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설명 : 연개소문과 설인귀, 당태종의 전투를 묘사하는 그림
한문 ( 막리지비도 ) 즉 막리지(연개소문)이 활을 들고 있는 설인귀와 싸우면서 연개소문의 주특기인
飛刀術(칼던지기)을 그리고 있다. ===========> 날아가는 칼 4개를 주목!!!!!!!!!!!!!
칼들고 있는 이는 연개소문, 도포를 입고 있는 이는 당태종
<중국 경극에도 나오는 연개소문>
연개소문은 중국의 경극에도 등장할 정도로 중국인들이 두려워했던 인물이다. 연개소문이 등장하는 경극
은 여러 종류이다. 「독목관(獨木關)」, 「분하만(汾河灣)」, 「살사문(殺四門)」, 「어니하(淤泥河)」등
확인된 종류만 해도 네 종류가 된다. 어니하와 분하만은 독목관과 줄거리가 비슷하다고 네티즌 ‘21세기
무인’은 적었다. 당 태종 이세민이 연개소문에게 쫓겨 위기에 처하자 설인귀(薛仁貴)가 구해준다는 이야
기로 연개소문과 설인귀가 주연이고, 당 태종이 조연이다.
‘당 태종 이세민은 봉황산(鳳凰山)에서 연개소문에게 쫓겨 도망간다.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백포(白袍)
를 입은 설인귀가 등장한다. 연개소문은 특유의 비도(飛刀)를 사용해 대항하지만, 설인귀에게 패해 죽는
다.
당태종은 위지공(尉遲公)에게 설인귀를 찾게 하는데, 설인귀를 시기하는 상관 장사귀(張士貴)는 그를 만나
는 것을 방해한다. 설인귀는 산신묘(山神廟)에서 달을 보며 신세 한탄을 하다가 위지공이 몰래와 끌어안
자 놀라서 도망가다가 병을 얻고 만다. 당(唐)나라 군사들이 고구려 군사들로부터 독목관을 빼앗으려 공격
했으나, 오히려 고구려 장군 안전보(安殿寶)에게 장사귀의 아들과 사위가 포로로 잡힌다. 장사귀는 할 수
없이 설인귀에게 출전 명령을 내렸는데, 먼저 설인귀의 부하 주청(周靑) 등이 안전보와 싸웠으나 상대가
되지 못하자, 설인귀가 병든 몸을 이끌고 출전해 안전보를 죽이고 독목관을 탈환한다.’
경극에 비춰진 연개소문은 용맹한 장군으로 묘사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나르는 칼이라는 비도(飛
刀)를 차고, 등에 깃발 모양의 고기를 하였는데, 이는 이민족임을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푸른빛의 얼굴 화
장은 동방 즉 고구려의 장군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중국인들, 연개소문에 대한 공포 경극 통해 표현------------------------------
이들 경극에서 중국인들은 연개소문에 대해 두려워하며, 무술이 뛰어난 인물로 보면서 잔인하고, 사납고,
포악한 인물로 묘사했다. 연개소문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나, 설인귀가 죽이지도 않은 연개소문을 죽였다
는 것은 연개소문을 두려워했던 중국인들의 바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덕일사랑]연개소문과 다섯 자루의 칼 <출처 : 조선일보>
이덕일 ·역사평론가
[email protected] 입력 : 2005.10.19 18:55 21'
연개소문에 대한 기록 중 수수께끼는 ‘칼 다섯 자루(五刀)를 차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학계에
서는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해석해왔는데 필자가 만난 전통무예 연구가는 위엄용이 아니라고 강하
게 반박했다.
연개소문은 고구려 전통무예인 칼을 날리는 ‘비도술(飛刀術)의 마지막 전습자였기 때문에 그랬다는 주장
이었다.
설득력은 있었으나 근거 사료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중국의 경극(京劇)에 그 근거가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연개소문이 주인공인 경극이 4편이나
만들어졌다. ‘독목관(獨木關)’, ‘분하만(汾河灣)’ 등이 이런 경극들인데 여기에서 연개소문은 고구려
장군이 아니라 소수민족 장군으로 등장해 칼을 던지는 비도술을 사용한다. 고구려 장군이 아니기 때문인
지 북한의 항의로 1965년 상연 금지되었다.
이런 경극들이 송(宋)나라 때 만들어진 민간 문학인 평화(平話)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점은 중요하다.
중국 민중들이 고구려 무사들의 전투장면을 목도하고 이야기로 남겼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구·신당
서’등은 연개소문이 패주하는 당 태종을 곱게 보내준 것처럼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원 내륙 깊숙
한 곳까지 추격했다는 야사가 많았는데 송나라 때의 민간문학이 사실임을 증거한 셈이다.
명(明)나라 말기 모원의(茅元儀)가 편찬한 ‘무비지(武備志)’에는 ‘당 태종 때 검사(劍士) 1000명이 있
었으나 일부 비법이 전해지지 않다가 근래에 조선에서 그 검법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 태종이 연개
소문에게 패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그 검법은 고구려 전통무예일 것이다. 장이모(張藝謨) 감독의 무협영
화 '연인(원제:십면매복〔十面埋伏〕)’은 당나라 말기 왕권에 대항하는 ‘비도문(飛刀門)’ 이야기다.
우리가 위엄용이라고 쉽게 해석하는 동안 중국은 경극과 영화로 자신들의 역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연개소문 후손들 묘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비도술을 소재로 삼은 우리
영화나 소설은 언제나 나올까 기다려진다
출처 : 파코의 고성달님의 글입니다. 역사에 관한 대단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