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간만에 집에 내려갔다. 광주에 내려가는 동안 마음이 무척 먹먹했다. 어머니의 어색한 표정과 아버지의 지친 어깨가 계속 아른거렸다. 부모님이 모두 일터로 나가신, 오후 한 시에 집에 도착했다.</span></div> <div><br></div> <div>사실, 부모님이 이 시간엔 안계실 거라는 걸 알고나서 기차표를 예매했다. 도착했다는 문자 하나를 보내고 나서 바로 내가 지내던 방의 침대에 누워서 잤다. 십 분 뒤, 갑자기 집 문이 열렸다. 어머니가 오셨다.</div> <div><br></div> <div>어머니는 일을 하시다가 받은 문자 한 통에, 나보다 어린 팀장에게 고개를 몇 번 숙여 가며 집으로 돌아오셨댄다. 나는 그 일자리에서 월급이나 받으신 적 있으시냐 물었다. 없댄다. 3개월 교육 기간 동안은 원래 안받는 거랜다.</div> <div><br></div> <div>중학교 겨우 졸업한 우리 어머니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 뭐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근로기준법이고 최저임금이고 뭐고 이 동네에선 안통한다. 우리같은 것들은 고양이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동네다. 그냥 용돈 삼아 15만 원 받은 돈이 있다는 어머니 말에, '취미생활로는 좋겠다' 싶어서 '그러세요? 잘됐네요'했다.</div> <div><br></div> <div>집에 온지 20분도 안돼, 숨 쉬기가 힘들어졌다. 어머니는 '점심 먹었어?'했고 나는 '먹었어요'했다. 어머니는 '먹고 싶은 거 있어?'했고 나는 또 '점심 먹었어요'했다. 그러다 어제 잠을 못잤다며 그 방에 들어가 누웠다. 실은 먹은 것도 없었다. 배고픈 것보다는 숨쉬는 게 더 절실했다.</div> <div><br></div> <div>방에서 자는 척하던 동안, 가슴팍에 쌀가마니가 얹혀진 것 같았다.</div> <div><br></div> <div>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고, 난 잠에서 깬 척 하면서 방에서 나왔다. 다행히 아버지는 몇 주 전 생사 고비를 넘기신 사람치고는 안색이 퍽 좋아보이셨다. 아버지 저녁상을 차려드렸다. 어머니께선 몇 주 전 수술 받은 다리가 아파 안방에서 나오기 힘들어하셨다. 아버지는 나보고 '같이 먹을까?'하셨고 나는 '먹었어요'했다.</div> <div><br></div> <div>다음날 아침, 서울행 기차를 탔다.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면서 반드시 내일 학교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어머니께서 그러셨다. </div> <div><br></div> <div>'고생해서 내려온 애, 맛있는 거 좋은 거 하나 못먹이고 보내니까 엄마 맘이 참 슬프다.' </div> <div><br></div> <div>죄송해요. 고생해서 버신 쌀 한 톨 축내는 것이 너무 죄송스러웠어요. 그리고 '먹었어요' 거짓말 한 어절이 당신들 가슴에 쌀가마니가 될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어요. 계란프라이 먹고 싶다고 떼라도 쓸 걸.. 올라오면서 그런 생각했어요.</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