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와게에 글쓰네요.
어제 죽기 탱템은 티9까지 있는데 딜템이 거지더군요.
그래서 티8(현재 티7-25 4셋에 티9 1셋) 정복으로 사려고 간만에 용사 딜 모으길래 갔습니다.
귓 넣었드니 귓이 없길래 바로 아템은 먹을게 없어요. 라고 했죠.
바로 초대 오더군요.
아무도 출발 안하길래 저먼저 글폰타고 출발했공... 도착후 정확히 10분만에 도착들을 하더군요.
ㅋㅋ 달나라에서 바론데;; 같이 4명이 날아오니 솬이;;
아무튼 잡으러 갔는데 3명이 처음왔네요. ㅋㅋ 결국 흑마한분이랑 저만 갔더군요.
그중 2명은 따로 왔고 1명은 파장과 같은 길드더군요.
근데 문제는 그 보기(ㅎㄷㄷ;; 인내법흐 쳐서 31000피)가 개념이;;
첫넴 잡는데 10분동안 딜하긴 첨이네요. 저도 딜템이 별로 없지만 전 바닥인생 죽기니깐요.
죽도록 5인에서 딜했는데 디피가 4400이 뜨네요. 근데 10분동안 못잡고 결국 누웠습니다.
여기서 신사 암사 이렇게 사제가 둘이었는데 처음엔 딜하다 암사도 힐을;; ㅋㅋㅋ;;
결국 답답한 제가 탱하기로 했습니다. 근데 사제로 와있던분이 흑마로 와서 보기가 보기템밖에 없으니
걍 딜하라고 하더군요.
전 노법35000은 되는 냉탱인데... 뭐 시크하게 알겠다고 다시 특성 갈아탔습니다.
이 앞은 별로 중요한게 아니에요.
ㅋㅋ 이 보기가 1넴 잡고 나니까 룻을 하더니(모두 아시죠? 공물함 열면 혼자면 볼수 있는거?) 계속 가만히 있더니 목걸이를 아무말도 없이 룻해서 가져 가더군요. ㅋㅋ
그래도 뭐 파장이랑 앞 사람들이랑 알겠지? 하고 가만 있었습니다.
후후 근데 그 보기가 하는 말이 '저 목걸이 먹을께요.' 하더니 '왜 목걸이가 없죠?' 하더군요.
옆에 있던 친구 파장 흑마님이 '드셨자나요' 하니... 인벤보더니 '어? 언제 왔지 하더군요.'
후후... 여기까지 하는데 딱 20분 걸렸네요.
더 웃낀건 2넴 3넴때도 똑같이 자기꺼 나오니까 말도 없이 먹더군요.
--;; 템 우선이라는 광고도 안해놓고... 이때쯤 알았네요. 나머지 두명은 모르는 사람이라는거.
막넴 잡고서 멍~ 하고 있다가 주사위만은 이겨야 겠더군요. ㅋㅋ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주사위 1등해서 얼보랑 심수먹어 왔습니다.
잘했죠? ;ㅁ;
근데 뭔가 씁쓸하죠? 왜? 흠... 쓰고보니 별거 아니었나??
만약 당신이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러니까 예를 한번 들어볼께...
흠... 당신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원래는 무척이나 부자셨어... 그런데 자신의 나라가 일본에게 넘어가버린거야. 분노하시고 터질듯한 가슴을 추스리지 못해 직접 자신의 가계를 들고서 의병을 일으키시고 군자금을 대시고 직접 게릴라전을 하면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셨다.
물런 멋지겠지... 떳떳할꺼고... 그렇죠?
그 여파로 잘나가던 가세는 국가를 위해 다 써버렸고 자신의 부인과 함께 도망다니다 부인은 수차례 경찰서가서 폭행에 고문당하고 아이들은 돈이 없어 배우기는 커녕 밥조차 제때 연명하기 힘든 생활을 했다면...??
당신은 정말 떵떵거리며 그리고 지금 죽은 이후에도 정말 잘~ 살고 있는 친일파의 자손이 되렵니까? 아니면 배울때 못배우고 먹을때 못먹어 아주 낮은 삶을 사는 그런 독립군의 자손이 되렵니까?
갑자기 이런게 자신의 문제로 닥쳐 왔다면... 만약 독립군을 선택한 할아버지께 "정말 밑바닥 인생을 펼치고 있는 자손들의 모습을 보세요. 할아버지께서 괜한일 하셨어요. 이게 독립군 자손의 실상입니다!"라고 얘기 하겠습니까? 아니면... "그래도 할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독립된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라고 얘기할래요?
사실... 잘모르겠네요.
저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저런일을 하셨다네요.
독립군의 자손이란게 저였더군요. ^^
어짜피 되돌릴수 있는게 아니잖습니까? ^^ 뭐가요? 친일파로 떵떵거리며 살수 있는 기회를 돌리고 싶냐구요? 아뇨~~!
우리나라가 해방되지 못할께 아니잖냐는 말입니다. 물런 할아버지 같으신분이 계셨기에 말이죠.
사실 많이 부끄럽습니다.
역사학을 배우는 손자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니 말이죠.
물런 친가나 외가나 다 반씩 피를 물려 받았으니 같게 생각해야 하는데 말이죠... ^^
할아버지... 전 할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아주 좋은 세상을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서 선물하셨으니까요... 
잘살께요. 
그리고 떳떳하게... 독립군의 자손의 이름에 걸맞는... 떳떳한 손자가 되겠습니다.
할아버지... 사랑합니다.
- 2004. 8월 29일 늦은 11시... 외고손 순찬올림 -
권석도(權錫燾) - 1880. 9. 9~1946. 4. 6 
경남 함양 - 의병 
서훈내역 - 독립장(86) 
공적내역 - 경남 함양(咸陽) 사람이다.
일제가 을사조약을 늑결하고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키자 크게 분노하여 김동신(金東臣) 의병진에 참가하였다가 고광순(高光洵) 의병진과 합류하였다. 1907년 10월 11일 고광순이 전사하자 남은 의병을 이끌고 계속 활동하였다. 동년 12월 21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서 박인환(朴仁煥) 의병진과 합류하였으며, 박인환 등의 추대를 받아 의병장이 되었다.
이후 그는 지리산을 거점으로 하동·함양·구례 등지에서 항쟁하였다. 1908년에는 하동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던 중 동년 6월 26일 하동 일본수비대에 피체되었다. 하동주재소에 구금 중 그는 1908년 7월 9일 탈주에 성공하여 도피하다가 일경의 추격을 받아 흉부에 총상을 입고 산속에 은신하였다가 친척집에서 치료를 받았다.
1909년 3월 그는 다시 이학로(李學魯) 의병장과 합세하여 진주 서면 동양곡(東陽谷)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며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09년 5월 하순 박매지(朴每之)·이학로 등 수명과 함께 진주시 산기동(山岐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일본수비대와 마주쳐 피신하였다. 그후 행상으로 변장하고 은밀하게 활동을 계속하던 그는 1909년 10월 10일 진주에서 다시 일경에 피체되고 말았다. 
그는 결국 1909년 12월 15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종신징역형을 받고 대구공소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종신형이 확정되었다. 모진 옥고를 치르던 그는 소위 일황의 특사로 재감 6년 9개월 만인 1916년 6월 24일 가출옥하였다.
그는 1918년 2월 일경으로부터 다시 강도사건의 누명을 쓰고 함양경찰서에 피체되었으나, 10여개월간 옥고를 치르다가 1918년 12월 1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출옥하였다. 이 당시 그는 허위자백을 강요하는 일경의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회복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일경의 소위 요시찰인 감시가 극심하자 그는 가족과 함께 포항·울진 등 낯선 고장을 전전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6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註·판결문(1910. 2. 19 대구공소원)
·판결문(1918. 12. 12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
·진주경찰서장 정보보고(1908. 6. 30, 7. 9, 1909. 10. 11∼10. 13)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