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들어가기)</div> <div> </div> <div>좌절한팬더님의 주장.</div> <div> </div> <div>1. 정당의 가치</div> <div> - 대한민국 헌정 이래 소위 대중정당이라는 집단들이 정치발전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끼쳤는지부터 따지고 들어가야 할 것.</div> <div> - 자칭 세계에서 지식인 당원비율이 가장 높다던 노동당의 전신 진보신당마저</div> <div> 그나마 확보했던 원내의석조차 지키지 못한 채<span style="line-height: 1.5; font-size: 9pt"> 보라당의 합당 운동에 밀렸음.</span></div> <div> - 따지고 보면 진보정강과 정책이 사람들에게 폭넓게 인식된 것. 북쪽 조선노동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었던 시기도</div> <div> 비록 일심회사건 등으로 빛이 바라긴 했으나, 진보정당의 첫 원내진출이었던 전기 민주노동당의 성과가 아니었는가.</div> <div> - 사상적 자위를 목적으로 정당을 창당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스스로를 틀에 가두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겠는가.</div> <div><br /></div> <div> NL의 경직성과 폐쇄성은 비판하면서 왜 또 다른 폐쇄적 기반을 파고들려 하는가.</div> <div><br /></div> <div> - 대중과 친숙하지 않은, 괴리된 정당은 결국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div> <div><br /></div> <div><br /></div> <div>2. 대중정당의 가치와 정치적 피로감의 악순환</div> <div><br /></div> <div> - 선거행위는 그간 정당이 해 온데 대한 일종의 중간평가 단계이다.</div> <div> 대한민국의 정치지형 아래 대중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허언에 머무르는 기성정치인의 태도에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div> <div><br /></div> <div> 그러나, 공허한 이념을 기치로 대중에게 어떠한 현실적 당근책도 내세우지 못하는 대안정당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div> <div><br /></div> <div> 이는 소위 대중정당이라 불리우는 노동당도 다를 바 없다.</div> <div><br /></div> <div> 변화를 위해서는 기존 정치세력들이 가진 안정감과 이익을 뛰어넘는 당근책과 동시에</div> <div> 변화라는 방식이 가진 소위 '리스크'요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div> <div><br /></div> <div> 노동당의 전신 진보신당부터 이러한 선거요인을 다 따져가며 적극적으로 선거를 기획해본적 있는가?</div> <div><br /></div> <div> 진보신당의 지난 지방선거.</div> <div>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과 장밋빛 미래에 대한 청사진은 있을지언정, 거기서 끝.</div> <div><br /></div> <div> 당시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에게도 밀린 참담한 성과에서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div> <div><br /></div> <div> 언제까지 선거라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비판과 회피만을 할 것인가.</div> <div> 그렇다면 노동당은 '대중정당'을 기치로 내세워 현실정치에서 도망다니는 겁쟁이밖에 되지 않는다.</div> <div><br /></div> <div> - 선거로부터 도망치지 마라.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투쟁해서 의석을 쟁취하는 길이</div> <div> 대중정당을 대중과 가깝게 할 것이며, 대중의 정치적 피로감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div> <div><br /></div> <div><br /></div> <div>3. 복합적 공안행위 비판의 시점</div> <div><br /></div> <div> - 야권이 한창 국정원 개혁을 기치로 내거는 시점에서 촛불시위를 집중적으로 이끌었던 보라당과 <span style="line-height: 1.5; font-size: 9pt">그 의원 및 당직자가 체포되는 사태가 발생할 당시</span></div> <div> 민주당과 정의당의 브리핑은 무분별한 종북몰이를 경계함과 동시에 이석기 사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주문한다.</div> <div><br /></div> <div> 이는 국정원 개혁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한 자세. 원내정당 그들 스스로의 스텐스로 합리적인 선택의 산물.</div> <div><br /></div> <div> - 노동당이 대중정당을 기치로 내걸면서 원내 진입을 노린다면 최소한 이들처럼 조금 더 신중한 브리핑을 냈어야 했다.</div> <div><br /></div> <div> - 정부여당의 의도 자체가 국정원 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흐지부지하게 만들어 이를 좌절시키고</div> <div> 더 나아가 비 여당 구성원 혹은 지지성원 전체를 압박하고 찍어누르기 위한 수단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div> <div><br /></div> <div> - '정당 브리핑'이라면 단순한 진영론적, 사상론적 탄압 그 이상의 시각에서 바라봤어야 했다.</div> <div><br /></div> <div> - 정부의 '복합적 공안행위'를 비판하기 위한 이번 사태의 사전조건으로는 '이석기의 무죄'라는 선행조건이 필요했다.</div> <div> 최소한 '부분적 무죄'라도 받아내야 한다.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은 이 시점에 감정에 휩쓸려 너무 성급한 브리핑을 냈다.</div> <div><br /></div> <div><br /></div> <div>4. 논점은 노동당 브리핑 비판에 있다.</div> <div><br /></div> <div> - 이석기라는 개인의 사상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순수한 '인간 이석기'를 위한 원칙이다.</div> <div> 국민의 대표성을 지닌 '국회의원'이라면 스스로 더 행동에 신중했어야 했다.</div> <div><br /></div> <div> 또한 그 소속이 정부여당에 대한 최대의 적대감을 드러내는 집단이라면 더더욱.</div> <div><br /></div> <div><span style="line-height: 1.5; font-size: 9pt"> - 물론 다수 사회주의자들이 공안당국의 무분별한 탄압을 받는 상황은 잘 알고있다.</span></div> <div> 따라서, 심정적 동의와 정부의 행위 비판, 객관적 사고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div> <div><br /></div> <div> 오히려 이러한 시도에 대해서는 그들의 곁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할 자세가 되어 있으며, 또한 그러고 있다.</div> <div><br /></div> <div> - 그러나, 앞서 말했듯, 정당에 소속된 정당원이라면 이미 일반 '개인'이 아니다.</div> <div><br /></div> <div> 전장에 나선 정치적 투쟁의 한복판에 선 투사이다.</div> <div> 국회의원이나 당 대변인은 그 투사들 중에서도 제일 선두에 서서 투쟁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다.</div> <div><br /></div> <div> - 이 시점에서, 노동당의 이번 브리핑이 제대로 된 정치적 투쟁인가?<span style="line-height: 1.5; font-size: 9pt"> 여전히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span></div> <div><br /></div> <div> 이번 브리핑은 완벽한 작전 미스이며 적의 함정에 빠져버린,</div> <div> 또 나아가 원내정당 재 진입이라는 목표에 방해가 될 뿐인 행위에 불과하다.</div> <div><br /></div> <div> - 나는 노동당이 조금 더 신중해지길 바란다.</div> <div> 그들이 정당이라는 옥쇄를 스스로 찬 이상, 이미 그들은 사상의 자유를 원하는 일반인이 아닌,</div> <div><br /></div> <div> 전면에서 적과 싸워 목표를 쟁취하는 투사임을 상기하기 바란다.</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font size="3">이하 반론.</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strong>정당에 대한 변혁적 사유</strong></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첫 째로 우리 시대에 소위 '진보정당'이 높은 지지율을 점유했던 시기는 사실상 건준 이후로는 없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 극심한 극우 반공 정권의 탄압의 세월 속에 진보 정당이 자리하기 위한 지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 엄밀히 말해, '진보'라는 가치 자체가 비어있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역설적으로 '진보'의 이름이 비어있었기에 우리는 건설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 그 원시적 형태가 바로 국민승리21이며, 민주노동당이다. 그것이 어떻게 건설되었는가? - 선거와 투표로 민주노동당이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거주의자들의 순진한 발상이다. 나는 선거와 투표만으로 정당의 성장과 발전을, 그리고 정치발전을 재단하는 행위는 '선거주의'이며 동시에 의회로의 수렴만을 강조하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 대중은 언제나 의회로부터 소외되어 있다.</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바로 이 지점에서 정당에 대한 변혁적 사유가 등장할 수 있다. - 대중정당은, 그 정치적 개념과 같으 대중과 '함께' 성장하는 정당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대중이란 의미는 단순히 양적 의미의 대중이 아닌 체제로부터 소외된 대중으로써, 투쟁에 나설 역량을 지닌 조직된 자들이다. 민주노동당 역시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성장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진보정당들이 수권하지 않았다, 단순 지지율이 낮다는 사실근거만으로 정당의 성장과 그 정당의 역할에 대한 의의와 과정을 폄훼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strong>정당으로써의 관리 능력에 대하여</strong></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정당이 지니는 효용 중에 정치적 대중의 각성 이외에도 그들을 교육하며 효과적으로 이념을 보급하는 기구라는 점을 상기해볼 때 현 노동당이 그렇게 뛰어난 관리 능력을 지녔다고 보기는 어렵다. - 이것은 차후 논의해야 될 문제로써 현재 논쟁과는 그다지 논점이 맞지 않는 부분이다. - 물론 이러한 부분이 대중의 정치적 피로감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진보정당 자체만의 문제도 아니며 - 역설적으로 대중이 느끼는 진보주의적 가치들에 대한 환멸과 두려움 내지는 경멸감 등은 그들이 진보정당으로부터 타당한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박탈감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이다. - 정확히 말해, 우리는 주체로써 계급을 호명할 뿐이다. 이것은 단순히 진보정당만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과하지 않은가?</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strong>합리의 탈을 쓰지 마라 - 정치적 언어가 비판의 대상</strong></font></div> <div><font size="3"></font> </div> <div><font size="3">좌절한 팬더가 지적한 바와 같이 정의당 및 민주당이 내놓은 스탠스는 그들이 의회 정당이라는 틀 안에서 행동했기에 나올 수 있는 합리적 계산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포동의안에 대한 비판 역시 합리적이다. 왜? - 의회 정당이라는 '틀' 안에서 행동했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체포동의안에 대한 찬성이라면, 의회의 밖에 있기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체포동의안에 대한 반대이자 비판이다. 또한 이것은 이석기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 강조함과 동시에, 체포동의안이 지니는 정치적 언어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기원한다. - 정확히, 공안활동은 '주어 없는' 활동으로써 우리가 기실 느낄 수 있는 단순한 치안활동에서부터 현 정치권에서 볼 수 있는 '종북주의자' 사냥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공안활동은 그 일상성에서부터 정치성까지 다양한 언어를 지니고 있다. - 문제가 되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공안활동 그 자체에 내재한 문제가 아니라 공안활동을 함으로써 내비치는 정치적 언어에 대한 침묵이 과연 진보적 가치로써 옳은가? 아니면, 좌절한 팬더의 주장대로 원내에 진입하기 위해 이러한 옳지 못한 일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옳은가?</font></div> <div> </div>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