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듀크대에서 벌어진 반중, 친중 집회에서 중국인 유학생 왕첸위안이 보여준 단호한 행위를 놓고 중국 네티즌들이 난리가 난 모양이다. 한겨레 블로그에서 방금 전에 관련 글 두 개를 (http://blog.hani.co.kr/medicine/12367 와
http://blog.hani.co.kr/medicine/12379 ) 보았다. 한 마디로 광란의 도가니요, 홍위병식 인민재판이다. 반론이 하나도 없는, 아니 찬성하더라도 좀 자제하자는 충고조차 수용할 수 없는, 브레이크 없는 광란의 기관차 꼴이다.
왕첸위안이 티벳 독립을 외친 것도 아니다. 본인도 티벳독립에 반대한다고 밝혔단다. 단지 민족주의를 하더라도 좀 이성적으로 하자고 했단다. 그런데 그렇게 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한 여학생을 반역자로 매도하고, 그녀의 부모님 집에 인분을 뿌리고 위협까지 가하는 모양이다.
이에 대한 한국 네티즌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덩달아 흥분하여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중국 네티즌들을 비하하고 욕하는 부류다. 내가 직접 겪는 네티즌들이야 거의 100% 한겨레 한토마와 블로그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그 분들을 통해서 거대 포털 사이트의 동향을 알 수는 있다. 얼마 전에는 직접 그런 블로그(한겨레)에도 가 본 바 있다.
다른 부류는 한국 네티즌들의 행태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식의 냉소주의다. 이들의 근거는 매우 탄탄하다. 한국 네티즌들도 예전에 심판 판정 문제로 FIFA 를 들쑤셨다가 접속 자체를 차단당한 적이 있고, 황우석과 심형래 일로 인터넷을 몰려다니며 저지른 추행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기에, 나도 굳이 두 부류 중에 한 쪽으로 서라 한다면, 이 부류에 속하겠다.
그런데... 중국 네티즌이 욕을 한다고 덩달아 흥분하여 맞받아 욕해대는 한국 네티즌 부류에 대해서는 뭐라고 평을 할 가치도 없지만, 양비론적 냉소주의에 대해서도 두어 가지 첨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내가 냉소주의에도 좀 비판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놓고 본다면, 양국 네티즌의 반응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한중 네티즌들 정서에는 비슷한 게 많다. 아마도 소위 근대의 문턱에서 크나큰 좌절을 맛 본 두 나라 국민들의 갖는 병적인 피해의식과 열등의식이 네티즌들에게도 잠재해 있다가 어떤 감각적인 사건이 터지면 거의 광란의 수준으로 표출되는 것 같다.
역사적 피해의식이 한국과 중국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투라우마로 남아있는지 보여주는 많은 예 중에, <최초 콤플렉스>라는 게 있다. 세계최초라는 말에 유난히 잘 현혹되는 두 나라를 꼽으라면 아마도 한국과 중국일 것이다. 일본도 비슷하지만, 한국과 중국에는 게임이 안 된다.
역사 교과서만 보아도 한국과 중국에는 뭐 그리 최초가 많은지.. 참 재미있다(웃긴다). 역사책이라면 최초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최초"가 후대에 어떤 영향을 주며 계속 발전하였는지가 더 중요한데, 양국 교과서가 갖는 최대의 약점 중 하나는 그런 분석이나 해석이 거의 없다는 거다. 그저 예전에 우리가 이렇게 세계 최초였음만 강조하며, 그로써 허황된 민족의식을 주입할 뿐이다. 그 "최초"가 현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겉으로 드러나는 한중 네티즌의 행태는 비슷하며, 그 심리적 바탕도 비슷하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될 게 있다. 그런 광란의 마녀사냥식 한풀이의 현실 가능성 및 현실화 될 경우에 중국과 한국이 끼칠 영향에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인구가 5천만 정도다. 100% 자주적으로 통일을 한다고 해도 8천만 수준이다. 통일 후에 사회 일부에서 "한풀이" 식의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팽창주의가 결합하여 사회를 시끄럽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이고, 민주주의 사회의 특성 중 하나는 국론의 통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거다. 따라서 통일 후에 예상되는 극단적 민족주의가 실제로 우리사회의 중심 여론이 되어 국가 정책을 좌우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전후 일본의 극우파가 아무리 목소리 높이고 돈을 뿌려도, 사실 일본의 정책을 주도하지 못한 것과 비슷한 현상에 그칠 것이다.
설사 통일 후에 어떤 극단적 민족주의자가 포퓰리즘에 힘입어 대통령이 되어 정권을 잡는다 해도, 그래서 통일된 힘을 정말 주변으로 뻗으려 해도, 한반도 주변에는 그 대상이 될 만한 만만한 나라가 없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의 극단적 민족주의는 통일 전이건 후이건 상관없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공산이 거의 100%다.
근데 중국은 그렇지 않다. 소수민족 다 빼고 현 중국 인구를 아무리 에누리 해서 잡아도 10억이 넘는다.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많다. 그렇게 많은 인구가 하나의 지향점을 갖고 광란의 민족주의로 나간다면, 그 영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또한 한국과는 달리, 중국은 아직도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다. 어찌 보면, 중국인들은 자기네 3,000년 전체 역사를 통틀어 아직까지 진정한 투표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민주주의의 "민"도 제대로 맛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독재 치하에서만 3,000년을 살았으므로 국론의 통일이 너무 쉽다. 반대의견 내면 그냥 잡아가면 되니까...
그뿐인가? 만약 중국이 정말 극단적 민족주의로 나간다면, 현재 중국의 힘으로만 보아도 중국 주변에는 집어삼킬 만한 땅과 나라가 현실적으로 매우 많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수많은 약소국가들의 진정한 고민이 바로 이 때문이다.
몽골은 지금 발등에 거의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막말로 어떤 또라이가 중국의 권력을 쥔 다음, 광란의 네티즌들의 허황된 민족주의를 부추겨 몽골에 군부대 투입하면, 24시간 안에 상황 끝이다. 국제 무대가 발칵 뒤집히겠지만, 유엔인들 어쩔 것인가? 중국과 전쟁을 할 것인가? 중국에 경제 봉쇄를 할 것인가? 300만 몽골 인구도 이런 시나리오를 알기에, 지금 노골적으로 한국, 일본, 러시아, 미국에 의지하려는 거다. 국제적 외교와 역학관계 외에는 중국의 몽골 병합을 막을 길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우리의 북한은 어떤가? 김정일이 갑자기 몰락한다면 북한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단언하건대, 몰락한 북한이 "저절로" 남한에 속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과 미국은 이미 10년 전부터 유사시에 대비하여 북한 접수 계획을 따로 가지고 있다. 두 거대 국가가 북한을 먹기 위해 직접 싸우지야 않겠지만, 그 경쟁은 치열할 것이다. 이럴 경우, 내 생각에는 아마도 1945년 이후 한반도의 경험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즉 북한 지역에 대하여 다국적 신탁통치가 유엔의 해결안으로 나올 공산이 크다. 전쟁을 피할 거의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북한 땅은 접수 못하고, 북한 난민들만 받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이런 얘길 길게 한 이유는 바로 중국 네티즌들의 광란의 쏠림 현상은 한국 네티즌들의 그것과 현실적으로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건 매우 중요한 차이다. 따라서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해서 양국 네티즌들을 같은 동급으로 놓고 양비론적으로 비판하고 냉소적으로 끝나서는 안 되리라 본다.
요약하면, 한국의 소위 -빠 네티즌들은 인터넷에서만 패거리로 몰려다닐 뿐, 자기들 목소리를 현실에서 정치세력화 할 힘이 너무 약하다. 설사 그렇게 시도한다고 해도, 한국사회는 어느 정도 자정능력을 이미 갖춘 사회다. 또 그런 힘을 써 먹을 주변 땅이 현실적으로 없다. 반면에 중국은 정말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광란의 마녀사냥을 현실로 끄집어 낼 수 있는 수준의 저급한 사회이며, 그 힘을 실제로 써먹을 땅이 주변에 널려있다.
어떤 사람이 광화문에서 쿠데타를 일으키겠다고 하면, 그냥 내버려 두거나 정신병원으로 보낼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현역 장군들이 여러 명 모여 쿠데타 가능성을 언론에 뿌린다면 어떻게 될까? 쿠데타 망발을 한 점은 같지만, 우리의 대응은 확연히 달라야 할 것이다.
한중 네티즌들이 보이는 광란에도 이런 큰 차이가 있다. 양국 네티즌들의 광란의 현상이 얼추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저 간단히 양비론으로, 냉소적으로 끝내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겉으로는 웃을지언정 품속에는 늘 예리한 칼을 품고 중국을 경계하며 사귀어야 한다.
한겨레 필통..
http://blog.hani.co.kr/nocon/15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