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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87879
    작성자 : 사회복지학과
    추천 : 16
    조회수 : 2224
    IP : 59.10.***.115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6/05/17 13:19:27
    http://todayhumor.com/?panic_87879 모바일
    [단편] 결혼
    옵션
    • 창작글
    "18만 위안."

    한화로 무려 3천만원이나 넘는 금액을 서스럼 없이 말하는 노인의 표정은 덤덤하였다.
    그러나 그의 눈에서는 배수의 진을 펼치고 있는 듯한 병사의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

    곰곰히 듣던 목이 굵은 사내는 자신이 생각한 가격을 훌쩍 뛰어넘자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영감님. 가격이 조금 비싼거 아닙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18만 위안은 너무 과합니다. 게다가…."

    "18만, 위안."

    노인은 찻잔에 담긴 보이차를 한 모금 꿀꺽 들이키고는 다시 한 번 자신이 흥정한 가격을 읊었다.
    그러곤 왼쪽 눈썹을 찡그리며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곤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자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다네. 하지만 어느 곳을 가도 이만한 가격은 없을걸세. 알다시피 우리집안은 자네와는 격이 다르지 않은가."

    목 굵은 사내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당장에 땅이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큰 한숨이었다.
    "예, 좋습니다. 저희 같은 평민이 귀하신 집안의 마음까지 이해하겠습니까… 언제쯤이면 되겠습니까?"

    "일주일 후 그래 이날이 좋겠군. 다른 준비는 우리가 해둘터이니 자네는 . 대금은 그때 치르는 거로 하지."

    사내는 꾸벅 고개를 숙이곤 대문을 나섰다. 산시성을 떠나 돌아오는 기차에서 사내는 자신의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세월이 많이 흐른건지 이곳 저곳 찌그러져 있었고 빛이 많이 바래어 있었지만 초침은 여전히 딸깍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사내는 조심히 엄지를 들어 윗 버튼을 누르자 회중시계가 천천히 열렸다.
    회중시계의 안에는 목 굵은 사내와 똑 닮은 청년의 사진이 담겨있었지만 근심이 가득한 사내와는 달리 환하게 미소를 띄고 있었다.

    "이제 곧… 금방이야. 다음주면…."

    사내는 눈을 지그시 감곤 시계를 자신의 미간사이에 가져다 대며 나지막이 말하였다. 그러곤 다시 고개를 들어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근심과는 다르게 티끌하나 없이 맑은 하늘이 너무나도 원망스럽고 또 원망스러웠다.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이른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비는 어느덧 큰 비가 되더니 좀처럼 그칠줄을 몰랐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자 운전대를 붙잡고 있던 사내는 속력을 줄이곤 상향등을 올렸다.
    어두운 도로를 헤드라이트가 환하게 비추자 사내는 초점없이 도로를 응시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야! 후과장 자네 아들 이번에 결혼한다면서! 색시가 엄청난 미인이라면서?"
    어제 점심이었다. 떠벌이 채과장이 이미 다 떠들어댄 모양이었다.

    "후과장님 듣고보니 이름있는 집안이라던데요? 어떻게 그런 집안과 연을 맺었는지……."
    "껄껄, 이게 다 후과장의 노력 아니겠어? 백방으로 뛰어다닌 결과지! 정말 대단한 아버지라니까."

    직장에서는 이미 자신의 아들의 결혼 소식이 쫙 퍼져있었다. 소문은 입을 타고 많은 살들을 붙여나갔다.
    제길, 이게 다 떠벌이 채과장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무렴 어떠한가. 내 아들의 결혼식을 무사히 마친다면 그뿐이었다.

    "우리 아들, 드디어 오늘이 결혼식이네. 벌써 이만큼 자라서 아비 곁을 떠난다니 참 만감이 교차하네. 아들은 어때?"
    "……."
    사내는 옆자리에 앉은 아들에게 말을 넌지시 건네었다. 아들은 답이 없었다.

    "사내놈이 그렇게 긴장하고 있으면 쓰겠어, 자 어깨 쫙펴고! 이제 곧 도착이야."


    이날 결혼식은 요즘 젊은이들과는 다르게 웨딩홀이 아닌 신부의 집에서 진행하기로 하였다.
    징과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복을 불러오는 붉은색 비단이 온 집안을 수놓고 있었으며 향긋한 고기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사람들의 문전성시를 피해 아들은 마당의 붉은 커텐 뒤로 자리를 옮겼다. 신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신부도 커텐 뒤에 있는 모양이다. 

    늦은 저녁까지 비가 내리는 탓이었을까? 아직 결혼식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저마다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 후씨집안과 현씨집안의 백년가약이 맺어지는 결혼식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양복을 말끔하게 빼입은 한 청년이 목청을 높혀 말을 꺼냈다. 몇마디 덕담과 양가 부모님들의 인사가 끝나고 형식적인 절차가 오고갔다.

    "아시다시피 현씨영감님의 둘째따님이 그렇게 미모가 출중하다고 하죠. 자, 그럼 오늘의 주인공을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하객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결혼식장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가 되었다.

    "신랑신부… 입장!"

    청년의 힘찬 입장구호와 함께 붉은 커텐이 양쪽으로 펼쳐졌다.
    커텐 뒤로는 새하얀 얼굴의 아름다운 여인과 목 굵은 사내와 똑 닮은 청년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두 남녀는 서로 부끄러워하며 얼굴에 홍조를 띄고 있을 것이다. 비록 흑백사진이지만 아마도 그러했을 것이다.


    목 굵은 사내는 두 남녀의 사진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회복지학과의 꼬릿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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