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수십 억 인구에, 수백 개 나라가 있는 판에 글로벌 스탠더드라니, 가당키나 한 소린가. ‘표준’은 권력이고 패권이다. 표준을 둘러싼 싸움은 세계 헤게모니 쟁탈전이다. 표준을 정하고 규율하는 자가 패권을 차지한다. 글로벌 스탠더드 뒤에는 패권의 탐욕이 숨어있는 것이다.
다 큰 어른이 자기 몸에 맞는 표준을 정해놓고 아이들에게 강요한다면? 어른용 구두, 옷, 책상, 아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전문 전공서적만을 안긴다면? 어른들이나 감당할 수 있는 강도의 체력단련을 강제한다면?
그 아이는 제대로 피기도 전에 시들거나, 심지어 죽음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성공한 부자집이 자기 수준에 맞는 생활문화를 이제 막 돈을 모으기 시작한 가난한 옆집에 강요한다면 가난한 옆집은 영원히 부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부자의 표준과 가난한 자의 표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그 차이를 가리는 비열한 연막에 불과하다.
선진국은 글로벌 스탠더드 노래를 부른다. 특히 미국이 앞장서서 선창을 하며 그것을 타국에 강요하길 서슴지 않는다. 우리도 IMF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의 융단폭격을 당했다.
여기서 의문.
미국은 왜 그럴까? 세계 모든 나라가 글로벌 스탠더드해서 잘 먹고 잘 살라고? 후진국들을 죄다 선진국 만들어주려고?
미국은 그렇게 주장하지만 정말로 그 말을 믿는 건 미친 짓이다. 현재 선진국의 기준을 후진국에 강요하는 건 후진국을 농락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후진국의 제도는 현재의 선진국이 아닌 과거의 선진국과 비교해야 한다.
윤리. 좋은 말이다. 나도 누구 못지않게 윤리 좋아한다. (이건 정말이다.) 그런데 선진국이 지금의 선진국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윤리와 무슨 상관이 있었지?
선진국이 선진국인 것은 자본이 축적됐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가진 자본이 컸고 선진국이 가진 자본이 작았다면 우리에게 IMF도 없었을 뿐더러 미국이 지금처럼 금융자유화, 주주중시 경영을 외치고 있었을 지도 매우 의문이다.
아무튼 자본축적 경쟁이 요체다. 기술력도 자본투여와 함께 발달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선진국의 자본축적 역사는 약탈, 유아 착취, 노예매매와 함께 시작한다. 심지어 영국은 마약을 강매하기까지 했다. 북한이 마약을 팔았다고? 애교다.
선진국은 그 다음 전 세계를 식민화해서 수탈하는 것으로 다시 자본을 축적해나갔다. 그렇게 축적된 자본으로 선진국은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기술적 우위를 지켜나갔다.
기술, 의료 분야의 윤리? 독일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죽음의 로켓 V2를 개발했다. V2 생산공장 건설노역에 투입됐다 죽어간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생산과정에서도 셀 수 없이 죽어 나갔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들을 왜 미국은 낼름 집어갔을까? 그 책임자인 폰 브라운을 왜 미국은 모셔갔을까? 미국이 오늘날 세계 최고의 항공우주분야 경쟁력을 갖게 된 것, 거기서 전 산업 분야로 파급되는 막대한 효과. 나치의 공헌 아닌가? 홀로코스트의 핏값 아닌가? 150만원짜리 난자? 에이 장난하십니까?
만주 731부대는 또 어떤가. 멀쩡한 사람 잡아다 생체실험 도구로 사용하면서 얻어낸 그 엄청난 의료 기술의 진보. 이것도 미국이 낼름 집어가지 않았던가? 150만원짜리 난자? 에이 장난하십니까?
인권은 또 어떤가. 미국이 몇몇 국가에 강요하는 인권. 그들이 정말 이 세계에 인권의 깃발이 펄펄 휘날리길 바라서 그렇게 인권, 인권 노래를 부르는 걸까? 특정 후진국에 지금 당장 미국 수준의 국내 인권 보호 제도를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 나라를 더 큰 혼란과 예속 속에 빠뜨릴 수 있다. 미국은 자신들의 성장기에 인권을 마음껏 짓밟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전 세계인을 고통과 비탄 속에 빠뜨리고 있다. 150만원짜리 난자? 에이 장난하십니까?
미국은 지금 자유무역을 강요한다. 그런데 미국이 한참 선진국들을 따라 잡아야 했던 시기엔 왜 자유무역을 주장하던 남부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박살냈지? 자유무역론자들을 대포로 박살낸 후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보호무역 체제를 유지하면서 외국인 투자를 엄격히 규제했다. 그런데 왜 이제와선 후발주자들한테 금융자유화를 강요할까? 링컨이 자유무역론자들에게 퍼부은 포탄을 맞아야 할 대상은 현재의 미국 자신 아닌가?
난 지금 우리 후발주자들이 노예무역부터 해서 자본을 축적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유아 착취를 하자는 것도, 약한 나라를 정복해서 수탈하는 것으로 자본을 축적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강제로 생체실험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이미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켜야 할 룰이 변했다. 이젠 보다 인간적인 길을 가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당장 선진국의 제도를 똑같이 갖춰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은 기술 선진국이 된 스위스는 그 기술을 갖춰나갈 때까지 특허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었다. 자기들 기술이 세계 최고가 되니까 이젠 지적재산권을 지키자고 목청을 높인다.
난 그 비열함을 고발하는 것이다. 선진국이 온갖 고매한 명분을 내걸고 후진국들에게 강요하는 것들 이면에 감춰진 탐욕, 난 그것에 욕지기가 나는 것이다.
환경? 좋지. 하지만 첨단 환경 기술과 관련 규제를 강제하는 것은 결국 후진국들에게 “니들은 산업화할 꿈도 꾸지마“하면서 장벽을 쌓는 것 아닌가? 지재권? 우리도 만만치 않게 아이디어 도용, 카피로 여기까지 커 온 나라다. 처음부터 지재권 지켰으면 우리 여기까지 못 왔다. 지금 중국이 우리 티코 카피한 걸로 욕을 먹지만 다 그러면서 크는 거다. 물론 우리는 욕할 만하니까 욕하는 거고. 뭐 세상이 다 그런 법이다. 우리라고 특별히 선한 사람들은 아니다.
IMF 이후에 우리 기업더러 갑자기 선진국 수준의 기준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나라 경제가 붕괴 직전까지 갔다. 국가 경제 발전에 헌신했던 금융시스템은 완전히 고사했다. 금융경색 때문에 큰 기업은 좀 어려운 정도지만 중소기업들은 판판이 죽어나갔고 아직까지 그 후유증이 남았다.
황우석 박사를 보면 그 때 죽어나가던 한국 기업들이 생각난다. 황우석 박사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과거가 잘못 됐으면 앞으로 잘하면 된다. 처음부터 시원시원하게 밝히고 사과하지 못했던 황박사가 안쓰러울 뿐이다.
죽어라 하고 앞만 보며 뛰면서 선진국을 추격하기 위해 인생 다 내팽개치고 사는 사람들이다. 한국은 그렇게 겨우겨우 선진국을 따라잡고 있다. 물론 그래서 성수대교 무너지고, 삼풍백화점 무너졌다. 앞으로 잘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청계 고가 허물고 새출발하듯이 말이다. (하필이면 새출발을 이명박이 전시 행정으로 하는 바람에 똥 싼 자리에 주저앉은 꼴이 됐지만)
기업경영도 그렇고 연구팀 운영도 그렇다. 어떻게 갑자기 선진국 기준을 강요할 수 있나? 우리 연구팀이 선진국처럼 이거 저거 다 따지고 지켜가면서 성과 낼 수 있는 처지인가? 수십년 간의 관성을 어쩔 것이며, 선진국 따라하려면 그 보수, 연구비 지원, 휴일, 휴가, 복지, 사회적 지위부터 다 맞춰 줘야지? 미친 듯이 앞만 보고 연구만 한 사람들한테 갑자기 정색하고 “니네들 이런 이런 규정 왜 안 지켰어!” 윽박지르는 것은 황당하다.
난 이대로 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노예무역, 마약밀매, 생체실험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아니다. 다만 우리의 과거를 무조건적으로 질타하는 것이야말로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태도 아닌가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재, 재벌의 부의 독점 등은 질타 대상이다. 반성하지 않고, 새출발하지 않고, 공동체에 기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황우석 박사가 질타 대상이 되어야 하지? 황박사에게 스스로 고백하고 새출발할 기회를 줄 순 없었을까? 꼭 그 비윤리성을 고발하고 때리는 방식이어야 했나?
미국이 때는 이 때다 하면서 윤리 어쩌고 나오는 것은 가증스럽기 그지 없다. 우리도 앞으로 선진국이 되면 중국이나 동남아 후진국들에게 그런 식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매우, 아주 매우 높지만(일본 음악 카피로 큰 우리 대중음악이 이제 와서 중국 깔보는 행태를 보면 닭살이 죽죽 돋는다) 지금은 선진국들이 일제히 윤리를 외치며 돌아앉는 꼴에 분노가 치민다.
섀튼이라는 사람은 황박사와 형제 같았다면서 만나서 고백하라고 말하면 될 걸 꼭 언론에 대고 결별 선언을 하는 방식으로 똥물을 끼얹어야 했는지 그 의도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윤리기준? 웃기는 소리다. 그 표준은 누가 만들었는데?
모쪼록 황박사님은 힘 내시라. 황박사가 잘 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내가 그 입장이었어도 찬 난자 더운 난자 구별해가면서 연구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그렇게 연구에 미치도록 올인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 엄청난 성과를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황박사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수준이 아직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욕을 먹는다면 우리 사회가 먹어야 한다. 연구자들한테 인간답게 살면서도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인간답게 살아야 윤리규정이고 뭐고가 눈에 들어오지. 아니면 예산지원을 해서 행정보조할 사람을 붙여주던가. 그리고 인간존엄성을 뭣 같이 아는 이런 풍토부터 고쳐야 한다. 아이들이 자살해도 노동자가 자살해도 둔감한 언론들이 있는 판에 150만원짜리 난자?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교육부의 이름이 교육‘인적자원’부인 나라다)
황박사님 제발 낙담하지 말고 힘 내시라. 오로지 사명감으로 앞만 보고 달렸는데 갑자기 비윤리적이라고 공격받았을 때 느껴질 그 허탈감, 부끄러움, 참담함이 얼마나 크겠는가. 하지만 의지를 잃지 마시길. 의지야말로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원천이니 부디 황박사님 힘 내시길.
황우석 박사가 곧 우리 사회가 제공한 난자들의 세례에 푹 파묻혔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 그래서 다시는 난자 구할 고민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연구에만 미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이 듣고 싶다.
우리 과거? 독재, 인권유린, 매판세력의 득세 빼놓고는 별로 잘못한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 앞으로 잘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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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 기증자에게 자그마치 150만원씩이나 준 비윤리적인 행위가 있었으므로 황우석 박사님이 줄기세포 연구를 그만둬야 된다는 분들이 있다는군요~ 나원 참~ 윤리를 내세워 황교수 못잡아 먹어서 안달인 외국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이 윤리적이라 개발했나봐요...
퍼온곳 :
http://www.dailyseop.com/data/article/36000/0000035993.as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