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부모님을 여의고 삭막하게 살아가는 청년이었죠. 나이는 모르겠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였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그는 마치 시체처럼 살았어요. 부모님이 남긴 것을 아무 것도 바꾸지 않으며, 밥에도 옷에도 집에도 신경을 쓰지 않은 채 그냥 그렇게 마치 "버티듯" 살았죠. 보람없는 직장, 가치없는 생활, 의미없는 나날.. 그리고 낡은 모든 것.
아버지의 소파에 앉지 못하는 것이, 부모님을 놓아주지 못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한편으로 나타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 그의 죽어버린 마음에 대쉬가 찾아옵니다. 이퀘스트리아에 있을 때처럼 괄괄한 모습도 아니었고, 다 커서 쿨내 물씬 나게 독립적인 모습도 아니었어요. 그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대로 길거리에서 굶어 죽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죠.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그였기에 대쉬를 돌봐야 하는 임무는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해냅니다. 무려 10여년, 대쉬를 위해 인적 드문 시골로 이사를 하면서까지 그는 자기 삶을 바쳐 대쉬를 기르고 지킵니다. 날개 달린 말, 사람 말을 하는 말, 전설의 페가수스. 남들 눈에 띄었다면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었을까요. 떼어놓을 수 없는 가족을 숨긴다는 것은 자기 자신마저 숨긴다는 것. 그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할 줄도 모르는 요리를 하고, 할 줄도 모르는 수많은 것들을 해내며 그녀의 친구들이 찾아올 때까지 15년을 대쉬와 함께 "살았어요."
이건 마치 그를 위해 신이 대쉬를 보내준 것만 같은 기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쉬와의 동거를 통해 자기를 돌보고 삶의 의미를 되찾은 청년은 대쉬가 떠나기 직전 "너는 날 한번에 어른으로 만들어 주었어."라고 고백하죠.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을 잊지 않고,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거예요. 물론 그건 자신의 딸인 대쉬의 행복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행복이기도 하죠.
댓글들을 읽으며 허무하다는 의견을 많이 보았습니다. 허무하다뇨.... 어쩔 수 없는 이별 앞에서 억지로 서로를 붙잡아 자기 자신과 상대를 괴롭히는 것보다 어른스럽게 서로를 위해 헤어진 것 뿐이에요. 대쉬가 인간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결국 이퀘스트리아도 우리 세상도 아닌 "주인공의 세상" 속에서 보호받았기 때문이에요. 주인공이 자신의 세상을 희생해 만들어낸 좁은 세상은 마치 떠나고 싶지 않은 감옥과도 같은 것이었죠. 주인공은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쉬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대쉬는 인간 세상에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존재한다는 걸 인간들이 호의적으로만 받아들일 리 없죠. 만화엔 나오지 않았지만 인간인 주인공이 가지 못한다고 하는 부분도 그런 이유 때문인 거예요. 한 세상에 태어난 생명들은 그 세상에 속해 있을 때만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완성할 수 있어요. 주인공은 이미 진작에 그걸 깨닫고 있었을 거예요. 마무리에서 앨범을 보는 태도가 변해 있죠. 더이상 과거의 사진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비어 있는 부분을 채워갈 거라고. 아주 멋지게 채워갈 거라고. 자신의 삶은 더이상 정체되고 멈춰 있는, 날짜만 다르지 똑같은 날이 반복될 뿐인 재미없는 것이 아닐 거라고.
살아있는 자신을 위해서, 삶의 의미를 깨우쳐준 대쉬를 위해서.
가치없는 일들이 반복될 뿐인 일상은 마치 죽은 것과도 같죠. 무덤 속에서 변화없는 죽음을 누리는 거나, 일상 속에서 변화없는 삶을 누리는 거나 인격으로서는 마찬가지일 뿐이니까요. 생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삶의 의미는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을 거예요. 의미를 찾았다 해서 삶이 완성된 것도 아니고, 의미를 찾지 못했다 해서 삶이 가치없는 것도 아니죠. 찾았다면 이제 바른 방향으로 삶을 완성시키기 위해 살아가야 하고, 찾지 못했다면 삶을 완성하기 위해 그 의미를 찾는 여정을 꿋꿋이 즐겨야 하니까요.
좋은 만화였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핫스프링스님 ^^ 닉언죄로 보류게 간다해도 달게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