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리플로 달다가 얘기가 길어져 글로 씁니다.
베스트에 아들 죽이고 자신은 회개해서 천국갈꺼라는 아빠의 글과 리플보고 적습니다.
근데 결론은 한국 교회 대부분의 잘못된 인식에 대해서 적는군요.
우선 그 베스트간 아버지에 대해서 적습니다.
나쁜짓을 할수 있는 기회가 오면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한뒤에 교회가서 회개하면 끝이라는 얘기시지요?
이걸 성경에서는 성령훼방죄라고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3장 28~29
이게 왜 성령훼방죄냐면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좀 복잡하지만 그냥 그렇게 넘어가겠습니다.
보편적으로 이것을 "알고 지은죄", "이용하는 죄" 뭐 이렇게 부릅니다.
'내가 이 죄를 지어도 사하여 주시겠지.'하고 지은죄입니다. 성령님을 이용하는것이죠.
이것은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된다고 했습니다.
100% 천국에 못간다고 하죠. 아까 위에 적었는데... 이것이 성령훼방죄입니다.
보편적으로 제대로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다 아는 구절이며 아는 내용입니다.
저분은... -_ -;; 종교를 이용한것으로 보이네요.
그리고 얘기 나온김에 또 다시 한 얘길 더합니다.
요즘 개콘에서 보면 김권사님인가 나오시죠?
그분 하시는 말중에 하나가 "자매님~ 집에 계신거 알거든요~ 문열어 주세요~, 제가 내일도 모레도 문 열때까지 계속올꺼에요~"하는 내용.
무척이나 공감되죠. 현재 이렇게 전도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일부... 안타깝지만 아닙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마가복음 6장 11절
성경에는 복음을 '전하라'라고 했지 '설득하라'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했으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냥 뒤돌아서 발아래 먼지 떨어버리고 다른곳으로 가면 됩니다.
계속 싫다는데 초인종 누르고 소리 지르고 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한국 기독교 선교법 정말 잘못되어있습니다.
썩어가고 있죠.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저렇게 선교합니다. 한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게 맞다고 생각됩니다. 싫다는데 꼬시고 비비고 어르고 협박하고... 이건 복음이 아닙니다. 사생활 침해지요.
전 열방대학 제자훈련과정(6개월)까지 수료하고 전도여행도 다녀온 사람이며 현재 울산에서 그냥 교회다니는 사람입니다.
교회 오래 다닌(물런 저도 27년째 다니고 있음-7살때 처음 갔음) 사람들은 전도를 무슨 피라미드회사 회원늘리기 쯤으로 생각합니다.
이러니 썩어가고 있다는 얘길 하지요. 서로 그렇게 해놓고 자위하고들 있습니다.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교회 안이 아니라 밖에서는 이러한 전도방법이 회사를 경영하는 방법으로 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이부분에 대해 저희 교회 담임목사님과도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참고로 교단에 등록하지 않은 독립교회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기존 교회의 많은 잘못된 전도하시는 분들께 한마디 드립니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행동하나 때문에 정작 욕먹는건 주님이십니다.
만약 당신이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러니까 예를 한번 들어볼께...
흠... 당신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원래는 무척이나 부자셨어... 그런데 자신의 나라가 일본에게 넘어가버린거야. 분노하시고 터질듯한 가슴을 추스리지 못해 직접 자신의 가계를 들고서 의병을 일으키시고 군자금을 대시고 직접 게릴라전을 하면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셨다.
물런 멋지겠지... 떳떳할꺼고... 그렇죠?
그 여파로 잘나가던 가세는 국가를 위해 다 써버렸고 자신의 부인과 함께 도망다니다 부인은 수차례 경찰서가서 폭행에 고문당하고 아이들은 돈이 없어 배우기는 커녕 밥조차 제때 연명하기 힘든 생활을 했다면...??
당신은 정말 떵떵거리며 그리고 지금 죽은 이후에도 정말 잘~ 살고 있는 친일파의 자손이 되렵니까? 아니면 배울때 못배우고 먹을때 못먹어 아주 낮은 삶을 사는 그런 독립군의 자손이 되렵니까?
갑자기 이런게 자신의 문제로 닥쳐 왔다면... 만약 독립군을 선택한 할아버지께 "정말 밑바닥 인생을 펼치고 있는 자손들의 모습을 보세요. 할아버지께서 괜한일 하셨어요. 이게 독립군 자손의 실상입니다!"라고 얘기 하겠습니까? 아니면... "그래도 할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독립된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라고 얘기할래요?
사실... 잘모르겠네요.
저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저런일을 하셨다네요.
독립군의 자손이란게 저였더군요. ^^
어짜피 되돌릴수 있는게 아니잖습니까? ^^ 뭐가요? 친일파로 떵떵거리며 살수 있는 기회를 돌리고 싶냐구요? 아뇨~~!
우리나라가 해방되지 못할께 아니잖냐는 말입니다. 물런 할아버지 같으신분이 계셨기에 말이죠.
사실 많이 부끄럽습니다.
역사학을 배우는 손자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니 말이죠.
물런 친가나 외가나 다 반씩 피를 물려 받았으니 같게 생각해야 하는데 말이죠... ^^
할아버지... 전 할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아주 좋은 세상을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서 선물하셨으니까요... 
잘살께요. 
그리고 떳떳하게... 독립군의 자손의 이름에 걸맞는... 떳떳한 손자가 되겠습니다.
할아버지... 사랑합니다.
- 2004. 8월 29일 늦은 11시... 외고손 순찬올림 -
권석도(權錫燾) - 1880. 9. 9~1946. 4. 6 
경남 함양 - 의병 
서훈내역 - 독립장(86) 
공적내역 - 경남 함양(咸陽) 사람이다.
일제가 을사조약을 늑결하고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키자 크게 분노하여 김동신(金東臣) 의병진에 참가하였다가 고광순(高光洵) 의병진과 합류하였다. 1907년 10월 11일 고광순이 전사하자 남은 의병을 이끌고 계속 활동하였다. 동년 12월 21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서 박인환(朴仁煥) 의병진과 합류하였으며, 박인환 등의 추대를 받아 의병장이 되었다.
이후 그는 지리산을 거점으로 하동·함양·구례 등지에서 항쟁하였다. 1908년에는 하동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던 중 동년 6월 26일 하동 일본수비대에 피체되었다. 하동주재소에 구금 중 그는 1908년 7월 9일 탈주에 성공하여 도피하다가 일경의 추격을 받아 흉부에 총상을 입고 산속에 은신하였다가 친척집에서 치료를 받았다.
1909년 3월 그는 다시 이학로(李學魯) 의병장과 합세하여 진주 서면 동양곡(東陽谷)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며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09년 5월 하순 박매지(朴每之)·이학로 등 수명과 함께 진주시 산기동(山岐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일본수비대와 마주쳐 피신하였다. 그후 행상으로 변장하고 은밀하게 활동을 계속하던 그는 1909년 10월 10일 진주에서 다시 일경에 피체되고 말았다. 
그는 결국 1909년 12월 15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종신징역형을 받고 대구공소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종신형이 확정되었다. 모진 옥고를 치르던 그는 소위 일황의 특사로 재감 6년 9개월 만인 1916년 6월 24일 가출옥하였다.
그는 1918년 2월 일경으로부터 다시 강도사건의 누명을 쓰고 함양경찰서에 피체되었으나, 10여개월간 옥고를 치르다가 1918년 12월 1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출옥하였다. 이 당시 그는 허위자백을 강요하는 일경의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회복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일경의 소위 요시찰인 감시가 극심하자 그는 가족과 함께 포항·울진 등 낯선 고장을 전전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6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註·판결문(1910. 2. 19 대구공소원)
·판결문(1918. 12. 12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
·진주경찰서장 정보보고(1908. 6. 30, 7. 9, 1909. 10. 11∼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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