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보릿고개를 맞이하게 된 고학생입니다.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너무 배가 고프더라구요. <div><br></div> <div><br></div> <div>밥도 쌀도 없고, 방에 먹을 거라곤 상태가 퍽 의심스러운 감자 두 덩이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감자들마저도 오늘 도서관에 갈 때 도시락으로 써야하는지라 건드릴 수는 없었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그때,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지갑은 엊그제부터 이미 비어 있었던지라 방구석과 가방 안을 뒤적거리며 동전들을 모아봤습니다.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100원 동전 6개가 모였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에 신라면이 6백 몇 십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백원 한 장만 더 찾으면 이른 아침을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span></div> <div><br></div> <div><br></div> <div>퍽 좁은 방이지만 아직 백원 한 장 쯤은 더 숨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분이 조금 좋아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없을 걸 알면서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뒤져본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 두 개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50원짜리 동전들이었지만, 이 녀석들 덕분에 700원을 맞춰 라면을 사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아마도 이 50원 동전들은 내 생애 가장 비싼 50원 동전이 아닐까'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는 방을 나섭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라면을 사면 국물을 졸여서 짜게 먹어야지, 짜디 짠 라면을 먹고 벌컥벌컥 냉수를 들이키는 건 라면을 가장 행복하게 먹는 방법이야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나중에 돈 좀 생기면 달걀도 넣어서 먹고 싶다. 달걀을 풀어서 부드러워진 국물에다가 밥도 비벼먹을 거야, 하지만 수란도 좋은데..'</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br></div> <div>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편의점에 도착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라면 가판대 앞에 섰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신라면, 780원"</div> <div><br></div> <div><br></div> <div>봉지라면 가판대 어디에도 700원 이하의 라면은 없었습니다. 혹시 몰라 컵라면 가판대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다행히도, 쬐그마한 컵라면이 하나에 650원이라고 알려주는 가격표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컵라면이 정말 너무 작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고작 700원 찾아놓고 봉지라면을 먹을 생각에 기분 좋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왔던 제 모습이 너무 바보같았습니다. 하지만 뭐 어떤가요? 저 컵라면이라도 먹고 물 좀 많이 마신 다음에, 감자를 삶아서 감자냄새를 좀 맡다가 도서관에 가면 됩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자그마한 컵라면이라도 하나 먹으면서, 오늘 올라온 웹툰들도 좀 보면서 아침을 여유 있게 보내면 퍽 기분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다시 즐거워졌습니다. 그 작은 컵라면을 들고 계산대로 갑니다. 편의점 알바생에게 컵라면을 건내주고 동전을 꺼내는데</div> <div><br></div> <div><br></div> <div>"800원 입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네? 650원 아닌가요?"</div> <div><br></div> <div><br></div> <div>"주말에만 650원으로 할인되구요. 평일에는 800원이에요"</div> <div><br></div> <div><br></div> <div>"아.. 어.. 저.. 이거 다시 갖다 놓을게요"</div> <div><br></div> <div><br></div> <div>"아니에요. 제가 갖다 놓을게요"</div> <div><br></div> <div><br></div> <div>컵라면 먹으면서 웹툰 보면서 히히덕거릴 생각을 했던 제가 너무 바보같습니다. 뜨끈한 라면 한 그릇 먹을 생각을 하다가, 일이 이꼴이 되니 배가 더 고픕니다. 다시 5층을 걸어 올라가 제 방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허기지고 허무합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돈이 좀 여유 있을 때 좀 아껴 쓸 걸.. 그때 무슨 배짱으로 5천원짜리 짬뽕을 먹었을까.. 그때 애들 눈치 보지 말고 그냥 원래 점심 안먹는다고 하고 빠져나올 걸.. 비빔밥 만들 때 그냥 계란 딱 두 개만 넣어도 될 것을 왜 세 개씩이나 넣었을까.. 그때 김치찌개 끓이지 말고 그냥 김치 따로 고기 따로 먹을 걸.. 그때 왜 맥주를 마셨을까..</div> <div><br></div> <div><br></div> <div>몇 주 전, 돈 있을 때 여유부렸던 게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터벅터벅 방에 돌아와서 이불 위에 누워, 이번 달 알바비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값싼 구휼반찬부터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알바비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시장부터 갈 거야, 뒷다리 살 한 근에 3000원에 양파 한 망이 1000원이야 하지만 혹시 또 몰라, 요즘 돼지고깃값이 워낙 많이 오르고 있으니까 여유 있게 5천원짜리를 들고 가야지'</div> <div><br></div> <div><br></div> <div>'그렇게 뒷다리살과 양파를 사면, 뒷다리살을 살짝 굽고 양파를 송송 썰어서 간장에 넣어서 끓이자, 그러면 간단히 장조림이 완성돼.. 5천원 한 장으로 3일 동안은 거뜬히 먹고 살 수 있을 거야'</div> <div><br></div> <div><br></div> <div>'아!!! 계란도 넣어야지!!! 계란 두 개를 삶자! 삶는 시간은 12분이 가장 좋아! 그리고 간장에 넣어뒀다가 하나는 깨트려서 노른자를 풀어주고 나머지 하나는 밥반찬으로 쓰자!!!'</div> <div><br></div> <div><br></div> <div>돼지고기와 계란을 넣은 장조림을 냉장고에 넣어둬 차게 식힙니다. 그때 쯤이면 아마 따뜻한 밥도 있을 겁니다. 밥을 한 공기 뜹니다. 따뜻하다못해 살짝 뜨거운 밥 한 수저에 돼지고기 한 점을 얹습니다. 짭짜름하면서 차가운 돼지고기가 따뜻한 밥이 어우러지면서 정말 딱 좋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간장을 너무 많이 떠서 너무 짜다 싶으면 계란을 터트려 노른자를 한 점 밥에 비벼줍니다. 노른자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간장밥에 정말 잘 어울립니다. 목이 메이도록 허겁지겁 장조림에 밥을 먹다가, 정말로 목이 메이는 느낌이 올 때, 냉수를 벌컥벌컥 마십니다. 행복하기 그지 없는 식사입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서너 시간 뒤엔 도서관 5층, 사람들이 가장 적게 오는 서양 단행본 서고에 몰래 숨어서 삶은 감자를 먹어야겠지만 돈이 들어올 날 먹을 수 있을 행복한 반찬들을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냅니다. 행여나 감자 먹다가 아는 사람에게 들키면 다이어트 식단이라고 변명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요즘 세상에 감자를 구휼식품으로 먹다가 들키는 건 아무래도 부끄러운 일입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