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 class="바탕글">그녀가 눈을 맞고 서 있었다.</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1월... 영어로는 january. 어원은 야누스에서 따온 말이다. 1월은 두 얼굴이 아닌 차가운 얼굴만을 갖고 있는 것 같다.</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나에게 1월은 그렇다. 내가 처음 그녀를 본 것은 봄의 기운이 피어나는 4월의 캠퍼스에서다.</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br></p><p class="바탕글">22살. 1학년. 내가 가진 타이틀이다. 낯을 많이 가린 탓에 학교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난 군입대를 했고 전역한 지금도 과거보단 아니지만 여전히 낯을 가리고 유일한 취미는 사진찍는 것이다.</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br></p><p class="바탕글">그날도 전공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단대 앞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뷰파인더로 피사체를 잡는데 한 여성이 잡혔다. ‘아름답다’라는 말에는 미사여구가 필요 없다는 것을 나는 그녀를 보고 처음 느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했고 그녀가 나를 바라보자 나는 다른 곳을 찍는 체 했고 뽑아놓은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딴청을 피웠다. 나는 재빠르게 강의실로 들어갔고 강의실엔 사람이 3-4명뿐이었다. 나는 의아해하며 맨 뒷자리에 앉아 그녀를 찍은 사진을 바라보았다. </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br></p><p class="바탕글">-에이 이건 별로다. 실물이 훨 낫네.</p><p class="바탕글">그녀였다. 나는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녀는 이미 내가 그녀를 몰래 찍었던 것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p><p class="바탕글">-다른 것도 보여줘.</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그녀의 당돌한 모습에 나는 잠시 멍해있었고 그녀가 뭐하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자 나는 ‘네?... 아 네’라고 정말 바보처럼 말하고 말았다. 사진을 넘기는데 제법 많이 찍혔다. 그녀는 혼잣말로 ‘잘나왔네’, ‘이건 지워줘’라며 당차게 말했다. 나는 어김없이 바보처럼 ‘네’라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그녀는 맨 처음 사진을 자기에게 보내달라며 당차게 메일주소를 알려주었다. </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오늘 체육대회인데 수업 왜 들어왔어?</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bold;">아..그게..전 오늘 체육대회인지 몰라서....</span></p><p class="바탕글">오늘이 과 체육대회였던 탓에 복수전공자인 나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만 있었던 것이다.</p><p class="바탕글">-그래? 경영학과 이민식. 맞지?</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bold;">네... </span>나는 네라는 말밖에 못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긴장이 좀 풀렸고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bold;">몇 살....이세요? </span>초면부터 반말로 나오는 그녀에게 소심하게 물었다. </p><p class="바탕글">-2학년이야. 23살</p><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weight:bold;">아..네.. </span> 그렇게 나는 또 네라는 대답밖에 하지 못했고 답답했는지 그녀는 나가서 커피 마시자며 책상 위의 내 소지품을 가방에 넣었다.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br></p><p class="바탕글">그녀의 적극성에 나도 마음을 많이 열고 그녀와 장난도 치며 점차 우리의 사이는 가까워졌고 갑작스러운 인연이 신기하다는 것도 느낄 새도 없이 우린 서로에게 깊게 빠져 있었다. </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나는 항상 그녀의 사진을 소나무 밑에서만 찍어주었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왜 소나무만을 고집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냥’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 밑에서 찍은 이유는 어디에 있는 소나무를 보든 나를 기억하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었다.</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br></p><p class="바탕글">새해가 다가오자 우린 1월 1일에 일출을 보러가자고 약속했고 12월 31일에 정동진으로 가자고 그녀와 약속했다. 12월 31일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침착하고 차분한 모습이었고 들떠보이지도 않았고 마음이 무거워보였다. 서로가 깊게 사랑에 빠져있었을 때 그녀는 유학을 결심했다. 그녀는 기다려달라는 말을 했지만 기약 없는 미래에 자신이 없었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남기며 우린 1월 1일 일출을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서로 헤어졌다.</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br></p><p class="바탕글">그렇게 1년이 지나 12월 31일. 다시 1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전히 1월은 차가운 얼굴을 갖고 나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녀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선뜻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p><p class="바탕글">외출하고 돌아오는데 우편함에 소나무사진이 붙여진 엽서가 있었다. 그녀였다. </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br></p><p class="바탕글">‘외국에서도 소나무가 참 많더라. 그때마다 니가 소나무 밑에서 찍어주던 게 기억이 나. 이 엽서 속 소나무 기억하니? 니가 처음 찍어준 곳이야. 1월 1일, 우리 다시 시작해보자. 기다릴게 1일 이곳에서 오후 7시에....’ </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24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녀를 보기 전이 시간까지... 못하던 술로 마음을 달래고 그녀를 그리워하던 내가 그녀를 볼 수 있는 시간이 24시간 남았다. 밤잠을 설쳐가며 오후가 어서 오길 바랐다. 단대 앞 소나무에서 처음 서 있었던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보러 간다.</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br></p><p class="바탕글">1월... January 더 이상 차가운 얼굴만이 있는 게 아니다. 따뜻한 모습도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발로 땅을 그리며 수줍게 서 있었다.</p><p class="바탕글"></p><p class="바탕글">그녀가 눈을 맞고 서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달려가 키스를 할 것이다.</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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