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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47633
    작성자 : 바람벨뀨
    추천 : 3
    조회수 : 578
    IP : 59.16.***.104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3/05/15 13:33:52
    http://todayhumor.com/?panic_47633 모바일
    [자작]가시 1

    30대 중반의 남자는 열 평 남짓한 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완전히혼자는 아니었다. 그는 가시들을 기르고 있었다. 첫번째 가시는 현관에 있었다. 현관 옆 선반에 놓인 어항. 그 탁한 물 속에서 첫번째 가시는 밤낮 가리지 않고 뻐끔대며 공깃방울들을 수면 위로 뱉어냈다. 이따금 현관으로 낯선 방문자가 들어올 때, 첫번째 가시는 흐리멍텅한 눈동자로 그들을 지켜보곤 했다. 그들이 올때면 늘 고요속에 잠겨 있던 집이 잠시 시끄러워지기도 했지만 소음은 금새 잦아들었다.

     

     두번째 가시는 그의 머리맡에 있었다. 낡을 대로 낡아버린 매트리스 머리맡에 놓인 뿌연 플라스틱 케이지. 그가 매트리스 위에 몸을 누일 때면 두번째 가시는 짙은 안개와도 같은 자신의 우리 속에서 쳇바퀴를 굴려댔다. 두번째 가시가 만들어내는 덜걱덜걱하는 소리와 매트리스가 만들어내는 삐걱삐걱하는 소리는 그만의 자장가가 되곤 했다.

     

     세번째 가시는 창가에 있었다.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는 창턱. 두텁게 쌓인 먼지 위에 놓인 적갈색 화분 속에서 세번째 가시는 살고 있었다. 삐죽삐죽 돋아난 녹회색 가시들은 해가 질 때 즈음이면 마녀의 손가락 같은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어내곤 했다. 온통 무채색으로 뒤덮인 자신의 작은 방 속에서 남자는 이렇게, 가시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벌겋게 익은 얼굴을 한 대머리 상사는 늘 남자에게 화가 나 있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그저 기계적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상사가 그런 그를 호되게 다그칠 뿐인 그저그런, 매일 반복되던 일이었는데 오늘은 조금, 아주 조금 달랐다.

     

     지금 이것도 보고서라고 써온 거야? 나참, 입사한 지 그쯤 됐으면 슬슬 알아먹을 때도 되지 않 았나?”

     

     죄송합니다.”

     

      아주 미세한 간지러움. 그는 허리 근처를 간질이는 낯선 감각을 느꼈다. 상사는 여전히 그를 보며 꽥꽥대고 있었지만, 그는 상사의 말에 집중할 수 없었다. 간지러움이 척추를 타고 위아래로 자꾸만 뻗어나가고 있었다.

     

     죄송하다면 다야? 자네 실수 때문에 말아먹은 이번 프로젝트는 대체 어쩔거야? 자네가 지금까지 망친 프로젝트가 몇 개 인지는 알기나 해? 매번 일처리가 이런 식이니 아직까지 승진도 못하고 있는 거 아니냔 말이야!”

     

     죄송합니다, .”

     

     간지럼은 계속해서 신경을 따라 뇌까지 달려갔다. 그리고는, 아차. 남자는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알아차렸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상사의 얼굴은 아까전보다도 더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상사의 모습이 마치 문어구이 같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녀와 밤을 보낸 바닷가. 같이 구워먹었던 문어. 벌겋게 익어가던 그 문어. 그 옆에서 발갛게 물든 볼로 수줍게 미소짓던 그녀. 남자는 한 때는 결혼까지 생각했었던 그녀를 문득 떠올렸다. 그녀는 미소가 아름다웠던 여자였다.

     

     간지러움이 뇌까지 점령한 모양이지. 이렇게 미쳐가는 걸까?’

     

     웃어? 이 새끼가 장난인 줄 아나. , , 너 같은 놈 필요 없어. 회사가 장난이야? 빌어도 모자랄 판국에, ? 웃어? 좋냐? 좋냐, 이 새끼야?”

     

     문어. 저 사람은 지금 영락없는 문어다. 게다가 이 사이에 끼어 있는 고춧가루. 남자는 왠지 웃음이 터질 것 같아 말없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문어구이. 그 때, 허연 것이 남자의 이마를 때리며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남자가 썼던 보고서였다. 화난 상사의 입에서부터 튀는 침이었다.

     

     불쌍해서 데리고 있어줬더니 도움도 안 되는 새끼아냐. 나가, 이 등신새끼야!”

     

     가시가 있었더라면.’

     

     가시가 있었더라면. 그는 화내는 상사로부터, 상사의 입에서 튀는 침으로부터, 상사의 이 사이에 낀 고춧가루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것이었다.

     

     

     

     

     

     

    =================================

    공포 게시판에 어울리는 글이고 싶어요.. 늘 재미있게 읽다가 창작욕구가..! 지금은 나가봐야 해서 나중에 마저 쓰겠습니다 ㅠㅠ 길지도 않은데 끊어서 죄송해요..ㅠㅠㅠ 글 쓰시는 모든 분들 정말 존경합니닿ㅎㅎ!! 이상하거나 오타있는 부분은 지적지적해주세여!

    바람벨뀨의 꼬릿말입니다
    빙글빙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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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3/05/17 09:54:26  117.111.***.235  연금복권95회  365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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