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널 봤을 때 <div>난 널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div> <div><br></div> <div>너는 그냥 내 하루, 또는 한달, 몇 년의 시간 속에서</div> <div>한 두줄의 선으로 연결된 채 지나가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으니까</div> <div><br></div> <div>그래서 난 네가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아파할 자격이 없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몇 달 후, 마음의 조명</div> <div>그 그늘에 있던 관객 중 하나였던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널 다시 보았을 때</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난 깜짝 놀랐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예고 없이 넌 관객석에서 내 마음의 무대 위로 성큼성큼 걸어 올라왔다</span></div> <div>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부터</div> <div>너의 자리가 여기였다 하고 </div> <div>알고있기나 했던듯이</div> <div><br></div> <div>놀란 나는 올라오는 너의 손을 지지해주는 대신에</div> <div>무대의 뒤쪽으로 종종걸음치며 도망가</div> <div>벨벳 커튼 뒤에서 내 무대 위의 너를 훔쳐보았다</div> <div><br></div> <div>그래서 난 네가 다른 배우와 함께 서있는 것에 대해 아파할 자격이 없다</div> <div><br></div> <div><br></div> <div>이런 때도 있었다</div> <div>네가 나에게 말을 건네면</div> <div>내가 대답을 하고</div> <div>너는 다시 그 대답의 대답을 하던 때였다</div> <div><br></div> <div>네 눈짓이 내 마음엔 꽃가루 날리는 것처럼 간질간질하고</div> <div>네 손등의 작은 핏줄을 볼때마다 내 대동맥 속 피가 폭포처럼 쏟아지던</div> <div>그런 때가 있었다</div> <div><br></div> <div>너는 식물학자라도 된 것처럼 봄꽃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div> <div>나는 그 감정없음에 등허리춤이 찌릿하니 시려와서</div> <div>꺾어주려던 꽃을 다시 꽃밭에 내려놓았다</div> <div><br></div> <div>그래서 난 네가 받은 그 정갈한 꽃잎과 너의 표정에 대해 아파할 자격이 없다</div> <div><br></div> <div><br></div> <div>네가 없이도 많은 날을 살았다</div> <div>널 보면서도 없는 것처럼 또한 많은 날을 살았다</div> <div>너랑은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과 관계도 맺었다</div> <div>너와의 연이 희박한 사람일수록 좋았다</div> <div>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긴 터널의 비상 탈출구라도 만난 것처럼</div> <div>숨을 참고 달려가곤 했다</div> <div>달려간 끝엔 언제나 어두컴컴한 방, 코에 응결되는 샤워냄새</div> <div>그리고 잠든, 내 맘과 몸을 다 바친, 하지만 영혼만은 줄 수 없던 여인이 누워있곤 했다</div> <div><br></div> <div>그래서 난 너와, 나와, 내가 모르는, 또는 네가 모르는 A,B,C들의 관계에 대해서 아파할 자격이 없다</div> <div><br></div> <div><br></div> <div>네가 너무 서럽게 울던 겨울날이 있었다</div> <div>나는 네 옆옆옆자리이자 너의 맞은편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div> <div>너는 네 눈물을 홀짝홀짝</div> <div>나는 내 술잔만 홀짝홀짝 </div> <div>네가 빨리 울고 탈진해서 엎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div> <div>네가 우는 이유와 네가 우는 그 모습이</div> <div>노끈처럼 내 목을 몇 분마다 간간히 졸라오곤 했다</div> <div>숨을 쉬러 밖으로 나가야 했다</div> <div>뜨거운 마음과 차가운 바람이 만나는 곳엔</div> <div>장마전선이 생긴다는 걸 알았더라면 </div> <div>휴지를 좀 가지고 나갔을텐데</div> <div>넌 안에서 홀짝홀짝</div> <div>난 밖에서 홀짝홀짝</div> <div><br></div> <div>그래서 난 너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 사람과 너의 눈물에 대해서 아파할 자격이 없다</div> <div><br></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봐라, 어떤 사람은 아파할 자격이 없다</span></div> <div><br></div> <div>칼질을 하다가 베인 상처에 아파하는 사람들에게는 있다</div> <div>뛰다 넘어져 까진 상처에 아파하는 사람에게도 있다</div> <div>의자에 앉아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상처 하나 없이 조용히 우그러진 나에게만은 그 자격이 없다</span></div> <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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