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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69206
    작성자 : 왕눈이개구리
    추천 : 18
    조회수 : 4136
    IP : 1.237.***.186
    댓글 : 28개
    등록시간 : 2014/06/24 01:16:53
    http://todayhumor.com/?panic_69206 모바일
    [BGM] 99시 99분 죽어야 할 시간
    <embed src="http://player.bgmstore.net/v7lOk" width="422" height="180"><br><a target="_blank" href="http://bgmstore.net/view/v7lOk" target="_blank">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v7lOk</a>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환한 통유리를 통해 밖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div> <div>시원해 보이는 밖의 풍경은 잔인한 여름.</div> <div>그리고 이곳은 잔인한 카페.</div> <div><br></div> <div>지긋지긋한 카페.</div> <div>지긋지긋한 커피냄새.</div> <div><br></div> <div>이 카페에 아주 오래 있었다.</div> <div>며칠을 있었더라.</div> <div><br></div> <div>1, 2, 3, 4, 5, 6</div> <div>그래.</div> <div>9999일.</div> <div><br></div> <div>아니 정확하게는 표현하자면 '9999번째' 있는 중이다.</div> <div><br></div> <div>내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div> <div>목에서 신물이 올라온다.</div> <div><br></div> <div>누가 아메리카노를 고소하고 씁쓸하고 짭조름하면서 달콤한 게 깊은 맛까지 있다고 하던가.</div> <div>이건 악마가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쓴 물이다.</div> <div>심지어 마시기 짜증나게 뜨겁기 까지 하다.</div> <div><br></div> <div>원산지가 지옥임에 틀림없다.</div> <div>아니면, 우리 조상들이 고안해 낸 것일지도 모른다.</div> <div><br></div> <div>뭐? 브라질? 에티오피아? 콩고? 아니다.</div> <div>이 쓴 사약 맛을 구현 할 수 있는 건 우리 선조들 밖에 없다.</div> <div><br></div> <div>아마 조선시대, 아니면 삼국시대에 사약을 받기 전,</div> <div>예행연습 삼아 홀짝여 보라고 만들었을 것이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너무 써서 아무도 안 먹었겠지.</div> <div>차라리 사약을 주시오! 차라리 내게 사약을! 하고.</div> <div><br></div> <div>증오한다. 아메리카노.</div> <div><br></div> <div>수 천 잔을 마셨다.</div> <div>먹을 게 이것 밖에는 없다.</div> <div>주머니는 탈탈 비었다.</div> <div>배는 고프나, 역시 먹을 건 아메리카노 뿐.</div> <div>망할,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 뿐.</div> <div><br></div> <div>9999일 전에, 그러니까 9999번째 전에 커피 주문 받았던 여자.</div> <div>속 비치는 흰 블라우스에 스키니 진 입고 있던,</div> <div>오늘따라 머리를 뒤로 쫑긋 묶어 여리여리 더 청순하게만 보이던,</div> <div>그 아르바이트 여자.</div> <div>그 여자를 꼬셔보려고 나는 카페에 들어왔다.</div> <div>정확히는 꼬시려했다기 보단, 그저 얼굴이나 좀 보려고 왔었는데,</div> <div>결과적으로 꼬시려 달려들었으니, 꼬셔보려고 카페에 들어왔다는 것은</div> <div>원칙적으론 틀린 말이나, 결과적으론 말은 맞는 말이다.</div> <div>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div> <div><br></div> <div>정신머리 없는 놈.</div> <div>충동억제제를 삼시세끼 전 공복에 필히 복용하고 다녀야 할 놈.</div> <div><br></div> <div>잠깐이라도 나는 그녀를 꼬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div> <div><br></div> <div>"연락처 좀 얻을 수 있을까요?"</div> <div>"…."</div> <div><br></div> <div>온 카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div> <div>힐끔 거리며 보는 사람도 있었고,</div> <div>웬일이야~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고,</div> <div>내가 번호를 따는지 못 따는지 내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div> <div>입이 아 벌어져 있는 사람, 눈을 그윽하게 뜨고 있는 사람,</div> <div>내가 재미나는지 싱글벙글 거리는 사람</div> <div><br></div> <div>그리고</div> <div><br></div> <div>연락처 좀 얻을 수 있을까요? 물어 본 충동적 얼뜨기와,</div> <div>얼굴이 빨갛게 익어서 휘리릭 도망쳐버린 하얀 블라우스의 여인도 있었다.</div> <div><br></div> <div>그냥 나왔어야 했는데,</div> <div><br></div> <div>괜히, 아 괜히, 아메리카노는 받고 떠나야 할 것 같았다.</div> <div>창피했으나, 3000원도 돈은 돈이었고, 나는 돈 3000원을 주고 커피를 샀으니까.</div> <div>고백이랑 커피랑은 아무 관계없으니까….</div> <div>내가 차인거랑 커피랑은 아무 관계없으니까….</div> <div><br></div> <div>아, 없으니까!</div> <div><br></div> <div>커피 홀짝이는 사람들의 눈총을 맞아가며 전열을 가다듬었다.</div> <div>나는 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가 치명상을 입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div> <div>이미 피는 질질 흐르고 있었으며,</div> <div>내가 자릴 잡은 테이블 밑은 흔히들 말하는 피바다, 내 장렬한 패배의 피바다.</div> <div>바로 그 자체였다.</div> <div><br></div> <div>그렇게 커피는 나왔고, 나는 아직 떠나지 못했다.</div> <div><br></div> <div>문제는 그때부터다.</div> <div>그러니까 지금,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다.</div> <div><br></div> <div>그러니까, 맨 처음. 맨 처음을 떠올려보자.</div> <div>맨처음 나는 이곳에서 커피를 한 잔 다 마셨고,</div> <div>그동안 사람들의 연발총은 거듭 내 등단지를 쑤셨고,</div> <div>커피를 다 마신 후, 그 총알 세례 속에서 피 흘리고 신음하며 카페를 나갔을 때,</div> <div>드디어 나는 정신을 차렸고,</div> <div>멀리멀리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div> <div><br></div> <div>서둘러 카페 앞 4차선 도로를 무단횡단으로 건넜다.</div> <div>어차피 차가 잘 안다니는 도로였다.</div> <div>그래서 무심결에 차가 오는지, 가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반 뜀박질로 건너던 중</div> <div>성난 코뿔소처럼 달려오는 검정색 SUV가 한 대 나를 치고 지나갔다.</div> <div>순식간이었다.</div> <div>몸이 하늘을 날았다.</div> <div>그 육중한 본네트에 부딪힌 어깨와 머리, 아랫배부터 꺾여 진 다리,</div> <div>뼈가 괴성 치며 바스러지던 그 굉음,</div> <div>SUV가 스키드마크를 긋던 그 소름끼치는 소음.</div> <div>철덩이가 덮쳐오던 그 무시무시한 묵직함.</div> <div><br></div> <div>그 모든 것들이 섬광처럼 나를 덮치고, 세상이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였다고 느꼈을 때.</div> <div>그리고 다시 시야가 번쩍 돌아왔을 때, 그 상처는 모두 사라지고,</div> <div><br></div> <div>나는 다시 카페 안이었다.</div> <div><br></div> <div>졸은 줄 알았다.</div> <div>깜빡 졸아서 잠깐 꿈을 꾼 것만 같았다.</div> <div><br></div> <div>그러니까, 내가 잠깐 졸아서,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창피해서</div> <div>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가 하마터면 긴장이 풀려 졸았거나,</div> <div>아니면 일순에 몰려온 극심한 스트레스에 졸도를 했다고 생각했다.</div> <div><br></div> <div>그게 아니라면 그 끔찍했던 장면들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div> <div><br></div> <div>머리를 흔들어 털고, 정신을 가다듬었다.</div> <div>나는 다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쥔 채 서둘러 카페를 나섰다.</div> <div>걸음이 급해졌다.</div> <div>서둘러 도로를 건널까하며 슬쩍 반대 차선을 보는데, 아니나 다를까,</div> <div>성난 코뿔소 같은 SUV가 호랑이 같은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div> <div><br></div> <div>놀라서 뒤돌아섰다.</div> <div>조심성 없는 행동이었다.</div> <div><br></div> <div>손에 뜨거운 것을 들고 있었다면, 조심했어야 했는데,</div> <div>나는 지금 꿈같지만 마치 현실 같은 죽음을 경험한 것과 같은 상황이었고,</div> <div>그래서 경황이 없었고, 조심성을 부릴 여유가 없었다.</div> <div><br></div> <div>그래서 웬 떡대와 부딪혔다.</div> <div>손에 들고 있던 아메리카노가 그의 넓대대한 가슴팍과 내 손을 뜨겁게 달궜다.</div> <div><br></div> <div>그의 하얀 티셔츠는 갈색으로 예쁘게 물들었고,</div> <div>내 손은 커피의 고소한 향과 함께 치지직 볶아지고 있었다.</div> <div><br></div> <div>"앗! 씨발…."</div> <div><br></div> <div>물론 손이 뜨거워서 한 말이었다.</div> <div>그 남자에겐 그렇게 들리지 않은 모양이겠지만.</div> <div><br></div> <div>그 남자는 "이 개새끼가." 라는 짧은 말을 남기며 대뜸 내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div> <div>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SUV와 충돌하던 것만큼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div> <div><br></div> <div>하늘이 뱅글 급회전 하는 것이 느껴졌고,</div> <div>땅이 이마로 돌진해 오는 게 보였다.</div> <div>도로 측 아스팔트 위에 코를 박는 그 순간,</div> <div><br></div> <div>나는 다시 카페 안이었다.</div> <div><br></div> <div>사람들은 아직 나를 보고 있었다.</div> <div>악마의 쓴물은 아직도 뜨거운지 김이 펄펄 피어올랐다.</div> <div><br></div> <div>묘했다. 꿈만 같았다.</div> <div><br></div> <div>SUV에 치었을 고통도, 땅바닥에 코를 찧었을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div> <div>그렇게 생생했는데.</div> <div>꿈이 아니라, 현실만 같은데.</div> <div><br></div> <div>그때 내 정면에 있던 전자시계의 빨간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div> <div>점들이 이뤄 놓은 숫자들.</div> <div><br></div> <div>-00:02</div> <div><br></div> <div>또 졸았나?</div> <div>분명히 졸았어.</div> <div>그러니까 두 번 졸아서 두 번 다 현실 같은 꿈을 꾼거야.</div> <div><br></div> <div>눈동자를 굴렸다.</div> <div>이상했다.</div> <div><br></div> <div>카페의 통유리로 도로를 내다보니,</div> <div>SUV가 다시 미친 듯 달려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div> <div>잠시 후 타이트한 흰 색 티셔츠를 입은 근육질 남자도 지나갔다.</div> <div>좀 전에 내 턱에 핵주먹를 날려 준 그 남자였다.</div> <div><br></div> <div>데자부? 기시감? 뭐든 좋았다.</div> <div><br></div> <div>아직 카페 사람들의 호기심이 빗발치고 있었다.</div> <div>빗발은 화살처럼 나를 관통했고,</div> <div>덕분에 더 혼잡해진 정신은 내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다.</div> <div><br></div> <div>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div> <div>아프다.</div> <div>몰래몰래 훔쳐보기는…… 뭘 봐, 이 사람들아. 등신 같은 남자 처음 봐?</div> <div><br></div> <div>이제 커피는 아무래도 좋았다.</div> <div>테이블 위에 아메리카노를 놓아둔 채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div> <div>SUV도 지나갔고, 흰 티셔츠 남자도 지나갔다.</div> <div><br></div> <div>꿈이었나?</div> <div>애초에 나는 언제 졸았었나?</div> <div>졸은 기억이 없다.</div> <div>강렬했던 통증들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div> <div><br></div> <div>해괴한 일이었다.</div> <div><br></div> <div>카페를 나서며 헛웃음이 터졌다.</div> <div><br></div> <div>이게 웬일이람.</div> <div>여자한테 대뜸 연락처나 달라고 하다 단호박처럼 차이고,</div> <div>개꿈이나 꾸고 있는 꼴이람.</div> <div><br></div> <div>"위험해요!"</div> <div><br></div> <div>응?</div> <div>어떤 대머리 아저씨가 나를 똑바로 보고 소리쳤다.</div> <div>아저씨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주 찰나 같은 순간, 뭔가가 정수리를 호되게 강타했다.</div> <div>목이 납작하게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div> <div>몸은 땅으로 푹 꺼져버리고,</div> <div>쓰러지며 몸의 감각이 정전된 것처럼 사라져버렸다.</div> <div>몸이 안 움직였다.</div> <div>목이 돌아가질 않았다.</div> <div>목이 부러진 모양이었다.</div> <div><br></div> <div>넘어지며 시야에 들어 온 것은 간판.</div> <div>악마의 쓴물을 만들고 있는 이 악마 같은 카페의 간판.</div> <div><br></div> <div>"괜찮아요? 괜찮아요?! 이봐요!"</div> <div><br></div> <div>나를 향해 달려오는 대머리 아저씨와 간판이 동시에 시야에 들어왔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다시 나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div> <div><br></div> <div>침을 삼켰다.</div> <div>전자시계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div> <div><br></div> <div>-00:03</div> <div><br></div> <div>시계가 이상하다.</div> <div>지금은 대낮이다.</div> <div>전자시계가 00:03을 가리키고 있다면,</div> <div>시계는 24:00을 따르는 24시간 형식의 전자시계란 뜻이다.</div> <div>그렇다면 00:03이 아니라 12:03이라 표시되는 것이 맞았다.</div> <div>00:03이라면 밤 12시 03분이란 뜻이 아니던가?</div> <div>낮에는 12:03이어야 맞지.</div> <div>뭔가 이상해.</div> <div>그리고 지금 00:03은 무엇인가.</div> <div>아까 00:02를 본 기억이 있었다.</div> <div>1분이 늘었다.</div> <div>어째서 1분?</div> <div>가만히 앉아 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div> <div>속으로 60초를 세었다.</div> <div><br></div> <div>-00:03</div> <div>-00:03</div> <div>-00:03</div> <div>-00:03</div> <div>-00:03</div> <div><br></div> <div>…116.</div> <div>…117.</div> <div>…118.</div> <div>…119.</div> <div>…120.</div> <div><br></div> <div>60초는커녕 120초를 셌다.</div> <div><br></div> <div>1분이 이리도 길었던가?</div> <div>사람들은 아직 나를 구경꺼리 삼고 있다.</div> <div>쇼는 끝난 지 오래다.</div> <div>아니다. 나에게만 그런 것인가?</div> <div>마치 우리 속에 갇혀있는 원숭이가 된 기분이다.</div> <div>사람들은 나를 재밌어라 보고 있는 듯했다.</div> <div><br></div> <div>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그랬다.</div> <div>쪽팔려서 못 움직이나봐? 하고 말했다.</div> <div>말하곤 깔깔깔 하고 웃었다.</div> <div>그 웃음소리가 거슬렸다.</div> <div>목소리를 향해 눈을 돌리자, 한 무리의 남녀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div> <div>남자 셋, 여자 셋.</div> <div>90년대 시트콤이냐?</div> <div>그들에게서 눈을 돌렸다.</div> <div><br></div> <div>오싹해져왔다.</div> <div>남자 셋, 여자 셋 때문이 아니다.</div> <div>죽음이 다가오는 불안감 때문에서였다.</div> <div><br></div> <div>나는 왜 계속해서 죽는 것만 같은 헛것을 보고 있는가.</div> <div>기분이, 기분이 이상했다.</div> <div>이상하게 허기가 밀려왔다.</div> <div>이곳에서 아주 오래 있었던 건만 같았다.</div> <div><br></div> <div>테이블 앞에 있는 건 달랑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div> <div>지갑엔 돈이 없었다.</div> <div>카드로 베이글을 주문했는데, 한도가 지났다는 말을 듣고 되돌아와 앉았다.</div> <div>집에 돌아가서 뭐라도 먹고 싶었다.</div> <div><br></div> <div>또, 뒤에서 그 남자 셋 여자 셋이 목청을 높였다.</div> <div><br></div> <div>"돈도 없어."</div> <div><br></div> <div>깔.깔.깔.</div> <div><br></div> <div>다시 그들을 돌아봤다.</div> <div>남자 셋 여자 셋은 내 눈길이 같잖았는지, 아니꼬운 눈빛을 내게 돌려주고 있었다.</div> <div>피차일반이었다.</div> <div>하지만 그건 남자 셋 여자 셋의 탓만은 아니었다.</div> <div>기분이 안 좋았다.</div> <div>급격하게 우울함이 나를 덮쳤다.</div> <div>아까 그 SUV처럼.</div> <div>맹렬하게.</div> <div><br></div> <div>뭔가 이상했다.</div> <div><br></div> <div>당장 배가 고픈 대로 커피를 들이마신 뒤 일어섰다.</div> <div>절로 겁이나, 위를 올려 보았으나, 간판은 떨어지지 않는다.</div> <div><br></div> <div>카페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한가한 큰 거리로 나왔을 때.</div> <div>누군가 뒤에서 소리쳤다.</div> <div>깜짝 놀랐다.</div> <div>무심결에 놀라며 또 위를 올려다봤다.</div> <div>간판은 아니었다.</div> <div>물론 대머리 아저씨도 아니었다.</div> <div><br></div> <div>"야!"</div> <div><br></div> <div>야?</div> <div>뒤를 돌아보니, 남자 셋 여자 셋이 보였다.</div> <div>뭐야?</div> <div><br></div> <div>"너 아까 왜 우리 쳐다봤냐?"</div> <div><br></div> <div>나한테 하는 말인가?</div> <div>그럴 리 없다.</div> <div>그럴 리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럴 리 없다.</div> <div>혹시나 그렇다면 나는 참, 어처구니가 없다.</div> <div><br></div> <div>그들을 무시한 채 다시 뒤돌아 걸었다.</div> <div><br></div> <div>그러자 남자 셋 중 하나가 내게 달려와 어깨를 잡았다.</div> <div>가까이서 보니, 파릇파릇 한 게 고등학생 아니면 이제 막 대학 들어간 새내기인 것 같았다.</div> <div><br></div> <div>"왜 대답을 안 해?"</div> <div><br></div> <div>무슨 대답?</div> <div>무슨 대답을 원해?</div> <div><br></div> <div>또 무시하고 걸었다.</div> <div><br></div> <div>"야, 대답하라고!"</div> <div><br></div> <div>대답했다.</div> <div>"꺼져." 라고 대답했다.</div> <div><br></div> <div>그들이 얼마나 아니꼬운 줄은 모르겠으나,</div> <div>나는 굉장히 아니꼬았다.</div> <div>정확히 세 번의 죽음을 경험 했을 정도로 내 기분은 아주 아니꼬았다.</div> <div><br></div> <div>덩달아 배는 고팠고, 왠지 모르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div> <div>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div> <div>그 기억 속 생생한 통증들.</div> <div>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div> <div><br></div> <div>걷는데, 남자 셋 여자 셋을 무시하고 걷는데.</div> <div>갑자기 그들 중 하나가, 다짜고짜 나를 때렸다.</div> <div>뒤에서 날린 치졸한 급습이었다.</div> <div>이성이 증발하는 것을 느꼈다.</div> <div>나는 상대의 얼굴도 보지 않고 멋대로 주먹을 휘둘러 한 방을 돌려줬다.</div> <div><br></div> <div>곧 내게로 날아오는 주먹과 발길질이 한 타이밍에 세 개씩으로 늘었고,</div> <div>몰매를 못 이기며 바닥에 쓰러졌다.</div> <div>쓰러진 내 안면으로 그 커다란 운동화의 코가 달려들었을 때,</div> <div>번쩍 별 빛 같은 플래시가 터졌고,</div> <div><br></div> <div>나는 다시 카페에 앉아 있었다.</div> <div><br></div> <div>곧바로 전자시계부터 보았다.</div> <div><br></div> <div>-00:04</div> <div><br></div> <div>00시 04분?</div> <div>벼락을 맞는 기분이었다.</div> <div>1분이 또 늘어났다.</div> <div>주변이고 커피고 뭐고 총알처럼 튀어나갔다.</div> <div>무서웠다.</div> <div>뛰어야했다.</div> <div>이건, 이건 뭐야?</div> <div>시야가 저 멀리 도망을 쳤다.</div> <div>눈에 들어오는 것도 없으면서 행선지도, 동서남북도 없이 무조건 달렸다.</div> <div>내가 생각 없이 도로로 뛰쳐나갔다고 자각 한 순간,</div> <div>그 성난 코뿔소 같던 SUV가 내 허리를 들이받고 있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다시 카페.</div> <div><br></div> <div>-00:05</div> <div><br></div> <div>점점 배가 고파오고 있었다.</div> <div>허겁지겁 아메리카노를 마셨다.</div> <div>입천장이 데일정도로 뜨거웠지만, 그 고통이 허기를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div> <div>가슴에서 복부로 뜨거운 커피가 쏟아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div> <div>머리는 오히려 차가와 지고 있었다.</div> <div>궁리를 시작했다.</div> <div>대책 없이 나간다면, 분명 또 죽을 것만 같았다.</div> <div>신중해야 했다.</div> <div><br></div> <div>뒤에서 또 목소리가 들린다.</div> <div><br></div> <div>쪽팔려서 못 움직이나봐?</div> <div>깔.깔.깔.</div> <div><br></div> <div>목이 반쯤 자동으로 돌아갔으나, 돌아보지 않았다.</div> <div>그들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div> <div>카페를 나서며 위를 올려다 보다 얼른 몸을 카페 안으로 다시 넣었다.</div> <div>아찔한 기운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div> <div>아주 께름칙했다.</div> <div>께름칙한 느낌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div> <div>곧 카페의 간판이 눈앞으로 떨어져 내렸다.</div> <div>간판의 쇳덩이가 돌바닥을 사납게 찍어내리며 산산히 조각났다.</div> <div>굉음이 터졌다.</div> <div>얼마나 무거웠으면.</div> <div>여자들의 비명이 빗발치고 있었다.</div> <div>놀란 모양인 듯.</div> <div>떨어 질 것을 어렴풋이 예상했던, 나조차도 놀랐다.</div> <div>유난스럽다고 느껴질 만큼, 비명은 지속적이었다.</div> <div>뭐야? 왜 그렇게 소리를 치는 거야?</div> <div>머리가 어지러웠다.</div> <div>서서히 몸이 뒤로 넘어지는 것을 느꼈다.</div> <div>완전히 카페 바닥에 누워버리자, 목 주변으로 뜨거운,</div> <div>그러니까 마치 용암처럼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div> <div>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div> <div><br></div> <div>피? 내 피?</div> <div>이럴 수가 있는가?</div> <div>플라스틱?</div> <div>간판이 떨어지며 튕겨 나온 간판 조각이었다.</div> <div>플라스틱이 내 목에 정확히 날아와 박힌 것이다.</div> <div>거짓말. 거짓말만 같다.</div> <div>거짓말이야.</div> <div>내 목은 계속 쿨럭쿨럭 피를 토해냈다. </div> <div>남자 셋 여자 셋이 내게 몰려와 나를 흔들었다.</div> <div>119를 외치는 소리가 저기 멀리서 꿈결처럼 들려온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div> <div><br></div> <div>다시, 카페.</div> <div><br></div> <div>-01:10</div> <div><br></div> <div>이번엔 아주 카페에서 안 나가볼 생각이었다.</div> <div>전자시계는 계속해서 01:10</div> <div>한참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div> <div>그렇게 계속해서 카페에 머물렀더니,</div> <div>어디선가 진한 가스 냄새가 피어나기 시작했다.</div> <div>아주 지독했다.</div> <div><br></div> <div>어디서? 무슨 가스 냄새가 날 수 있지? 라고 생각한 순간, 폭발음이 들렸다.</div> <div>큰 불길이 내게 달려들고서,</div> <div><br></div> <div>또다시 카페.</div> <div><br></div> <div>-19:42</div> <div><br></div> <div>이번 생각보다 멀리까지 도망쳤다.</div> <div>한참 카페를 벗어나는 길, 인도에서 남자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div> <div>살벌한 싸움이었다. 위험했다.</div> <div>괜히 어설프게 엮였다간 죽을 것이다.</div> <div>그들을 피해 빙 둘러서 길을 지나는 데, 웬 여자가 나를 붙들고 늘어졌다.</div> <div><br></div> <div>"도와주세요! 저러다 살인나요!"</div> <div><br></div> <div>여자가 내게 매달린 동안 싸우고 있던 남자 중 하나가 사라지고 없었다.</div> <div>찬물을 끼얹은 듯 소란은 잠잠해졌다.</div> <div>다행이었다.</div> <div>어석해질 뻔했다.</div> <div>이대로 모두 없었던 것처럼 모른 체 지나가야했다.</div> <div>까딱하면 내가 죽는다. </div> <div><br></div> <div>"괜찮아요. 싸움 끝났어요. 보세요. 남자 한 분 다른 곳으로 가셨잖아요."</div> <div><br></div> <div>여자가 옆을 돌아보며 비명을 질렀다.</div> <div>식식 숨을 크게 내쉬는 소리가 들리던 순간.</div> <div>그 순간 나도 여자를 따라 돌아보는데, 배를 관통하는 차가운 무언가가 느껴졌다.</div> <div>싸우던 남자, 사라졌던 남자였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div> <div>남자의 광기어린 붉은 얼굴이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div> <div>그리고 점점 광기의 붉은 빛은 당황의 검은 그림자로 탈바꿈 되어갔다.</div> <div><br></div> <div>마치, 찌를 사람을 착각했다는 듯.</div> <div><br></div> <div>그리고 다시….</div> <div><br></div> <div>-34:14</div> <div><br></div> <div>카페 바로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div> <div>수많은 죽음을 경험하고 비로소 택시가 카페 앞에 잠시잠깐 정차한다는 사실을 알았다.</div> <div>소중한 정보였다.</div> <div>놓여선 안 됐다.</div> <div>잽싸게 택시로 올라탔다.</div> <div><br></div> <div>"아저씨! 상설매장으로 가주세요! 빨리! 빨리요!"</div> <div><br></div> <div>알겠습니다~ 호쾌하게 대답한 기사 아저씨가 핸들을 꺾을 때,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div> <div>상설매장으로 가기엔 U턴을 하는 것이 빨랐다.</div> <div>텅 빈 도로.</div> <div>기사는 빠르게 불법 U턴을 시도했다.</div> <div>택시가 중앙선을 지나려던 순간 그 망할 놈의 SUV가 보조석을 덮쳐왔다.</div> <div><br></div> <div>카페.</div> <div><br></div> <div>-45:94</div> <div><br></div> <div>카페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지각한 순간,</div> <div>별안간 심장이 조여 왔다.</div> <div>누군가 심장을 움켜쥐는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div> <div>숨을 쉴 수가 없었다.</div> <div>고통스러웠다.</div> <div>그대로 땅바닥으로 몸이 무너져 내렸다.</div> <div><br></div> <div>또, 카페.</div> <div><br></div> <div>-74:08</div> <div><br></div> <div>남자 셋 여자 셋을 때려줬다.</div> <div>죽을 땐 죽더라도, 너희는 용서할 마음이 없다.</div> <div>몇 번이라도 때려주마.</div> <div><br></div> <div>-87:86</div> <div><br></div> <div>혼자서 남자 셋을 몽땅 쓰러트렸다.</div> <div>수 천 번 만에, 장족의 발전.</div> <div>천 번이 넘게 걸리다니.</div> <div>하지만, 그들을 쓰러트리자, 문득 죽음 이외의 불안이 몰려오기 시작했다.</div> <div>전자시계는 99:99까지 밖에는 표현할 수 없으리라.</div> <div>그렇다면 그 다음은 어찌되는 것인가.</div> <div>모든 것이 끝나는 건가?</div> <div>저놈의 전자시계는 내가 몇 번 죽었는지 만을 알려줄 뿐,</div> <div>그 이상의 정보를 제공할 줄은 몰랐다.</div> <div><br></div> <div>진짜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div> <div>99:99 다음은?</div> <div>다음은 뭐야?</div> <div><br></div> <div>절망감에 사로잡혀 울음이 터졌다.</div> <div>허무했다.</div> <div>왜 이리 허무한가.</div> <div>내 삶은.</div> <div><br></div> <div>오열을 하는 내게로 당연히도 사람들은 눈을 돌렸다.</div> <div>카페는 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div> <div>내가 이렇게 만든 것이다.</div> <div>아까 블라우스 입은 여자에게 차이는 광경보다 수백 배는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div> <div>싸우고, 펑펑 울고 있는 등신의 모습.</div> <div><br></div> <div>한참을 울다보니 가스냄새가 났다.</div> <div><br></div> <div>-99:42</div> <div><br></div> <div>이렇게 죽을 순 없었다.</div> <div>이렇게 죽기엔 너무 억울했다.</div> <div>죽음의 패턴은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div> <div>밖에서 카페를 한참 바라보고 있자면, 카페에 가스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div> <div>요즘 시대에 가스 폭발이라니. 요즘 도시가스가 아닌 곳도 있단 말인가?</div> <div><br></div> <div>제길. 이곳엔 간판들이 너무 많아. 항상 위를 보며 걸어야했다.</div> <div>괜한 사람과 어깨가 닿지 않도록 경계를 늦출 수 없다.</div> <div>무슨 시비가 붙을지 모르는 일이다.</div> <div>남자도 위험했지만, 여자의 경우는 심지어 무섭기까지 했다.</div> <div><br></div> <div>스턴건을 갖고 다니는 여자가 있을 줄이야.</div> <div><br></div> <div>전기로 쇼크사를 한 것이 몇 번이던가.</div> <div>내가 그렇게 심장이 약한 줄은 몰랐다.</div> <div>세상이 이렇게 흉기로 가득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div> <div><br></div> <div>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었다.</div> <div>이 잔혹한 여름의 쨍쨍한 햇살을 받고 있는</div> <div>이 냉담한 도시는 마치 죽음의 페스티벌처럼 보였다.</div> <div><br></div> <div>몇 번 전인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div> <div>가까스로 집으로 돌아갔더니 집에 불이 났었다.</div> <div>타죽는 그 고통.</div> <div>이루 말 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div> <div><br></div> <div>친구네 집으로 향했을 땐,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추락했다.</div> <div>조심성이 부족했다.</div> <div>계단으로 갔어야 했는데.</div> <div>하지만 그런들 무슨 소용이랴.</div> <div>물론 계단으로 가다보면 뭔가가 또 있었겠지.</div> <div>그래서 굴러 떨어졌겠지.</div> <div>그래서 죽었겠지.</div> <div><br></div> <div>아무것도 없는 훤한 공원으로 피신하자, 조기축구회의 축구공이 날아왔다.</div> <div>축구공을 맞고도 뇌진탕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div> <div>축구선수를 하지, 왜 남의 머리통을 깨부수는가.</div> <div><br></div> <div>조기축구회. 증오한다.</div> <div><br></div> <div>아니다.</div> <div>증오할 것 없다.</div> <div>그들 탓이 아니다.</div> <div><br></div> <div>내 탓이다.</div> <div><br></div> <div>낙엽만 스쳐도 나는 죽는다.</div> <div>그러니 내 탓이다.</div> <div>그 공이 날아오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내 탓이 맞다.</div> <div><br></div> <div>이제 더 이상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div> <div>어차피 죽는다면, 고통 없이 죽는 법을 택하고 싶었으나,</div> <div>그런 것은 없었다.</div> <div><br></div> <div>어째서.</div> <div>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div> <div><br></div> <div>아차, 깜빡 위를 올려다보는 것을 잊었다.</div> <div>간판 조심해야 했었는데.</div> <div><br></div> <div>쯧, 제자리로 돌아왔다.</div> <div><br></div> <div>-99:99</div> <div><br></div> <div>선택이라고 할 것이 남아 있던가?</div> <div>한참을 생각에 잠겨있었지만, 아직 가스 냄새는 나지 않는다.</div> <div><br></div> <div>애초에 나는 이곳에 왜 왔던가.</div> <div><br></div> <div>블라우스를 입은 여자가 너무 예뻐서.</div> <div>아주 오래 전부터 눈 여겨 봤는데,</div> <div>그래서 먹을 줄도 모르는 아메리카노,</div> <div>그나마 가장 싸기에 마시던 아메리카노,</div> <div>핑계 삼아, 매일 이 악마 같은 카페에 들러서,</div> <div>그 사약 같은 놈 매일 마시며,</div> <div>그냥 아르바이트 하는 아가씨 얼굴 구경이나 좀 하고 싶었는데.</div> <div>무슨 용기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고백까지 했다가,</div> <div>나는… 나는…… 나는 도대체 지금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div> <div><br></div> <div>나는 뭔가 죄를 지었는가.</div> <div>나는 죽어 마땅한 놈인가.</div> <div>구천구백구십구 번이나?</div> <div><br></div> <div>확실한 건 하나밖에 없었다.</div> <div>99:99 이다음 숫자는 없다.</div> <div>이제 내 목숨은 한 번 밖에 남지 않았다.</div> <div><br></div> <div>자리에서 일어났다.</div> <div><br></div> <div>남자 셋 여자 셋이 떠든다.</div> <div><br></div> <div>“오오! 일어났다.”</div> <div><br></div> <div>오오! 그래. 일어났다. 어쩔래.</div> <div><br></div> <div>마지막 한 번이다.</div> <div>너희 같은 놈들에게 시간을 허비할 순 없다.</div> <div><br></div> <div>카운터를 열고 블라우스 여자가 사라진 곳으로 향했다.</div> <div>아무도 나를 막아서지 않는다.</div> <div>다른 아르바이트 녀석이 나를 꼬나봤지만, 무시했다.</div> <div><br></div> <div>이판은… 사판이다.</div> <div><br></div> <div>거울을 볼 순 없었지만, 내 눈에 가득 독기가 담겨있는 건 확실했다.</div> <div><br></div> <div>모두 블라우스 당신 탓이야.</div> <div>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런 것 같아.</div> <div>아주 많이, 그런 것 같아.</div> <div><br></div> <div>카운터를 지나니 뒤로 휴게실이 나왔다.</div> <div>휴게실에는 아무도 없다.</div> <div>휴게실에 붙어있는 뒷문을 지나자, 작은 공터가 나왔다.</div> <div>블라우스 여자는 그곳에 있었다.</div> <div><br></div> <div>확 덮쳐서 때릴까?</div> <div>아니지.</div> <div>사실 맞은 만큼 죄를 지은 것 그녀가 아니지.</div> <div>남의 직장서 폐를 끼친 내가 죄지?</div> <div>그지?</div> <div><br></div> <div>웃음이 나왔다.</div> <div>이제와 그녀를 봐서 뭘 어찌하겠는가.</div> <div><br></div> <div>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div> <div>놀랐나보다.</div> <div>내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겠지.</div> <div>나도 9999번 만에 여기 올 생각이 들었다.</div> <div><br></div> <div>눈이 마주치는데 이상하게 피가 끓는 기분이다.</div> <div>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쥐었다.</div> <div>사실 아프게 비틀 듯 꽉 쥐어 짤 마음이었지만,</div> <div>잔뜩 몸이 움츠러든 여자를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div> <div>저절로 낮은 목소리가 나왔다.</div> <div><br></div> <div>"이거 봐요."</div> <div>"…."</div> <div>"대답해요."</div> <div>"…."</div> <div><br></div> <div>대답이 없다.</div> <div>상관하지 않겠다.</div> <div>하고 싶은 말이나 해주고 죽어야겠다.</div> <div><br></div> <div>"싫으면 싫다고 대답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도망치는 게 싫다는 답이 될 순 있지만, 있겠지만. 그래도 예의라는 게 있잖아요. 우리가 아무리 모르는 사이이고 생판 남이라지만, 남자 대 여자로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말을 했으면, 최소한의 의리라는 건 있는 거 아닌가요? 싫어요. 죄송해요. 남자친구 있어요. 할 수 있는 말 많잖아요. 왜 그냥 도망가요. 사람 무안하게. 예? 말 해봐요. 내가 그렇게 싫어요? 내가 왜 싫어. 어? 당신은? 그러는 당신은 그렇게 잘났어? 예쁘면 다야? 나는 뭐. 못생겨서 그래? 그래서 그런 거야? 이상한 놈이 고백해서 창피해서 도망쳤어?"</div> <div><br></div> <div>갑자기 반말이 나왔다.</div> <div>화를 내 본 것도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div> <div>논리가 하나도 맞지 않는다.</div> <div>순전한 개소리였다.</div> <div>그나마 다행히도 기분은 개운해졌다.</div> <div><br></div> <div>목소리가 떨렸다.</div> <div>여자를 잡고 있는 손도 떨렸다.</div> <div><br></div> <div>"그런 게 아니라…."</div> <div><br></div> <div>드디어 여자가 입을 열었다.</div> <div><br></div> <div>"그런 게 아니라…."</div> <div><br></div> <div>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라, 뭐.</div> <div><br></div> <div>응? 그런 게 아니라?</div> <div><br></div> <div>"이런 일이 처음이라, 너무 놀라서."</div> <div>"예?"</div> <div>"너무 놀랐어요. 저도 사실 손님 매일 오는 거 기다리고 있었어요. 정말이에요! 정말로. 정말이에요."</div> <div>"…."</div> <div><br></div> <div>말문이 막힌다.</div> <div>여자는 얼른 앞치마에서 볼펜을 꺼냈다.</div> <div>그리곤 내 손바닥을 낚아 그 위에 빠르게 숫자를 적어 나갔다.</div> <div>무엇인가. 이 열한자리 번호의 조합은.</div> <div>0103414………….</div> <div>전화번호?</div> <div>분명 전화번호다.</div> <div>뭐야 이거?</div> <div>손바닥에 전화번호를 적다니. 20세기 스타일?</div> <div><br></div> <div>"저 이따 다섯 시에 끝나요."</div> <div>"예?"</div> <div>"전화주세요."</div> <div><br></div> <div>여자는 도망치듯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div> <div>가짜 번호?</div> <div>그래.</div> <div>가짜 번호다.</div> <div>내가 무서워서 가짜 번호를 미끼로 던져 주고 경찰을 부르러 간 것이다.</div> <div>그리고 나는 경찰에게 호송당하다, 경찰차는 U턴을 꺾겠지,</div> <div>그리고 그 망할 코뿔소 같은 SUV가 또 나를 덮치겠지.</div> <div>그렇게 죽는 게 나의 마지막 시나리오인가?</div> <div><br></div> <div>씨발.</div> <div><br></div> <div>어떻게 죽으면 어떻단 말인가. 이제 와서.</div> <div>죽어주마.</div> <div>죽기 전에, 담배 한 대만 더 피우고 죽어주마.</div> <div><br></div> <div>잠깐.</div> <div><br></div> <div>혹시 내가 라이터를 켜는 순간, 가스 폭발이 일어나는 건가?</div> <div>그게 시나리온가?</div> <div>그렇다면,</div> <div>라이터를 켜서 가스폭발이 일어난다면,</div> <div>그녀가 내게 준 이 번호는 진짜 번호인가?</div> <div>모르겠다.</div> <div><br></div> <div>멋지게 담배를 피우고 장렬히 죽고 싶었으나, 라이터를 켜는 게 겁이 났다.</div> <div>잔뜩 쫄아서 라이터를 살살 켜봤다.</div> <div>불이 켜질 때는 소스라쳤다.</div> <div><br></div> <div>등신처럼.</div> <div><br></div> <div>담배를 한 대 필터 끝까지 피웠다.</div> <div>담배를 땅바닥에 비벼 끄며, 마음의 정리를 끝냈다.</div> <div><br></div> <div>죽자.</div> <div>죽으러가자.</div> <div><br></div> <div>휴게실을 지나, 카운터로 나왔다.</div> <div>남자 셋 여자 셋이 소리친다.</div> <div><br></div> <div>“나왔다!”</div> <div><br></div> <div>그래. 나, 왔다. 어쩔래.</div> <div><br></div> <div>그리고 박수.</div> <div>그리고 갈채.</div> <div><br></div> <div>응?</div> <div>갈채?</div> <div><br></div> <div>사람들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박수를 쳤다.</div> <div>카페가 떠나가라 환호성이 멈추지 않는다.</div> <div>웬 여자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혀있다.</div> <div>블라우스 여자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div> <div><br></div> <div>"이따 전화 줘요."</div> <div><br></div> <div>경찰은?</div> <div>안 와?</div> <div>경찰 안 올 거야?</div> <div><br></div> <div>카페를 벗어나, 하늘을 보며 걸었다.</div> <div>아직 간판은 떨어지지 않는다.</div> <div>횡단보도. SUV는 지나가지 않았다.</div> <div>공원을 지나며, 조기축구회도 없다.</div> <div><br></div> <div>아직 안 죽나보다.</div> <div><br></div> <div>집에 도착해, 샤워를 했다.</div> <div>샤워를 하다가, 아참, 내가 지금, 배가 지금, 엄청 고프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div> <div>라면을 끓이지도 않고 생것을 마구 부숴먹었다.</div> <div><br></div> <div>불이 날건가?</div> <div><br></div> <div>아니.</div> <div>불은 나지 않았다.</div> <div><br></div> <div>-17:00</div> <div><br></div> <div>그녀가 끝났을 시간이다.</div> <div>전화를 걸자, 통화음 두 번 만에 그녀가 받았다.</div> <div><br></div> <div>"어디에요?"</div> <div><br></div> <div>-17:12</div> <div><br></div> <div>막상 그녀와 대면하니, 몸이 얼어버리는 것 같다.</div> <div><br></div> <div>-17:13</div> <div><br></div> <div>아직 얼어있다.</div> <div><br></div> <div>-17:14</div> <div><br></div> <div>무슨 말이라도 좀 해라, 이 똘추야.</div> <div><br></div> <div>-17:15</div> <div><br></div> <div>그녀가 물었다.</div> <div><br></div> <div>"영화… 좋아해요?"</div> <div>"예…. 영화, 좋아해요."</div> <div><br></div> <div>좋아한다. 사실이다.</div> <div>물론 그저 평범한 선에서.</div> <div><br></div> <div>"바톤 핑크, 봤어요?"</div> <div>"옛날에 했던 건 봤어요."</div> <div><br></div> <div>명작이다.</div> <div>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div> <div><br></div> <div>"이번 리메이크 보러 갈래요?"</div> <div>"코엔 형제 좋아하세요?"</div> <div><br></div> <div>영화를 봤다.</div> <div>영화를 보고 또 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div> <div>의외로 달콤한 것 같기도 하다.</div> <div>이상하다. 왜 달콤하지?</div> <div><br></div> <div>그녀는 잘 웃는다.</div> <div>코엔 형제의 영화 이야기를 하며, 늦은 시간까지 그녀와 함께 있었다.</div> <div><br></div> <div>-23:02</div> <div><br></div> <div>그녀를 바래다 줬다.</div> <div>목을 가다듬어, 작별 인사를 했다.</div> <div><br></div> <div>"잘 들어가요."</div> <div><br></div> <div>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뒤로 돌아 집으로 향했다.</div> <div>뒤로 돌기 전, 그녀의 입가에 어렴풋한 미소가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div> <div><br></div> <div>이것은 뭔가, 뭔가 이상하기도 하고.</div> <div>이것은 야릇하기도 하고.</div> <div>이것은 뭔가.</div> <div>정말로 뭔가.</div> <div><br></div> <div>"연락 또 해요? 꼭 해요 우리?"</div> <div><br></div> <div>그녀가 뒤돌아서 말했다.</div> <div>건물 안에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렸다.</div> <div><br></div> <div>연락 또 해요. 꼭 해요 우리?</div> <div>연락 또 해요. 꼭 해요 우리?</div> <div>연락 또 해요. 꼭 해요 우리?</div> <div><br></div> <div>"당연하죠. 꼭, 연락할게요. 집에 가자마자 할게요. 아니, 집에 가는 길에 할게요."</div> <div><br></div> <div>내 대답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돌아섰다.</div> <div><br></div> <div>-23:47</div> <div><br></div> <div>집에 돌아와서도 계속해 그녀와 메신저를 주고받았다.</div> <div>아직 얼떨떨하다.</div> <div>너무 긴 하루였다.</div> <div><br></div> <div>-23:48</div> <div><br></div> <div>졸리다.</div> <div><br></div> <div>-23:49</div> <div><br></div> <div>눈이 감긴다.</div> <div><br></div> <div>-23:50</div> <div><br></div> <div>Zzz………Zzz…………….</div> <div><br></div> <div>-23:51</div> <div>-23:52</div> <div>-23:53</div> <div>-23:54</div> <div>-23:55</div> <div>-23:56</div> <div>-23:57</div> <div>-23:58</div> <div>-23:59</div> <div>-00:00</div> <div>-00:00</div> <div>-00:00</div> <div>-00:00</div> <div>-00:00</div> <div>-00:00</div> <div>-00:00</div> <div>-00:00</div> <div>-00:00</div> <div><br></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div> <div><br></div> <div>-00:01</div> <div>-00:02</div> <div>-00:03</div> <div>-00:04</div> <div>-00:10</div> <div>-01:51</div> <div>-02:18</div> <div>-03:27</div> <div>-04:35</div> <div>-05:44</div> <div>-06:50</div> <div>-06:51</div> <div>-06:52</div> <div>-06:53</div> <div>-06:54</div> <div>-06:55</div> <div>-06:56</div> <div>-06:57</div> <div>-06:58</div> <div>-06:59</div> <div>-07:00</div> <div><br></div> <div>알람소리에 깨어났다.</div> <div>방이다.</div> <div>카페가 아니다.</div> <div>방이다.</div> <div>살았다!</div> <div>살았다!</div> <div>살았나?</div> <div>모르겠다.</div> <div>헷갈린다.</div> <div>가슴 위에 핸드폰이 올라있었다.</div> <div>그렇다면 어제와 이어지고 있다는 뜻인가?</div> <div>어제 그녀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일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인가?</div> <div>죽음의 굴레는 벗어난 것인가?</div> <div><br></div> <div>손에 땀이 흥건했다.</div> <div>양손 가득 핸드폰이 쥐어있다.</div> <div>핸드폰이 땀에 젖었다.</div> <div>손에 꼭 쥔 채 잠들었었나 보다.</div> <div>그녀에게 메세지가 와있다.</div> <div><br></div> <div>'자요?'</div> <div>'잠든 거예요?"</div> <div>'잘 자요."</div> <div>'내일 연락해요? 꼭 이예요?'</div> <div><br></div> <div>어쩌면, 이건 죽기 전에 보이는 환상일지도 모르겠다.</div> <div>그 여자가 나에게 이럴 리 없어.</div> <div>나는 사실 애초에 SUV에 치어 죽은 건 아닐까?</div> <div>모르겠다.</div> <div>도저히 모르겠다.</div> <div>어제 봤던 것들은 꿈인가?</div> <div>9999번의 꿈인가?</div> <div>이제 더는 카페로 돌아가지 않는 것인가?</div> <div>역시.</div> <div>모르겠다.</div> <div><br></div> <div>그녀에게 답장을 했다.</div> <div><br></div> <div>'이제 일어났어요.'</div> <div><br></div> <div>-08:11</div> <div><br></div> <div>그녀에게 답신이 왔다.</div> <div><br></div> <div>'저두요.'</div> <div><br></div> <div>의심이 끊이질 않는다.</div> <div>과연 이건 꿈이 아닌 건가?</div> <div>이제 난 죽지 않는 건가?</div> <div>조금 안심이 되는 것은,</div> <div>그래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div> <div><br></div> <div>시간은 흐른다.</div> <div>멈추지 않는다.</div> <div><br></div> <div>혹시 또,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div> <div>그 전자시계 속 숫자, 99:99를 난 분명 보았다.</div> <div><br></div> <div>이건, 마지막 기회다.</div> <div><br></div> <div>한 번 더 죽는다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div> <div>그때야 말로,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div> <div><br></div> <div>아마도….</div> <div><br></div> <div>어차피 죽을 거라면.</div> <div>그래.</div> <div>어차피 곧 죽을 지도 모르는 거라면.</div> <div>그래….</div> <div><br></div> <div>다시 메시지를 보냈다.</div> <div><br></div> <div>'오늘 또 만날래요?'</div> <div><br></div> <div>-08:12</div> <div>-08:13</div> <div>-08:14</div> <div>-08:15</div> <div>-08:16</div> <div>-08:17</div> <div>-08:18</div> <div><br></div> <div>답신이 왔다.</div> <div><br></div> <div>답신을 읽고, 웃었다.</div> <div><br></div> <div>왜냐하면…,</div> <div>왜냐하면,</div> <div>내겐 아직 살고 싶은 이유가 하나,</div> <div>살아 갈 목숨이 하나,</div> <div><br></div> <div>남아 있기 때문이다.</div> <div><br></div> <div>……다신 죽지 않겠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08:18 안승희 님의 메시지</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The End-</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출처 : <a target="_blank" href="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fear&number=67180">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fear&number=67180</a></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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