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베트남전 참전용사의 홈페이지인 "www.vietvet.co.kr"에서 참전용사의 글을 퍼온 것입니다.
게시물 번호: 86 (2001/03/05,14:28:13)
작성자: 강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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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의 양민학살(?)
이곳에서의 월남전에 대한 얘기가 '양민학살'이라는 것에다 초점을 맞춰 많은 의견들이 난무하는데 당시 참전하였던 나로서는 "양민학살이 있었다!"라고 주장하시는 님들 글을 보면 숨통이 막혀 답답함을 참을 길이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서서히 사라져 가기 시작하는 우리 세대의 당시 시대상과 입장, 전쟁터에서의 극도로 긴장된 말초신경적인 감정의 기복을 이해하고 좋은 글을 올려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한편으로는 자기최면적인 위로감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우리들이 당시 월남전에 참전하게된 시대상의 배경과 동기는 둘째로 하고, 이곳에 말하고 싶은 것은 한겨레나 강정구, 한홍구 등이 주장하는 '양민학살'에 대해서, 내가 겪고 느낀것을 알리고! 이해를 돕고 싶어서이다.
먼저 이곳에서도 몇몇 분들이 한겨레나 일부 알지도 못하며 떠벌리는 대학 교수라는 사람들의 글이나 얘기를 그대로 믿고 '양민학살'이 있었다! 하고 믿는 것 같은데, 그들이 주장하는 "조직적인 양민학살" "양민학살을 위한 작전"이란 것은 있을수가 없으며, 있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 월맹군이나 베트콩들의 선전물에 우리 한국군이 하지도 않은 양민학살을 하였다고 '악성 선전'을 해대며 우리와 양민 사이를 이간질하는 유인물을 뿌려 되어서 지휘관으로부터 병사들 까지 혹시 양민들에게 민폐라도 끼칠까봐 항상 조심스러워했다.
한겨레통신원이라는 '구수정'이라는 자기도취적인 취향을 가진 여자애의 얼토당토않은 얘기는 기사내용중 인터뷰를 했다는 주인공들의 과거가 그 당시에 공산당 당원이거나 당원집안의 가족들이었는데, 그들의 말이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나오겠는가?
없었던 일도 만들어 낼 것이다.
어쨌던 그 기사의 진위보다 당시에 하루 하루를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보내던 우리들의 심정과, 조금전까지만 해도 옆에서 같이 숨쉬고있던 전우가 운명을 달리하였을 때 느끼는 감정은 전쟁을! 그것도 총알이 날아오는 곳에서 생활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한다.
흔히들 군인과 민간인이 구분이 않된다고 말로는 싶게 이해를 하지만, 우리가 그곳에서 느끼던 것은 기분적이나 시각적인 차원이 아닌 말로 표현 할수없는 절실함! 이었다.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가 오토바이를 타고가다 우리들이 지나는 순간 감춰있던 총으로 총격을 가하고, 대중 교통인 버스가 지나가기를 우리들의 차를 세워놓고 기다렸는데 지나가는 버스속에서 총탄이 날아오고, 평소 우리가 자주 드나들며 c-레이션도 갖다주고 하며 가깝게 지나던 부대옆 마을의 입구 도로변(입구에서 100메타도 안된거리며 대낯이어서 주민들의 눈에 뜨이지 않을 도리가 없는 위치다)에서 우리들이 기습을 당하고, 부대 PX에 고용되어 우리들이 돌보아 주던 13세의 어린 소년이 어느날 밤 세이파부대와 함께 기지를 기습하여, 자기를 귀여워하고 돌보아주던 전우들이 자던 막사에 수류탄을 까 넣는다면, 여러분들은 그때 기분이 어떻겠는가?
작전중 수색을 끝내고 철수하는 촌락의 입구에서 등 뒤로 총알이 날아와 방금까지 옆에서 웃고 얘기하던 전우가 운명을 달리하였다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군복은 입지않고 있지만, 여러분들 같으면 그들을 양민으로 봐야하나? 적으로 봐야하나?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것도 작전 개시전 방송과 전단으로 이미 홍보를하여 민간인들을 철수 시킨후에...그속에 어린소년과 부녀자들이 같이있다 희생을 당했다면,
그것도 '양민학살'인가?
그런 상황을 당하고 옆의 전우가 쓰러지는 순간! 그때의 우리들 감정은 여러분들이 이해는 한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누구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더러 요즘 젊은세대 분들이 '양민학살'이니 '명예롭지 않으니' 하고 할 때마다, "너희들이 뭘 아느냐?"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상황과 우리의 심정을 아느냐?" 하는 호소인 것이다. 솔직히 직설적으로 표현 하자면 그 순간에는 "눈알이 뒤집어 진다!"
그런데 도덕찾고 올바른 이성을 찾아? 그런건 전쟁터에선 개도 안물어 간다.
이런 환경때문에 어쩌다 부대 밖의 민간인 마을에 놀러가 식사를 한끼해도 우린 소총에 실탄을 장진 한 채로 경계를 늦추지 못한다.
내가 이런 얘길하는 이유는 역사적, 시대적 배경이나 혹자들이 말하는 월남인의 독립전쟁이니 하는 이런 문제를 떠나서, 여러분들이 우리더러 "양민학살"을 하였니, "용병"이니 하는 순간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이 나라를 위하고 내 가족, 나아가 이 사회, 이 민족을 위해 조그만하게라도 몸바쳐 봉사했다는 아주작은 자부심을 송두리째 짓밟는 짓이라는 걸 알고 있기 바란다.
그러니 그런 당시 현지의 사정을 모르는 분들이 우리를 함부로 논하지 말아달라! 하는것이 나의 바램이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전우의 시신을 보고, 부상을 입은 전우의 절규를 듣게되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참된 전우애!가 어떤것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된다.
또 한 바로 그 모습이 내일 아니! 바로 이후 나의 처지 일 수도 있다고 생각 해보라!
그래서 이곳에다 감히 말한다.
"우리의 가슴에 못을 박지 말아달라!"
다시 한번 확실히 말하지만 '양민확살'이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