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총리 내정자에게 ‘당적 버리라’고 악다구니 쓰던 한나라당 목소리가 잦아들길래 정신 차린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조갑제 기자한테 야단 맞고서 꼬투리 잡기를 ‘사상 검증’으로 옮기는 중이라고 한다. 그럼 그렇지. 그나저나 기껏 개발한 꼬투리가 고작 사상 검증이란다. 나 원 참.
한나라당의 뜬금없는 ‘연좌제’ 주장은 진중권이 충분히 비웃었으니까, 여기서는 국가보안’법’ 이야기나 좀 해 보자. 이계진 한나라당 ‘소변’인이 “한(명숙) 내정자가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주장했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이 이념적으로 어떤지 말해야 한다”고 뜨거운 ‘대변’을 토했기 때문이다.
이계진과 그 일당들에게 보내는 내 주먹 떡은 이거다. “국가보안법도 법이냐?”
십중팔구 “악법도 법이래잖냐” 하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 한국 중고등학교 사회나 윤리, 도덕 교과서들 중에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하면서 독배를 마셨다”고 서술된 게 제법 있었다. 1980년 이후 교과서들이 그렇다.
논리학에서는 이런 걸 ‘잘못된 권위 의존 오류’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훌륭한 철학자였는지는 몰라도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이 확인되자 국가인권위원회는 2002년11월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실린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 서술을 수정하도록 권고했고, 헌법재판소도 2004년11월 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같은 내용을 수정하도록 판결했다. 그래서 지금은 소크라테스를 빙자한 ‘악법도 법’ 이야기는 교과서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제발 애들 보는 ‘교과서’는 제대로 좀 만들자.
전두환 독재정권 치하에서 소크라테스까지 들먹여가며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언론에 유포하고 교과서에까지 실은 까닭이 뭘까? 그건 바로 국가보안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그걸 보면 지네들 수준에서도 국가보안법이 '악법'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는 얘기다.
전두환은 독재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얽어서 숱하게 감옥과 형장으로 보냈다. 그러니 국가보안법에 대한 원성과 저항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원성과 저항을 잠재우기 위한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바로 “악법도 법이다”였다. 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효과 만빵이었던 것 같다. 국가 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으니 말이다.
‘악법도 법이다’가 ‘소크라테스’와 아무 상관없다는 게 밝혀졌지만, ‘그래도 말 자체는 맞는 말 아니냐’며 고개를 주억거릴 사람도 있을 지 모르겠다. 얼른 보면 그래 보일 지도 모른다. ‘선한 법이 법’인 것처럼 ‘악한 법도 법은 법’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형식 논리학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그건 ‘법’이라는 말과 그 의미의 역사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고대 로마의 법률 격언 “두라 렉스, 세드 렉스(dura lex, sed lex, 법이 지독해도, 그래도 법이다)”를 번역한 말이다. 2세기경 로마 법률가 도미누스 울피아누스 (Dominus Ulpianus)는 자기 책에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호크 쿠오드 퀴뎀 두룸 에스트, 세드 이타 렉스 스크립타 에스트(Hoc quod quidem perquam durum est, sed ita lex a est, 이것은 진실로 지나치게 심하다. 그러나 그게 바로 기록된 법이다).”
이 긴 표현을 인용해 먹기 좋게 팍 줄인 게 바로 “두라 렉스, 세드 렉스”이고 그걸 일제 강점기 경성제국대학 법철학 교수 오다까 도모오(尾高朝雄)가 ‘악법도 법’이라고 번역해 한국과 일본에 소개한 것이다.
오리가 꽥꽥거리는 듯한 라틴말을 주구장창 인용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법’이라는 말이 라틴말로 뭐라고 쓰였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눈치만 빠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여기 저기 자꾸 등장하는 ‘렉스(lex)’라는 말이다.
그런데 라틴말에는 ‘법’을 가리키는 말이 또 하나 있다. 그건 ‘유스(jus)’이다. 정의를 가리키는 영국말 ‘저스티스 (justice)’와 판사를 가리키는 ‘젖지(judge)’가 바로 여기서 파생된 말이다. 그렇다면 ‘렉스’와 ‘유스’의 차이는 뭘까?
길게 따질 게재가 아니므로 결론만 말하자. ‘유스’는 ‘정의롭고 완전한 법’을 가리킨다. ‘렉스’는 ‘유스’를 적용할 방식을 글로 써놓은 지침 같은 것이다. 그래서 ‘유스’가 차원 높은 상위법이고, ‘렉스’는 차원 낮은 하위법이다.
‘유스’에는 ‘나쁜 유스’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유스’는 시민들의 권익을 위해 그들의 동의를 받은 다음 제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루쏘식으로 하면 ‘유스’는 거의 ‘자연법’이다. 그러나 ‘렉스’는 경우가 다르다. 왕이나 정부가 제 편의를 위해 제정했던 것이 ‘렉스’다. ‘유스’를 제대로 반영한 ‘렉스’는 ‘좋은 렉스’지만, 그렇지 못하면 ‘나쁜 렉스’가 된다.
요즘 독일에서도 ‘유스’는 ‘레히트(Recht)’로 ‘렉스’는 ‘게젯츠(Gesetz)’로 따로 번역한다. 프랑스에서도 ‘유스’가 ‘드로아(droit)’, ‘렉스’는 ‘로아(loi)’이다 (발음에 자신없다.) 유독 영국과 미국에서만 ‘유스’와 ‘렉스’를 모두 ‘로(law)’로 번역하는데, 이는 원래 ‘렉스’에 가까운 말이다. 영국-미국 사람들이 원래 좀 개념없이 단순 무식한 경향이 있으니까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
한국 사상사와 법제사를 보면 ‘법(法)’이라는 말은 그렇게 함부로 쓰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유교와 불교의 ‘법’은 우주와 인간을 지배하는 궁극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이다. ‘하늘의 법’이라거나 ‘불법(佛法)’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 증거다.
반면에 정치적 지배자가 반포하는 규칙은 율(律)이거나 령(令)이라는 말로 따로 불렸다. 왜 그 국사 시간에 달달 외곤 했던 ‘삼국의 율령 반포’에 나오는 그 율령 말이다.
전통적인 한국 개념에서는 ‘법’이 정치적 개념이 아니라 종교-문화적 개념이었지만 이를 정치적 개념을 전화시키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면 ‘법’은 ‘율’이나 ‘령’보다 상위개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헌법 정도가 유일하게 ‘법’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것들은 그냥 ‘율’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령’은 이미 ‘율’의 하위개념으로 현대 법제도에 개념화되어 있다 (대통령령, 국무총리령, 등).
그래서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웃기는 얘기다. 첫째, ‘악법’이라는 말 자체가 형용 모순이다. 보편적이고 지고한 원리로서의 ‘법’ 앞에 ‘악’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라틴말 ‘유스’에 ‘나쁜’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악한 정의’ 혹은 ‘추악한 미인’이 말이 되는가?
둘째, ‘나쁜/악’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는 것은 ‘렉스’거나 ‘율령’의 경우이다. ‘나쁜 렉스’라거나 ‘악률’이라는 말은 가능하다. 그러니까, ‘악법도 법’이라는 형식을 지키려면 ‘악률도 율이다’로 하면 된다. 근데 누가 그렇게 말하면 난 그냥 비웃으며 지나가겠다. 그게 조갑제라 할지라도. '누가 뭐래?'
끝으로, '법'과 '율령'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법'은 절대적 준수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율령'은 법에 부응할 때만 준수될 가치가 있다. 법에 맞지 않는 율은 지킬 필요가 없다. ‘유스’에 부합되지 않는 ‘렉스’가 무가치한 것과 같다.
사설이 길었다. 생경한 용어도 많이 동원했다. 바쁜 시간 원활한 눈팅에 불편을 드렸다면 마음 깊이 사과 드린다. 이렇게 구색 갖추는 척 해서라도 평미레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악법도 법’이라는 표현은 일제의 잔재일 뿐 아니라,
전두환 시절에 어용 교수-기자들이 널리 유포 시킨,
개념도 없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불과하다.
전통 법률 개념에서 보면 헌법만이 유일한 ‘법’이다.
국가보안법은 ‘법’이 아니다. ‘율’ 정도라면 또 모를까.
헌’법’에 어긋나는 국가보안’률’을 지킬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국가보안’률’은 빨리 폐기할 수록 좋다.
그리고, 조갑제 대^^기자 주문대로,
한나라당은 ‘사상 검증’ 한번 해 봐라. 어떻게 되나 보게.^^
평미레 드림/
2006/3/29
퍼온 곳 :
http://www-nozzang.seoprise.com/board/view_mod.php?code=seoprise8&uid=899726&page=2&search_c=&search=&search_m=&memberList= 내용이 넘 좋아서 퍼왔습니다. 저지 드레드는 한나라당 안 잡아가고 머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