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소주 세 병을 비우고 왔다.</P> <P> </P> <P>10층 아파트 창문을 연다. 초입에 들어선 가을바람이 조금 쌀쌀하다. 더위는 다 지나갔다. </P> <P> </P> <P>난간에 팔꿈치를 기댄다. 익숙한 동작으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인다. 빨간 불씨가 타오른다. 후욱, 하고 숨을 깊게 들이쉰다. </P> <P> </P> <P>달이 참 밝다. 밤하늘도 참 까맣고 파랗다. 밤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울렁거리는 밤바다를 보는 것 만 같다고 운동장에 드러누워 웃으면서 얘기하던 어릴적 고향 친구녀석이 생각난다. 이름은 잊었다. 얼굴도 잊어버렸다.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P> <P> </P> <P>시간은 어떻게 해서든 차차 흘러간다. 멈춰있던것만 같이 느껴졌던 시간들이 쌓여, 어느새 3주가 흘렀다. 하루는 일주일같이 긴데, 일주일은 하루만큼 짧다. </P> <P> </P> <P>800일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였다.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언젠가 이만큼 함께하자 웃으며 얘기했던 3만6천5백일도, 어쩌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알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아마 분명히 쏜살같이 지나갔으리라.</P> <P> </P> <P>깊게 들이켰던 연기를 내쉰다. 뽀얀 연기가 아지랑이를 피우며 사라진다. 새벽 3시 반, 아파트 바로 앞 차도에는 아직도 간간히 차가 지나다닌다. 차도를 따라서 멀찍히 떨어져 불을 발하는 가로등이 조금 애처롭다.</P> <P> </P> <P>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참 많아졌다. 성질 급하고 쾌활한 내가, 불 키지 않은 내 방 침대에 누워 멍하니 초를 세는 시간도 늘어났다. 나를 지탱하는 힘이 사라진것 마냥, 자빠진 나는 도대체 일어설 줄을 몰랐다. </P> <P> </P> <P>너는 나에게 힘내라고 말했다. 바쁘게 살다보면 잊혀질 거라고 얘기해줬다. 800일을 사귀었지만 이별의 순간만큼은 정말 똑같구나, 하고. 조금의 답답함과 서글픔, 괴로움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P> <P> </P> <P>불씨는 어느새 거의 다 타들어갔다. 탁탁,하고 손가락을 튕긴다. </P> <P> </P> <P>빨갛게 타들어가며 떨어져 내리는 불씨를 본다. 별 것 아닌 불씨지만 정말로 자유롭고, 아름답다. 오래 가지 못할 불씨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럽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P> <P> </P> <P>저 불씨처럼 나도 나를 밝게 태우고 싶었다. 꿈도 몇개인가 있었다. 꿈에 그친 꿈이지만, 때 늦은 기차표처럼 그래도 아직 가방 한 켠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꿈에 그쳐버린 이유는 잘 모르지만 잘 알고있다. 어쩌면 혼자가 되었다는 것은 무거웠지만 따듯한 족쇄를 끊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시 태우기엔 나는 남은게 없다. 태운 적이 없지만 나는 태운 적이 있었노라고 누군가 대답한다.</P> <P> </P> <P>바람이 차서 큰 창문을 닫았다. 탁 소리를 내며 내 방은 점점 굳어간다. 음울하고 차가운 곳으로 순식간에 변한다. </P> <P> </P> <P>스물한살의 여름. 2012년의 무더웠던 여름이 그립다. 뜨겁고 뜨거워서 손 잡는게 다였지만, 그래도 그립다. 뜨거웠지만 따듯했다. </P> <P> </P> <P>나는 앞으로 영원히 그 여름에서 살 지도 모른다. 태우고 남은 재를 그러모아 그 속의 작은 불씨를 지키면서 그렇게 영원히 지낼지도 모른다.</P> <P> </P> <P>보고싶다고, 가지 말아달라고, 나와 같이 있어달라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는 내가 애처롭다. </P> <P> </P> <P> </P> <P> </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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