의 탐구를 국가의 의지(意志)함에 부(副)하야 전개시켜 가지 안으면 안 될 것입니다. 나라가 잇서야 산하도 예술도 잇는 것을 매거(枚擧)할 수 업시 목격하고 잇지 안습니까. 오늘 혁혁(赫赫)한 일본의 지도적(指導的) 지반(地盤) 우에다 바비론 이상의 현란한 문화를 건설하여야 할 것은 오로지 예술가에게 지어진 커다란 사명이 아닐 수 업습니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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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진에 대한 한글위키피디아 설명
http://ko.wikipedia.org/wiki/%EC%9C%A0%EC%B9%98%EC%A7%84 =======================================================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명단중 문화예술부분 친일인사 명단 (연극부문 등재)
http://ko.wikipedia.org/wiki/%EB%AF%BC%EC%A1%B1%EB%AC%B8%EC%A0%9C%EC%97%B0%EA%B5%AC%EC%86%8C%EC%9D%98_%EC%B9%9C%EC%9D%BC%EC%9D%B8%EB%AA%85%EC%82%AC%EC%A0%84_%EC%88%98%EB%A1%9D%EC%98%88%EC%A0%95%EC%9E%90_1%EC%B0%A8_%EB%AA%85%EB%8B%A8_-_%EB%AC%B8%ED%99%94/%EC%98%88%EC%88%A0 =======================================================
유치진 친일 행적 너무나 뚜렷
http://news.media.daum.net/society/others/200802/19/ohmynews/v20027353.html (전략)
유치진의 친일행적은 뚜렷하다. 그는 만주국을 세운 일본을 위한 조선인의 만주이주정책을 장려한 <흑룡강>을 1941년, 친일조직인 일진회를 중심으로 일한(日韓) 합병을 열망하는 작품 <북진대>를 1942년에 발표했다. 또 그는 친일의 선봉 이용구(李容九)를 찬양한 작품 <대추나무>를 친일 관변연극 대회인 제1회 연극경연대회에 올려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48년 김구 선생의 지시로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승학 선생이 작성한 '친일파 263인' 명단과 1992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파 99인>에도 유치진은 포함되어 있다. 유치진은 2005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을 발표할 때 포함되기도 했다.
통영에서도 유치진은 친일파로 지목받아 왔다. 한 단체에서는 1990년 통영 남망산 기슭에 유치진의 흉상을 설치했는데, 그의 친일행적이 밝혀지면서 1995년 자진 철거되었다. 그의 흉상이 있던 자리는 지금은 비어 있다.
문화관광부는 1991년 '4월의 문화인물'로 유치진을 선정했다가 시민단체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서 취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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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연좌제를 반대하기 때문에 유인촌이 단지 친일작가의 후손이란 점 때문에 재산과 신체상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신문화를 총괄해야 할 문화부 장관에 거액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할아버지는 빼도박도 못하는 친일지식인이었던 사람을 장관으로 앉히는게, 대한민국 문화를 위해 옳은 일인가는 생각해 봐야 할 노릇이라고 본다. 이것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넘어갈 작정인가? (근데 문화부가 경제를 살리는 부서인가...)
오늘이 2MB의 대통령 취임식날이니 어지간하면 딴지걸지 않으려고 했는데,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결국 사실로 나타나는 것까지 참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