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시간 보다 조금 늦게 준비가 끝났다.
한껏 기분내고 싶어서 오랜만에 짙게 화장도 해보고, 아끼던 향수도 맘껏 뿌리느라 늦었다.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언니 조금 늦을거같아, 심심하면 글하나 보내줄까? 읽고 있을래?'
'아냐 나 책있어, 천천히와'
뜨람에 올라서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전화기에 있는 '구운몽'을 읽고 있었다.
꼭 내 이야기 같더라.
보름간의 짧은 꿈을 꾸었음을,
넌 나를 받아 드릴 수 없음을,
대가리 한대 크게 얻어 맞은 양소유가 나였음을.
글을 읽으며 궁상을 떨고 있으니 두오모 역에 도착했다.
언제나봐도 아름답다,
그 압도적인 크기는 항상 날 작아지게 만든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였나보다. 두오모 성당 앞에
커다랗게 콘서트 스테이지가 차려져있었다.
락페스티벌에 가면 느껴지는 그 큰 밴드 음악들이 빵빵하게 울려났다.
리허설 중이였나보다 중간중간 음악소리가 끊겨났지만,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건 음악만큼 더 좋은것이 없더라.
기분이 참 좋았다, 그 큰 두오모,
관광객 반, 현지인 반, 비둘기 반, 우글우글한 두오모앞 광장
그 광장에 꽉찬 스테이지, 계속해 울려퍼지는 악기소리.
멀리서 보이는 익숙하지만 보고싶던 얼굴.
언제부턴가 누군가가 보이면 안녕 인사보다는 가서 안아주는게 편해졌다.
볼옆에 키스 소리를 내주는것도 너무 좋은 인사같다.
그럼 그 짧은 순간에 그사람의 냄새, 그사람의 체온 모든게 느껴지는 따뜻한 인사법 같다.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놀러온 친구에게 반가워서 껴안다가 서로 당황한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국에 가서도 한동안은 이렇게 인사하지 않을까?
옆에서 울리는 큰 음악소리에 언니도 나도 신나있었다.
기분이 참 좋았다.
서로의 짧은 근황 이야기가 계속 오가는 속에
레스토란떼에 들어가 뭘 먹을까 라는 주제가 추가되었다.
먼저 말을 꺼냈다.
'요즘에 고기는 잘 못먹겠어, 그냥 샐러드 먹을래.' 라고 말을 하고선
나는 동그란 나무 보올에 담긴 샐러드에 삶아진 문어를 추가해 먹기로 했다.
종업원이 말을 꺼냈다. 극존칭의 단어를 써서 조금 부담스러웠다.
'드레싱은 뭘로 드릴까요?' '드레싱 혹시 추천 해줄수 있나요?'
'발사믹은 테이블에 있지만, 이 레몬드레싱은 없으니까 이걸로 드릴까요?'
말이 끝나자 그녀는 마티니에 절여진 올리브색이 나는 드레싱을 내 샐러드에 뿌렸다.
'한번 더??' '네! 부탁해요!'
언니는 그 사이에 푸로슈토와 모짜렐라가 담긴 접시를 받았다.
밖에서 들리는 음악소리를 더 까깝게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힘들어서 그런지 언니가 많이 보고싶었어,
이런일도 있고 저런일도 있었더라,
좋아하는 사이트에 다이어트 게시판이 있는데
거기 사람들이 참 부지런해서 그거보고 많이 배운다,
출장은 힘들었어, 그치만 오랜만에 남자친구를 봐서 즐거웠어,
운동갔다가 들리는 밥집이 생겼어, 너도 알려주고싶어,
힘들었어?, 많이 힘들만 했겠네, 잘 버텼어,
그래서 기분이 보라색이라 그랬던거야?
그 밥집 사장님이 책을 추천해주셨어, 너도 읽어볼래?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많이 걸을까?
정말 누가봐도 계집 둘의 대화지만, 언니랑 대화하고 있으면
항상 맘이 편하다.
샐러드에 들어간 문어도 보이지 않고 포크로 쑤셔도 걸려 올라오는게 없어질 때 쯤
자리를 떠서 마냥 걷고 있다.
기분이 많이 풀렸다, 계속해 울리는 큰 음악소리 가볍게 먹은 저녁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는 대화.
길을 걷다 언니가 나에게 팔짱을 끼고선, 아무렇지도 않게
의도치 않은척 나를 젤라떼리아로 끌고들어갔다.
'언니!!!!!!! 나도 먹고 싶었어!!!!!!'
초콜라또 젤라또가 유명한 집이지만, 개인적으로 크리미한 젤라또를 좋아하진 않는다.
샤벳같이 과일향이 물씬 느껴지는 젤라또가 좋다.
언니는 피스타끼오와 커피맛 두가지를 고르고 그 위에 화이트 초코를 뿌렸다.
나는 그리도 먹고 싶던 레몬과 우유맛 두가지를 고르고 그 위에 화이트 초코를 뿌렸다. (하 주여, 살로 가지 않게 도와주소서)
'언니 살찌는건 왜 다 맛있어?, 마시멜로같이 식감 제로이고 먹은 느낌 안나는 것들을 0칼로리가 되야 맞는거 아니야?'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언니의 말에 불...아 없구나 탁치고 길을 계속해 걷고 있었다.
어디갈까? 그냥 좋으니까 오늘은 걷자.
두오모에서 브레라-모스코바-가리발디-다시 모스코바로 걸었다.
한참을 걷다, 언니가 발걸음을 멈춰서 나한테 말했다.
'여기야!'
bab이라는 간판이 적힌 작은 가게가 있었다.
한글로 '밥'이라고 써있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정말 작은 가게에 온통 친환경적으로 보이는 인테리어
작은 테이블 마져도 본인이 직접만든 것처럼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나는 김.밥.냄.새!!!!!
이게 몇년 만이냐, 와 너무 행복했다 !!!
으어!! 언니!!!!!!! 계속 소리를 쳤지만 가격이 참 슬펐다.
4피스에 5유로, 김밥 한 개당 천원인 꼴이다.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무거운 재료는 하나도 없이, 정말 신선한 김밥이였다.
이건 뭐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개당 천원이라니
수중에 5만원이 전부인 내겐 정말 치명적인 가격이였다만
너무 즐겁게 그 4개를 다 먹었다.
그리고 사장님과 언니 나, 이렇게 또다시 대화가 오갔다.
아 음식을 이렇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구나.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식당을 나와
밀라노가 다 보이는 곳에서 언니랑 얘기를 하고있었다.
'와인마시고 싶다'
'나도!!! 근데 오늘 돈 많이 써서 여유가 안돼, 일한거 돈 들어오면 맛있는거 먹으러가자!'
'그래!!'
'오늘 기분 다 풀렸어?'
'응!! 완전좋아 맛있는거 먹고 얘기도 많이하고'
라는 이 즐거운 대화를 끝냈을때... 끝냈을때!!
전화기가 없어진걸 알게되었다.. 흐헝.. 내 전화기 ㅠㅠㅠㅠㅠ
헝..헝 내 전화기 어디간거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 남은 돈이 거기 있는데ㅠㅠㅠㅠㅠㅠㅠ...흐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강제 식이요법이 또다시 시작되는건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화나서 가리발디서부터 집까지 걸어왔다....
한 14키로는 되보인다.. 힘들지도 않았다.. 그냥 무념무상.. 흐엉..
걸어오고.. 새벽 3시에... 삶은 감자를 두개나 먹고 자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고 15분짜리 요가를 해놓고
삶은감자에 우유를 먹었다...
운동하기 시러오늘.... 안해....
오늘은 기필코 꼭 와인을 먹으리라......
무도 보면서 먹으리라... 내 폰.....ㅠㅠㅠㅠㅠ
엄마한테 폰 잃어버렸다고 말하니..
'호사다마' 한마디만 하고 사라졌다.. 매정한년.. 나 외동딸 맞냐...
하... ...........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연어랑 샐러드 사다가 사치스러운 저녁을 해먹어야지 !!!!!!!
내 2015년 10월의 세번째주는 참으로 많은 일이 많다.
그럼 오는 다음주에는 좋은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은 미사가는 날이라 음식도 많이 안먹을터이고 운동은 물론 안할꺼니까!!
하느님도 쉬는날에 나도 쉬어야지
월요일날엔 제대로 된 운동일기를 쓸 나를 기약하며!!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