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r></p><p><span style="font-size: 12pt;">"나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에게 지배되지 않을 것이다."</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뛰어난 사회주의자였던, 로자 룩셈부르크가 남긴 이 말 한마디는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 사실 지배 체제 혹은 지배 체계는 정치의 한 방식으로서 결코 정치의 본질을 벗어날 수 없다. - 결코 정치는 '완벽함'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뒤집어 말해, 지배는 불완전하다. 심지어, 가장 극악무도한 전체주의 정권이라 할지라도 구성원 자체가 완전한 지배를 받는 경우는 없다.</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 이런 점에서, 수많은 지배자들에게 던져진 고민은 다음과 같다. - 힘으로써, 물리력으로써 지배할 수 없다면 피지배자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순응하고 동의하게 만들어야 한다. - 현대 민주주의 체계는 그 정당성과 권위를 '동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지배 방식을 조금 더 세련화하였다. -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 자본주의의 원동력은 여전히 생산에 기초하고 있다. - 자본주의를 지속시키는 에너지는 소비의 증대일 것이다. - 헤게모니란, 이러한 자본주의의 단순한 생산 - 소비의 구도를 포함하여</span><span style="font-size: 12pt;"> 정치적 수준 뿐만 아니라, 지적 수준, 도덕적 측면의 통합을 이루어내고 집단의 자발적 동의를 도출해내는, '새로운 지배질서'다. - 자본주의의 지배질서는 무엇인가? - 그것은 생산의 자발성이 아닌, 소비의 자발성으로부터 도출될 것이다. - 실로 안토니오 그람시는 뛰어난 혜안을 지닌 사람이 아닌가!</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br></span></p><p><span style="font-size: 12pt; line-height: 1.8;">그러나 이러한 지배질서는 비록 그 자체로 세련된 모습을 띄고 있을지언정, 이 역시 이들이 '완전한 지배'를 할 수 있음을 뜻하진 않는다. - 하버마스가 주장한대로, 설령 '생활 세계의 식민화'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지배의 완전함을 뜻하지 않는다. - 지배를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 - 그들의 일상성과 정치성은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것은 바로 여기로부터 도출될 것이다. - 우리의 사고는 종종 일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 "나는 결코 너희에게 지배되지 않을 것이다." - 우리가 삼성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엘지 컴퓨터를 쓰고, 남양에서 만든 우유를 마시며, 쌍용에서 만든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일상의 식민지화는 우리의 사고까지 통제할 수 없다.</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br></span></p><p><span style="font-size: 12pt; line-height: 1.8;">박근혜! 그녀는 명실상부 51%의 지지를 얻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한 그녀를 앞세워 자본가들이 다시 기사회생할지 아니면 박근혜의 뿅망치에 숨죽이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 여전히 지배 계급 내의 통합은 어려워 보인다. - 다른 한 편에서, 이러한 박근혜의 지배에 동조하지 않는 집단이 생겨나고 있다. - 국정원의 멍청한 하수인 노릇과 자기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난 뻘짓은 어쩌면 지배 계급 자체를 뒤흔들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 그러나 여전히 의문점은 남아있다. - 누가 우리를 지배하는가?</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br></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span style="font-size: 12pt;">그건 박근혜도 아니고, 국정원도 아니고, 조중동도 아니다. - 우리는 그들로부터 얼마든지 탈피할 수 있지 않은가? - 가령, 우리는 박근혜를 비판할 수 있고, 국정원의 해체까지도 주장할 권리가 있다.(난 개인적으로 국정원의 존재 목적이 정권의 더욱 수월한 지배르 위해 여론조작을 하는 일이라면 차라리 해체하는 것이 더욱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span><span style="font-size: 12pt;">) - 나아가, 우리는 조중동의 불매 운동을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들이 행사하는 영향력에 대해 우리는 우려하고 걱정할 수 있다. -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근본적 압력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다. - 차별 금지법을 철폐시키기 위해 온갖 파쇼적 망동을 벌인 극우 개신교회 집단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사실 종교적 도그마가 아니라,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자본이다. -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가?</span></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br></span></p><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span style="font-size: 12pt;">박근혜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닐까? - 진정한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가?</span><span style="font-size: 12pt;"> </span></span></p>
투철한 신념과, 충분한 지식과, 충만한 용기와 민주주의로 무장한 논객. 혹은 그렇게 되려는 사람.
논객은 관중이 아니다. 참여하고, 주장하고, 설득해야 한다.
맑스의 정신과, 로자의 두뇌와, 레닌의 실천과, 트로츠키의 용기와, 박노자의 지혜와, 홉스봄의 철학과, 리영희의 고뇌와, 그람시의 냉철함을 가지고 파쇼를 향해, 독재를 향해, 자본주의를 향해, 모든 억압과 속박의 고리를 향해 서슴없이 칼날을 들이대라.
자칭 3류 혁명적 국제사회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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