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edia.daum.net/society/all/newsview?newsid=20140319211010200
임금개편 매뉴얼 내용과 전망
40대 중반까진 '일본식 직능급' 인력운용 탄력적…주관적 평가·기계적 보상 우려
40대 중반이후 '유럽식 직무급' 같은 일엔 같은 급여…산업구조·기술변화 대응 한계
학계서도 뜨거운 논쟁 "고령화 시대 선결 과제" "기업 편향, 효과도 증명안돼"
정부는 19일 발표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올 상반기 진행될 일선 사업장의 임단협부터 적용하고 싶어한다. 정부가 팔을 걷긴 했어도 강제력이 낮아 노사 분란을 더 키울 위험성이 크다. 노사정의 신뢰가 없이 노동자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임금 양보를 우선 요구하는 방식이라서다.
정부가 이날 내놓은 방안 가운데 임금 구성 항목 단순화에는 노사 간 이견이 크지 않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라는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 덕분에 피할 수가 없게 돼서다.
쟁점은 호봉급 중심의 급여체계를 직무급, 직능급으로 바꾸라는 부분이다. 재계는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일부 학계에선 고령화 시대의 지속가능한 고용 등을 명분 삼아 시급한 과제로 꼽아왔다.
■ 40대 중반까지 직능급 직능급은 호봉에 상관없이 기술·지식 등 업무 능력을 등급으로 나눠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다. 일본은 경제성장의 숨은 동력으로 꼽힌 종신형 호봉제 대신 1960년대 후반부터 이를 도입해왔다. 정부는 이날 자동차 제조업체와 은행, 병원 간호사 등 직군의 임금 모델을 함께 제시했는데, 주로 40대 중반까지 직능급을 적용하라고 권장했다. 노동자 간 경쟁을 유도하고, 인사권을 쥔 사용자가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사용자의 평가가 주관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따른다. 노조 전임자 등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 기계적 평가와 보상이 고착화되거나 고위직 노동자의 고임금화가 가능해, 지금의 연공급제와 다른 게 별로 없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직업교육 정도, 지식, 경력, 업무 난이도, 숙련도, 직종, 자격 요건 등 객관적 평가요소를 추리고, 평가요소별로 가중치를 달리한 등급·점수표, 그에 따른 직능급 임금표를 노사가 설계하는 게 관건이다.
■ 유럽식 직무급 직무급은 직무의 가치를 평가해 임금을 결정한다. 직무의 중요도, 난이도, 근무환경 조건 등을 측정하는 직무분석과 이에 대한 직무평가를 거치게 된다. 동일 직무, 동일 임금이 특징이다. 유사한 가치를 지닌 직무를 함께 묶어 등급화하고 제한된 범위 안에서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독일 등 유럽에서 적용하고 있다. 직무를 변경하기 전엔 승급이나 임금에 큰 변화가 없다. 장기근속과 고용차별 완화 등이 가능하지만, 산업구조나 기술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직무평가 기준은 직무에 요구되는 기능, 지식 수준, 육체적·정신적 노력의 정도, 과업의 중요도와 책임 수준, 작업환경의 난이도 등 다양하다. 이에 따라 상중하 임금등급(고급전문직 또는 단순노동직 등)을 구분하고, 등급별로 S, A, B, C 평가 등급을 둬 최저임금과 최대임금 폭의 범위를 설정한다. 상위 임금등급 노동자일수록 평가등급에 따른 임금 차이가 적어 기업의 임금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정부는 자동차 제조업체나 은행 사무직의 40대 중반을 넘어선 노동자한테 직무급을 적용하도록 모델을 제시했다. 연공에 따라 임금 상승 폭이 커지는 중장년 노동자의 임금 상승을 완만하게 하기 때문이다.
■ 안착할 수 있나 노동계와 일부 학계는 직무급·직능급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독일처럼 노사정 대타협으로 직무급제가 자리잡은 선진국과 한국의 사정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1월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 이어 최근 민간기업에 불리한 단협 실태를 반영한 임단협 교섭 지침(<한겨레> 6일치 1면)까지 내놓겠다고 나서, 노동계의 신뢰가 바닥을 친 상태다. 박근혜 정부를 두고 기업 편향이라는 비판이 많은 이유다.
사정이 이렇지만, 박화진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은 "임금체계 개편은 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며 "노사가 매뉴얼을 참고해 자율적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학계의 논쟁이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지난달 23일 한국노동연구원·노사정위원회·국민경제자문위가 공동 주최한 '임금체계 개편 대토론회'에서 유규창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임금피크제는 단기 대안으로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고 오래갈 수도 없다"며 "고도성장기를 지났고 임금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직무급 도입은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실제 분석을 해본 결과, 직무급·직능급 기업의 경영성과가 개선됐다고 보기 어려웠다"며 "그런데도 획일적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결국 노동자 통제를 강화하려는 수단이 아니냐는 비판만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